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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그 꽃은 아직 지지 않았네
작가 : 강서진
작품등록일 : 2016.8.22

평범하게 일제 시대를 살아간 못난 한 여자 아이. 자신은 최선을 다해 살았으나 국가와 나라에 해가 되었던 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전재산은 교육을 위해서 쓰였던 그런 이야기.

 
입궁(2)
작성일 : 16-09-04 12:56     조회 : 349     추천 : 1     분량 : 5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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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섣달 그믐날 오후. 소주방 안에서 궁녀들이 밀떡을 만들고 있었다. 순이가 들어서자 궁녀들은 환호로 맞이했다. 궁녀들은 호기심과 짖궂음이 묻은 눈으로 순이를 보았다.

 “얘가 삼일 전에 들어온 애야?”

 “어떡해.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순이는 자신을 귀여워해주는 분위기가 좋아서 배시시 웃었다. 순이가 웃자 궁녀들은 더욱 웃었고 소주방 안의 분위기는 더욱 부산스럽고 소란스럽게 변했다.

 “어머, 귀여워. 아기두꺼비같아. 어쩜 귀여워라.”

 “어쩜 오늘 울면 안되는데.”

 어떤 나인은 조그마한 순이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순이는 아기두꺼비라는 말에 기분이 상했지만 언니들은 좋았으므로 울거나 떼쓰지 않고 참기로 마음먹었다. 소녀나인들은 밀떡을 동그랗게 빚고 있었는데, 그 것을 다 빚고 나서 순이 입에 붙이더니 다시 한 번 웃었다. 순이도 따라서 웃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꾹꾹 찔렀다.

 “야, 여기 서야지. 항아님 방해말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순이가 옆을 보자 아이들이 옹기종기 서있는 것이 보였다. 순이는 밀떡을 떼고 나서 뒤로 가서 섰다.

 “너는 언제 왔어?”

 순이는 자신에게 타박을 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육개월쯤 됐어. 너는 삼일 전에 왔다며?”

 “응. 넌 육개월이라면서 여태 집으로 가지 않았어?”

 “무슨 소리하는 거야? 집엘 어떻게 가. 우린 임금님 여자라고. 너 바보야? 평생 못가. 평생.”

 순이는 노란 저고리를 입고 가마를 탔을 때부터 이상다고 생각하였지만 아직도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순이는 그 의문이 해결되기 전에 밀떡을 입에 붙이고 그 위로 흰 무명천으로 고리를 만들어 얼굴에 써야만 했다. 밀떡을 입에 붙이자 말을 할 수 없었다.

 해가 짧은 겨울이었다. 어둠은 빠르게 찾아와 세상을 가렸다. 어린 아기나인들이 옹기종기 밖으로 나선다. 밖은 벌써 대불놀이를 시작했는지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순이는 입을 밀떡으로 봉한 채 주위를 살폈다. 여기서 조금 먼 곳에, 화려한 복장의 여인들이 나인들과 함께 구경을 와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옷차림이었다. 그들이 남다르다는 것은 멀리서도 보이는 풍성한 가채로 쉽게 알 수 있었다. 비록 어둠이 내려와 잘 보이지 않았지마는…….

 순이는 아이들과 함께 궐의 넓은 뜰 안으로 들어와 열을 맞추어 섰다. 관포를 입었고 수염이 나지 않은 남자들이 긴 장대를 들고 있었다. 그들이 내시라는 것은 후에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수선하게 열을 맞추었을 때 그들은 긴 장대에 불을 붙였다. 그들은 그 것을 쥐고 다가왔다. 순이는 공포를 느꼈다. 불이 살을 그을릴 듯이 옆으로 다가왔다. 관포를 입은 이들이 가까이 다가와 위협하듯이 고함쳤다.

 “쥐부리지져!”

 “쥐부리글려!”

 “쥐부리지져!”

 순이는 불이 다가온 한 쪽 눈을 찌푸리며 옆을 보았다. 아까 이야기를 나누었던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 보였다. 순이는 울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울지 않자 불은 더욱 거칠게 다가왔다. 환관의 눈은 그가 들고 있는 불만큼이나 이글거렸다.

 “쥐부리글려!”

 명백한 위협. 순이는 불을 마주보았다. 눈이 머는 듯했다. 뜨겁고 밝고 일렁이는 불은 기어코 울리고야 말겠다는 듯 집요하게 순이에게 머물렀다. 순이는 끝내 울지 않았다.

 

 

 의례가 끝나고 최상궁은 순이에게 이름을 전달했다. 엄선영(嚴善英). 임금이 하사한 이름이었다. 이제 순이는 ‘엄가 선영’으로 불린다는 것이었다. 최상궁은 방 한 쪽에 순이를 앉혀놓고 순이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어제 무서웠느냐?”

 순이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겁을 먹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만큼 궁궐 안에서는 말조심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들어도 못들은 척. 모두 어르신의 뜻이려니 하며 그렇게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너는 엄선영이다. 바깥의 일은 모두 잊고 이제 이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라는 뜻이야. 알겠느냐?”

