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
 1  2  3  4  >>
 
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3_6
작성일 : 17-12-12 13:14     조회 : 310     추천 : 0     분량 : 5332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부산에 도착하자 어디로 갈지 고민됐다. 버스 앞자리에 앉아온 할머니께 “부산에 놀러 오면 보통 뭐해요?” 했다. “부산에 왔으면 회도 묵고, 국밥도 묵고, 밀면도 묵 고” 하시는 할머니를 말리며 그럴 돈은 없다니까 해운대, 태종대, 오륙도, 을숙도, 자 갈치시장, 구포시장, 광안리, 성불사, 하시며 5박 6일로도 다 못 볼 일정을 잡아주셨다. 해운대는 한번 가 봤으니 태종대에 가기로 했다. 늦은 시간이라 시내버스는 끊긴 지 오래였다. 터미널 밖에 있는 지도를 무의미하게 바라보고 있자 줄 서 있는 택시들이 나에게 슬금슬금 다가왔다. 아서라. 택시 탈 돈 있음 벌써 탔겠지. 무작정 걸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걸을 작정이었다. 잠깐이라도 멈춰 서면 더 추워져 쉬지도 않고 걸었다.

 

 이대로 얼어 죽나 싶었다. 핸드폰도 손목시계도 없어 몇 시인지도, 내가 어디 있는 지도 모르니까 막막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다행히 동이 트기 전에 버스가 보였다. 정 류장까지 갈 생각에도 정신이 아득해져 두 손을 마구 흔들어 잡아타고 몸을 녹였다. 까물까물 잠이 들었다. 종점에서 깨우는 기사 아저씨의 강한 부산 억양을 못 알아들어 잠깐 외국에 온 착각이 들었다. 집에서 듣던 서울말 섞인 경상도 사투리완 전혀 다른 억양의 높낮이가 낯설었다. 여행 온 기분이 들었다. “뭐라쿠요?” 작은 용량의 내 뇌 가 그새 헷갈렸는지 정체불명의 사투리가 나왔지만, 기사 아저씨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기사 아저씨에게 물어 태종대 가는 버스에 몸을 맡겼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였다. 아, 그렇지. 학교에 가야 하는 시간에 난 이러고 있구나.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착 가라앉아있었다. 불안하거나 걱정이 안 됐다. 일탈감이나 성취감도 없었다. 그냥 원 래 이러고 다니는 한량인양 월요병에 시달리며 출근하고 등교하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경사가 급한 등대 계단을 뱅글뱅글 오르내리면서도, 전망대에서 절벽 아래를 바라보 면서도, 평소처럼 다리가 후들거리거나 무섭지 않았다. 바닷물이 있어서 뛰어내려도 폭 신할 것 같았고, 오고 가는 파도가 감싸줄 것 같았다. 사진 속 절경을 렌즈 밖에서 보 는 건 처음이라 착실히 쌓아진 지층을 바라보고 있자면 이게 누가 쌓아놓은 건가, 저 절로 생긴 건가 싶었다. 공통과학, 지구과학 내용은 다 잊고 신선놀음을 하다가 전망대 앞 모자상에서 현실로 내리꽂혔다. “여기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아서 뛰어내리기 전에 엄마 생각하면서 마음 고쳐먹으라고 만들었대.”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한 20대의 여자 가 반소매에 반바지 차림의 남자친구에게 말하고는 난간을 잡고 뛰어내리는 시늉을 했 고 과장된 연기에도 남자친구는 놀란 척 여자를 끌어당기곤 둘이 낄낄댔다. 엄마를 생 각하는데 왜 마음을 고쳐먹어, 하다가 아하, 하고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겠구나. 엄마가 먼저 자살해버린 사람들은 어쩌라고 이런 걸 만들었데. 나 같은 건 죽으라는건가. 쳇. 올라올 땐 쳐다보지도 않은 모자상을 째려봤다. 애 둘을 무릎에 앉히고 있는 못생긴 아줌마는 근엄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뻑큐를 날려줬다.

