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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에디온
작가 : 염적
작품등록일 : 2017.11.7

과거 중간계를 휩쓸었던 원인모를 악마들의 습격이 일단락 된지도 어느새 20년, 전쟁을 종식시키는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세 명의 인간영웅 에디온 중 가장 강력한 자인 에르세데스 메데스의 아들인 에르세데스 이안은 평화속에서 평범한 삶을 살며 20살의 성인으로 거듭난다. 처음으로 맞는 방학에 떠난 첫번째 여행. 하지만 여행도중 대륙 곳곳에서 이상현상들이 발견되고, 이안과 일행의 앞에 다시 한 번 악마들의 위협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 2장 : 전조 (1)
작성일 : 17-12-12 02:05     조회 : 207     추천 : 0     분량 : 1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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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나라, 이 게으름뱅이 자식아!”

 아침을 깨우는 명쾌한 소리다. 나는 귀를 때리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불가피하게 단잠에서 빠져나올 수 밖에는 없었다. 얕게 뜬 눈꺼풀 사이로 새하얀 커튼은 조금 열린 창문의 자그마한 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바람의 숨결에 이리저리 휘날리며 춤을 추는 보습이 보였다. 덕분에 이안은 눈앞에 하얀 빛의 무지개가 일렁이는 것같은 착각을 할 수 있었다.

 “무지개가…… 흰색이야……”

 “무슨 헛소리야…? 어서 안 일어나?!”

 또 그 사람의 목소리다. 나는 애써 반쯤 열린 눈커풀을 몽땅 열기위해 애를썼다. 덕분에 눈앞의 흰색 무지개는 사라지고 대신 천장에 매달린 커튼의 미친듯한 독무가 보여왔다. 투명한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에 간신히 다시 뜬 눈이 닫혀버렸다. 창문이 깨끗한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이렇게 햇살이 미친듯이 눈을 간지럽힐 때면 왠지모르게 저 깨끗한 유리를 잔뜩 더럽히고 싶어진다.

 “안 일어나면 여행은 취소해 버린다?”

 맞다, 여행!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이 번뜩 뜨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탄성력이 넘치는 매트리스 덕분에 몸은 트럼플린에서 튀어오르듯 일으켜졌다.

 “느느느느, 늦었나요?”

 나는 갑자기 머리를 휩쓰는 불안감에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그 앞에 서있던 레이널과 밀레는 웃음이 새어 나오는 입을 틀어 막으며 내가 펼치는 공짜 개그쇼를 만끽하고 있었다.

 “늦긴 뭘 늦냐, 어딜 갈지 말 해 주지도 않았는데.”

 밀레가 웃음을 간신히 삼키며 말했다.

 “짐 챙겨라, 이벨라로 간다.”

 이벨라? 음, 거긴 그다지 볼 것도 없는 덴데? 이벨라는 그저 드넓은 평야만 미친듯이 널려있는 있는 도시였다. 에스일라처럼 상업이 발달한 도시도 아니고 미케라벨 처럼 중앙의 역할을 수행하는 곳도 아닌 그곳으로 여행을 간다는 건…… 잠깐만. 이벨라라…… 그래. 이벨라에는 넓은 평야가 있다. 그 생각을 왜 못햇지? 덕분에 이벨라에는 로시스 상부의 운송 및 이동을 책임지는 비행장이 하나 있었다. 그렇다면 그곳으로 가는 거겠군!

 “비행장으로 가는거군요!”

 “추리력은 쓸만하구나.”

 밀레가 비꼬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닥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지금은 귀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대답 대신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세수부터 양치까지를 순식간에 마치더니 곧장 옷을 갈아입기 위해 짐을 풀었다. 짐을 푸니 구겨넣은 옷가지들이 토해져 튀어나왔다. 나는 정신 없이 땅굴을 파듯 옷을 이리저리 파헤쳤다. 전부 구겨져 엉망진창으로 주름이 져 있었다. 어떤 옷을 입던 별 상관은 없다만, 이건 좀 정도가 지나치다. 평소에 좀 예쁘게 개어서 잘 접어 놓을걸.

