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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황혼에서 여명까지
작가 : 암달구
작품등록일 : 2016.8.15

(제목 변경합니다)
저주받은 꼬마 스케빈져 성장물.판타지.로맨스

 
낙원으로
작성일 : 16-09-04 13:28     조회 : 528     추천 : 0     분량 : 7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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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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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 블랑슈 가문 방계 후손 리비도(Libido)의 호화 저택.

 

 “낙원이여 영원하여라 아르콘에 영광을. 저의 저택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깔끔한 신사복을 차려입은 리비도가 모자를 벗고 인사했다. 리비도의 열 손가락에 끼워진 붉은 보석 반지가 눈이 아플 만큼 빛났다.

 

 솔과 마니의 방문은 일국의 아르콘으로서 품위 없는 행동이었으나 그는 시종일관 웃었다. 진심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고역이었다.

 

 “노예를 보고 싶네.”

 

 “아, 노예 말씀이시군요. 그러면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제 공장으로 모시겠습니다.” 리비도가 손바닥을 비볐다.

 

 “소문을 듣기론, 리비도 블랑슈는 희귀한 펫돌(Pet Doll)를 모으는 취미가 있다고 하더군. 특등급 중의 특등급만 수집한다지?”

 

 “그건 파는 게 아닙니다. 솔님.” 리비도의 입은 웃고 눈은 웃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아래로 치우쳐져 윗부분에 흰자위가 많이 보였다.

 

 “보여주게.”

 

 “그, 것이…“

 

 “이 몸의 말을 거역할 셈인가? 구경하는 것 정도야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 보여주게, 보여줘!”

 

 솔이 떼를 쓰자 리비도가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의 보물창고로 안내했다. 가는 길에 그로테스크한 크리쳐 조각상이 당장 살아 움직일 것처럼 전시되어있다. 리비도가 창고 앞에서 열쇠 꾸러미를 만지며 보물창고의 열쇠를 찾는 척 시간을 끌었다. 그는 솔과 마니의 뒤에 있는 판다랑 엘가를 흘겨봤다.

 

 “괘념치 말게. 내 유모랑 몸종이야.”

 

 솔이 직접 두둔 하니 할 말이 없다. 리비도의 비밀스러운 보물창고가 열렸다. 거대한 숲을 통째로 옮겨 놓은 공간의 대형 우리는 천으로 덮여있었다. 리비도는 천을 잡으며 머뭇거렸다.

 

 “솔님. 제가 진짜 솔직하게 말해서, 아무한테도 보여준 적 없습니다. 여기서 본 건 아무 데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꼭 입니다.”

 

 “그래, 그래, 얼른 걷어봐.”

 

 리비도가 천을 걷었다.

 

 “빛의 요정 알프.”

 

 세상 어디에도 없는 뜨겁지 않은 빛 알프가 플라스크 안에서 빛나고 있었다.

 

 “어둠의 요정 스바르트 알프.”

 

 모든 빛을 빨아들일 것 같은 블랙홀 덩어리가 차가운 어둠을 뿌리고 있었다.

 

 “요툰들의 거인.”

 

 10척이 넘는 거인이 온몸에 구속구와 입마개, 안대를 하고 누워있다. 붉은 양탄자 위에 누워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핏물이 말라 응고된 웅덩이였다.

 

 “마지막으로 인어입니다.”

 

 선녀가 현신한 것 같은 인어가 서 있다. 리비도가 명령하자 인어가 반투명 가운을 벗었다. 산호를 깍아 만든 듯 새하얀 두 다리. 정교하게 빗은 작품에 모두가 숨을 멎었다.

 

 “인어의 아름다움은 극상품이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다이아몬드도 빛을 바랠 겁니다.”

 

 리비도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솔은 사람의 것 같은 하체를 보고 감탄했다.

 

 “다리가 있잖아?”

 

 “지느러미는 잘라버리고 다리를 이식했습니다. 닥터 카이만은 진정 의술의 천재입니다.”

 

 “아쉽군. 본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인어의 비늘이 그렇게 아름답다지.”

 

 다이아몬드보다 아름답다 한들 빛이 바랜 아름다움이다. 엘가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아 눈을 돌렸다. 지독한 위화감. 지금 이 순간 저 인어는 물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소름이 끼친다. 내가 어둠의 아가리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왔구나. 지금껏 가지고 있던 정체성이 어그러진다.

