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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해결사
작가 : 골든피크
작품등록일 : 2017.12.11

40년, 그 오랜 시간동안 윌런 왕국을 지배하던 오리헨은 도리어 속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 아래에서 볼모로 잡혀온 '저능아 왕자' 는 오늘도 하루를 겨우 연명하는 처지였다.

 
해결사
작성일 : 17-12-12 13:42     조회 : 260     추천 : 0     분량 : 5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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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윈 아르넬 오리헨투스?"

 

 버밋 아카데미 검술학부에서 학생 대표를 맡고 있는 테디는 방금 전 통신구로 받은 지원자 프로필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왕족이라면 정치학부로 들어가야 한다는 교칙이 어그러진 탓이었다. 거기다가 오리헨투스라면 오리헨의 왕가를 의미하는 이름.

 윌런에 대한 충성심이 유독 깊은 검술학부에서는 하나의 블랙리스트였다. 골칫거리가 하나 늘어날 듯한 예감에 테디는 인상을 쓰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생각해, 미아랭?"

 

 테디가 소파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소파 위에 무릎을 꿇고 가지런히 앉아있던 작은 소녀가 반응했다. 생김새로 보아서는 아무리 봐도 사람이었지만 머리 위에 솟은 두 귀는 그녀가 사람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동물의 신체 능력과 일부 신체 기관을 가진 수인족, 그 중에서 고양이 수인족인 웨렉샤 중 한 명인 미아랭은 이종족임에도 뛰어난 실력으로 검술학부에 입학한 소녀였다. 겨울철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과 자신의 신체보다 훨씬 큰 검은도복을 입고 있는 그녀는 테이블 위에 있는 찻잔으로 손을 댔다.

 

 "죽을걸, 오면."

 

 짧으면서도 날이 서있는 목소리에 테디가 질린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후릅.

 손 안에 든 차를 한 모금 마신 그녀는 주황색 눈동자로 문 입구 쪽으로 돌아보았다.

 

 "왜 그래."

 "왔다."

 "그래, 그럼 나가보자고."

 

 테디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고 미아랭이 폴짝 뛰어 그 뒤를 쪼르르 따라갔다. 방을 나서자 족히 300명은 수용 가능할 넓은 연무장이 나왔다. 연무장 입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본 테디는 걸어가면서 크게 일갈했다.

 

 "도열!"

 

 우렁찬 그의 목소리에 웅성거리던 소란이 일시에 멈추고 검술학부 단원들이 순식간에 테디의 앞에 도열했다.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자 입구에는 한 명만이 남아있었고 그가 오리헨투스임을 깨달은 테디는 그를 향해 다가오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로윈이 점점 가까이올수록 테디의 한 쪽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멀리서 있기에 작아 보이는 줄 알았던 그는 실제로 키가 작았다. 앞머리까지 기른 금발과 새하얀 피부는 살아있는 인형을 보는 것 같았지만 몸에 붙은 근육이나 근골은 한번도 운동을 안 해본 어린아이 같았다.

 

 테디는 순간적으로 그에 대한 반감이 솟았다. 그가 왕족이여서가 아니라 검술학부를 만만히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테디에게 검술학부는 굽힐 수 없는 자긍심이었다. 바로 앞까지 걸어온 로윈은 테디를 정면으로 보고 섰다.

 

 "검술학부에 지원하러 왔습니다."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테디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있었다. 부릅 뜬 두 눈에서 나오는 기세는 사나웠으나 로윈은 무표정하게 받아낼 뿐이었다.

 

 "안 될건 뭡니까?"

 "검술학부를 만만하게 보지 마시죠. 여긴 얼뜨기 왕자와 놀아주는 놀이터가 아닙니다. 그 몸으로 뭘 하겠단 겁니까?"

 "신체 조건이 자격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저분도 저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만."

 

 로윈의 시선이 테디의 뒤에 있던 미아랭에게로 향했다. 미아랭의 체형은 로윈과 비슷하거나 작았고, 검은 소매가 손까지 가려버릴만큼 긴 도복 안에서 그녀는 더 왜소해 보였다.

 

 "그녀는 당신과 다릅니다. 그녀는..."

 "테디, 치게 해, 시험."

 "뭐?"

 

 테디는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너무 감정적으로 나갔다는걸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였다.

 

 "지원한 건 사실이니까. 입학 시험은 검술학부 단원 세 명과의 진검 대련입니다."

 

 로윈이 고개를 끄덕이자 테디는 단원들을 쓱 흩어보았다.

