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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두 세계 이야기
작가 : 한니발렉터
작품등록일 : 2017.12.10

문명세계에서는 꼬맹이 현상금 사냥꾼, 카슨 더 키드,
야만세계에서는 백년에 한번 나올 위대한 전사, 웅크린곰.
두 세계의 이야기.

 
Ch.2 갈망 - 01
작성일 : 17-12-12 16:28     조회 : 318     추천 : 1     분량 : 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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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크린곰은 눈을 떴다.

 천막의 연기구멍에서 들어온 빛이 정확히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눈이 부셨다. 손으로 빛을 가리고 천천히 일어나자 왠지 모를 오한이 들었다. 식은땀이 몸의 온기를 빼앗아가고 있었다.

 “또 꿈이다.”

 웅크린곰이 중얼거렸다. 망할 놈의 꿈. 천둥소리와 푸른색 연기만이 계속되는 꿈. 크로우족이 쏜 총에 맞은 이후로 더욱 심해졌다. 코끝에 느껴지는 매캐한 푸른색 연기의 정체가 뭔지, 이제 알 것도 같았다.

 와시추들의 화약(火藥).

 불이 붙으면 폭발하는 푸른색 가루.

 하지만 안다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그것이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왜 뜬금없이 화약 꿈을 꾸는가? 그는 단 한 번도 ‘천둥 막대기’를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정말이지 아무짝에도 재미없는 물건이었으니까. 사람을 죽이든 동물을 죽이든 손맛이 있어야 했는데, 그 ‘천둥 막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문득 갈증이 몰려왔다. 온 몸을 산 채로 태워버리는 격렬한 갈증. 물로 해결될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손이 물통을 찾았다.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어둠을 더듬는데, 손에 차가운 물방울이 맺힌 사슴방광 물통이 쥐어졌다. 돌아보니 천막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새벽별이 물통을 내밀고 있었다. 워낙 피부가 하얘서 꼭 유령처럼 보였다.

 “또 악몽 꿨어요?”

 새벽별이 걱정스런 눈치로 물었다. 웅크린곰은 대답 대신 물주머니에 입을 대고 붕어처럼 들이켰다. 갈증은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말을 건넬 정신은 되찾았다.

 “....언제 들어왔냐.”

 “조금 전에요. 당신이 몸을 비틀고 신음소리를 낼 때요.”

 웅크린곰이 고개를 살짝 돌리자 얼굴 반쪽이 어둠에 파묻혔다. 지금 그의 눈빛은 흡사 굶은 맹수의 것과 같을 터였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악몽이 심하면 주술사를 만나 보세요.”

 “노인네들이 약초에 취해서 지껄이는 쓸데없는 꿈 해석 따위 안 믿어.”

 “또 그러네요. 저는 그들의 꿈 해석을 믿으라는 게 아니에요. 그들이 살아온 경험이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러죠.”

 웅크린곰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름대로 그녀의 충고를 곱씹어 보고는 있었다. 언제나 부족원들과 거리를 유지하며 인간성의 가면을 쓰고 다니는 웅크린곰이었지만, 적어도 새벽별에게만은 자신의 일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평소의 웅크린곰은 신심이 깊으며 다른 부족원을 배려하고 물욕이 없으며 과묵한, 칼로 그린 듯한 대인(大人)이었다. 하지만 실제는 어떤가. 그는 신심이라고는 개미 똥만큼도 없으며, 물욕이 없고 과묵하긴 했지만 그건 욕망의 방향이 다른 것이지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계속 파묻고 있다가는 미쳐버릴 터였다. 자신의 속내를 조금이라도 터놓을 대상이 필요했다. 그 대상이 새벽별이었던 것일 뿐. 그런 관계를 ‘가깝다’고 표현할 수 있다면, 웅크린곰과 새벽별은 가까운 관계였다.

 “요즘 들어 당신을 보면...뭔가 참지 못할 것을 억지로 참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억지로 울음을 참는 여인들이나 식욕을 참는 어린아이들 같아요.”

 새벽별이 조심스레 말했다. 웅크린곰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부락의 어느 누구도 살육에 대한 그의 욕망을 알아서는 안 되었다. 지금까지는 잘 해 왔다. 하지만 만에 하나, 알게 된다면....

