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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봉주르 주피터(Bonjour Jupiter.)
작가 : 안경잡이
작품등록일 : 2017.11.17

한류에 빠진 프랑스국적의 저승사자(주피터)가 죽어야하는 사람을 잘못 데려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13.
작성일 : 17-12-12 16:28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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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돼?”

 “그러게......”

 

 가까스로 화장실에서 나온 한결과 세은은 교실이 아닌 학교 건물 뒤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이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같은 한숨이었지만 질은 세은보다 한결의 한숨이 훨씬 깊고 진해보였다. 피땀 흘려가면서 지금까지 쌓은 것들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린 한결의 상실감을 이해할 수 있었던 세은은 조용히 대기하며 한결이 먼저 말하길 기다렸다.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다시 저승사자가 나타날 때까진 이렇게 지내고 있자. 영혼이 바뀌었는데 설마 이렇게 두진 않겠지. 명색이 저승사자인데.”

 

 한결은 저승사자인 주피터에게 희망을 걸었다. 오랫동안 함께 한 건 아니었지만, 주피터와 대화를 나누면서 어떠한 인물인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던 세은은 한결의 바램이 헛된 바램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육체가 바뀐 것에 슬퍼할 수 없었던 세은은 한결의 말에 거짓으로 응했다. 치마는 물론 속옷까지 입을 수 없었던 세은은 똥물에 젖은 옷을 말릴 수 있는 공간을 찾아다녔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친구들의 시선을 의식해야했던 세은은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한 채 교실로 돌아갔다.

 

 “어? 결아?”

 

 교실에 도착한 세은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하나는 깜짝 놀란 듯 양 손으로 입을 가렸다. 평소 한결과 연결고리가 없던 여학생들이 한결을 보게 되면서 취하는 행동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았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세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때 개미 기어가는 소리가 들리면서 세은의 주의를 끌었다.

 

 “세은이 양호실에 간 거 같으니까 앉고 싶으면 앉아도 돼.”

 

 깜짝 놀란 세은은 바로 하나를 바라봤다. 하나는 부끄러운 듯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터질듯한 살집에 유독 새까만 머리까지 하나는 잘 먹고, 자란 새끼돼지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하나가 한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새끼돼지 주제에 여우 같은 모습을 보인 하나에게 놀란 세은은 좀처럼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세은의 아니, 한결의 모습이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한 하나는 새침하게 머리를 남기며 서랍에서 교과서를 꺼냈다. 서랍 안에 교과서보다 간식과 쓰레기가 더 많이 들어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세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본래 자리로 돌아갔다.

 

 “양호실 안 가고 어디 갔었어? 걱정했잖아.”

 

 자리에 앉은 세은은 친부모보다 더욱 걱정스런 말투로 한결의 안부를 물어보는 미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미나는 반에서 한결 다음으로 보장된 삶을 살고 있는 학생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고, 성격마저 좋은 미나는 모든 남자들의 워너비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여학생들 사이에선 공공의 적으로 찍혔지만, 미나에겐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일 뿐이었다. 미나에 질문에 대꾸할 말이 없었던 세은은 조용히 수업준비에 들어갔다. 그러자 미나도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예쁘구나........’

 

 서랍에서 책을 꺼내는 미나의 모습은 하나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예뻤다. 아니, 예쁘다는 수식어로는 미나가 가지고 있는 기품 있는 행동과 정갈한 외모를 설명하기 부족했다. 아름답다는 단어를 써야 그나마 미나를 설명할 수 있었다. 미나의 아름다움에 빠져있던 세은은 잠시 후, 교복 상의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교실로 들어오는 한겨을 보게 되었다.

 

 ‘내가 저정도였나?’

