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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사장님이 보고 있다!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2.9

시각장애인 사장님께 경제 신문을 읽어주는 개인비서 한지현.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야. 25살 넘어가면 안 필린 다니깐."
남성우월주의자 할머니는 마음대로 그녀의 배우자 모집 광고를 신문에 내버린다. 꼼짝없이 할머니가 소개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했던 지현. 평소에는 단 한 차례도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 없었던 사장님이 신문에 실린 광고를 봤다면서 지현에게 청혼한다.
"이 배우자 모집 광고에 내가 지원하고 싶습니다.“
사장님, 정말 진심이십니까?
habilis21@naver.com

 
사장님이 보고 있다! 2화
작성일 : 17-12-11 19:13     조회 : 234     추천 : 0     분량 : 8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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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언제까지 안 보이는 척 연기할 생각이야?

 

 

 여러 가지 상념에 사로잡힌 채 힘없이 다세대 빌라로 들어선 지현은 지하층으로 내려가 잠금장치를 열었다.

 

 삐.

 

 반지하 방이라서 방은 좁고 현관문은 아귀가 잘 맞지 않아 여는 것도 힘들었지만, 대궐 같은 본가에 사는 것보다 여기가 마음은 훨씬 편했다.

 

 샤워를 끝내고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싼 지현은 냉장고에 있는 캔맥주를 꺼냈다. 맥주를 마시면서 시선은 TV에 고정했지만, 드라마 내용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잊으려고 했지만, 지현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져 있었다.

 

  ㅡ 이 배우자 모집 광고에 내가 지원하고 싶습니다.

 

 지현은 배우자 모집 광고에 지원하고 싶다는 사장님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궁금했다. 혹시 결혼을 조건으로 내게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것이 아닐까.

 

  - 나랑 계약 결혼할래요?

 

 그래, 저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계약 결혼 내지는 정략결혼. 하지만 그게 아니라 그 말이 사장님의 진심이라면…….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생각하지 말고 닭발이나 시키자.“

 

 고개를 내저은 지현은 코트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핸드폰을 꺼냈다. 지현은 저녁을 배달시키기 위해 전단을 유심히 살폈다. 비스듬하게 누운 지현이 전단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는데 갑자기 벨 소리가 크게 울렸다.

 

 Rrrrr

 

 갑자기 울리는 벨 소리에 지현은 놀라서 움찔거렸다. 화면에 '엄마'라고 뜨는 걸 보고 지현은 전화를 받았다.

 

  "엄마.“

 

  - 지현아, 밥은 먹었니?

 

  "네, 지금 먹으려고요.“

 

  - 또 배달 음식 같은 거 시켜먹는 거 아니지?

 

  "네? 아니에요.“

 

 어머니의 예리한 질문에 찔렸던 지현은 보이는 화상 전화도 아닌데 들고 있던 전단을 반으로 접었다.

 

  "엄마, 그런데 늦은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어머니의 전화를 받으면서 지현은 몸을 일으켜서 앉았다.

 

  - ……어휴.

 

 한숨 소리 한 번에 어머니의 의중을 파악한 지현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어머니의 심정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알고 계셨던 거예요?“

 

  - 아니야, 지현아. 설마 내가 그럴 리가 있겠니.

 

 안 그러려고 했지만, 저도 모르게 날이 선 목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 엄마도 3일 전부터 예약 손님 받느라 바빠서 지금 알았어.

 

 전화기로 들리는 엄마의 음성에 힘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지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 내가 괜히 늦은 밤에 전화를 걸었구나. 내일 아침에 걸었어야 하는 건데.

 

  "아뇨, 괜찮아요. 엄마.“

 

  - 지금 자고 있었던 거 아니지?

 

  "네, 그럼요. 아직 초저녁인데요.“

 

 평소보다 가라앉고 쉬어있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지현의 표정에 그늘이 드리웠다. 지금 방금 예약 손님 접대를 마쳤다고 했으니 엄마의 목이 쉰 것은 당연했다. 할머니와 엄마가 경영하는 한식집 무궁화는 순정효황후 윤 씨의 육안동 생가를 개조해서 만든 곳이었다. 국빈과 재벌들의 접대 장소 중 하나였던 무궁화는 보통 예약 손님이 하루에 100명이 넘었다.

 

  - 요즘 정신이 없이 바빠서 할머니가 그런 광고를 낸 줄 오늘에야 알았단다.

 

  "괜찮아요. 엄마. 설마 그걸 보고 전화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지현은 일부러 쾌활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스피커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 그게 말이다. 지현아. 사실 엄마가 오늘 할머니 방에서 배우자 모집 광고에 연락한 사람들의 리스트를 발견했어.

 

  "네?"

 

 광고를 낸 지 3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연락한 사람이 꽤 있는 모양이었다.