 

 절벽을 깎아 만든 계단을 따라 바닷물 가까이로 내려가면서, 어제가 엄마 죽은 지 사 년째 되는 날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바다는 하나니까 엄마 뼛가루 중 두세 알갱이 정도는 저기 보이는 바다에 있겠구나. 벌써 녹아 분자형태도 잃고 원자로 떠돌 아다니려나? 자기가 말해둔 게 있는데, 설마 우리 집에서 제삿밥 기다리고 있지는 않 겠지? 그러게 나 좀 커서 전이라도 제대로 부치걸랑 죽지 그랬어. 바다 코앞으로 내려 가자 자갈로 이뤄진 멋진 해변에 혼자 있었다. 맨질맨질하니 예쁜 돌만 골라서 돌탑을 높이 쌓았다. 소원 같은 건 없었다. 요딴거 하나 쌓고 빌어서 뭐가 하나라도 이루어질 정도로 재수 좋은 년이었으면 지금까지 이렇게 재수 없게 살지 않았겠지. ‘유원지는 김밥 한 줄도 천원 넘게 받을지 몰라.’하며 궁상스레 미리 사온 다섯 가지 재료 싸구 려 김밥에 바나나 우유 하날 빠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여기서 놀다가 중간고사 끝나고 돌아가야지. 아예 내년 수능 끝나면 돌아갈까?

 하나둘씩 오고 가던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날이 어스름해지자 슬슬 떠날 채비를 해야 했다.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뭔가 더 할 일이 남아있었다. 내 허리까지 공들여 쌓은 탑을 발짓 한 번에 무너뜨리며, 밤엔 백사장을 거니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백 사장은 포항에서 봐야지. 부럽지? 그러게 안 죽었으면 나랑 같이 갔을 거 아니야. 이미 가봤다고? 치사하게 혼자 가냐? 내일도 학교 안 갈 거냐고? 정 걱정되면 학교에 끌고 가보시던가. 죽은 주제에. 좀 이따 봐.

 

 버스터미널에서 포항 가는 버스에 몸을 맡겼다. 주중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 천원 에 세 개짜리 삶은 달걀을 욱여넣었더니 가슴에 꽉 막혀 위로도 아래로도 꿈적하지 않 고 눈앞에 별이 보이는 듯했다. 미지근한 캔 콜라를 마시며 가슴을 한참 쳐대자 아직 도 배고프다며 꾸르륵거리는 위로 밀려 내려갔다. 기사 아저씨한테 “포항에서 백사장 보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 했더니 백사장은 부산에서 볼 것이지 왜 포항에 가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포항은 공업도시고 부산이 관광의 도시라나. 죄송합니다. 엄마가 워낙 꿈이 소박한 사람이라 공업도시에 관광 갔어야 했다고 징징댔었거든요. 포항에서 57년 을 살았다는 한 승객도 합세해 “백사장을 보려면 서해로 가야지.”하며 나를 좌절시 켰다. 서해 소래포구에 가봤는데, 거기 모래 없었는데. 딱 한 번 가봐서 확실히는 몰라요.

 

 포항에 도착해 백사장이 중요한가 포항이 중요한가 하는 쓸데없는 고민을 심각하게했다. 그래도 포항에 왔으니 포항 바다는 어떤지 한번 봐야 할 것 같았다. 왠지 공장보 단 배에서 일할 것 같이 생긴 아저씨한테 다가가 “포항에서 바다 보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 물었다. “동쪽으로 가야지.” 아저씨는 동쪽을 가리키려는 듯 오른손을 들어 두 시 방향으로 까딱거렸다. 아, 그렇군요. 동해니까 동쪽으로 가면 되는 거군요. 황당 한 웃음을 짓고 인사를 하며 돌아서는데 다시 불러 세웠다. “바다는 와?” “모 래....... 모래 놀이하려고요.” “모래 놀이?” “네, 백사장 없나요? 포항에?” 어부 아 저씨가 머리를 긁적였다. “다 큰 처자가 모래 가지고 놀아서 뭐할라꼬?” 그러게요. 어렸을 때 놀이터 없는 동네에서 살아서 그런가 봐요. 그냥 헤헤 웃었다. 날 한참 모자 란 애 보듯 하는 어부 아저씨 대신 옆에서 구경하던 다른 아저씨가 거들어 줬다. “백 사장을 보려면 도구 해수욕장도 있고 북부 해수욕장도 있고.”