 

 눈도 있고, 집에 거울도 있었던 세은은 자신이 예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평균 정도는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수능이 끝난 뒤, 대대적인 공사를 준비하며 장밋빛 미래를 꿈꿨었다. 그랬던 세은에게 100% 객관적으로 보게 된 자신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몇 분 전 세은은 하나를 새끼돼지 같다고 생각하며 비웃었다. 하지만 비대한 몸뚱이에 어우러진 자유분방하고 커다란 이목구비는 세은을 새끼하마로 보이게 만들었다. 충격적인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온 몸에 힘이 쭉 빠져버린 세은은 스러지듯 책상 위에 엎드렸다.

 

 “다음 페이지는 결이가 읽어볼래?”

 “네?”

 “오랜만에 결이가 하는 서부지역 사투리가 듣고 싶어서 그래. 89페이지만 읽어봐.”

 

 초등학교 때부터 12년간 영어를 배웠지만 아직까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던, 그래서 시험점수에서 반평균을 한 번도 넘지 못했던, 세은에게 그냥 읽으라는 것도 아니고 서부지역 사투리로 영어지문을 읽으라는 건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영어선생님은 세은에게 읽으라고 한 게 아니었다. 모범생이자 우등생이며 외국에서 살다온 경험 때문인지 영어에 있어선 다른 친구들에 비해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는 한결에게 시킨 거였다. 마음 같아선 선생님에게 지난 시간에 있던 일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게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건 누구보다 당사자인 세은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더 어컴패닝 페이퍼 이즈 인 리스폰드 투 유어 어드..........’

 

 소리 내 읽기 전 속으로 예문을 읽어나가던 세은은 초등학생보다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만나게 되었다. 이대로 영어지문을 읽어나간다면 창피함은 물론이고, 한결의 명예에도 커다란 흠집이 생길 것 같았다. 어떻게 해서든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야했던 세은은 다시 한 번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 오늘은 입 안에 혓바늘이 서서 다음에 할게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몸 관리도 실력이니까 앞으론 너무 무리하지마. 알겠지?”

 “네....”

 

 화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영어선생님은 되레 한결에게 조언해준 뒤 영어예문을 읽어나갔다. 본래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상황에 놀란 세은은 자리에 앉은 뒤에도 벌어진 입을 좀처럼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세은은 수포자에 이어, 영어까지 포기한 영포자였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으로서 수학과 영어를 포기한다는 건 직무유기나 마찬가지였다. 사회인이었다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았겠지만, 다행히도 세은은 아직 학생이었다. 게다가 대학졸업 후 입사가 아닌, 창업을 꿈꾸고 있는 예비사장님이었다. 그래서일까? 세은은 좌우로 흔들리는 고개를 좀처럼 가만히 둘 수 없었다. 그때 낯선 자극이 세은의 손을 통해 전해졌다. 깜짝 놀란 세은은 눈을 번쩍 뜨고, 감각의 진원지인 손을 쳐다봤다.

 

 “조금만 참자. 곧 있으면 쉬는 시간이잖아.”

 

 한결이 눈을 뜨자 미나는 부처님마냥 인자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미나의 달콤한 속삭임에 세은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왼손을 꼭 잡고 있는 미나의 손도 보게 되었다. 미나는 익숙한 듯 깍지를 끼고 있었다. 남녀 간에 손을 잡는다는 건, 그것도 깍지를 낀다는 건 이미 육체적인 관계를 넘어선 거라고 블로그에서 봤던 세은의 심장은 덜컹 내려앉아버렸다.

 

 ‘그래. 서로 좋아하면 그럴 수도 있지. 민증도 있는데.........’

 

 아직까지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던 세은은 연애는 물론이고, 찐한 육체적 관계까지 가진 한결과 미나가 부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성으로서 봤을 때 한결과 미나는 손에 꼽힐 정도에 돋보이는 존재였다. 하나도 아니고, 한결과 미나가 육체적인 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세은이 배 아파할 이유는 10원어치도 없었다. 뒤늦게 현실을 수긍한 세은은 깍지끼고 있는 손을 입술 근처에 가져가며 가볍게 입맞췄다. 한결의 행동에 놀란 미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도 한결 입술 근처에 있는 오른손을 빼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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