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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ANTI(안티)
작가 : 고전부
작품등록일 : 2017.10.30

한 독자의 초대장을 받고 일본 오사카로 간 작가 '시호'. 그곳에서 '시호'의 소설 속 장면과 똑같은 살인이 벌어진다.

 
19. 주인공
작성일 : 17-12-12 18:38     조회 : 224     추천 : 0     분량 : 8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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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주인공 (소우마 미나토 외전)

 

 

 2014년 5월. 난 말이 어눌했다. 아빠 때문이었다. 엄마는 일본 사람이고 아빠는 한국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어릴 때부터 한국어를 가르쳤다. 나는 그의 앞에만 서면 혀가 꼬이며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메마른 소리만 내며 울부짖는 게 다였다. 그랬던 그가 날 때리는 건 그나마 나았다. 참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가 견딜 수 없는 건 그의 입에서 나오는 폭언이었다. 그의 발 앞에 엎드린 채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말들을 들을 때면, 난 내가 화형에 처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만큼 그의 단어와 문장들이 재를 날리며 내 몸 이곳저곳에 화상 자국을 남기고 사라졌다. 반면에 나는 엄마에겐 별다른 감흥이 없다. 그녀가 날 철저한 무관심으로 대했으니 나도 그녀에게 무관심으로 응하는 게 맞았다. 엄마의 이름은 요코였다.

 

 하지만 단순한 혐오감이라 여겼던 마음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잠재울 수 없이 커져버린 적대심은 이내 살의로 변질되었다. 맞았다. 난 내 아빠를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내 생각처럼 그리 순조롭게 진행되진 못했다. 나는 완벽한 계획을 세우면서도 계속해서 멈칫한 채 시간을 허비했다. 내 아빠의 뒤에서 피가 날 듯 이를 갈면서도.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내 살의에 대한 정당성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내 아빠였다. 그런 아빠가 날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학대했다. 이것만으론 안됐다. 내가 조금 더 자유롭게, 기쁘게 그를 죽여야 하는 이유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던 중 시호의 소설을 읽었다. ‘못’이라는 작품이었다. 그 안에 나오는 주인공 또한 자신의 아빠를 죽인다. 전신을 벽에 매달고 몇 십 개나 되는 못을 박아 잔인하게 죽인다. 하지만 놀랍게도 주인공의 아빠는 무척 다정한 인물이었다. 가족에게만큼은 지극정성이었다. 어쩌면 내가 바라온 이상에 가장 가까운. 그런 아빠를 주인공은 아무 거리낌 없이 죽인다. 이유는 아빠가 회사의 비자금을 빼돌린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맞았다. 주인공은 심판자의 역할을 자처한 것이었다. 그의 심판의 대상은 가족이어도 상관없었다. 누군가에게만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건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았으니까.

 

 주인공이 옳았다. 내 아빠에게도 심판이 필요했다. 난 완벽한 동기를 마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 살의는, 정당했다.

 

 아빠가 투여하는 인슐린 주사에 수면제를 넣었다. 그가 공방에서 쓰러지길 기다리다 후두부를 세게 가격했다. 아빠는 맥없이 쓰러졌다. 그의 옷을 벗겼다. 상처가 가득한 내 몸과는 달리 그의 몸은 말끔했다. 더한 분노가 일었다. 그의 목을 쳐들었다. 어깻죽지에 못을 찔러 끼운 채 망치질을 했다. 의식이 불명했던 그가 순간적으로 눈을 뜨며 고통에 신음했다. 그리고 날 보았다. 소용없다고 판단한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영영 깨지 않았다. 나는 개의치 않고 망치질을 했다. 요란한 소리가 새어 나갔다.