 

 솔이 리비도의 이목을 사로잡는 사이, 엘가는 인어에게 펜던트를 보여줬다. 시체처럼 생기 없는 인어의 눈빛에 동요가 생겼다. 엘가는 펜던트를 감추고 마니와 눈빛을 교환했다.

 

 “본래 인어는 뛰어난 미색보다 달콤한 목소리로, 선원을 홀려 물속에 빠뜨렸다고 합니다. 제대로 된 곳에서 인어와 얘기하고 싶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리비도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솔과 마니는 귀빈 대접을 받으며 응접실로 안내됐다. 리비도는 준비하고 인어를 데려오겠다며 진상 무리를 먼저 올려보냈다. 솔이 소파에 몸을 파묻고 테이블에 두 다리를 올렸다.

 

 “저 인어가 네가 찾는 인어가 맞느냐?”

 

 “응 분명히 이 펜던트를 아는 눈치였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응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리비도와 목줄을 한 인어가 서 있었다. 인어는 한쪽 다리를 바닥에 끌면서 들어왔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껍데기가 기계적으로 인사했다. 솔은 발을 까닥였다.

 

 “이름이 무엇이냐.”

 

 “비비안 이라고 합니다.” 옥반에 진주 굴리는 소리가 났다.

 

 “네가 원한다면 이 몸이 너를 취하겠다. 어떠하냐?’

 

 솔의 돌직구에 리비도의 눈동자가 눈깔사탕처럼 커졌다. 비비안의 입술은 미동 없었다. 가면을 쓴 것 같은 얼굴에선 일말의 감정도 찾아볼 수 없다.

 

 “흐~음.”

 

 길게 말꼬리를 늘린 솔이 리비도에게 명령했다.

 

 “자네는 나가 있게. 10분이면 돼.”

 

 “그, 그건.”

 

 리비도는 홍수 난 것처럼 땀을 흘렸다.

 

 “빅맘. 처리해.”

 

 빅맘의 불룩한 배가 리비도를 문밖으로 튕겨냈다. 솔은 다리를 바꿔 꼬며 다과를 입에 넣었다. 엘가는 마스크를 턱밑으로 내리고 비비안에게 말했다.

 

 “나는 엘가라고 해요. 이 펜던트 당신 거죠?”

 

 펜던트를 바라보는 비비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비비안. 당신은 아직도 존 윅을 사랑하나요? 아니, 그를 사랑한 적이 있나요?”

 

 만약 없다면 아버지가 너무 불쌍해. 엘가는 비비안의 입술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무슨 말씀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비비안은 거북이처럼 등껍질 속에 숨었다.

 

 “비비안.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왔어요. 난 존 윅의 딸이에요. 첫눈에 알았어요. 아버지가 말씀해주신 모습이랑 똑같아서. 보세요. 이 힙색이랑 허리띠, 잭나이프 이건 아버지 거예요.”

 

 비비안은 그리운 체취에 저도 모르게 손을 뻗을뻔했다. 비비안은 아르콘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불편한지 솔과 마니를 연신 곁눈질하다 등껍질에서 나왔다.

 

 “무례하군요. 내 앞에서 고인의 이름을 입에 담지 말아요,”

 

 “존 윅은 살아있어요.”

 

 “나를 기만하지 마세요. 그는 낙원에서 추락했어요. 살아 있을 리가.”

 

 “아직까진 살아있죠.”

 

 “그게 무슨…!”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리비도가 빅맘을 뿌리치고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들어왔다. 손수건이 축축했다.

 

 “저… 말씀하신 10분이 지났습니다.”

 

 솔은 검지를 올렸다,

 

 “1분.”

 

 빅맘이 리비도를 끌어안고 문밖으로 나갔다.

 

 “더는 시간을 끌면 의심받을 거다. 그러니 너는 이 몸의 마지막 질문의 답을 해줘야겠다. 왜 네겐 신력이 통하지 않느냐?” 솔이 비스킷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나는 스케빈져야.” 엘가는 씁쓸하게 웃었다. “저주받은 아이지.”

 

 “저주? 누가 네게 저주를 걸었지?”

 

 “글쎄. 나도 알고 싶어.“ 엘가는 머나먼 곳을 바라봤다.

 

 “인간. 진정 이 몸의 노예가 될 생각이 없느냐? 좋아. 격상해주지. 펫돌이 되거라. 이 몸의 권세를 등에 업을 수 있을 터.”