 나는 다행이 봐줄만한 옷을 간신히 찾아낼 수 있었다. 주름이 좀 져있었지만 그래도 멀리서 보면 티가 거의 나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고, 은은한 느낌을 주는 보랏빛 색깔도 마음에 들었다. 바지를 고르는데에는 시간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재질이 잘 접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 엉망으로 개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닥 볼품없는 모습은 아니었다. 이 정도면 상의에 비해 양반이지.

 나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마치 동물이 탈피 하듯이 잠옷을 벗고 새 옷을 허겁지겁 입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가관으로 비추어지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천천히 해라, 늦은 거 하나도 없어.”

 “늦어서 저렇게 서두르는게 아닌 것 같습니다.”

 레이널이 밀레의 말에 덧붙였다.

 “역시 정확하시네요 아저씨는. 아버지는 좀 더 눈치를 키우셔야겠어요?”

 “뭐? 이놈이 뭐라는 거야. 얼른 갈아 입기나 해라. 늦으면 두고 가 버릴 테니까. ”

 밀레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안 늦었다고 천천히 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나는 발이 빠져나오지 않아 바지 구멍에 다리를 쑤셔 넣으며 툴툴거렸다. 말을 끝내자마자 바지 구멍에서 발이 쏙 빠져나왔고 너무 힘을 세게 주고 있던 탓에 나는 뒤로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

 “어이쿠!”

 “내 저럴 줄 알았다. 멀쩡한 거 다 아니까 어서 일어나.”

 “그래 이안, 숙박 마감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어서 일어나렴. 청소부 아주머니가 오기 전엔 나가주는게 예의잖니?”

 밀레의 말에 이어 레이널이 뒷말을 덧붙였다. 그래 맞다. 여관을 이용할 때 지켜야 할 몇가지 수칙들이 있는데, 이것들을 지키지 않으면 예의없는 여행자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 중 아주 기본적인 것이 정해진 마감시간 까지는 방에서 짐을 챙겨 나가주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시계를 봤다. 오늘도 정신 없이 마라톤을 벌이고 있는 시계의 분침과 시침은 어느새 10시5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 이런, 생각보다 시간이 늦었네. 청소부 아주머니는 적어도 마감시간 5분 전에는 미리 오실터였다. 시간이 5분도 채 남지 않았다.

 “이불은 왜 이 모양이야?”

 정신없이 옷을 갈아입던 내 귀에 밀레의 황당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불? 이불이 왜…… 아! 어제 옷을 안 갈아입고 잔 게 결국은 이불을 잔뜩 더럽힌 모양이다. 정신없이 일어나느라 이불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도 못했는데, 밀레의 억양을 보아 생각보다 심한 모양이다. 젠장, 곧 용돈에서 세탁비를 제한다는 얘기가 들려오겠지. 하나, 둘, 셋.

 “세탁비는 네 용돈에서 낸다!”

 암요, 그래야죠. 제가 더럽힌건데요, 뭐. 하아, 안 그래도 적은 용돈이 이렇게 또 사라지는구나. 나는 조금은 암울해진 표정으로 소맷자락을 당겨 마저 남은 팔을 셔츠 밖으로 빼내었다. 팔목이 조금 조이는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몸이 좀 더 큰 모양이다. 분명 이 셔츠는 작년 겨울에 샀던 것 같은데, 20살이 넘어서까지 몸이 크다니. 이걸 좋아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우리는 서둘러 침을 챙겼다. 시계를 보니 54분. 1분이나 남겼다, 성공이다.

 나는 몸만한 가방을 맨 채로 정신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쿵쿵 거리는 소리가 여관 전체를 뒤덮을 기세로 울려퍼졌다.

 “천천히 좀 가라! 하나도 안 늦었다니까?”

 뒤에서 따라 내려오는 밀레의 잔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여길 나가면 뭐 다시는 볼 일도 없는 사람들로 가득인데. 게다가 밤도 아니고, 이미 해가 중천에 뜬 대낮인데 지금 좀 시끄럽게 뛰어다니는게 큰 문제가 될리 없다.