 

 공방을 나선 나는 곧바로 집에 불을 질렀다. 돈은 이미 전부 긁어모아 온 상태였다. 엄마가 있을지 없을지 몰랐다. 상관없었다. 그딴 건. 두 손 가득 돈이 든 자루를 든 채 집을 나섰다.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이상하게도 말이 트인 기분이었다. 아마도, 이 세상에 더 이상 아빠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들어가는 불을 보며 생각했다. 난 잡힐까. 혹은 무사히 살아갈까와 같은 것들을. 머리가 아팠다. 생각을 집어던진 채 일단은 오사카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주인공의 살인 배경이 된 곳이 오사카였으니까. 거기서 난 또다시 무언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살아야 하는 동기와 같은 것들을.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시호의, 소설 속에서.

 

 

 *

 

 

 2014년 9월. 나는 교바시 역 부근에 위치한 하숙집에서 지냈다. 관광이나 유학을 오는 한국인들이 주로 묵는 곳이라 했다. 숨어 지내기에 적당한 곳이라 생각됐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여자에게 나는 한국으로 유학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여자는 나에게 이름을 물었다. 부차적으로 나이와 연락처, 그리고 본 주거지까지 물었다. 나는 얼굴을 굳혔다. 여자는 단순한 기록 용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탐탁지 않았다.

 

 나는 여자에게 돈다발을 쥐여주었다. 더 자세한 건 묻지 말라고 했다. 웃음기가 가득했지만 여자는 입술을 떨었다. 그리고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여자가 쓰고 있던 수첩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충동이 생겨 내 이름을 직접 적었다. 소우마 미나토라는 이름을 서슴없이. 어쩌면, 마지막으로 쓰는 내 흔적일지도 모를 테니까.

 

 그 상태로 2년가량이 흘렀다. 2016년 3월. 하숙집을 운영하던 여자가 급작스럽게 죽었다. 하숙집은 문을 닫게 되었다. 난 또다시 미아가 되었다. 하숙집 앞에 우두커니 선 채 생각에 잠겼다. 난 이제 어딜 가야 할까. 돈은 아직 많았다. 쓰지 않고 그대로 두니 절로 불어 있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곳이 있었다.

 

 난 하숙집에 있는 기간 동안 시호의 홈페이지를 염탐했다. 간간이 언론에도 주의를 돌렸지만 내 예상보다도 훨씬 잠잠했다. 이대로 잊힐 것만 같았다. 극한의 불안감 속에서도 시호의 모든 작품을 읽고 감상을 남겼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편지를 썼다. 하지만 ‘소우마 미나토’라는 이름은 쓰지 못했다. 혹여나 내가 저지른 사건이 세상에 드러날 것을 대비해서였다. 대신 ‘유에’라는 이름을 남겼다.

 

 시호는 세 달에 한 번 독자 10명을 선정해 그들에게만 은밀히 집 주소를 알려준다고 했다. 직접 쓴 편지를 보낼 수 있도록. 그 주소를 외부에 노출시키면 바로 퇴출. 편지 외 무엇이 들어있을지도 모르는 물건을 보내도 퇴출이었다. 그리고 시호는 세 달마다 주소를 달리 쓴다고 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내 손엔 시호의 주소가 들려있었다.

 

 난 곧장 한국으로 향했다. 출국에도 무리가 없었다. 내가 저지른 사건은 완전히 잊힌 것이나 다름없다고 판단했다. 난 갈수록 자신감이 생겼다. 더 이상 숨어 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모자를 눌러 쓰고 검은 마스크를 꼈다. 일본이 아니었음에도 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일종의 습관과도 같은 거였다.

 

 시호의 집 앞에서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나는 세상 밖으로 어느 정도까지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지, 좀처럼 가늠이 되지 않았다. 특히나 나에게 의미를 가진 이의 앞에선.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문 앞을 주시했다. 누군가가 집 밖으로 나왔다. 아주 작고 어리게 생긴 여자였다.

 

 시호의 이미지를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에게 시호는 항상 뗄 수 없으면서도 결코 붙잡을 수 없는, 실체가 없는 그림자와 같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녀가 시호일지 아닐지 확신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여자가 우편물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엔, 내 편지가 들려있었다.