 

 “내가 죽는 순간까지 네가 내 주인이 될 일은 없을 거야.”

 

 엘가는 우리에 갇힌 이종족을 떠올렸다. 염세적인 태도. 그저 죽지 못해 숨만 쉬는 가련한 삶. 감정을 잃는 감정이란 어떤 감각일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과신하지 말아라. 이 몸은 갖고 싶은 건 못 갖은 적이 없어. 우리와 네가 만난 것처럼 인연은 끌림과 같은 것. 두고 보아라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땐 반드시 널 이 몸의 것으로 만들 거다.”

 

 솔이 마지막 비스킷을 씹으며 일어섰다. 빅맘이 문을 열었다.

 

 “자네의 대접은 잊지 않도록 하지. 이만 돌아가겠네.”

 

 리비도는 티 나게 기뻐하며 배웅했다.

 

 “더 있다 가시지. 어찌 벌써가십니까.”

 

 맘에도 없는 소리. 솔은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주변에는 이처럼 이 몸의 비위를 맞추거나 입안의 혀처럼 구는 녀석투성이다.

 

 “솔님? 분명 몸종이 한 마리 있지 않으셨나요?”

 

 “아, 그 몸종은 빅맘의 배속에 있네. 지금쯤 소화가 됐겠군.”

 

 솔이 빅맘을 예리하게 쳐다보자 빅맘이 눈치를 보더니 트림을 했다.

 

 “에? 하지만 판다는 맛을 못 느껴서 채식주의자가 된 게….“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 다는 거야? 나를 의심하는 건가?”

 

 솔이 버럭 소리 지르자 리비도가 깨갱 꼬리를 말았다.

 

 엘가는 창밖에서 떠나는 솔 무리와 배웅하는 리비도를 바라봤다. 응접실 밖에는 경비가 진을 치고 있어서 나갈 수 없다. 엘가는 자신을 곧게 직시하는 비비안과 눈을 맞췄다.

 

 “아버진 무혈충에게 물린 것 때문에 곧 죽을 거예요. 치료제를 구할 수 있나요?”

 

 무혈충은 길가의 개미나 모기처럼 흔한 벌레. 옛날이야 무혈충에 죽는 종족이 무더기였지만 25년 전에 발명된 치료제로 흔한 질병으로 분류된 무혈충병. 그마저도 면역력이 생겨 어린아이가 아니고서야 발병하지 않는다.

 

 “그가 있는 곳은 이런 간단한 질병조차 치료할 수 없는 열악한 곳인가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죠.”

 

 “발병한 건 최근이에요. 추측이지만 이곳과 환경이 달라서 발병이 늦춰진 것 같아요.”

 

 비비안의 가슴이 저며온다.

 

 “약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흔한 질병인 만큼 상비약은 늘 구비되어있거든요. 일단, 숨어요. 곧 주인님이 돌아오실 거예요. 밤에 만나요.”

 

 “어디서?”

 

 비비안은 저택 동쪽의 마구간을 가리켰다. 엘가는 망설임 없이 창문을 넘어 아래로 뛰어내렸다.

 

 “위, 위험!”

 

 비비안이 기겁하며 창밖을 내려다보자 엘가는 바람처럼 빠르게 뛰어가고 있었다. 비비안이 창문을 닫음과 동시에 방문이 열리고 리비도가 들어왔다. 리비도는 거칠게 상의를 벗으며 비비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하여간. 아르콘이란 것들은 제멋대로에 버릇이 없지.”

 

 리비도는 비비안의 뺨을 혓바닥으로 핥았다.

 

 “무슨 얘기를 했지? 그들이 널 어떻게 회유하더냐?”

 

 그의 손이 뱀처럼 움직여 깊숙한 곳으로 파고든다.

 

 “또 입을 닫는구나. 네가 입을 여는 건 침대 위밖에 없지. 말할때까지 잔뜩 울게 해주마.”

 

 리비도가 비비안의 목부터 골반까지 움푹 패인 곳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비비안은 떨리는 눈꺼풀을 감추기 위해 눈을 감았다. 나는 인형이다. 인형은 아픔도 괴로움도 느끼지 못해.