 

 "릭. 헤스틴. 아돌프 세 명이 나와서 지원자와 차례대로 지원한다."

 

 불려나온 셋은 왜 저런 상대와 싸워야 되냐며 궁시렁대면서도 각자의 장비를 챙겼다.

 

 "어디까지나 지원을 위한 시험이니 지원자는 1분동안 버티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대련 도중 생기는 부상에 대해서는 일절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하고요. 이해됐습니까?"

 "이해는 되었습니다만 한가지만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뭡니까?"

 "검 한 자루만 빌려주십시오."

 "뭐?"

 

 당황해 존대를 하던 것도 잊은 테드는 이내 킥킥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부원들도 하나같이 낄낄대기 시작했다. 검사에게 검이란 소유자의 목숨과도 같은 존재. 그런데 검술 시험장에 검을 들고 오지 않았다는 건 맨몸으로 전쟁에 나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왕자 나으리, 급하시면 시종이라도 부를갑쇼? 왕자님 검 좀 들고오라고."

 "크하하하."

 

 누군가 빈정대는 소리에 부원들이 모두 폭소하기 시작했다. 검사의 자격조차도 모르는 얼뜨기. 개중에는 몸이 어려서 머리까지 나쁘다고 조롱하는 자들도 있었다. 크게 웃어대지는 않았지만 억지로 웃음을 참는 게 보이는 테디는 로윈을 지원자격 박탈로 떨어트리려했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쐐액. 팍.

 

 어디선가 날아온 날카로운 소리가 소란을 갈라버렸다. 꿀 먹은 벙어리 마냥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을 때, 로윈은 정확히 자신의 발치에 박힌 단검 한 자루를 바라보았다. 검신이 반 정도나 박혀있는 그것은 끝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로윈은 단검을 던진 주인인 미아랭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단검을 가리키며 "해 봐, 그걸로." 한 마디 할 뿐이었다.

 

 로윈은 감사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단검을 잡아꺼냈다. 사선으로 주름이 잡힌 흑갈색 손잡이 위로 은색 빛의 검날은 누가 보더라도 알아차릴만큼 사나운 예리함을 담고 있었다. 뿌득 소리가 나게 단검을 쥔 로윈은 롱소드를 들고 나온 아돌프라는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테디가 손짓하자 모든 부원들이 한 발자국씩 뒤로 빠졌다. 어딘가에서 불어온 바람이 로윈의 귓가를 가볍게 건들고 지나갔다. 시원한 감촉에 떨렸던 손이 한결 편해진 기분이었다. 서로가 자세를 잡고 대기하는 사이 올라간 테디의 손이 아래로 떨어졌다.

 

 "시작.

 "차아앗."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로윈에게 달려간 아돌프는 그대로 검을 내질렀다. 로윈이 몸을 돌려 피하자 아돌프는 달려오는 자세 그대로 검의 방향을 꺾었다. 피하기 어렵겠다 판단한 로윈은 단검을 앞으로 가져다 대고 두 발에 힘을 꽉 주었다.

 챠캉하는 금속음과 함께 물 흐르듯 검을 흘려보내자 아돌프는 균형을 잃고 앞으로 주춤거렸다. 그 잠깐의 빈틈에 순간적으로 로윈의 눈이 사납게 변했다가 이내 사라졌다. 대신 두어발 뒤로 스텝을 밟아서 숨을 골랐다. 발을 한 번 크게 구른 아돌프는 방금전 넘어질 뻔함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금 그를 향해 질주했다.

 

 공격 범위가 상당히 짧은 단검으로는 롱소드를 막기 힘들기에 아돌프는 로윈이 좌우로 움직일 거리르 계산해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만약 로윈이 뒤로 빠진다면 그대로 방향을 꺾어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롱소드가 휘둘러지고 나서 로윈은 뒤로 가기는 커녕 몸을 숙이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휘둘러지는 아돌프의 팔꿈치를 왼손으로 쳐올리고 몸을 앞으로 굴러 아슬아슬하게 팔과 옆구리 사이를 통과하자 억지로 몸을 돌리던 아돌프가 휘청거리다가 결국 넘어졌다.

 

 "1분 끝!"

 

 로윈은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음."

 

 "프로필 상으로는 검술 경험이 제로라고 되어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군."

 

 팔짱을 낀 채 로윈을 관찰하던 테드는 잘못된 프로필 정보를 지적했다. 저건 검을 어느 정도 잡아본 이의 몸놀림이다.

 

 "하지만 근력도 약하고 민첩에만 치중되어 있어. 체력도 약하기 그지없군."