 

  "…….“

 

  - …….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어머니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 지현아, 너도 혹시 생각은 좀 해봤니?

 

  "네? 무슨 생각이요?“

 

  - 할머니가 적어 두신 리스트에 있는 남자들이랑 만날 생각이 있나 싶어서.

 

  "아니요, 절대 없어요. 저는 지금 제가 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어요.“

 

 지현은 펄쩍 뛰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애초에 결혼할 생각도 없는데 제가 왜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나야 해요?”

 

  - 그렇지? 응, 그래. 나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어.

 

  "엄마, 한 가지 여쭈어볼 게 있어요.“

 

  - 응, 그래. 해보렴.

 

  "할머니는 정말로 저를 그 사람 중 한 명에게 시집보내실 생각이신 거예요?“

 

 들려오는 대답이 없는 걸 보니 할머니가 이런 식으로 자신을 결혼시키려는 것이 정말 실화인 모양이었다.

 

  "엄마, 그건 정말 말도 안 돼요.“

 

 지현은 말을 잠시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저는 당분간 결혼할 생각도 없고 마음도 없어요. 제 나이가 아직 스물여덟인데 결혼은 무슨 결혼이에요.“

 

  - 그럼, 지현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요즘 서른 살 넘어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수두룩 한데 스물여덟이면 너무 빠르지.

 

  "네, 맞아요.“

 

  - 그런데 지현아, 너 혹시 지금 남자친구 있니?

 

 지현은 순간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남자친구가 없으면 리스트에 적힌 남자들과 억지로 선을 보게 해서라도 결혼을 시키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지금 남자친구는 없어요. 왜요?“

 

  - 으응……. 그…… 그냥 있는지 없는지 물어본 거야.

 

 지현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 괜찮아. 지현아. 아버지가 할머니께 잘 말씀드리면 될 거야.

 

  "네, 잘 좀 말씀해 주세요.“

 

  - 그것도 아니면 내가 할머니께 잘 말씀드려 볼게. 엄마는 절대 너 그런 식으로 시집 안 보낼 거니까 걱정하지 마.

 

  "네, 믿을게요.“

 

  - 알았다. 그럼 밤늦었으니까 푹 쉬렴.

 

  "네, 엄마도 안녕히 주무세요.“

 

  - 그래, 그럼 잘자…….

 

 뚝.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지만, 지현은 그대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지현은 꺼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꺼내 마셨지만 답답한 속은 시원해지지 않았다.

 

 

 

 ***

 

 

 

  "좋은 아침입니다."

 

  "네, 사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한 비서, 어서 앉아요.“

 

 사장님이 손을 뻗어 앞자리를 가리키자 지현은 맞은편에 마주 앉았다. 테이블 하나를 두고 사장님과 단둘이 앉아있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으나 오늘은 무척 어색하게 느껴졌다. 지현이 일하는 사장님의 집무실 한쪽에는 각종 경제 서적들이 꽂혀있는 책장이 있었고 중앙에는 그가 업무를 보는 책상이 있었다. 창가에 있는 자그마한 테이블 하나를 앞에 두고 사장님과 지현은 마주 보고 앉았다. 어색한 침묵을 견디기 힘들었던 지현은 바로 신문을 펼쳤다.

 

  “그러니까 오늘 자 신문 1면에는…….”

 

  "아침은 먹었습니까?“

 

  "네?“

 

  "아침 안 먹었으면 도우미에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라도 만들어 달라고 할까요?“

 

  "아니, 괜찮습니다. 아침 먹고 왔습니다.“

 

 평소엔 사적인 질문을 하는 일이 없었던 사장님이 아침을 먹었냐고 물어보자 지현은 크게 당황했다. 사실 오늘 늦게 일어나서 아침을 먹지 못했던 지현은 샌드위치라는 말에 입에 자연스럽게 침이 고였지만, 딱딱한 분위기에서 사장님과 마주 앉아 먹는 것보단 굶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사장님은요? 사장님은 아침 드셨어요?“

 

  "네, 난 먹었습니다.“

 

 지현은 신문을 만지며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 해도 되겠습니까?“

 

 똑바로 응시한 사장님의 얼굴은 햇빛 아래에서 조각처럼 빛나고 있었다. 햇빛으로 인해 높은 콧대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사장님의 얼굴이 정말 다비드상처럼 보였다.

 

  "오늘 자 경제 신문입니다. 요즘 기업들이 넛지 이론을 활용한 마케팅 전략을 이용해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잠깐, 넛지 이론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봐요.“

 

  "네, 알겠습니다.“

 

 타닥타닥.

