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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산골짜기 약물가게
작가 : 인구수낭비
작품등록일 : 2017.12.12

[게임 판타지/라노벨]
이곳은 없는 거 빼고 다 파는 산골짜기 약물가게입니다.

 
16화. 파란만장 달리기 시합 (4)
작성일 : 17-12-12 20:53     조회 : 267     추천 : 0     분량 : 5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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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경기까지 마지막 10분. 각 팀은 출발선에 미리 준비해 온 썰매를 배치했다. 그리곤 주변을 둘러보며 이제부터 경쟁자가 될 이들을 살폈다.

 

  참가자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하얀 머리카락과 매력적인 붉은 눈동자를 가진 소녀였다.

 

  레비릿 제국의 황녀, 바니. 양 갈래로 묶은 머리카락이 토끼 귀처럼 쫑긋거릴 땐 귀엽지만, 달리기 할 때는 그 누구보다 강했다. 평소 레비릿 제국에서 개최된 모든 달리기 시합에서 우승을 했다고 알려져 있으니 주의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 다음으로 눈에 띄는 건 소매가 긴 하얀 코트를 입고 있는 작은 아이였다. 소녀인지 소년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아이는 사람이 많은 것이 신기한지 여기저기 쪼르르 돌아다녔다.

 

  여기에 있는 한 참가자 중 한 명인 건 확실한데. 저렇게 작은 아이가 이런 위험한 대회에 참가하는 건 상상조차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하얀 코트를 입은 작은 아이, 류엔이 길을 잘못 들어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라 착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류엔이 참가자들의 썰매 옆을 한 바퀴 거의 다 돌았을 때, 한 남자가 그를 들어올렸다. 류엔이 허공에서 팔을 버둥거렸지만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 엄마한테 가야지. 여기는 위험하단다, 꼬마야.”

 

  “꼬마 아니에요! 저는 실타텐 마을에서 온 산골짜기 약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 동생이 이런 큰 경기는 처음 참가해봐서요.”

 

  류엔의 말을 막은 건 엘씨였다. 엘씨는 남자에게서 류엔을 넘겨받으며 그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보였다.

 

  “우리는 이제 우리 자리로 가야지?”

 

  “엘씨, 갑자기 왜 그러는…….”

 

  엘씨가 류엔의 입을 막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류엔은 엘씨가 이끄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류엔은 엘씨와 함께 자신들의 썰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자, 오랫동안 기다려오셨습니다! 엔피씨 주최, 레비릿 제국 공식 이벤트를 시작합니다!”

 

  토끼 귀 머리띠를 하고 있던 한 우락부락한 남성의 멘트와 함께 하늘에 폭죽이 터졌다. 각자의 자리에 서 있던 참가자들은 재빨리 준비해 온 썰매에 올라탔다.

 

  두 번째 폭죽이 터지는 걸 신호로, 경기의 출발선이자 결승점인 곳에 일렬로 서 있던 그들은 일제히 출발했다.

 

  일단 빠른 출발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참가자들 중에는 벌써 구경꾼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나아간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출발선에서 얼마 벗어나지 못한 곳에서 멈췄다.

 

  “뭐야, 이거! 썰매가 꿈쩍도 하지 않잖아!”

 

  “심판, 심판!”

 

  썰매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모르는 그들은 심판에게 항의를 했지만, 심판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각자 준비해 온 썰매에 대한 책임은 각자가. 규칙에 확실히 적혀 있는 내용이었다.

 

  반면, 엘씨와 류엔이 타고 있는 썰매. 그리고 바니가 타고 있는 썰매는 전자에 속했다. 류엔은 레비릿 제국에 있는 재료들로 급하게 만든 약물을 썰매에 계속해서 집어넣었다.

 

  “더 빨리 집어 넣어봐, 더 빨리! 적어도 중간은 가야될 거 아니야.”

 

  “어차피 제가 다른 사람들 썰매 밑에 질척한 약물을 뿌려놔서 따라오는 사람도 없어요.”

 

  “출발도 못한 멍청이들 빼고. 지금 달리는 팀들 중에 중간 안에 들어야지!”

 

  출발선 주변에 멈춰있는 썰매들은 모두 류엔의 작품이었다. 엘씨가 원하는 류엔의 직업 최대한 살리기 위한 방법이 바로 이런 것.

 

  경쟁 상대가 없으면 싸울 상대도 없는 법이다. 종류에 관계없이 액체만 집어넣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썰매를 탄 둘은 순조롭게 다음 코스로 향했다.