 어둠 속에 파묻혀 있던 얼굴이 서서히 새벽별 쪽을 향했다. 여전히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던 새벽별은 앉은 자리에서 곧바로 얼어붙었다. 껍질을 벗어던지고 달을 향해 울부짖는 야수가 거기 있었다.

 “아....”

 웅크린곰은 새벽별의 표정에서 모든 것을 읽었다. 그는 급히 고개를 돌려 어둠 속에 다시 파묻었다. 빌어먹을. 경계심이 이성을 지배하자 야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번 만나 보마.”

 웅크린곰이 상황을 수습하듯이 말했다. 차마 새벽별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만약 본다면,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떠오를 수도 있었으니까. 평시에는 살육의 대상을 ‘적’으로 한정짓고 있는 그였지만,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화살은 눈먼 방향으로 날아갔다.

 몸을 일으킨 웅크린곰은 천막 밖으로 나갔다. 새벽별은 한동안 일어나지 않고 방금 본 장면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그것은 새빨간 눈의 벌거벗은 야수였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덮쳐 이빨을 박아 넣을 것 같은 악몽 속의 야수.

 “잘못 본 거야.”

 그녀가 중얼거렸다. 웅크린곰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평소 마음속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저런 추악한 괴물일 리는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천막을 나온 웅크린 곰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부락을 한 바퀴 돌았다. 진흙을 묻힌 벌거벗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녔고, 밭에서 감자와 옥수수를 재배하는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몇몇 천막에서는 벌써부터 요리를 하는지 연기가 피어올랐다. 펼쳐놓은 사슴 가죽을 무두질 하는 자들, 돼지들을 몰아가며 목초지를 찾아가는 소년, 사냥을 마치고 막 돌아온 전사들까지. 모두 활기찬 부락의 오후를 이루는 작은 조각들이었다.

 하지만 웅크린곰의 기분은 그렇게 활기차지 못했다. 우중충한 먹구름이 자신을 계속 따라다니는 듯 했다. 자신은 저 부족원들처럼 행복해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저런 사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성정을 타고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웅크린 곰! 웅크린 곰! 오늘은 뭐 해요? 사냥 나갈 거에요?”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웅크린곰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타고난 전사이자 사냥꾼인 그가 이번에는 뭐 잡아오지 않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전혀 반응해주지 않자 실망한 아이들은 다시 우르르 흩어졌다. 마치 사슴 떼처럼.

 그렇다. 자신의 빌어먹을 기분만 뺀다면 이 부락은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번영하고 있었다. 감자와 옥수수는 온화한 날씨를 맞아 연신 풍작이었다. 크로우족의 조랑말과 돼지, 양들을 수백 마리나 빼앗았다. 머릿가죽 사냥도 성공적이어서 모든 전사들이 독수리 깃털을 하나씩 꽂았다. 부락의 바로 옆에는 연어가 풍부한 강이 졸졸 흘렀고, 뒤쪽으로는 절벽이 삼면에서 감싸듯이 펼쳐져 있었으며, 주변에는 사냥감이 풍부한 숲과 작물 재배에 안성맞춤인 비옥한 옥토가 펼쳐져 있었으니 올해의 부락은 이상적인 위치에 꾸린 셈이었다.

 그뿐인가. 웅크린곰이 속한 붉은 곰 씨족은 부족의 ‘선도 씨족’이었다. 가장 강한 씨족, 부족의 방패에게 주어지는 명예로운 칭호이다. 크로우족들은 붉은 곰 씨족을 피해 사냥터마저 버리고 남하했다. 이제 이 드넓은 사냥터 주변에 적은 없었으며, 감히 건드릴 자들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웅크린곰의 기분을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오래 전, 어린아이일 때부터 웅크린곰은 자신이 타고난 본능을 깨달았다. 강아지의 목을 비틀어 죽이거나, 임신한 사슴의 배를 산채로 가를 때면 뭐라 말하지 못할 쾌감을 느꼈다. 물론 그의 부족은 동물이든 사람이든 무의미한 살생을 저지르면 ‘위대한 신비’의 분노가 내릴 것이라는 믿음을 고수하는 터라, 그는 자신의 본능을 철저히 숨겨야 했다.

