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어둠이 내린 밤, 유연과 상혁은 시골에 위치한 음습한 골목길을 헤매고 있었다. 얼룩덜룩한 오물들이 널브러져있는 골목에선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보름달처럼 떠오른 두개의 둥근 불빛이 골목길 안을 마구잡이로 헤집자, 시야를 틀어막고 있던 어둠이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어디있는거야, 정말.”
입술이 삐죽, 검은색 반팔 티에 딱 붙는 청 스키니를 입은 유연이 작은 플래시를 손에 쥔 채, 희미한 불빛으로 골목길 이곳저곳을 비췄다.
짙은 어둠이 내린 골목길에서 보이는 거라곤, 불과 몇 시간 전에 본 것과 다를 게 없는 똑같은 풍경들뿐이었다.
“분명, 이쯤에서 이시완을 봤다고 했는데….”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이 골목길에서 겁에 질린 채, 숨어있는 이시완을 봤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과 다르게 골목길은 몹시도 휑하기만 했다. 웬만해서는 사람도 잘 오지 않을만한 곳이라, 정말 이곳에 이시완이 있던 건지도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거, 낚인 거 아냐?”
가만히 생각하던 유연이 잔뜩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목격자가 신원을 밝히지 않은 것도 이상했고, 사람의 발길이 드문 골목길에서 이시완을 목격했다는 것도 이상했다. 그런 상황이 오길 바라지 말아야겠지만, 누군가가 유연에게 덫을 쳐놓은 상황일 수도 있었다.
“진짜 그런 거면 어떡하지?”
기분이 바닥을 쳤다. 만약, 목격자가 덫을 놓았다면, 그건 이시완이 꾸며놓은 짓일 수도 있기에 생각보다 일이 커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또 다시 피해자가 나오게 되겠지.
유연은 짙은 한숨을 내쉬며, 뜨거운 이마를 부여잡았다. 이시완을 잡게 되면 가만 안둘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 아무것도 없네.”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상혁 역시 플래시를 든 채, 사방을 뛰어다니던 중이었다. 뭐라도 발견하면 좀 나으련만, 눈앞에 보이는 거라곤 더러운 오물들뿐이라, 자꾸만 애가 탔다.
상혁은 큰 키를 이용해 골목길 담장 위를 살펴보거나, 긴 다리를 이용해 지붕 위를 올라가는 등, 조금의 단서라도 찾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골목길 곳곳을 샅샅이 뒤져봐도, 이시완의 대한 흔적은커녕, 사람의 흔적조차도 찾아볼 수 없던 탓에 속이 바짝 타들어갔다.
“아무것도 없네요.”
“이거 왠지 허위 제보 같은데요?”
상혁은 땀으로 흠뻑 젖은 셔츠를 펄럭거리며 말했다. 주변 곳곳에 보이는 거라곤 더러운 쓰레기들뿐이었기에 허위제보가 확실한 것 같다고. 상혁은 가만히 추측할 뿐이었다.
“진짜, 그런 것 같네요.”
고개가 끄덕, 유연은 힘겹게 말을 덧붙였다. 믿고 싶진 않지만, 상혁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그도 그럴만한 게 이 골목길에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라도 나오면 좀 나으련만, 눈앞에 보이는 건 지겨울 정도로 똑같은 풍경이라, 자꾸만 애가 탔다.
“허위제보면 어떡하죠?”
“망한거죠, 뭐.”
상혁이 묻자, 유연이 불퉁한 얼굴로 답했다. 그리곤, 버럭.
“에이, 정말!”
불쑥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유연은 신경질적으로 앞에 놓여있던 깡통을 퍽, 걷어찼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허위제보라니, 이렇게 기운 빠지는 순간도 또 없는 듯했다.
이시완이 도주한지, 벌써 3일째였다. 도대체 어디로간건지, 수많은 경찰들이 이시완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지만, 영 소득이 없었다. 빨리 이시완을 잡아야 다음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 텐데, 바짝 타들어가는 마음과 다르게, 시간은 경쟁자와 달리기라도 하듯, 빠르게 걸음을 재촉했다.