 

  “그 아저씨가 말리지만 않았어도 경쟁자를 모두 없앨 수 있었어요.”

 

  “뭐, 어때. 저걸로 80퍼센트는 없어졌으니까 만족해야지.”

 

  작업을 끝까지 하지 못한 게 아쉬웠던 류엔이 뒤를 돌았다. 그곳에는 아직도 심판에게 항의를 하는 이들이 아주 작게 보였다.

 

  “기껏 용기내서 참가했는데 저기에 남아있는 건 좀 불쌍하네요.”

 

  “능력 없는 게 죄야. 의심하지 않은 것도 죄고!”

 

  류엔은 출발선에 남겨진 경쟁자들을 동정했다. 그러나 엘씨는 가차 없었다.

 

  “바람 최고!”

 

  썰매가 빨리 달리는 탓에 엘씨의 머리카락이 바람을 따라 휘날렸다. 그녀는 흘러 내려온 머리카락이 자신의 볼을 세게 치는 것까지 즐겼다.

 

  레비릿 제국을 크게 한 바퀴 도는 것이 이번 대회의 코스이기 때문에 썰매가 급경사를 맞이하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는 썰매 안에 약물을 넣지 않는 걸로 속도를 조절했다.

 

  “크하하, 진짜 시원해!”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엎치락뒤치락하던 팀들이 없어졌다. 선두를 달리는 무리와 그 뒤를 잇는 무리 간의 간격이 심하게 벌어졌다.

 

  “1등이다, 1등! 류엔 역시 네 물약은 최고야!”

 

  “그럼 누가 만든 건데요.”

 

  선두 무리에서도 빠져나온 엘씨와 류엔은 독보적인 위치에서 1등을 유지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리는 건 당연했다. 특히 그들이 특이한 방식으로 썰매를 끄는 모습은 정말 경관이었다.

 

  “저 팀을 따라잡아! 이렇게 쉽게 1등을 넘길 순 없다!”

 

  엘씨와 류엔의 뒤를 달리고 있는 팀에서는 필사적으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어떤 팀에서는 괴물 퇴치용으로 발전된 마법을 이용해 속도를 올리기도 했다.

 

  “어어, 따라잡힌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기 코너 부분에 미리 약물을 뿌려놨으니까요.”

 

  류엔의 말이 끝나기 직전, 빠른 속도로 코너를 돌던 적팀의 썰매가 뒤집어졌다. 그걸로 끝난 게 아닌지 잠시 후에 썰매가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저건 뭐야, 류엔?”

 

  “급해서 아무거나 뿌린 거라 뭔지 저도 잘 몰라요. 일단 이 병에 들어있는 걸 뿌렸는데.”

 

  류엔은 바닥에 뿌려 적팀을 날려버린 약물이 들어있던 병을 엘씨에게 넘겼다. 그리곤 썰매를 움직이기 위한 약물을 다시 집었다.

 

  “스토커 퇴치 물약 시리즈 2, 날려 보내자 스토커? 무슨 약물의 이름이 이렇게 길어.”

 

  “뭔지 알 수만 있으면 되니까 괜찮아요!”

 

  엘씨는 류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있던 물약 병을 뒤쪽으로 버렸다. 그 병에 걸려 썰매가 뒤집어지는 팀이 하나 더 생겼다.

 

  엘씨와 류엔 팀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을 때쯤. 바니는 여유롭게 선두 무리 뒤에 섞여 있었다.

 

  다른 팀의 신경이 류엔과 엘씨에게 향했기 때문에 바니와 경쟁을 하려는 팀도 거의 없었다. 바니가 타고 있는 썰매와 나란히 도로를 달리고 있는 팀들만 겨우 그녀를 응시했다.

 

  [아마 경기가 시작되면 당신을 신경 쓰는 사람이 적어지겠지. 약물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때 사용하도록 해.]

 

  헤어지기 전에 엘씨가 조용히 말해준 게 언뜻 떠올랐다. 바니는 이 모든 상황이 엘씨의 계획 하에 일어난 일이라 생각하니 팔에 소름이 돋았다.

 

  사실은 그 시선이 모두 류엔의 능력으로 인한 것이지만. 바니는 그게 류엔이 해낸 일이란 걸 몰랐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류엔에 대한 감탄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바니가 타고 있는 썰매는 아주 간단한 디자인이었다. 레비릿 제국에 살면서 직접 기른 토끼 다섯 마리가 그녀의 썰매를 끌고 있었다. 이건 레비릿 제국 출신의 참가자라면 누구나 하고 있는 모습이다.