 

 리비도가 침대 위로 비비안을 던졌다. 비비안은 처연하게 쓰러졌다. 리비도가 비비안의 가운을 찢어발겼다. 부드러운 살결을 깨물고 씹으며 탐닉한다. 밤꽃 냄새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 * *

 

 빛이 먹힌 밤. 공기 중에 인공적인 향이 흐른다. 어둠 속에서 규칙적인 숨소리만 고르게 들렸다. 은밀한 기척이 발끝을 들어 올리고 장식장 위의 구급함에서 상비약을 꺼냈다. 비비안은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쓰러져있는 경비병을 확인했다. 비비안의 목덜미에 진득한 어둠이 달라붙는다.

 

 “엘가. 어디 있나요?”

 

 비비안의 목소리는 들떠있었다. 어딘가에 존이 살아 있다고 한다. 그 소식만으로 비비안은 혀를 깨물지 않고 모진 치욕을 견딜 수 있었다.

 

 “이곳은 벌레가 너무 많군요.”

 

 천장에 매달려 있던 엘가가 사뿐히 뛰어내렸다. 엘가는 벌레에 쥐어뜯긴 곳을 십자로 눌렀다. 비비안은 울컥 치밀어 오는 감정을 억눌렀다. 존의 딸이라고 생각하니 엘가의 동작 하나 말투 하나하나가 그를 닮았다.

 

 “약을 받아요. 그리고 떠나세요.”

 

 “저와 함께 하계로 가요.”

 

 “그가 날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원망하고 있을 게 분명해요. 게다가…” 비비안의 입안에서 쌉싸름한 맛이 났다.

 

 “당신의 어머니가 싫어할 거예요.”

 

 “문제없네요. 난 아버지의 수양딸이에요. 아버진 아직도 비비안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함께 가면 분명 기뻐하실 거예요.”

 

 “갈 수 없어요.” 비비안은 입술을 짓씹었다. 손톱을 뽑힌 손이 옷자락을 쥐어뜯었다.

 

 “나는 엘가보다 더 작을 때 이곳에 잡혀 왔습니다. 내게 다른 곳으로 간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에요.”

 

 비비안은 제대로 누울 수도 없는 비좁은 스톨에 갇혀있는 말의 갈퀴를 쓰다듬었다.

 

 “흑룡 오랜만이구나.”

 

 온몸이 새까만 말이 푸르르 울며 발굽을 움직였다. 비비안이 흑룡에게 고삐를 걸어 마구간 밖으로 나가려 했다. 엘가가 비비안을 가로막으며 몸을 낮췄다. 그림자처럼 질량도 소음도 없이 어둠과 동화되어 순식간에 순찰 도는 경비병을 기습했다. 엘가는 허리띠로 경비병의 목을 졸랐다. 2인 1조로 다니기 때문에 다른 한 명이 검을 꺼내 들려는 찰나 엘가는 발꿈치로 손잡이를 칼집에 그대로 밀어 넣고 등에 올라타 목을 꺾어버렸다. 전광석화 같은 몸놀림. 차례차례 나타나는 경비병들을 물리치고 출입문으로 향했다.

 

 엘가가 흑룡 위에 올라타며 손을 내밀었다.

 

 “난 말을 탈 줄 몰라요. 함께 가요. 비비안.”

 

 “흑룡은 영리한 아이예요. 고삐를 꽉 잡고 매달려 있으면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줄 거예요.”

 

 “하지만 날 도와줬다는 걸 들키면 비비안이 위험할 거예요.”

 

 “걱정 말아요. 리비도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날 죽이지 못해요. 나는 그의 자랑스러운 애장품이거든요. 나처럼 구미가 당기는 보물은 천금을 줘도 구할 수 없어요. 이걸 부디 그이에게 전해줘요.”

 

 비비안이 소중하게 품고 있던 주머니를 건넸다. 엘가는 주머니를 손에 꼭 쥐고 비비안의 목을 끌어당겼다.

 

 “그대를 죽음보다 사랑해. 비비안.” 엘가는 비비안의 이마에 입맞춤했다.

 

 “아버지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비비안은 눈물을 훔쳤다. 눈물이 산홋빛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흑룡. 부탁한다! “

 

 흑룡이 투레질했다.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는 비비안의 가슴이 타들어 갔다. 불길이 산불이 되어 모든 걸 불태운다. 흑룡은 공기의 저항력을 무시하고 불새처럼 달렸다.

 

 자유롭게.

 

 비비안은 끝끝내 출입문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아 소리 없이 오열했다.