 

  "넛지 이론'이란 심리학과 연계시킨 경제이론으로 합리적 정보보다는 직감으로 선택하는 인간의 행동을 설명한 이론입니다. 이를 활용한 마케팅 전략으로는…….“

 

 지현은 재빨리 사장님의 지시에 따라 인터넷을 검색했고 나온 결과를 차분히 읽어내려갔다. 지현은 경제 신문 말고도 보고서 또는 경제 서적을 읽어주면서 사장님의 눈이 되어주었다. 이는 목소리만 좋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전반에 대한 배경지식이 꼭 필요한 일이었다.

 

  "한 비서가 오늘 나를 조금 불편해하는 것 같군요.“

 

 신문을 다음 장으로 넘기던 지현이 우뚝 동작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혹시 내가 어제 한 말 때문에 그러는 겁니까?“

 

  "네?“

 

  "오늘 나를 대하는 한 비서의 태도가 조금 어색한 것 같아서요.“

 

  “…….”

 

  "부담스럽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한 비서의 사장이라고 하더라도 배우자 모집 광고에 연락한 사람과 똑같이 경쟁할 준비가 되어있으니까요.“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요?“

 

  "그러니까 전 사장님이 왜 제 배우자 모집 광고에 지원하고 싶어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고개를 아래를 내리고 있던 사장님이 지현을 향해 얼굴을 들자 살아있는 조각상이 눈앞에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한 손으로 턱 주변을 문지르던 사장님이 말문을 열었다.

 

  "이런 얘기, 이해 안 갈 수도 있지만.“

 

 사장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처음부터 한 비서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고? 내가?

 

 사장님의 뜬금없는 고백에 놀란 지현의 볼이 발그레해졌다.

 

  "왜 저를 마음에 들어 하신 거죠?“

 

 사장님은 지현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천천히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로 두 손을 깍지 꼈다.

 

  "글쎄요, 왜 한 비서였을까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지현이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우연히 한 비서의 배우자 모집 광고를 보고 빨리 연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 전에는 나도 한 비서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물론 예전부터 예쁘다고는 생각했었지만.“

 

  “예쁘다고요? 제, 제가요?”

 

 사장님의 솔직한 답변에 뺨이 붉게 달아오른 지현은 손으로 부채질을 하다가 멈칫했다.

 

 잠깐, 사장님은 시각장애인인데 신문에서 광고를 봤다고? 처음부터 내가 예쁘다고 생각했다고?

 

 지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사장님에게 물었다.

 

  “사장님 근데 제가 예쁜 건 어떻게 아셨죠?”

 

  “네? 아, 그게 들었습니다. 처음 한 비서가 이곳에 온 날 내 운전기사도 그렇고, 활동 보조인도 그렇고, 다들 한 비서가 연예인 뺨치게 예쁘다고 하더군요.”

 

 사장님의 변명에 지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비서랑 결혼하고 싶습니다.”

 

 이것도 청혼이라면 청혼이었지만 사장님의 딱딱한 말투는 그녀에게 명령을 내리는 듯했다.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고백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지현은 어안이 벙벙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얌전히 무릎 위로 신문을 내려놓은 지현은 사장님을 향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생각해보겠다는 그녀의 말에 사장님은 한쪽 눈썹을 위로 추켜올렸다. 그 후로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고 어색한 공기가 그와 그녀의 주변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장님의 말씀에 대한 대답은 나중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이제 나가봐요.“

 

  "……네.“

 

 결국, 준비한 신문을 다 읽지 못하고 지현은 집무실에서 나왔다.

 

  "내일 뵙겠습니다, 사장님.“

 

 집무실에서 나오면서 사장님께 평소와 다른 바 없는 인사를 건넸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와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지현의 머리는 복잡하고 마음은 심란했다. 지현은 개인 사무실 의자에 앉아 손으로 턱을 받치고 진지했던 사장님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ㅡ 나는 처음부터 한 비서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장님이 날 마음에 두고 계셨다고?

 

 함께 일을 하면서 번뜩이는 그의 발상과 깊고 넓었던 그의 지식에 감탄한 적이 많았던 지현은 솔직히 남편감으로 사장님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길거리 캐스팅도 몇 번 경험해 보고 외모가 꽤 봐줄 만하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세계적인 기업의 사장인 그에 비하면 자신은 평범한 여자였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지현은 아직 공부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당장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ㅡ 한 비서랑 결혼하고 싶습니다.

 

 진지했던 그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떠올리자 지현의 심장이 조금 두근거렸다.

 

 

 

 ***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우빈은 항상 집무실에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 마지막으로 물을 마시고 젓가락을 내려놓은 우빈은 테이블 위에 식기들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우빈의 식사를 담당하는 사람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저택에서 일해온 여정이었다.

 

 창 앞에 선 우빈은 앙상한 나무가 줄지어 있는 정원을 둘러보았다. 그의 집무실은 3층 가장 오른쪽 끝에 있는 방이었는데, 이곳에서는 별채 건물이 보이지 않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우빈이 급히 책상 위에 놓여있는 시각장애인용 흰 지팡이를 들었다.