 

 시호가 확실했다. 제 앞으로 온 열 통의 편지에 단번에 상기되고 만 표정. 그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자신이 타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인정을 받고 있는지를 여실히 알고 있는 얼굴. 보기만 해도 감히 접근하지 못할 정도의 우월감이 뿜어져 나왔다. 오직, 본인만이 지을 수 있는 것이었다.

 

 단번에 뒤를 돌았다. 이질감이 들었다. 시호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고작 시호의 소설 속을 그대로 재연하며 어깨를 으쓱거려봤자 그녀의 이목을 끌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기준에선 난 너무나 바닥을 기는 삶이었으니까. 그녀는 오직, 자신과 엇비슷한 이들에게만 반응할 게 뻔했다. 나 따위의 존재 따윈 조금도 인식하지 못한 채.

 

 역시나 구원자는 너무나 먼 곳에 있었다. 마치 소설처럼.

 

 …실제가, 아닌 곳에.

 

 

 *

 

 

 2016년 9월. 난 다시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소우마 미나토에 대한 기록을 지우기 위해 우연히 들른 하숙집은 다시 운영되고 있었다. 히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나에게 이름을 물었다. 난 또다시 고민했다. 결국 난 어딘가에 정착할 곳을 찾아야 했으니까. 히카의 눈치를 살폈다. 동그랗고 큰 눈이 나를 반겼다. 이전에 내가 여기에 온 적이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유에라는 이름을 말했다. 어설픈 말을 떼며 한국 유학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 이름으로 노효정이란 이름을 덧붙였다. 히카는 검은 수첩을 펼치더니 내 이름을 적었다. 난 거기에 두 번째로 기록되었다.

 

 7개월이 흘렀다. 그리고 난 그곳에서, 시호를 다시 만났다.

 

 

 *

 

 

 시호는 날 찾고 있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 예전 이름을. 태연한 척해도 내 눈은 갈피를 잃었다. 거기다 김도연은 요코를 데려왔다.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던 나의 엄마였다. 김도연은 탐정이었다. 그녀가 대뜸 요코를 이곳에 데려온 것은 김도연이 내 본연의 신분에 대해 알고 있다는 말이 된다. 잠잠했던 사건이 수면 위에 드러난 것일까. 구역질이 났다.

 

 요코는 나를 또렷이 보고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눈이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요코는 쇼고가 들고 있던 물을 엎으며 제 방으로 올라갔다. 짓궂은 행동. 평소에도 그녀가 잘하던 짓이었다. 밥을 거의 먹지도 않은 채 방에 들어온 나는 이불을 꽁꽁 뒤집어쓴 채 몸을 떨었다. 금방이라도 내 방문을 연 채 누군가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들의 손엔, 아마도 녹슨 못이 들려 있겠지.

 

 나는 거듭 몸을 감싸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처음 김도연이 하숙집에 왔을 때 탐정이라는 그녀의 신분에도 난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가면을 쓴 채 그녀를 반기는 시늉을 했다. 3년이 지난 사건을 이제 와 해결하려 한다는 의심은 조금도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모든 게 끝이 났다. 김도연은 나를 노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궁지에 몰릴 때면 절로 시호를 떠올렸다. 하지만 여태껏 오직 내 머릿속에만 존재했던 시호가 이제는 내 눈앞에 실재하고 있었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하숙집에 찾아왔다. 더군다나 그녀의 목적은 다름 아닌 나였다. 그녀 또한 내가 저지른 사건과 관계가 있는 걸까. 유에라는 내 이름을 들어도 그녀는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워낙 흔한 이름이었고, 그녀가 독자 하나하나를 기억할 만큼의 역량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더군다나 나는 1년 전 시호를 직접 본 후 그녀에게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혹시나 나를 기억했다 해도 이미 지워졌을 게 뻔했다. 그렇다면 내가 유에라는 이름이 아닌 소우마 미나토라는 이름으로 그녀에게 다가간다면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니, 애초에 그녀가 날 찾아온 목적은 무엇일까. 모든 위험을 감수한 채 시호에게 채 내 정체를 밝힌다면….

 

 …또다시 날, 구원해줄까.

