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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어느 날 천사가 떨어졌다
작가 : 솜솜
작품등록일 : 2017.12.7

[빙의물]
의료봉사 중 갑자기 사고를 당해, 이상한 세상에서 눈을 뜬 세진.
다짜고짜 자신을 덮치려는 남자에게서 무작정 도망쳐 나와 숲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러는 도중 수상한 사람들에게 쫓기던 남자를 구해주게 되는데.......
점차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는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무도회
작성일 : 17-12-12 00:42     조회 : 304     추천 : 0     분량 : 4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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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은 없고... 초점도 정상이고, 맥박도....... 이상 없네요.”

  체온 역시 어제처럼 이상할 정도로 낮지도 않다.

  “이제 괜찮아지신 것 같아요.”

  “정말요!!”

  여자가 또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혹시 왜 아프셨던 건지 알고 계신가요? 이상한 음식을 먹었다거나.......”

  “그, 그게!!”

  내 질문에 여자가 갑자기 크게 당황했다.

  “말해.”

  렌케가 갑자기 한발 짝 다가서며 위협적으로 내뱉었다.

  “그, 그것이...!”

  여자가 사시나무 떨 듯 덜덜 떨었다.

  “목숨은 보장하지.”

  “흑.......”

  여자가 두려운 듯 눈물을 흘리다가 겨우겨우 말을 꺼냈다.

  “저, 전 저 돌에 끊임없이 빌면 제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을 믿었어요!”

  “돌? 아직도 갖고 있나?”

  “예, 예. 여기.......”

  렌케의 물음에 여자가 비척비척 일어나 베개 밑에서 무언가를 가져왔다.

  여가가 내민 건 반으로 금이 쩍 가있는 작고 검은 돌이었다. 얼핏 보면 평범한 돌이지만, 자세히 보면 결코 모를 수 없을 정도로 돌에서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윽.”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아프다.

  사실 어제 이 집에 왔을 때도 두통이 있었는데 딱히 이 돌 때문에 그랬던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또 똑같은 느낌이 드니 뭔가 이 돌이 내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어디서 났지?”

  렌케가 돌을 날카롭게 살피곤 여자에게 물었다.

  “어, 어떤 남자가 제게 주었어요.”

  “남자? 인상착의는?”

  “그냥 무척 평범하게 생긴 남자였어요.”

  렌케의 취재는 얼마동안 더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페터의 집에서 나왔을 때 렌케는 돌을 받아서 나왔다. 렌케는 페터 모자에게도 절대 누구에게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뭔진 모르겠지만 표정을 보니 꽤나 심각한 일인 것 같았다.

  그길로 렌케를 따라 다시 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상한 돌에 대해 생각해볼 틈도 없이 날 본 소냐가 곧바로 내게 달려들었다.

  “빨리 오세요! 시간이 없어요! 저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사벨님께 혼나요!!”

  “뭐, 뭘요?!”

  “아, 설명해드릴 틈도 없어요!”

  소냐의 명령에 따라 두 번이나 목욕을 하고 얼굴 마사지를 받았다. 꽉 조이고 불편한 옷을 속옷부터 시작해 몇 겹이나 겹쳐서 입었다. 거기에 레이스와 보석이 치렁치렁하게 달린 드레스까지 입으니 너무 답답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소냐는 날 화장대에 앉혀놓고 한참 동안이나 내 머리를 매만졌다. 완성되는 데에는 아주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 끝난 건가요?”

  “네. 머리는요.”

  “네?”

  “이제 화장하셔야죠.”

  “아.......”

  ‘아직도 끝난 게 아니라니!! 머리만 두 시간은 걸린 것 같은데!!’

  당장 이 갑갑한 옷을 벗어버리고 그냥 대충 가겠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소냐가 이사벨에게 혼난다는 소리가 날 고분고분하게 만들었다.

  화장까지 모두 마치고 나니 등이 뻐근하고, 허리도 아프고 배도 고팠다.

  “저... 저녁은요.......?”

  “안 돼요. 지금 코르셋 때문에 못 드세요.”

  “.......”

