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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픽미! 허그미! 키스미!
작가 : 하다온
작품등록일 : 2017.11.16

가수지망생 하린은 도망친 그(그놈?)가 돌아올때까지 슈퍼스타 도현에게 사로 잡히게 된다. 그런데 오히려 하린에게 마음을 사로 잡히게 된 도현은 하린을 놓아주려 하질 않는데. 알콩달콩 사랑의 하모니를 쌓아가는 하린과 도현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31. 나는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사랑해.
작성일 : 17-12-11 20:22     조회 : 256     추천 : 0     분량 : 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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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나는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사랑해.

 

 

 예상했던 것보다 힘들었다. 긴장이 기색이 역력한, 한없이 연약해 보이는 그녀를 누워서 바라보는 것은.

 

 추가된 콘티를 받고 도현은 만감이 교차했다. 앨범 컨셉을 강하게 나가자고 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고 각오도 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선 최선이니 어쩔 수 없다는 체념도 있었다.

 

 그렇지만 박하린과?

 

 난감했다. 어찌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긴장은 되지만 화가 나지 않았다. 신경이 날카로웠지만 은근한 설레임이 깔려있었다. 그의 주변 공기는 겨울이 아니라 봄이었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도현은 촬영이 시작되기까지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어렴풋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답이 안개 속에 뭉뚱그려져 있었다. 그러다 촬영이 시작되었고, 자연스레 그는 알게 되었다.

 

 그에게 입술을 내리는 하린을 보면서 하린은 괜찮다는 것을, 아니 하린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하린과의 키스를 기다렸다는 것을.

 

 “괜찮아?”

 

 한 번의 실수로 많이 위축되어 도현 옆에 앉아 있는 하린을 비껴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물에 젖은 나비처럼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물방울을 털어낼 생각도, 날아갈 준비도 하지 못했다.

 

 “박하린?”

 

 그의 목소리에 그녀가 그녀를 지켜보는 수많은 이들을 지우고 오로지 그만 담았다.

 

 “괜찮아요.”

 

 하린이 꿀꺽 침을 삼켰다. 그녀의 목이 움찔거리는 모습을 도현의 시선이 따라갔다가 다시 그녀의 눈으로 올라왔다.

 

 하린이 어설프게 다시 그의 위로 자리를 잡았다.

 

 그에게선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의 긴장도 보이지 않았다. 담담함의 의미를 몸소 실천하며 하린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하린의 예상대로 그에겐 키스신 따위는 익숙한 듯했다.

 

 ‘저 남잔 멀쩡한데 왜 나만 떨리는 거야!!!’

 

 하린이 격한 심호흡을 했다. 가슴이 눈에 띄게 부풀어 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린이 준비가 된 듯 하자 감독이 ‘액션’을 외쳤다.

 

 “액션!”

 

 하린은 서서히 눈을 감고 다시 도현에게 입술을 내렸다. 이번엔 눈을 꾹 감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래 잘 하고 있어! 만족스러움에 하린의 입가에 미소가 걸릴 찰나, 무언가 닿았다. 생각보다 금방.

 

 ‘응? 이렇게 빨리?’

 

 무언가 이상함을 직감한 하린의 눈이 떠졌다. 도현과 눈이 마주쳤다. 도현의 눈이 둥글게 휘어졌다. 웃어? 그녀는 도현의 코에 뽀뽀를 하고 있었다. 젠장!

 

 “NG!!!”

 

 감독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아니, 하린 씨! 키스 처음 해 봐? 입술이 어딘지까지 알려줘야 해?!”

 

 생각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자 감독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치고 생각보다 자연스러운 하린의 연기는 감독의 기대치를 상승시킨 꼴이라, 이제와 키스신 가지고 쩔쩔매는 하린이 감독은 못내 답답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린이 또다시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앉았다. 감독에게, 스태프들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젠장.’

 

 도현은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감독 입장에서는 답답한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화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 숙련도가 부족한 아마추어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이리도 하린의 위축된 모습을 보기 힘겨운 건지. 너무나 안쓰러운 모습에 기운이 나게 격려라도 해주고 싶지만 이곳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감독님, 잠깐만 상의 좀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도현은 울화를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의할 건, 우선 얼굴을 맞대고 생각해 보는 걸로 하자.

 

 “그래, 잠깐 쉬자. 하린 씨도 쉬면서 좀 정신 차리고!”

 

 감독이 물을 한 잔 들이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린에게 단단히 일러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네.”

 

 하린은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사라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았다. 하린의 굳은 표정이 더 딱딱해졌다.

 

 ‘다리 저려.’