 

 희뿌연 연기를 뿜어대는 공장이 즐비한 길을 따라가던 버스가 데려다준 도구 해수 욕장은 기대 이상이었다. 조개껍데기가 많이 섞인 모래는 내가 원했던 만큼 곱지는 않 았지만, 내가 상상했던 딱 그 느낌의 백사장이 좁지만 아늑하게 펼쳐져 있었다. 모래사 장에 앉아 찬 모래를 조물딱거렸다. 엉덩이로 찬기가 올라와 몸이 푸르르 떨렸다. 모래 에 내 이름도 써보고 엄마 이름도 말년이라고 썼다가 엄마가 뭐라고 하길래 장미라고 고쳐 쓰고 그 위에 장미를 그렸다. 차갑게 굳은 모래를 힘들게 파서 굴을 만들고 파낸 모래로 그 옆에 아파트를 만들었다. 조개를 박아 창문을 만들었다. 12층이었다. 모래를 더 파서 20층을 채웠다. 자,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던 아파트 여기 있어. 여기서 살아. 여기선 뛰어내려도 안 죽을 거야.

 

 신발을 벗어 아파트 옥상에 놓아두었다. 벌써 발이 시렸지만 양말을 벗어 돌돌 말아 서 신발에 넣었다. 맨발로 백사장을 거닐었다. 발가락 사이에 모래가 들어가 간지럽다 가 발바닥에 조개껍데기가 밟혀 아팠다. 용감하게 바지를 걷어 올렸다. 바다에 왔음 물 에 한번 들어가 주는 게 예의지. 차가웠다. 발이 쑤시고 아프다가 이내 얼얼함이 가시 고 익숙해졌다. 종아리까지만 담가 보려 했는데 파도가 내 무릎을 휩쓸고 바지를 적셨 다. 어차피 젖은 거, 좀 더 들어가 봤다. 태어나서 해수욕 같은 거 한 번도 못해 본 한 을 풀어야겠다, 싶었다. 수영할 줄 알아야만 해수욕하나. 이렇게 바다에 몸 한번 담그 면 그게 해수욕이지.

 

 허리까지 담그니까 심장이 쩌릿쩌릿해 왔다. 이래서 수영 전에 준비운동을 하라 그 러는 건가? 뒤늦게 팔과 어깨에 먼저 물을 묻히고 천천히 몸을 담갔다. 몸을 숙여 머리 까지 담그니 오히려 추위가 잠시 가시는 것 같았다. 여벌의 옷이 없는 것도, 물에서 나 가면 엄청 추울 거란 것도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바다와 한몸이 되어 있는 내가 신기하고 푸근하니 좋았다. 어두웠지만 눈을 부릅뜨고 바다 안엔 뭐가 있나 들여다보 았다. 고기가 있으면 맨손으로 잡아서 회라도 떠먹을 기세였다. 좀 더 깊은 곳으로 걸 어 들어갔다. 그게 문제였나 보다.