 

  "어이, 권우빈. 괜찮아. 괜찮아. 나야 나. 장현우. 내가 왔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조금 얇은 현우의 목소리를 듣고 우빈은 안심한 듯 흰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뒤돌아본 우빈은 성큼성큼 현우에게 다가가 주먹을 마주 댔다.

 

  "일찍 왔네. 점심 먹고 온다더니.“

 

  "점심 약속이 취소돼서 간단하게 떡볶이로 때우고 오는 중이야.“

 

 우빈과 현우는 초등학교 동창으로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함께 했던 현우는 우빈이 유일하게 거리를 두지 않는 상대였다.

 

  "난 또 도우미가 들어오는 줄 알았어. 장현우, 이렇게 갑자기 쳐들어오기 있냐.“

 

  "미안하다, 미안해. 오랜만에 보는데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어. 나쁜 의도는 없으니까 오해는 하지 말아라.“

 

 현우가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너스레를 떨자 우빈은 피식 웃어 보였다.

 

  "그래, 이번 한 번만 봐준다. 나중에도 그러면 국물도 없을 줄 알아라.“

 

  "그래, 자식, 눈물 나게 고맙다.“

 

 우빈은 웃으면서 사무실 한쪽에 놓여있는 미니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언제까지 사람들 앞에서 앞이 안 보이는 척 연기할 생각이야?“

 

 현우와 시선을 마주친 우빈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

 

  "독하다, 독해. 아무리 그래도 1년 동안 안 보이는 척 연기를 하다니. 나라면 속 답답해서 못 했을 거야.“

 

 현우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너 나중에 시각장애인이 아니라는 거 사람들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그러냐?“

 

  "현대 의학이 발전으로 눈을 고쳤다고 하면 되지.“

 

 우빈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사실 우빈도 처음 앞이 안 보이는 척했을 때는 이렇게 오랫동안 연기하게 될 줄은 몰랐었다.

 

  "참, 그런데 그건 무슨 소리야? 갑자기 결혼이라니?“

 

 현우가 목소리를 낮추며 우빈에게 물었다.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지만, 현우의 목소리가 워낙 우렁차서 우빈은 살포시 인상을 찌푸렸다.

 

  "응, 나 결혼하려고.“

 

  "진짜? 누구랑?“

 

  "비서.“

 

  "비서? 이름이 뭐야?“

 

  "한지현.“

 

  "그 여자는 뭐래? 너랑 결혼하겠대?“

 

  "글쎄…… 나랑 결혼하게끔 만들어야지.“

 

  "그게 뭐야, 진짜 결혼하는 거 맞아? 이거 진짜야 가짜야.“

 

  "맞춰봐. 어느 쪽일 것 같아?“

 

 우빈의 도발에 현우는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내저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는데도 속을 모르겠다니깐. 음흉한 새끼.“

 

 표정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에 능숙했던 우빈은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머금었다.

 

  "솔직히 말해봐, 너 진짜 결혼할 마음 있는 거야?“

 

 현우와 눈이 마주친 우빈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래, 그쪽에서 허락하면 바로 하고 싶어.“

 

 우빈이 그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대답하자 현우는 진심으로 크게 충격을 받은 듯했다.

 

  "충격이네. 그동안 연애하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결혼이라니. 대체 한지현이라는 여자는 어떤 여자야?“

 

 충격의 도가니에 빠진 현우를 보고 우빈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예뻐.“

 

  "그리고?“

 

  "계속 봐도 질리지 않는 스타일이야.“

 

 우빈은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자는 딱 질색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지현이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뭐야, 첫눈에 반한 거야?“

 

  "응. 그런 것 같아.“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온 지현의 청순한 외모를 보고 처음에 눈이 갔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외모 때문에 결혼까지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를 주의 깊게 살핀 우빈은 지현이 모나지 않고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았다.

 

 조금씩 가까워져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신문에서 지현의 배우자 모집 광고를 발견했다. 가만히 있다간 딴 놈이 채어갈 것 같아서 냉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우빈을 바라보던 현우가 어깨를 아래로 힘없이 내리며 말했다.

 

  "당황스럽다. 애초에 네 결혼은 우리 계획에는 없었던 거잖아.“

 

  "'플랜 A'에는 없었지만 '플랜 B'에는 있었지.“

 

 딱딱한 표정을 풀지 않는 현우를 보고 우빈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여우가 소개해주는 여자랑 결혼하느니 내가 선택한 여자랑 결혼하고 싶어서 그래.“

 

  “여우?”

 

  "그래, 여우가 누군지 설명 안 해도 알고 있지?“

 

 그때 살짝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우빈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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