 나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일 층으로 내려왔다. 그는 쉬지 않고 출구로 쉴 새 없이 달려갔다. 열쇠는 뭐 밀레에게 있으니 알아서 잘 반납하고 오겠지.

 바깥 공기는 상쾌했다. 낮이 되니 미케라벨은 그 어떤 도시들보다 사람들로 붐볐다. 여관이 시장가 바로 앞에 위치해있던 탓에 밖으로 나오자마자 사람들 틈에서 풍겨오는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다만 그 활력이 이전처럼 폭발할 것처럼 엄청나지는 않았다. 여전히 미케라벨은 붐비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과거에 비해 허전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러고 서있니?”

 레이널이 어느새 뒤편으로 와서는 물었다. 뒤를 도니 레이널의 모습과 저 안에서 키를 반납하며 여관 주인과 무슨 얘기를 잠시 나누더니 곧 마저 따라 나오는 밀레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이불세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겠지. 젠장, 내 용돈.

 “응? 무슨 일이라도 있어? 왜 그러고들 서 있어?”

 주인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밀레가 우두커니 서 있는 나와 레이널을 보더니 물었다.

 “분위기가 좀 전이랑은 다른 것 같아서요.”

 나는 다시 뒤를 돌아 앞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확실히 미케라벨은 여전히 붐비는 곳이었지만, 그 활기는 이전에 비해서는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형편없어 보였다. 활기차게 느껴지는 까닭은 상인들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끊이질 않고 들려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로지 상인들의 목소리 뿐이었다. 사람들은 가게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제 갈길을 가느라 바빴고, 그나마 사람들이 좀 모인 상점조차도 채 3명의 손님을 받고있지 않았다. 덕분에 상인들은 거의 강매 하듯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저것 좀 보세요. 가게마다 너무 손님이 없어서 파리가 날릴 지경이에요.”

 “흠…… 네 말이 맞구나. 무언가 전과는 달라.”

 밀레가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는 팔짱을 끼고는 잠시 주변을 훑었다. 그러자 그는 몇가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건들의 가격이 전부 한참 올랐구나.”

 “네?’

 “가게들에 붙어있는 가격들이 1년 전에 비해 두 배이상 뛰었어. 저길 보렴, 제일 가까운 가게에 붙어있는 바게트의 가격표를 좀 봐 봐.”

 나의 시선은 그의 손가락에서 나온 보이지 않는 선을 따라 그대로 빵집의 바게트 가격표에 꽂혔다. 10타렌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이 보였다.

 “에에? 10타렌? 고작 바게트 세 조각에?”

 나는 까무러쳤다. 10타렌이라니! 그제 밤에 에스일라에서 묵은 여관비의 5분의 1수준이다! 저정도면 평소엔 거의 한 가구가 제대로 된 외식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인데, 고작 빵 조가리 세 개의 가격이 저렇다니?

 “그게 정말이니? 바게트 3조각이 10타렌이나 한다고?’

 레이널은 나이가 나이인지라 저 가격표가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그 사실을 자신도 확인하고 싶었는지 계속해 눈을 찡그려가면서 그 가격표를 보려고 애쓰는 것 같았지만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분명해요. 포장지 안에 든 세개의 바게트 빵 앞에 분명 10타렌이라고 적혀있다고요.”

 “그거 이상한 일이구나…… 미케라벨의 물가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레이널이 지쳤는지 찡그리기를 그만 뒀다.

 “저도요, 분명 일년 전까지만 해도 채 4타렌도 안 됐었는데…”

 밀레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그 가게를 향해 몸을 향한 채로 몸을 돌렸다.

 “물가가 갑자기 급격하게 오른 모양이다.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자꾸나.”

 밀레가 먼저 발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나와 레이널이 따라갔다. 그들은 우선 그 빵 가게로 향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가득 찼지만 가게 안은 마치 동굴 마냥 텅텅 비어있었다. 그 빈 공간을 채워주는 것은 오직 갓 구운 빵 냄새 뿐이었다. 이안은 가게 안에 들어서자마자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자동적으로 목젖이 넘어가며 침을 삼켰다.