 

 

 나는 즉시 몸을 일으켰다. 시호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어느 때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몸을 질질 이끈 채 시호에게 향했다. 지금 내 불안감을 잠재워 줄 사람은 오직 그녀밖에 없으니까.

 

 시호의 방 안에선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노크도 하지 않은 채 방안에 들어갔다. 시호의 뒷모습이 보였다.

 

 “…시호.”

 

 나는 서슴없이 그 이름을 뱉었다. 시호가 뒤를 돌았다. 싸늘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아. 당신이 그럼….”

 

 시호가 건조하게 말을 이으려 했다. 시호가 내 존재를 처음 인지하던 순간이었다.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홀린 듯 한 걸음을 떼었다. 내 진짜 이름을 밝힐 계획이었다. 천천히 입을 벌리려 할 때 그녀가 들여다보고 있던 노트북 모니터를 보았다.

 

 MKK 언론사. 즉시 입을 닫았다.

 

 “전 유에라고 해요. 예전에 당신을 본 적이 있어요.”

 “날? 어디서요?”

 

 예상한 답이 아니라는 듯 시호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세 달마다 선택되는 10명의 독자에 들어간 적이 있어요. 그때 호기심에 집 주소를 따라 한국에 찾아갔다가 우연히 당신을 보게 됐고요.”

 “아…생각해보니 독자들 편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이름인 것 같기도 하고.”

 “…….”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조금 소름 돋네? 분명히 단순한 편지를 전달하기 위한 용도라고 말했을 텐데. 스토커들이나 하는 짓이나 하고”

 

 미안하다는 기색을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마음속 깊이 무언가가 울렁이는 기분이 들었다. 독자니 팬이니 스토커니. 그딴 단순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내가 시호를 향해 품은 마음은.

 

 “뭐 어찌 됐든…내 편이라는 거죠?”

 

 꽤나 익살스러운 말을 하더니 시호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내가 고민이 하나 있는데….”

 

 고개를 든 나는 시호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았다. 의문스러운 표정이 담겼을 거라 생각했다. 시호는 보지 못하겠지만.

 

 “방금 쇼고 씨를 죽이고 왔어요. 손으로 목을 졸라서. 그런데…생각 외로 재미가 없네.”

 

 시호의 말이 머릿속에 급속도로 회전을 하며 맴돌았다. 쇼고를 죽이다니. 방금까지 수경과 함께 저녁을 준비하던 쇼고를? 왜? 그것도 오늘 처음 하숙집에 온 시호가?

 

 “같이 고민 좀 해줄래요?”

 “…….”

 “어떻게 해야 흥미를 끌까….”

 

 흥미. 누군가를 겨냥한 말일까. 시호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혼잣말을 하면서도 시호는 계속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럼에도 뒤에 있는 나를 의식한 채였다. 누군가에게 범행을 자백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시호는 나를 신뢰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단순히 자신의 독자라는 이유만으로.

 

 “…흔적을 남기는 건 어때요? 소설 속에 나오는 시체와 똑같이”

 

 내가 잘하는 거니까. 그 말을 속으로 삼킨 채 미약하게 입술을 떨었다. 달칵. 마우스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시호는 다시 뒤를 돌아 나를 보았다. 한껏 상기된 얼굴. 처음 봤을 때 극명한 이질감을 느끼고 말았던. 그 얼굴을 시호는 이제 나를 향해 지어주고 있었다. 몹시도, 감격스럽게.

 

 “좋은데요? 그러면…”

 “…….”

 “나 대신 그렇게 해줄래요? 앞으로 몇 번이나 될진 모르겠지만.”

 

 고민할 틈 따위는 없었다. 나는 시호가 던진 말속에 몸을 던졌다. 아주, 기꺼이.

 

 

 *

 

 

 요코가 죽었다. 소우마 미나토로 하숙집에 머물 적 발견했던 비밀통로를 통해 요코의 방에 들어갔다. 요코는 죽어있었다. 난 덤덤하게 시호의 흔적을 남겼다.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은 내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위협하는 존재를 없앤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요코는 쇼고의 시체를 발견 한 후 형사들의 눈을 피해 홀로 있던 나에게 찾아와 딱 한 마디를 건넸다.