 

 “나도… 나도, 자유로워지고 싶어. 바닷속을 헤엄치고 싶어. 가지마. 날 데려가 줘. 존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

 

 무법자들은 인어의 서식지를 침략했고 수많은 인어가 약용으로 희생됐다. 무자비한 욕망으로 인어의 씨가 말랐다. 행운인지 불운인지 비비안은 도살 전 리비도의 눈에 띄었다. 비비안의 아름다움은 치명적인 독이었다. 비비안은 물을 마시는 것, 옷을 입는 것 하나까지 스스로 해선 안 됐다. 리비도의 심기가 뒤틀리면 동족의 거죽으로 만든 가운을 입었고, 동족의 살점을 포크로 찍어 먹어야 했다.

 

 좁은 우리 밖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준 게 존이었다.

 

 ‘그러나 나는 리비도의 입맛에 맞게 길든 인형이다.’ 그 비참한 사실을 사랑에 눈이 멀어 잊고 있었다. 존과 약속한 그날처럼 출입구에만 서면 두 다리가 얼어버린다. 이제 내겐 소중한 것도, 족쇄도 달려있지 않은데. 고작 한 걸음만 내딛는다면!

 

 “또 도망갈 생각인 거냐? 아직도 미련을 못 버렸군.”

 

 비비안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떨었다. 리비도가 야차의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수상한 짓을 하고 있구나! 비비안. 아직 교육이 부족했군. 누굴 꼬드겨서 유혹한 거지?”

 

 리비도는 비비안의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인정사정없이 잡아 침실로 끌고 갔다. 리비도는 벽에 걸린 검을 빼 들어 값비싼 도자기를 깨뜨리고 초상화를 망가뜨렸다. 아직도 멍하니 잠에 취한 경비병 다섯의 목이 떨어졌다. 리비도는 사체를 계속 칼로 다졌다. 리비도의 분노가 비비안을 향했다.

 

 “넌 내가 아끼는 펫돌이다. 나쁜 펫돌은 벌을 받아야지.”

 

 리비도가 주사기를 가져왔다. 리비도는 비비안의 두 팔을 천으로 묶어 침대 기둥에 고정했다. 그리고 옷을 가위로 잘랐다. 발버둥 치는 비비안의 가녀린 목에 주삿바늘이 꽂히고 정체불명의 액체가 혈관 속으로 들어간다.

 

 비비안은 경련을 일으키며 눈을 까뒤집고 거품을 물었다. 그런데도 잘못했다 고통스럽다 말하지 않았다. 그 고집이 리비도의 오싹하게 한다.

 

 “비비안 넌 그저 숨만 쉬면 된다. 생각이란 걸 하지 마. 네 숨결, 네 눈길조차 내 것이어야 해.”

 

 비비안의 눈물이 광대를 타고 흘러내린다. 몇 번 더 약을 주사하자 비비안이 괴로워하며 몸부림쳤다. 고통도 잠시, 달뜬 숨소리를 내며 황홀경에 취했다.

 

 “야, 약을, 주세, 요. 주인, 님. 제, 발.”

 

 채 삼키지 못한 침이 낙화처럼 흘러내린다. 약은 이성을 살라 먹고 자아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비비안의 몸이 뒤틀리고 두 팔을 묶은 천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래 내가 너의 주인이다.”

 

 리비도가 비비안의 허벅지에 주삿바늘을 찌르며 발꿈치에 키스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그저 격렬한 쾌락에 취해 중독자가 될 뿐.

 

 향기 없는 꽃은 꽃이 아니다. 날지 못하는 새는 새가 아니다. 헤엄칠 수 없는 인어는 인어가 아니다.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릴 수 있다면.

 

 “더… 더….”

 

 탕! 탕!

 

 총성이 울려 퍼진다. 횃불이 악귀의 눈동자가 되어 쫓아온다. 엘가는 고삐를 틀어쥐었다. 엉덩이에 총알이 빗나가자 흑룡이 화들짝 놀라 앞발을 들었다. 엘가는 말 등에서 떨어졌고 흑룡은 흥분해서 날뛰다가 사라졌다. 말발굽에 밟혀 세상 하직할 뻔한 엘가는 이 기분 나쁜 냄새를 풍기는 숲을 벗어날 때까지 달렸다.

 

 ‘빌어먹을 이곳은 낙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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