 한데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분명 지금 쯤 되면 갓 나온 빵들로 코너들이 가득 찼어야 망정인데, 여기저기 빵이 올려져 있어야 할 곳은 텅텅 빈 채로 공기 덩어리만을 받치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침이 턱을 타고 넘쳐 흐르는 것은 면할 수 있었다.

 “저기요”

 밀레의 목소리가 닿은 저 건너편에는 가게 주인인 듯 하게 보이는 한 남자가 등받이 없는 의자에 풀이 죽은채로 앉아있었다. 그는 마치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한 표정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남자는 밀레의 목소리가 귀에 닿자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생기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런 젠장. 우린 빵을 사러온게 아닌데. 저렇게 간절한 표정을 하고 있으면 할 말이 없어지잖아.

 “여쭈어 볼 게 좀 있습니다.”

 놀랍게도 밀레는 노련하게 주인장의 그 부담스러운 눈길을 받아냈다.

 “예, 말씀만 하십쇼.”

 남자는 허리를 거의 반쯤 굽힌듯 거의 배꼽인사를 하는 듯한 동작을 취하며 밀레의 말에 대답했다. 젠장, 난 차마 보지를 못하겠다. 저러는데 어떻게 빵 한 조각 안 사고 그냥 나갈 수가 있겠어? 도대체 밀레는 어떻게 두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할 수 있는거지?

 “빵값이 1년새에 두 배이상 뛰어 올랐더군요,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지 좀 여쭈어 바도 괜찮을지요?”

 레이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가게 주인은 갑자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빵을 사러 오신건 아니군요.”

 오, 이런 저렇게 직설적으로 실망감을 보일 줄이야. 밀레는 그의 말을 듣고는 뭐라고 변명할 건덕지를 찾느라 식은땀을 삐질 삐질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주인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가격에 놀라신 모양이군요, 알겠습니다. 설명드리죠.”

 그의 말에는 힘이 실려있지 않았다. 확실히 무슨 문제가 있는 듯 하다.

 그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뱉더니 옆에 놓여있던 자그마한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그는 잠시 고요하게 바닥을 내려다보며 침묵을 지키더니 곧 고개를 들어 밀레를 쳐다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요즘 로시스 전체가 불경기입니다. 오시면서 여러 도시들을 거쳐 오셨을텐데요, 뭐 이상한 것을 느끼시진 못하셨는지요?”

 “이상한 점이라니요?”

 “여기처럼 물가가 올랐다던가……”

 “아! 맞아요!”

 가게 주인은 화들짝 놀라 하던 말을 마저 마칠 수 없었다. 내가 크게 소리를 지른 덕분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주위의 이목을 집중받아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게 져서는 입을 양 손으로 틀어막았다. 밀레는 그런 나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안……”

 “흡, 죄송해요……”

 밀레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아냐. 어디서 비슷한 상황을 본 적이 있나본데, 얘기해 봐라.”

 “아아, 예.”

 나는 얼굴에 쏠린 붉은 홍조를 다시 목 아래로 내려 보내고는 입을 틀어막은 손을 치웠다.

 “에스일라에서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여관에서 였던 것 같은데, 주인 할아버지가 발라테라스에서 수입하는 물품들의 양이 대폭 줄었다는 말을 했어요. 덕분에 거기도 꽤 힘들어진 모양이던데요.”

 내가 하는 말을 듣고는 가게 주인이 곧장 맞장구를 쳤다.

 “저 청년의 말이 맞습니다.”

 밀레와 레이널의 고개가 그에게 돌아갔다. 주변의 이목이 다시 그에게로 집중되자 그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발라테라스에서 수입하는 품목들의 수입량이 정말 엄청나게 줄어들었습니다. 혹시 왜 그렇게 된 건지도 알고 계신지요?”