  소냐가 즉각 단호하게 말했다.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대체 무도회가 뭐길래, 누구 좋으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된단 말인가.

  배고프고 힘들 바엔 차라리 안 가고 싶었다.

  “특별히 두 분을 위한 무도회인지라 황제폐하께서도 참여하신다고 들었어요. 정말 멋진 기회에요. 라일라님!”

  가기 싫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날 마저 꾸며주던 소냐가 축하한다는 듯 얘기했다.

  덕분에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황제가 꼭 참여하라고 했던 걸.......

  ‘으아아아!’

  내가 진짜 두 번은 안 간다.

  하고 마음속으로 다짐 또 다짐했다.

  이제 진짜로 다 한 것 같은데 뭘 그렇게 점검할 게 많은지 소냐는 날 확인하고 또 하고, 또 하고 했다.

  그때 들려온 노크소리는 정말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라일라님! 각하께서 오셨나 봐요! 분명 라일라님이 너무 아름다우셔서 깜짝 놀라실 거예요!!”

  “네.......”

  거울을 보면 예뻐졌다는 건 알겠는데 원래 꾸미는 데 별로 관심이 없어서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무엇보다 배가 고파서 대답할 힘도 없었다.

  “각하가 기다리시니 그럼 일어나 보실래요?”

  “네, 네.”

  내 발뒤꿈치를 뚫어버릴 것 같은 하이힐을 힘겹게 움직이며 문으로 다가갔다.

  소냐가 문을 열었다.

  “!!”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렌케를 보고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도 워낙 깔끔하게 하고 다니는 편이긴 했지만 옷이 날개라는 게 정말 거짓말이 아닌지 진짜 수트 빨이 장난이 아니었다.

  흰 셔츠에 금실로 수가 놓아진 깔끔한 검은 연미복은 렌케를 더욱 절제되고 샤프해 보이게 했다.

  그의 흰 피부가 검은 정장과 대비를 이뤄 금욕적인 느낌까지 주었다.

  “두 분, 늦으시겠어요.”

  소냐의 공손한 말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가지.”

  날 빤히 쳐다보던 렌케도 그제야 얘기했다.

  얼떨떨하여 렌케가 내 쪽으로 내미는 팔에 손을 살짝 얹었다.

  항상 내가 하는 일에 미쳐서 살았기 때문에 남자고 뭐고 관심이 간 적이 없었고 렌케만큼 잘생긴 사람도 이세진으로 살았을 때는 본 적이 없었다.

  하이힐을 신었는데도 올려다 보아야하는 옆모습을 슬쩍 바라봤다. 코 끝에 렌케의 시원한 향수냄새가 스쳤다.

  심장이 옅게 두근거리는 듯했다.

  아주 어릴 때 옆집 오빠에게 느껴본 이후로 굉장히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지만 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내려.”

  마차에서 먼저 내린 렌케가 손바닥이 보이게 손을 내밀었다.

  날 빤히 쳐다보는 그 눈빛에 이상하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예전 같았으면 훌쩍 뛰어내렸겠지만 옷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을 뿐더러 무엇보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드레스 자락을 잡고 조심조심 움직여 나머지 한 손을 렌케의 손 위에 살짝 얹었다.

  장갑을 끼고 있어서 맨 살이 닿지는 않았지만 얇은 천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닿은 렌케의 손의 촉감이 어떤 때보다도 섬세하게 느껴졌다.

  신경이 죄다 그쪽으로만 몰린 느낌이었다.

  렌케가 내 손을 꽉 잡았다.

  “!”

  놀라 렌케를 쳐다보는 사이 그가 날 마차에서 내리도록 도와주었다.

  렌케가 손을 놓지 않고 그대로 몇 걸음을 걸었다.

  “렌케...?”

  걸을 때 예절은 팔에 손을 얹는 거라고 배웠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렌케가 그제야 손을 풀어 그의 팔에 내 손을 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

  심장이 간질간질하다. 그의 팔에 닿아있는 내 손이 뜨거웠다.

 *

  “렌케이지 에렌 드 헤레이스 각하와 라일라 양 드십니다!”