 

  “죽어라!”

 

  아슬아슬하게 기울어진 모습으로 바니에게 다가가는 썰매가 있었다. 바니는 능숙하게 옆에서 접근하는 적팀의 썰매를 피했다.

 

  주머니에 들어 있는 약물이 무겁게 느껴졌다. 바니는 빠르게 주변 상황을 살폈다.

 

  약물을 먹어야 되는 상황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적어도 바니가 원하는 그 나그네가 찾아오기 까지 기다려야 되는 것이다.

 

  어째서, 아직도 오지 않은 거지. 생각할 틈도 없이 바니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또 다른 썰매를 피했다.

 

  [그 나그네, 거북이랑 비슷하다고 했지요? 그러면 아마 속도도 그 정도로 느릴지 몰라. 경기에서 나그네한테 승리를 얻어내는 건 어렵지 않겠죠. 단, 원하는 게 무승부라면 나그네를 설득하던지 기절시켜서 끌고 오는 수밖에.]

 

  엘씨는 어떻게 이런 상황까지 예측을 할 수 있었을까. 바니는 의문을 가지며 주머니에서 약물을 꺼냈다.

 

  썰매가 빠르게 달리고 있는 건 바니에게 장애조차도 되지 않았다. 바람을 따라 뒤로 쏠리는 머리카락이 볼을 간지럽게 할 뿐. 바니는 이 느낌 때문에 달리기가 좋았다.

 

  하지만 끝까지 속도를 즐길 수만은 없었다. 이번 대회의 목표는 시합에게 이기는 게 아니었으니까.

 

  나그네가 바니와 나란히 서려면 좀 더 느리게 가야 했다. 바니는 다른 참가자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드디어 뒤쪽에서 바니가 기다려왔던 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검은색과 초록색. 나그네가 항상 등에 매고 다니는 괴상한 모양의 가방과 비슷한 디자인으로 만든 썰매였다. 썰매를 만들어 준 것도, 나그네가 타고 있는 썰매를 끌고 있는 것도 전부 바니가 그에게 선물로 준 것들이었다.

 

  바니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나그네가 가까이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나, 안 져.”

 

  바니가 중얼거렸다. 아직은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대도 나그네는 바니의 목소리를 들은 것처럼 보였다. 나그네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분명 두 사람이 타고 있는 썰매는 각자 속도를 내며 달리고 있었다. 그 속도가 바니에게는 느렸지만 일반인에게는 충분히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바니는 그들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곳에 가만히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나아가야 되는 길과 뒤에서 따라오는 나그네, 그리고 바니만 그 세계 안에 있는 것 같았다.

 

  기회는 단 한 번. 실수하면 그 다음 기회는 없다. 바니는 나그네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약물이 들어있는 병의 뚜껑을 열었다.

 

  “역시 달리기 할 때가 가장 빛나는 거 같아요.”

 

  오랜만에 들은 나그네의 목소리는 여전히 달콤했다.

 

  “……응, 달리기 좋아.”

 

  바니는 나그네가 볼 수 있도록 병을 들어보였다. 이제부터 이걸 마시게 될 거야, 하고 바니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안의 내용물을 모르는 나그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뭔가요, 아름다운 토끼 공주님?”

 

  “바보 가게 주인, 나한테 팔았어. 한 번 잠들면, 깨어나지 못하는 약물.”

 

  여러 장소를 여행하면서 살아가는 나그네이기 때문에 그 약물이 어떤 악명을 가졌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나그네는 믿을 수 없었다.

 

  “토끼 공주님, 그건 동화 속에나 나오는 약물이에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 속 물건이랍니다.”

 

  “약물가게 주인, 바보지만 거짓말 안 해. 이 약물 진짜.”

 

  “거짓말이네요.”

 

  바니는 자신이 어떤 말을 하던 나그네가 믿지 못할 것이란 걸 깨달았다. 처음부터 이 약물은 먹는 사람이 정해져 있었으니까. 나그네가 바니가 하는 말을 믿던 안 믿던 이제 상관없었다.

 

  “그럼, 정말인지 확인해봐.”

 

  나그네가 바니를 말리기도 전에 그녀는 병에 들어 있는 모든 약물을 입에 넣었다. 씁쓸한 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그것은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했을 때와 느낌이 비슷했다. 약물을 삼키자마자 바니는 눈꺼풀이 무거운 걸 느꼈다. 주인을 잃은 고삐가 바람을 따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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