 “집에 못 가요?”

 순이의 물음에 최상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이 여기에 오실 순 있어도…… 쫓겨나는 것이 아니면 네 뜻만으로는 여기서 나가지 못한다.”

 “쫓겨나기 싫어요.”

 징징거릴 것 같았던 아이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그래. 아가. 네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기왕 궁녀로 온 것이면 이르게 온 것이 복일 게야.”

 최상궁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지밀에 오는 아이는 특별하단다.”

 “지밀이요?”

 “지밀에 오면 왕실과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고, 싫어도 듣게 되는 일이나 비밀도 많이 있지……. 어찌 덕성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겠느냐. 지밀에 올 사람을 간택할 때 다른 사람은 모르겠으나 나는 덕성을 가장 많이 본단다.”

 최상궁이 순이를 보는 눈빛은 따뜻했다.

 “지밀이란 어떤 곳이지요?”

 “차차 알게 되리.”

 최상궁은 싱긋 웃었다.

 

 지밀은 궁녀가 배정받는 부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궁녀가 소속되어 있는 곳은 모두 일곱 곳이다. 지밀(至密), 침방(針房), 수방(繡房), 세수간(洗手間), 생과방(生果房), 소주방(燒廚房), 세답방(洗踏房)이 그 이름인데 각 방에 배치를 받게 되면 수업은 도제식으로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 으뜸은 지밀이다. 지밀은 지극히 비밀스럽다는 뜻이다. 그런 만큼 궁녀들의 사회에서 가장 커다란 권력을 휘두를 수도 있었다. 지밀은 그 이름에 걸맞게 궁궐의 가장 비밀스러운 일들을 담당하였는데, 그 일들이란 어떤 것인가.

 지밀은 왕과 왕비의 신변 보호 및 자는 것, 먹는 것, 입는 것까지 관장하였으며 시중과 내전의 물품 관리 및 내시부(內侍府), 내의원(內醫院), 전선사(典膳司)들과의 중요한 교섭을 담당하였다. 또한 궁중의 대소 잔치인 혼사와 회갑 및 제사 때 왕을 시위하고 전도하는 것이 임무였다. 세자의 혼례 때 신부가 왕을 뵙는 경우 사배(四拜), 궤(蛫-꿇어 엎드림), 흥(興-일어나고), 평신(平身-몸을 똑바로 일으켜 서 있음) 등의 구령과 교명을 낭독하였다. 그 밖에 의식 진행과 평상시 문서관리 및 궁중 문안 편지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지밀은 왕을 제일 가까이에서 모시기 때문에 권력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후일 왕의 후궁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모든 부서 중 조건이 가장 까다로웠으며 가장 어린 나이에 궁녀로 들였다.

 

 다섯 살에 궁에 들어온 순이는 엄선영이 된 이후로 여덟 살까지는 최상궁마마님을 곁에서 모시기만 하였다. 그녀는 여덟 살 때부터 학문을 닦기 시작하여 동몽선습, 소학, 내훈, 열녀전서를 모두 외웠다. 2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상궁은 재능을 염려하여 짐짓 꾸짖기도 하였으나 사람들이 자신이 데려온 아이에 대한 평판에 때때로 미소지었다.

 그녀의 비상함은 타고난 영리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순이는 외모와 다르게 승부욕이 강하여 다른 아이들에게 지기 싫어 밤새 책을 외우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외우지 못하면 스스로 분하여 울기도 했다. 내시들이 불로 위협했을 때에도 울지 않았던 선영이다. 우연히 밤 중에 그 모습을 본 최상궁은 더욱 선영을 흐뭇하게 생각하였다.

 “우느냐?”

 “마마님!”

 선영은 울다가 놀라서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너는 똑똑하니 상궁이 될 수 있겠다.”

 “네. 마마님.”

 선영은 상궁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했지만 자신도 후에는 최상궁마마님과 같은 옷을 입고 비슷한 일을 하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것은 뭇사람들에게는 야망이 되는 일이었으나 선영에게는 자연스러운 인과와 같이 느껴지는 일이었다.

 선영이 빠르게 학습하는 것을 시기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 영특함에 비하여 그녀는 화제가 되지 않았다. 그 것은 그녀의 외모가 이유였다.

 시기심이 많은 아이들은 웃으며 선영에게 말했다.

 “그 얼굴로 임금님께 은총을 받기는 글렀으니 공부라도 잘해야하지 않겠어?”

 선영은 아랑곳 하지 않고 독하게 공부를 했다. 아이들은 선영의 외모를 고려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그녀가 먹고 살 방편으로 생각해준 듯하였다. 만일 선영의 외모가 아리땁기까지 하였다면 좋은 쪽으로든 좋지 않은 쪽으로든 화제가 되었을 것이나 선영의 외모가 투박한 탓에 큰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알만한 상궁들은 선영의 학문을 알았지만 그 뿐이었다.