 그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잠시 어물쩡거리다가 곧 그가 나를 향해 말한 것을 깨닫고는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아, 네. 제가 들은 바로는 대단한 흉년이 들었다는데. 그 원인도 제대로 알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군요.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자면 단순한 흉년이 아니라 질병이라고 합니다. 그 알 수 없는 질병이 수도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고 하는군요. 덕분에 수도 주변의 곡물과 작물들은 전부 썩어 문드러지고, 동물들도 광폭화 되어서는 주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예? 어떻게 그럴수가……”

 “광폭화를 일으킨단 말입니까? 질병이?”

 밀레의 표정이 순간 심각해졌다. 하기야 이건 좀 이상한 이야기다. 질병이 동물의 광폭화를 야기한다? 일반적으로 질병이란 동물을 나약하게 만들어 몸을 쇠약하게 하고, 때때로는 목숨을 앗아가는, 그러니까 대상의 ‘약화’ 라는 현상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광폭화라니? 그 병에 걸리면 정신이 돌아버리기라도 한다는 건가?

 “광견병과 비슷한 증상인가요?”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무역업자들 사이에 들려오는 소식 몇가지를 주워들은 게 전부인터라……”

 주인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밀레를 바라보니 그는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광폭화라는 이야기가 떠도는 이상 그것이 광견병과 다른 증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추론해 볼 수 있겠군요. 아무도 광견병에 걸린 동물을 보고 ‘광폭화’되었다고 말하지는 않으니까요.”

 주인의 눈에 조금은 놀란 듯한 기색이 드러났다. 하지만 밀레는 개의치 않은채 계속해서 자신의 추론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광견병에 감염된 숙주는 타자를 공격하거나 의도적으로 피해를 입히지 못합니다. 무작정 날뛰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말씀하셨다시피 광폭화 된 동물들로 인해 몇몇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다? 무언가 이상하군요. 아무리 작은 소규모의 마을이라고 한들 발라테라스의 수비가 그렇게 허술 하지도 않을터이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발레테라스에는 수도를 중심으로는 주위에 거의 야생동물과 맞닿을 수 있는 접점이 없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피해를 줄 수 있는 광폭화 된 동물들은 고작 말, 소, 개등의 가축들이 전부겠죠. 그런데 이것들이 한 마을을 전복시킬 정도로 강한 힘을 갖고 있느냐?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언가 다른 원인이 있다는 거겠죠.”

 밀레는 내 말을 듣고는 화들짝놀랐다.

 “아까도 그렇고, 학교에서 추론학 수업이라도 듣고 왔니?”

 허, 참! 너무하네 이거.

 “절 너무 무시하시는거 아니예요?”

 나는 밀레를 쏘아 보았다.

 “무시한다기 보다는 사실 그대로를 말하는 것 뿐이지.”

 밀레가 짓궂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 시선을 받아냈다. 젠장, 능글맞은 능구렁이같으니라고.

 “뭐라고요?!”

 “자자, 그만들 하시고 이야기를 마무리하시지요.”

 이휴, 레이널의 중재가 없었다면 아마 한 시간 내내 말씨름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으흠, 그러니까. 제 말은, 그 이야기가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래도 구전되다 보니 그 과정 중에서 말이 와전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으니까요.”

 밀레가 말을 마치자 가게 주인은 마치 얼이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 대단하신 분들이시군요, 다들. 고작 제 말 하나 듣고 그런 추리를 펼치다니. 모험가 분들이신가요?”

 “아아, 아니오. 그저 평범한 여행자들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지식의 수준이 평범하지 않으시군요.놀랐습니다.”

 “그렇다고 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밀레가 겸손하게 대답했다.

 “귀찮으셨을텐데 질문에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별 것도 아닌걸요.”

 우린 그렇게 서로에게 간단히 목례를 하고는 가게를 빠져나왔다. 밀레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곰곰하게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레이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은 나 뿐인 듯 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해요?”

 밀레는 묵묵부답이였고, 대신 레이널이 대답했다.

 “이상한 점이 몇가지 있어서 생각중이었다.”

 “이상한 점이요?’