 

 무릎을 꿇은 다리가 아파 왔다. 겨우 2주간 하고 있었던 깁스였지만 다리가 많이 약해진 상태라 고려치 못한 게 잘못인 듯 했다. 하린은 계속 침대에 앉아있기도 뭐해 화장실로 향했다.

 

 “하아.”

 

 고급 호텔답게 화장실도 엄청나게 화려했다. 욕조는 드러누워 자도 될 만큼 컸고, 바닥은 얼마나 반짝이는지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하면 바로 뇌진탕으로 세상을 하직할 것 같았다.

 

 “내 방보다 넓네.”

 

 하린이 어쩔 수 없이 쫓겨났던 코딱지만한 전세방보다 더 큰 화장실이라니, 세상 참 불공평하다.

 

 하린은 세면대에 손을 받치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장식이 화려한 거울에 비친 그에 못지않게 화려한 여자가 보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초라해 보이니?”

 

 하린은 완벽하게 세팅된 머리를 뒤로 넘겼다. 물결치듯 어깨 뒤로 넘어가는 머리카락이 푸석해보였다.

 

 어깨를 훤히 드러낸 오프숄더의 상의는 무척 추워보였다. 짧은 치마의 길이는 섹시한 게 아니라 저렴해 보였다.

 

 눈은 새빨갛게 충혈 되어 있고 붙인 속눈썹에 짙은 마스카라는 금방이라도 번져서 판다 눈을 만들 것 같았다.

 

 하린을 눈을 감았다 떴다. 여전히 거울 속에는 짙은 패배감으로 둘러싸인 어두운 여자가 보였다.

 

 “못 났다.”

 

 파이팅 넘치던 박하린이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수많은 오디션에 떨어져서도 살아남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던 박하린은 어디로 간 거야!

 

 “이런 기회, 아무나 못 얻어.”

 

 피처링만으로도 감지덕지한 마당에 기대도 안한 뮤직 비디오의 주인공까지 되었다. 황금 같은 기회다.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다시 언제 이런 기회가 올 지 아무도 모른다. 다시 오기나 하련지.

 

 “그런데 나 지금 화장실에서 덜덜 떨고 있는 거야? 패잔병처럼?”

 

 마주보는 자신은 여전히 자신이 없어보였다. 하린은 이를 악물었다. 강해져야했다. 도현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응원하고 있을 강훈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잘 해내야만 해.”

 

 하린을 다그치는 감독이 무서운 게 아니었다. 제대로 해내지 못한 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으로 일어서지 못할 자신이 두려웠다.

 

 “이 기회를 살려야 해.”

 

 하린의 꿈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스타인 가수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이것은 위기가 아니라 시작이었다. 시작부터 사소한 어려움으로 이 모든 걸 무로 되돌릴 순 없었다.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하린이 다시 가슴을 활짝 피고 빙긋이 웃어보였다. 미소 하나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생기가 돌았다. 자신감은 그녀의 온 몸을 감싸며 빛을 냈다.

 

 하린은 손을 닦으며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화장실을 나섰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어? 기다렸어요?”

 

 문 앞에 도현이 기대서 있었다.

 

 마음을 다잡는다고 화장실을 너무 독점적으로 썼나보다. 다른 사람의 생리현상을 고려하지 못해 미안해요.

 

 하린은 옆으로 살짝 물러났다. 그는 하린의 얼굴을 면밀히 살펴볼 뿐, 화장실로 들어가지 않았다.

 

 “변비야?”

 

 “아니에요!”

 

 하린의 목소리가 커졌다.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무슨 일인가 몇몇이 쳐다보았다. 하린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변비가 창피한 일은 아니야. 물을 많이 마시면 돼.”

 

 “아니라고요.”

 

 하린이 고개를 숙이고 이를 악물고 이야기했다. 다행히도 더 이상 하린 쪽을 쳐다보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진지하게 놀리지 마요. 물은 원래 자주 마셔요.”

 

 하린은 본인이 변비든 아니든, 이런 주제로 도현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영 불편했다. 어쨌든, 변비 같은 건 개인의 내밀한 프라이버시 아닌가. 당연히 보호해줘야지!

 

 “그럼 화장실에서 뭐했어?”

 

 “화장실에서 하긴 뭘 해요.”

 

 이 인간이 화장실에서 뭘 한 건 왜 이렇게 물어봐. 하린은 그를 지나쳐 가려고 해도 그가 끈질기게 그녀를 붙잡고 말을 시키고 있었다. 손끝 하나, 털끝 하나 붙잡혀 있지 않았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 변- 비?”

 

 “그냥! 손 좀 씻었어요.”

 

 “그으래?”