“일단 더 찾아보죠.”
상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유연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누구라도 걸리면 가만 안둘 거라고 생각하면서.
골목길을 헤매고 있을 때쯤이었다.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던 유연이 구석에서 확 튀어나온 고양이를 보자마자, 악! 하는 비명을 질렀다. 소스라치게 놀란 몸이 휙 뒤를 돌더니, 가만히 뒤따라오던 넓은 품에 와락 안겼다.
“윽.”
가슴팍에 퍽, 하고 안긴 유연 탓에 상혁은 뒤로 주춤 물러서며, 짧은 비명을 질렀다. 부들부들 떨리는 여린 몸이 넓은 가슴팍에 안겨 “아우, 깜짝이야.” 하는 소리를 냈다. 상혁의 품에 안겨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긴 한건지, 땀으로 축축이 젖은 뜨거운 얼굴이 머지않아 넓은 품속에서 빼꼼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요?”
“예, 뭐….”
머쓱한 표정을 지어보인 유연이 괜히 헛기침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왜 하필, 상혁의 품에 안겨버린 건지. 쥐구멍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미, 미안해요.”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유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차라리, 힘껏 밀쳐내기라도 했으면 좀 나으련만, 가만히 안고 있는 상혁 탓에 상황이 더 민망해진 듯했다.
흠흠, 유연은 목을 가다듬었다. 볼을 긁적이며 품에서 벗어나려는 사이, 성큼 앞으로 다가온 상혁이 팔을 뻗어 유연을 세게 끌어안았다.
“어, 어?”
또 다시 와락.
“뭐, 뭐하는….”
가슴팍에 닿은 얼굴이 뜨거운 김을 뿜어냈다. 상혁은 눈을 질끈 감은 채, 크게 심호흡을 했다. 마음이 시켜서 한 짓이긴 했지만, 돌아올 유연의 반응이 두려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차마, 유연의 등에 닿지 못한 손끝이 허공을 부유했다. 곧장 주먹이 날아올 거라는 상혁의 예상과 다르게 유연은 생각보다 잠잠했다.
“한대 정도는 얻어맞을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상혁이 질끈 감았던 눈을 슬그머니 뜨며 물었다. 그의 말이 거짓은 아닌 듯, 유연은 가만히 상혁의 품에 안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빼꼼히 상혁을 올려다보고 있던 시선이 묘한 빛을 담았다. 달빛에 비춘 얼굴이 정신을 잃을 정도로 예쁘기만 해, 상혁은 유연에게 키스를 하려던 것을…, 겨우 참아 넘겼다.
“할거면….”
“예?”
“제대로 해요.”
유연은 허공에 붕 떠있는 상혁의 손을 향해 턱짓을 하며 말했다. 아, 하는 탄성을 터트린 상혁이 뒤로 주춤 물러섰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어찌나 뜨겁던지, 온 몸에 불이 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금세 오그라든 상혁의 손이 갈피를 못 잡고 사방을 부유했다.
“뭐, 나쁘지는 않았어요.”
품에서 벗어난 유연이 씩, 하는 웃음을 흘렸다. 금세 휙, 뒤를 돈 뒷모습조차 한없이 새초롬하게 보이기만 해, 상혁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엔 없었다.
“먼저 갑니다.”
쿵쿵, 거친 심장의 울림이 온 몸을 휘감았다. 휘휘,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유연의 모습에 상혁은 코를 쓱 문댔다. 하여간,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
시언은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며칠간 일에 시달리느라 몸은 몹시 피곤했지만, 이상하게도 정신은 갈수록 또렷해진 탓이었다.
끔찍한 사건들이 연달아 터져서 그런가, 문득 떠오른 과거는 자꾸만 마음을 들쑤셨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수민을 떠올릴 때마다, 지쳤고, 힘들었고……, 아팠다.