 점차 머리가 굵어지면서 그는 자신의 욕망과 부족의 관심사가 충분히 동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부족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크로우족과의 싸움에 참전했고, 그 자리에서 적의 머릿가죽을 벗겼다. 이후 전투가 있다면 언제나 참전했고 더 많은 머릿가죽을 얻어올수록 그의 명성은 더욱 커졌다. 신나는 나날이었다. 그의 살해에 대한 욕망은 더 이상 숨겨야 하는 악덕이 아니라 부족을 위한 미덕이 된 것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적에 대한 습격은 점차 줄어들고, 한껏 부풀려 놓은 욕망은 하루가 멀다하고 그를 괴롭혔다. 같은 부족원들을 보면서 살해의 욕망을 느낀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꾹꾹 쌓아온 욕망이 배출구를 찾지 못하고 터지게 된다면, 그 결과는 스스로도 상상하기 싫었다.

 스스로 마련한 임시방편은 있다. 그는 칼을 꺼냈다. 바늘처럼 날카롭고 얼음장처럼 매끈한 흑요석 칼이다. 푸른 정맥이 꿈틀거리는 자신의 팔을 펼친 웅크린곰은 눈을 감고 칼을 그 위로 그었다. 뜨뜻한 피가 흘러내렸다. 칼끝에 피를 촉촉하게 묻힌 후, 힘을 주자 정맥을 따라 푸른색 빛이 잠시 흘렀다. 벌어진 상처가 푸른색으로 빛나더니 이내 깨끗하게 아물었다. 흉터 하나 없이.

 칼끝을 혀로 살짝 핥으며 웅크린곰은 인간의 피 맛을 음미했다. 동물과의 피 맛과는 미세하게 달랐다. 그 미세함의 차이가 그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인간의 피가 자아내는 향기는 그에게 이성을 찾을 여유를 주었다. 덕분에 뚜렷한 결론을 하나 내릴 수 있었다. 지금 주술사 노인을 찾아가면 안 된다.

 ‘그 노인네라면 알아챌 거야.’

 새벽별 같은 어린 소녀도 자신이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챘다. 눈치 빠른 주술사 노인네라면 말할 필요가 없겠지. 자신의 어두운 욕망이 들켰을 때의 결과가 웅크린곰은 두려웠다. ‘위대한 신비’가 내릴 징벌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부족에서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 두려웠다. 추방당해서 홀로 산속을 떠돌게 되는 게 두려웠다. 그것은 야생동물의 삶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동물 가죽을 뒤집어쓴 채 맹수처럼 울부짖다가 비참하게 죽게 되는 것이다. 부족의 전설 속에 나오는 ‘가죽 떠돌이’처럼.

 하여 주술사 노인을 만나러 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꿈의 해석은 알고 싶었다. 이상한 꿈이 계속된다면 필시 어떠한 징조가 있는 것이다. 그 징조를 해석하는 것은 바로 부족 주술사들의 몫이었다.

 다행히도, 꿈이나 미래를 점치는 것이라면 후보자는 한 사람 더 있었다.

 웅크린곰은 몸의 방향을 틀었다. 주술사의 천막 옆, 조금 작지만 훨씬 눈에 띄는 천막을 향해. 천막은 정중앙의 선을 경계로 왼쪽은 붉은색, 오른쪽은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천막에 붙은 이런저런 장식 모두 좌우 대칭으로, 하지만 완전히 다른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천막 앞에서는 어린 소년이 앉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다른 부족에서 잡아온 포로로 이 천막의 말 관리를 도맡고 있는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이름도 ‘조랑말 소년’(Pony boy)이었다.

 “이봐. 혹시 발로 차는 새가 지금 천막에 있나?”

 웅크린곰이 말을 걸자 조랑말 소년은 화들짝 일어나서 침을 닦았다.

 “이, 있어요.”

 “만날 시간은 되겠지?”

 “네, 웅크린 곰이 찾아왔다고 빨리 전할게요!”

 소년이 곧바로 문을 열더니 천막 안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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