  부드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던 의리의리한 무도회장 입구에 들어서니 입구에 서 있던 사람이 크게 외쳤다.

  음악이 뚝 멈췄다. 렌케가 이끄는 대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지만 사방에서 우리를 주목하고 있는 그 시선들이 확연히 느껴져 당황스러웠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갈 때 무언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지만 정신이 없어서 뭔 말인지는 듣지 못했다.

  “폐하.”

  렌케가 카펫 위를 걸어 그대로 앞으로 쭉 나아가 어떤 지점에서 허리를 숙였다.

  놀라서 보니 높은 의자 위에 황제와 황후가 앉아 있었다.

  나도 얼른 렌케를 따라 예법에 맞게 인사를 올렸다.

  “하하! 아름다운 한 쌍이로구나. 헤레이스 경. 초대에 응해주어서 고맙네.”

  공적인 자리여서 그런지, 황제는 렌케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나저나 렌케의 풀 네임이 렌케이지 에렌 드 헤레이스였구나.

  이런데서 처음으로 이름을 제대로 알게 되다니....... 렌케에 대해 정말 아는 게 없는 것 같아 기분이 저조해졌다.

  ‘렌케이지 에렌 드 헤레이스.’

  ‘렌케이지 에렌 드 헤레이스.’

  황제의 인사말이 끝날 때까지 속으로 렌케의 풀 네임을 되뇌었다.

  “이리와.”

  “아, 응.”

  얼른 렌케의 팔에 다시 손을 올리고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저쪽으로 가면 안 돼? 먹을 거 있다. 배고파 죽겠어.”

  눈에 음식이 걸리자마자 우아하게 있으려고 했던 것도 잊고 음식이 있는 방향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렌케가 테이블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화려하게 차려진 음식들을 보니 침이 고이다 못해 줄줄 흐를 것 같았다.

  하지만 소냐가 경고했던, 음식다운 음식을 왕창 먹었다간 내장까지 조이고 있는 코르셋이 음식을 다 게워내게 할 거라는 말을 무시할 수는 없어 눈물을 머금고 간단한 쿠키 같은 것들만 골라 담았다.

  “몸이 안 좋은가?”

  음식을 다 담고 테이블로 가려는데 렌케가 뜬금없이 물어왔다.

  “아니? 왜?”

  “근데 왜 그거밖에 안 먹지?”

  “........ 속옷이 조여서.”

  “....... 그렇군.”

  서로 민망하여 침묵 후에 대답했다.

  렌케랑 밥을 먹은 횟수가 다섯 번도 안 되는 것 같은데 내가 그렇게 많이 먹었나?

  누구랑 먹든 항상 별 생각 없이 평소처럼 먹었으므로 기억이 잘 안 났다.

  하지만 왠지 앞으로는 렌케와 밥을 먹을 때 내가 먹는 양이 신경 쓰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먹기 편한 핑거 푸드로 허기를 달래니 그제야 좀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악사들이 연주하는 왈츠에 맞춰 한 두 쌍이 중앙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대부분은 삼삼오오 뭉쳐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시선이 나와 렌케에게 향해 있다는 건 바보라도 느낄 수 있었다.

  “더 먹을 건가?”

  “아니.”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하니 절로 밥맛이 떨어졌다.

  ‘왜들 저렇게 쳐다보는 거야?’

  불편했다.

  주변을 힐끔힐끔 살피고 있는데 렌케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왔다. 뭐 하나는 건가 싶어 쳐다보니 렌케가 쓱 손을 내밀었다.

  렌케와 렌케가 내민 손을 번갈아 쳐다보다 잡으라는 뜻인 것 같아 손을 잡고 일어났다.

  “춤 배웠지?”

  렌케가 날 이끌고 중앙으로 향하며 물어왔다.

  “응.”

  “한 곡 추지 그럼.”

  ‘아. 춤추자는 뜻이었구나.’

  렌케가 손을 내밀었던 의미를 이해하고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노래가 끝나고 악사들이 새 곡을 연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가 중앙으로 오니 아무도 춤을 추기 위해 나오지 않았다.

  아까 쿠키를 먹을 때보다도 훨씬 더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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