수민은 시언의 첫사랑이었다. 처음부터 쉬울 거라 생각하고 시작했던 사랑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쉽게 끝날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었다.
시언은 수민을 생각할 때마다, 짙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예쁜 꽃 같은 아이를 죽게 내버려두었다는 끔찍한 죄책감에.
수민을 사랑했지만, 시언에겐 그게 다였다. 수민과 사랑을 나눌 생각도, 수민과 연애를 할 생각도, 바보 같지만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시언이 수민에게 바라는 것이라곤,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뿐이었다. 제 마음이 다 할 수 있을 때까지 곁에서 수민을 지켜주고 싶었고, 시언은 그걸 꼭 지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불행은 너무도 쉽게 시언을 덮쳤다.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시언은 암담한 어둠속을 헤매며, 누군가에게 쫓기듯 다급한 뜀박질을 이어가고 있었다. 터벅터벅, 골목길을 울리는 수십 개의 발걸음 소리가 빨라질 때마다, 옆구리에 찔러놓은 칼 사이로 새어나온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제기랄…….”
눈앞이 핑핑 돌았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시언은 머지않아 죽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낌새도 없이, 시언의 조직에 쳐들어온 신흥 조직 OW는 이미 수십 명의 조직원들을 죽이고 난 뒤였으니까.
울컥울컥 치솟는 뜨거운 피가 온 몸을 적셨다. 뒤따라오는 사람의 수가 늘어날 때마다,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거세게 분탕질을 했다.
코끝을 맴도는 혈향이 짙어질수록, 시언의 발걸음은 점차 느려져만 갔다. 재빨리 도망쳐야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은 마음대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물이 가득한 골목길을 힘겹게 빠져나가던 그때, 시언은 시야에 들어온 익숙한 얼굴을 보자마자, 커다란 도로 앞에서 우뚝 멈추어 설수밖엔 없었다.
“아, 아저씨?”
왜 네가 거기에 있는 걸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절망으로 물든 얼굴이 축축히 젖어들어갈때마다,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쳤다.
커다랗게 뜨인 눈과 하얗게 질린 얼굴, 그리고 작은 손에 쥐어진 도시락 통까지. 시언은 뒤로 주춤 물러서며,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렸다. 수민아, 네가 도대체 왜 여기에?
“야, 잡아!”
턱밑까지 쫓아온 어둠이 순식간에 시언의 온 몸을 결박했다. 검은 옷을 입은 조직원들은 시언의 양팔을 잡아채더니, 그대로 시언을 힘껏 내리눌렀다.
고통에 짓눌린 비명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아저씨! 익숙한 울부짖음이 자꾸만 마음을 들쑤셨다. 시언은 제발 이 모든 게 꿈이길 바랬다. 잠에서 깨어나고 나면 모든 게 사라져버릴 꿈.
“아저씨! 안 돼!”
하지만, 시언의 바람과 다르게 현실은 더 지독하게 숨통을 옥죄였다. 엉엉 울음을 토해내던 수민이 도로를 향해 뛰어들었으니까.
바닥에 납작 엎드린 시언이 수민을 향해 거센 고개 짓을 했다. 오지 말라고, 제발, 자신을 모른척하고 도망가라고.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아악!”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찾아온 불행은 모든걸 무너트리고 말았다. 작은 몸에서 피어난 붉은 피가 도로 위를 처량하게 뒤덮었다. 힘없이 늘어진 몸이, 맘껏 펴보지도 못하고 꺾여버린 날개가 마지막 발악을 했다. 살아야한다고,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고.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아, 안 돼….”
그때라도, 오지 말라고 소리를 쳤어야했는데. 그때라도, 도망가라고 비명을 질렀어야했는데. 왜 하필, 거기에 달려들어서. 내가 뭐라고, 도대체 내가 뭐라고, 너는….
“아저씨.”
아파하는 널 보며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수민이가 살아있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