 “우선은 저런 사실이 왜 공론화되지 않았는지. 무역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힐 정도로 큰 규모의 재해가 일어나면 그 발생원인이 철저하게 규명되어 무역 대상국에게 알려지는 것이 일반적인 일인데 왜 저 소식을 아는 사람들이 무역 상인들의 잡담을 주워들은 일반 상인들이 전부인지. 또……”

 “어째서 질병이 종과 종 사이를 뛰어넘어 무분별하게 일어나는지.”

 이번에 대답한 것은 밀레였다.

 “질병은 일반적으로 한 종에 국한되어 전염된다. 닭이 걸리는 병은 닭에게만, 소가 걸리는 병은 소에게만. 뭐 이런 식이지. 그런데 저 말을 들어보면 무언가 이상한 점이 몇가지 걸리지.”

 그래 맞다. 아까 그 가게 주인은 병에 걸린 대상들을 분명 특정한 동물의 이름이 아니라 ‘동물들’ 이라고 애매하게 규정했다.

 “물론 그저 주워들은 소식이기 때문에 그저 무역업자들이 소나 말등의 가축을 ‘동물들’ 이라 포괄적으로 지칭한 것을 이야기 했을 수도 있는 일이긴 하지. 하지만 대체로 그러는 경우는 흔치 않아. 과거에 닭이 몽땅 조류독감에 감염되어 집단 폐사했을 때에도 우리는 ‘마을의 닭들이 몽땅 죽어나가고 있다.’ 라고 말했지 ‘마을의 동물들이 몽땅 죽어나가고 있다.’ 라고 포괄적으로 대상을 언급 하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뭐, 그저 아까 그 사람이 잘못 들은 걸 수도 있고, 어쩌면 내 쓸데없는 기우일 수도 있다만…… 그래도 계속해서 걸리는 건 어쩔 수가 없군.”

 “어쩌면 상부 사람들이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아 공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 법이죠. 우선은 여기서 고민할 게 아니라 회관을 찾아가 보는게 어떻겠습니까?”

 레이널이 말했다. 음, 그런데 지금 여행을 가는 게 아니었나? 회관에는 무슨일로?

 “회관에는 무슨 일로요? 가봤자 일개 직원들은 별로 아는 것도 없을텐데. 설마 이런일로 영주님까지 불러내면서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건 아니겠죠?”

 밀레는 그런 내 말을 듣더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자신을 쳐다보는 나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마치 한심 스럽다는 표정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뭐지, 내가 또 뭐 모르는 게 있는 건가?

 “이곳이 미케라벨이라는 사실을 잊었니, 이안?”

 아, 맞다!

 밀레의 말이 맞다. 이곳은 미케라벨이다. 로시스의 중심과도 같은 곳이니 이곳에는 분명 아케도니아에 파견 된 수호의회의 사자 세명 중 한명이 머무르고 있을 터였다. 한명은 지금 내 앞에 서서 나를 답답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사람, 밀레였고, 나머지 하나는, 음. 밀레와 같은 팔레다임 중 한명인 아킬리오스일 것이고, 마지막으로 여기 미케라벨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음…… 성함은 기억이 나지를 않지만 아마 5인의 마법사 중 한 명일 것이다.

 “아, 우리가 여행간다는 사실을 알리러 가는 거군요.”

 “그래. 아무리 너를 책임지고 있는 나라도 너를 맘대로 이곳 저곳 말도 안 한 채로 돌아다닐 수는 없지 않겠니. 게다가 칼리프가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본드로 돌아가야 해.”

 “예?”

 여기까지 와서 다시 본드로 돌아가야 한다고?

 “아무래도 내 독단으로 진행할 수 있는데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건 그렇다만,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고작 한 사람이 더 동의하지 않는다고해서 다시 그 지겨운 일상을 반복해야 한다니, 그건 생각만 해도 지루해서 죽어버릴 것 같다.

 “그렇죠. 여러모로 번거롭네요.”

 “번거롭기는. 너 데리고 이 정도면 싼 편이지.”

 그렇죠. 암요. 앞장서서 싸워야 하는 영웅의 아들인데요. 그런데 지금같은 세상에서도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 거 못해가면서 까지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일까요. 좀 의심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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