 

 “사람 말 좀 믿고 살죠. 화장실이나 가세요.”

 

 하린은 한 발짝 더 물러났다.

 

 “나 화장실 가려고 온 거 아닌데?”

 

 도현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긴 다리를 휘적휘적 움직여 촬영장소인 방으로 들어갔다.

 

 “뭐야?”

 

 그의 뒷모습을 황당하게 쳐다보다 어제 축가자 대기실이 순간 겹쳐졌다. 그녀에게 물을 건네고, 맥주 맛이라는 농담으로 하린을 웃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만의 위로방식이었다는 건 서서히 알게 되었다.

 

 바로 지금처럼.

 

 내가 걱정이 되었을까? 화장실에서 혹여 울기라도 했을까봐?

 

 하린은 심장 한 가운데서 퍼져나가는 온기를 느꼈다. 그의 의도대로 긴장은 약간 누그러졌지만, 또 다른 긴장이 몸속에 피어올랐다. 하린은 뜨거워지는 양 볼을 차가운 두 손으로 감쌌다.

 

 “자, 다시 시작합니다.”

 

 촬영이 재개되었다. 하린은 또다시 그 민망스러운 자세로 도현의 위에 자리를 잡았다. 하린과 도현은 다리 하나씩 교차되어 있는 상태였다.

 

 화장실에서 그렇게 다짐하고 정신을 차리자했건만 어찌, 다시 도현을 보니, 그러니까 자신의 아래에 누워있는 도현을 보자니 급격히 심장은 난리법석이었다. 처음엔 미디엄템포에서 시작하더니 바로 업템포로 넘어가고 있었다.

 

 하린은 뛰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촬영 전, 두 명의 스태프가 각기 붙어서 마지막으로 화장을 정리하고 헤어를 정리했다.

 

 “씬 넘버 45.”

 

 슬레이트를 내리고 감독이 액션을 외치려는 찰나, 넘겨져 있던 하린의 머리가 내려와 하린의 얼굴을 가렸다.

 

 “하린 씨, 머리!”

 

 스태프가 작게 말하며 지적했다. 신경이 곤두선 하린이 머리를 제대로 매만지기도 전에 도현이 그녀의 머리칼에 손을 대었다. 화면에 그녀의 얼굴이 제대로 나오도록 어깨 뒤로 다시 정갈하게 넘겨주었다.

 

 하린은 그가 손을 대자 숨을 멈췄다가 멀어지고 나서야 숨을 토해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도현의 스태프들 또한 같이 숨을 멈췄다가, 경악에 찬 눈짓들을 했다.

 

 스타일리스트가 도현의 머리를 만지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이 남의 머리를, 그것도 여자의 머리를 만지다니 놀라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주변의 시선도 눈치 채지 못한 채 도현과 하린은 서로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칠칠맞기는.”

 

 “내가 하려고 했어요!”

 

 “어련 하려고.”

 

 하린이 작게 으르렁거렸다. 그녀의 움직임에 다시 머리칼이 내려오자 그가 다시 쓸어 넘겨주었다. 그의 다정한 손길에 하린의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아까 화장실에서부터 갑자기 왜 이렇게 친절해졌어요? 당신답지 않게.

 

 “카메라가 이쪽이니까 얼굴을 조금 틀어야 해. 머리카락이 내려오면 NG가 나니까.”

 “네, 알겠어요.”

 

 머리카락이 정돈된 하린은 아름다웠지만 딱딱했다. 얼음으로 만든 공주처럼 차갑고 다가가기 어려웠다.

 

 ‘긴장 했군.’

 

 도현도 긴장감으로 차 있는데, 첫 연기 데뷔에 키스신을 긴장감 없이 해내는 게 더 이상할 것이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박하린을 사랑해.”

 

 도현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에?”

 

 하린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입에 물이라도 있었더라면 바로 뿜었을 것이다. 도대체 이 남자가 뭐라고 하는 거야? 나, 나를 사랑한다고?

 

 “박하린 밖에 보이지 않아.”

 

 장난이라고 하기엔 도현의 눈빛이 너무나 진지했다. 그의 눈빛 안에 하린이 갇혀버렸다. 움직일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오로지 그의 눈을 바라보는 것만이 하린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의 말이 하린을 일깨웠다. 이 순간만큼은 하린도 강도현을 사랑해야 했다. 잠깐이면 풀릴 마법일지라도 그 마법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야 했다.

 

 ‘나는 강도현을 사랑해.’

 

 하린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이것은 연기가 아니다. 나는 정말로 그를 사랑한다.

 

 “그리고 지금은 키스하고 싶어.”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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