 

 한 발을 떼고 다른 한 발을 데려오려는 순간 몸이 붕 뜨며 급물살을 탔다. 순식간에 바닷물 높이가 내 키를 훌쩍 넘었다. 당황하지는 않았다. 걸어 들어왔으니까 걸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게 되지 않았다. 거센 파도와 빠른 물살은 날 가만히 걷게 두지 않았다. 이미 방향감각을 상실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머리 위로 보이는 불빛이 점점 어두워지는 거였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허우적거리면 거릴수록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야 해.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걸어서 나갈 수 있어. 다리에 안간힘을 주고 점프를 해서 솟아올라 나가는 방향을 찾으려 했다. 점프까지는 성공했는데 어푸어푸할 사이도 없이 박자를 놓치고 물만 먹었다. 바닷물이 짠 줄 몰랐던 거도 아닌데 너무 짜서 놀랐 다. 웩. 이건 국 끓여 먹을 수준도 못 되는구나. 그 와중에도 내가 삼킨 물에 엄마 뼛 가루가 1mg이라도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괜한 구역질만 더 나왔다.

 

 안 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아직 늦지 않았어. 당황하지 마. 걸어 나가자. 생 각하기가 무섭게 파도가 다시 날 휩쓸어갔다. 팔다리를 허우적댔더니 머리가 꼬꾸라지 며 이젠 위아래도 구분이 안 됐다. 사람들은 이런 때 여태껏 살아온 자기 인생이 주마 등처럼 눈앞을 스쳐 간다던데 난 달랐다. 지금 죽으면 억울한 점이 파노라마가 되어 뇌리에 박혔다. 이대로 가면, 난 평생을 가난하게만 살다가 죽는다. 더 산다고 큰 부자 되겠나 싶지만 그 일말의 가능성이 실현이 되느냐는 알아보고 싶었다. 대한민국 좁은 땅덩어리에 태어나 서울 언저리에서만 머물다가 부산, 포항 한번 와보고 죽는 것도 억 울했다. 해외는 차치하고도 최소한 조선 팔도에 울릉도, 제주도쯤은 보고 죽어야지. 내 가 하고 싶은 건 한 번도 못해보고 학생으로만 살다가 죽는 것도 억울했다. 평생을 쓸 데없는 국영수사과음미체한기가 따위나 공부하고 10년 넘게 수학 능력만 갈고닦다가 정작 수학 능력 시험도 못 보고 죽는 게 죽고 싶을 만큼 억울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알아볼 기회도 없는 삶만 살다가 죽는 게 미칠 듯이 싫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0 4_2 2017 / 12 / 16 315 0 4931   
29 4_1 2017 / 12 / 15 300 0 4733   
28 3_8 2017 / 12 / 14 309 0 4125   
27 3_7 2017 / 12 / 12 309 0 4880   
26 3_6 2017 / 12 / 12 311 0 5332   
25 3_5 2016 / 10 / 31 459 0 5337   
24 3_4 2016 / 10 / 27 506 2 5300   
23 3_3 2016 / 10 / 25 451 2 5034   
22 3_2 2016 / 10 / 23 412 2 5434   
21 3_1 2016 / 10 / 22 423 3 5235   
20 2_11 2016 / 10 / 21 547 3 5917   
19 2_10 2016 / 10 / 20 539 3 5070   
18 2_9 2016 / 10 / 18 428 3 5279   
17 2_8 2016 / 10 / 17 468 3 5350   
16 2_7 2016 / 10 / 16 478 2 5606   
15 2_6 2016 / 10 / 15 524 3 5296   
14 2_5 2016 / 10 / 14 459 3 5013   
13 2_4 2016 / 10 / 13 521 3 5025   
12 2_3 2016 / 10 / 12 473 3 5428   
11 2_2 2016 / 10 / 11 468 4 5005   
10 2_1 2016 / 10 / 11 485 3 4875   
9 1_8 2016 / 10 / 11 429 4 2835   
8 1_7 2016 / 10 / 9 447 3 5315   
7 1_6 2016 / 10 / 9 528 3 4916   
6 1_5 2016 / 10 / 8 450 3 4947   
5 1_4 2016 / 10 / 7 453 3 5155   
4 1_3 2016 / 10 / 6 638 3 5022   
3 1_2 2016 / 10 / 6 535 3 5059   
2 1_1 2016 / 10 / 5 441 3 5008   
1 프롤로그 (2) 2016 / 10 / 5 736 4 2485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