 

 그 두 번의 격돌 뿐인데도 벌써 숨이 벅찬지 호흡을 고르는 로윈이 보였다. 방금 전 검쪽을 향해 달려나간 건 의외였지만 아돌프의 실력은 부원들 중 가장 하위권. 갑작스러운 변수에 충분히 반응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아니야."

 "뭐라고, 미아랭?"

 

 그 한 마디만 할 뿐 미아랭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워렉샤 특유의 반달모양 눈동자로 로윈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쫓고 있었다. 테디는 머쓱한 마음에 뒷머리만 긁적였다.

 아돌프 다음으로 나온 릭은 레이피어로 로윈을 맹공해갔다. 로윈은 고개를 재빠르게 저어 검을 피하고 최대한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비겁하게 도망만 가기냐!"

 

 릭이 아무리 도발을 해도 로윈은 묵묵히 피해낼 뿐이었다. 또 다시 1분이 지나고 릭이 분한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얼핏 보기에는 수비에만 급급해 반격조차 못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미아랭은 그 짧은 순간순간의 로윈의 눈동자가 정확하게 검의 궤적만을 쫓고 있음을 깨달았다. 미아랭의 입가가 올라가면서 날카로운 송곳니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재미있어."

 

 자신의 실력을 꽁꽁 숨기는 저 모습이, 이때까지 그녀가 보아왔던 인간들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문득 저 소년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미아랭의 눈에 생기가 흘렀다.

 

 "테디."

 "왜?"

 "안 되겠어. 나, 갈래."

 "잠깐 기다..."

 

 테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아랭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아, 이러면 곤란해 지는데."

 

 테디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난처하다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미아랭이 한 번 불이 붙은 이상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내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릭 다음으로 나온 헤스틴은 커다란 츠바이헨더를 어깨에 걸치고 나왔다. 검신의 길이만 해도 로윈의 두 배 가까이에 육박하는 검을 한 손으로 쥐는 괴력을 자랑하는 헤스틴은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머리카락도 얼마 없는 얼굴에 악귀가 씌인 듯했다.

 

 "이제 내가 나온 이상 끝이라우, 꼬맹이 왕자님."

 "시끄럽습니다, 대머리."

 "아직 대머리까지는 아니다! 탈모가 조금 있을 뿐이지."

 "누가 물어봤습니까?"

 

 로윈이 콧방귀를 뀌며 자신의 풍성한 머릿결을 자랑하듯 쓸어넘기자 대번에 얼굴이 시뻘개진 헤스틴이 검을 쥐고 로윈 쪽으로 붕 휘둘렀다. 거리가 충분함에도 로윈이 뒷걸음질치자 겁을 먹은 거라 여긴 헤스틴은 피식 웃었다.

 

 "큰소리 치더만 무서웠나봐?"

 "착각은 자유라고 하지만 일단은 안전거리 확보 정도라고 해두죠."

 "아아?"

 

 무슨 소리나며 되물으려던 헤스틴은 로윈의 시선이 자신의 위쪽으로 올라가 있음을 알았다. 동시에 자신의 발 밑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하자 이상함을 느낀 헤스틴은 뒤쪽으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작은 신발을 보았다고 인식한 순간, 날아가버렸다.

 

 "꾸에에엑."

 

 커다란 덩치가 대포알 마냥 날아가면서 바닥에서 흙먼지가 풀풀 날렸다. 팔을 들어 날아온 먼지를 막은 로윈은 방금까지 헤스틴이 서 있던 자리를 쳐다보았다. 헤스틴을 날려보내고 가볍게 착지한 인영은 아까 자신에게 단검을 던져주었던 소녀였다.

 

 누런 먼지 속에서도 제 빛을 잃지 않는 하얀 머리카락 속에서 반달모양 주황빛이 로윈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눈썹이 찔끔 올라간 로윈은 두 팔을 쭉 늘어트리며 몸을 일으키는 미아랭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새로운 장난감을 찾은 아이의 얼굴을 한 미아랭은 잔뜩 흥분한 모습이었다.

 

 "놀자, 나랑 같이."

 

 미아랭이 팔을 위로 휘두르자 긴 소매 속에서 로윈의 것과 같은 단검 한 자루가 나와 공중으로 띄어졌다. 가볍게 점프해서 손잡이를 쥔 미아랭은 가느다란 왼손으로 로윈을 손가락질했다.

 

 "시작한다."

 "거절합니다."

 "없어, 거절은."

 "이런 젠장."

 

 처음으로 로윈의 얼굴에 낭패의 빛이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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