 

 네가 그랬니. 여기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쇼고는 물론, 내 아빠의 경우까지 포함된 말일 게 분명했다. 난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은 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태연한 내 반응에 요코는 표정을 굳히더니 곧바로 그 자리를 떴다. 아마도 내가, 다음엔 반드시 저를 노릴 거란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시호가 찾아왔다. 소은을 죽였다면서.

 

 사실 시호가 또다시 살인을 저지른 건 조금 이외였다. 지수연 경위는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시호에게 혐의가 씌워지지 않게 요코의 손목을 그은 카드에 혈흔을 묻혀 수경이 옮기던 그릇에 조금 묻혔다. 그 결과 내 예상대로 수경이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소은 씨가…내가 범인인 걸 알고 있더라고.”

 

 시호의 말에 나는 곧바로 납득했다. 그런 이유라면…죽일 수밖에 없었겠구나. 이제 나는, 시호를 이해하는 지경에 올랐다. 미치도록, 황홀했다.

 

 “시체는 연못 안에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 시호가 다시 입을 떼었다.

 

 “부탁이 하나 있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시호의 말에 집중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어떤 말이 나오든, 나는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했다.

 

 “수경 씨가 범인으로 지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다시 살인이 일어났어. 결국 하숙집에 남은 이들이 의심을 받게 될 거야.”

 “…….”

 “그래서 말인데, 네가 내 역할을 좀 맡아줄래?”

 “…….”

 “자수를 하면 아마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게 될 거야. 그건 싫어. 난 확실한 걸 원해. 내가 완전히 마음을 놓을 만큼.”

 

 시호가 나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청산가리였다. 의도가, 빤히 보였다.

 

 “유서를 써줘. 전부 네가 한 짓이라는. 그리고….”

 

 시호가, 나만의 구원자가, 나를 위한 문장을 남겼다. 별 수 없었다. 나는, 그녀만의 충실한 독자였다.

 

 “죽어 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마워. 잊지 않을게.”

 

 기뻤다. 나는 몹시도 기뻤다. 시호가 고마울 건 하나도 없었다. 그녀가 나를 구원했으니, 이번엔 도리에 내가 그녀를 구원하는 게 맞다. 그런데도 시호는 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비로소 나도 시호의 삶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내 삶에서, 시호는 전부였지만.

 

 “그런데 날 왜 찾은 거예요?”

 “…무슨 소리야?”

 “내가 사실, 소우마 미나토인데.”

 “…….”

 “3년 전부터 당신의 소설 속 장면을 그대로 재연했던.”

 

 나는 마지막으로 궁금한 걸 물었다. 시호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작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머리칼을 스치듯 만지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네가 날 부른 거잖아.”

 

 무슨 뜻일까. 내가 시호를 불렀다니. 원뜻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가늠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인력이 발생한 걸지도 몰랐다. 우리가, 기어코 만나게 된.

 

 “그런데 정말…내 말대로 해줄 거지?”

 “…….”

 “조금 못 미더워서 말이야.”

 

 내가 죽는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얼마나 기쁜 표정을 맞이한 채 죽어나갈까. 그리고 내 시체를 보고 시호는 어떤 얼굴을 할까. 행복에 겨운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생각만으로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시호의 부탁 중 하나를 어길 셈이었다. 청산가리는 내 방 깊숙한 곳에 넣어둘 것이다. 나는 목을 매달아 죽어 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못’의 주인공은 결국 스스로 목을 맨다. 무수한 이들을 죽인 자신을 심판한다는 명목으로. 나는 그대로 죽길 원한다. 끝까지, 시호의 소설 속 주인공과 흡사한 채로.

 

 “걱정 마요.”

 

 추종하던 독자가 사라져도, 설사 작가가 사라진다 해도, 글은 영원히 남고 만다.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작가님.”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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