 

 선영이 공부를 배우는 여덟 살에 이르렀을 때부터 궁궐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선영이 공부를 시작할 때 쯤, 내시며 궁녀들은 진주에서부터 시작하여 사방에서 난이 일어났다며 궐 안 사방에서 수근거림이 들렸다. 홍경래라는 자가 나라를 세웠다는 말도 들렸다.

 그 통에 사도세자의 증손이며 강화도령이라 불리며 놀림을 받던 철종은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철종은 자식이 없었다. 왕위는 익성군이 이어 받았다. 그 전까지 듣지 못했던 낯선 이름이었다.

 순이는 최마마님과 다른 마마님이 오셔서 대화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독살인 것같지 않우?”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오.”

 최마마님은 딱부러지게 말했다. 선영은 귀가 쫑긋 서는 것을 느꼈다. ‘독살이라니? 그 것은 사람을 죽였다는 거잖아.’ 최상궁이 거처하는 곳에서 마루를 닦던 와중이었다. 마루 위에서는 선영이 귀를 세우고 나무 위에는 까치가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선영은 하는 행동을 잠시 멈추었다가 들키지 않도록 다시 바닥을 닦았다. 두 상궁은 선영을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다른 마마님이 바닥에 손을 얹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아니, 형님도, 아시면서. 주상이 돌아가시자마자 옥새를 빼돌려 흥선군의 둘째아들을 왕좌에 올렸소. 오늘 교서가 발표됐는데 못 들으셨소?”

 “흥선군이라면 왕실의 적통은 아니지 않는가?”

 최마마님이 말했다.

 “그러니까 흥선군이 보통은 아니우. 어느새 둘째가 조대비마마의 양자가 되어 있지 않겠소. 익성대왕으로 이미 올라왔소. 김홍근이 흥선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행실이 너무 엉망이라 도저히 올릴 수 없다고 하우.”

 “첫째가 아니라 왜 둘째가 올라왔어?”

 “뻔한 일이지 않소. 형님. 어릴수록 쉽지 않겠소.”

 한숨이 들려왔다.

 “이 나라의 왕권이 계속 무너지는구려.”

 

 왕권.

 왕족이 된다는 것은 지금의 세상에서는 몹시 위험한 일이다.

 선영은 비록 어린 나이이지만 그 것을 본능으로 알았다.

 그리고 왕족 역시 위험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선영은 머잖아 알았다. 익성군은 익성대왕으로 즉위하자마자 어떤 군밤장수를 처형했다. 능지형이었다. 사람들은 쯧쯧 혀를 찼다. 그런 소리를 들어 선영은 눈치로 어떤 일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10살이 갓 넘은 어린 소년이 하기에 잔혹한 일이었으며 사람들의 입에서도 여기저기에 오르내렸다. 새군주가 잔혹한 성품을 지닌 것이 아닌가하는 염려였다.

 선영은 그런 소식을 들으면서 궁궐에 오기 바로 전 날, 소년을 때렸던 군밤장수가 생각났다. 물론 그 소년이라면 이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3년이나 지난 일이었지만, 흐릿한 기억 속의 그 소년은 자신에게 잘 대해줬고 착한 소년이었다. 그 소년이라면, 왕이 되었더라도 군밤장수를 용서해주지 않았을까.

 선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왕위에 오른 어린 왕에게 호기심이 갔다. 왕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을까. 거리를 떠돌던 어린 왕이라면 어쩌면 비슷한 일로 원한을 가진 것인지도 모른다. 선영은 왕이 어떤 사람인지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에도 선영은 언제나 주상전하를 한 번 보고 싶었다. 철종은 서자의 자식이었고 나뭇꾼이라 놀림받았지만 순이는 오히려 그러했기에 주상에게 마음이 쏠렸다. 철종은 천민이었던 시절 사랑했던 천민여자를 못 잊어하였다. 궁궐 내에서 그 것은 유명한 사실이었다. 선영은 왕이지만 천대받는 왕에게서 스스로를 보았다.

 입 밖으로 내었다가는 발칙하다며 어떤 일을 당할지 몰랐으나 선영은 나무꾼을 하던 왕, 거리를 떠돌던 왕이, 평민의 신분으로 궁궐에 와있는 자신과 심정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양반의 여식은 없었지만 아기나인 중에도 중인의 신분인 이들은 제법 있었고 더욱이 지밀, 침방, 수방을 지망하는 아이들은 더욱 중인의 신분이 많았다. 그런 이들은 중인인 자신들이 가난한 평민인 선영에게 지는 것을 못 견뎌했다.

 시기와 질투, 권력욕.

 궁궐 안에는 그러한 이들이 많았다. 다섯 살에 들어와 머리가 굵지도 않았으나 아등바등 권력의 꼭대기로 올라가야한다는 것만을 빠르게 깨달은 이들은 집안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바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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