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니 사건의 가해자인 이시완은 현장으로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쉽게 체포되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이시완은 경찰들에게 끌려가던 중, 도망을 쳤기 때문이었다. 잠시 한눈을 팔고 있던 경찰들은 이시완을 놓쳤고, 결국 이름만 경찰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경찰서는 발칵 뒤집혔다. 지겹도록 울리는 핸드폰을 참지 못한 유연이 전화를 받자마자, 따닥따닥 쏟아지는 꾸중의 목소리에 얼마나 화를 참아야했는지 몰랐다. 다행이게도, 이시완은 멀리 도망가지 못한 탓에 다시 잡을 수는 있었지만, 잡게 된 경우가 좀 특이했다.
이시완이 도망쳐서 향한 곳은 집이였다. 갈 곳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정말 또라이 인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이시완은 집에서 태연히 목욕을 하고 있던 중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맨 몸이 부끄러울만 할 텐데도, 이시완은 묵묵히 목욕을 마친 뒤, 바디로션까지 바른 채 옷을 갈아입은 후, 경찰들의 앞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당장이라도 이시완을 체포해야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렇게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라 아무것도 못하고 서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긴 팔에 검은색 스키니를 입은 이시완이 머리에 왁스칠을 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보다 못한 경찰들이 수갑을 채우려했지만, 손을 들어 저지시키더니, 이시완은 직접 수갑을 채우는 모습까지 보였다.
‘모자라는 놈인가?’
그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민식은 망연히 생각했다. 분명, 저 새끼는 아이큐가 한자리일거라고 생각하면서.
*
마음이 바짝 타들어갔다. 부검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서준은 시야에게 쩔쩔 매고 있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만한 게 연인이 된지 벌써 7년, 그동안 단 한 번도 화를 내본 적이 없던 시아가 이렇게 화가 난 것은 난생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렇게 된 건 서준의 탓이 컸다. 얼마 전 일어난 강간사건의 부검을 혼자서 했으니까. 부검의인 시아와 서준은 현재, 성범죄 수사팀을 전담해 일하고 있던 중이였는데, 왼쪽 새끼손가락이 없던 시아는 늘, 부검을 하는데 힘겨워했다.
성범죄를 주로 다루다보니, 시신의 대부분은 여자였고 심각하게 훼손된 경우가 많았다. 그랬기에 마음 여린 시아가 혹시라도 상처를 입을까싶어 친구를 만난다는 핑계로 시아를 집으로 보낸 뒤, 혼자서 부검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시아는 자신을 무시했다며 서준에게 단단히 토라진 상태였다.
벌써 며칠 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동안 시아가 그토록 좋아하는 피자도 사다주고, 꽃도 사다주며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 해봤지만 헛수고였다. 제 억울한 심정을 알긴 하는 건지, 휑 토라져서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 시아의 모습에 그야말로 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시아와 서준은 같이 동거를 하는 사이였다. 그건, 언제 사건이 터질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수사팀 근처에 사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통하면서 부터였다. 서울은 집값이 비쌌고, 집을 따로 구하는 것보다는 한 채에서 사는 게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핑계로, 서준은 시아를 꼬셔냈다.
지방에서 살던 시아는 결국 서준의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서준 역시도 이사를 한지 얼마 안 된지라, 짐정리를 다시 하는 건 큰 상관없었다. 그랬기에 먼저 동거를 제안한 것이기도 했다. 시아는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서준은 괜찮다고 말하며 속으로는 잔뜩 쾌재를 불렀다. 아싸! 하면서.
시아와 서준이 살고 있는 곳은 21평정도 되는 아파트였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커다란 창문이 보였고, 그 옆엔 폭신한 침대 소파가 놓여있었다.
TV보는걸 워낙 안 좋아하는 서준 탓에 TV는 없었지만, 다행이게도 컴퓨터는 있었다. 방은 총 2개였는데 하나는 옷방으로 썼고, 또 다른 하나는 침실로 썼다.
시아는 지금 거실 소파에 몸을 모로 누운채,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안절 부절하던 서준이 머리를 벅벅 헝클이며, 시아의 주변을 빙빙 맴돌았다. 아아, 어떡하냐 진짜. 정말 신이 있다면 이 가련한 남자 한명을 제발 살려줬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시아야, 같이 씻을까?”
“아니요.”
“그, 그래.”
꾸역꾸역 용기를 냈지만, 바로 칼 같이 돌아오는 대답이라니. 서준은 축 쳐진 어깨를 한 채로, 방 안으로 들어섰다. 내 인생은 망했어, 쿵쿵 내리치는 머리 뒤로, 불쑥 튀어나온 얼굴이 후 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다. 다시 경찰서로 돌아온 유연은 익숙하게 취조실 안으로 향했다. 어느새 상혁도 사무실로 돌아온 뒤였지만, 영 마음에 안 드는 건 사실이라 오늘 취조는 유연이 하기로 못을 박아놓은 상태이기도 했다.
사건은 생각보다 빠른 진전을 보였다. 이름이 이시완이라고 했나? 강간 가해자는 생각보다 잘생긴 편에 속했다. 짙은 쌍커풀과 작은 얼굴, 그리고 수술했다고 믿을 정도의 높은 코와 눈 밑에 난 작은 점까지. 연예인 누구 닮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딱 보기에도 여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만한 외모인건 맞는 듯했다.
아, 심지어 나이도 어렸다. 무려 20살. 대학교 1학년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어찌나 놀랐는지 성범죄 수사팀 멤버들은 입을 떡하니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아니, 대학교 1학년짜리 남자애가 여자를 강간하고 폭행까지 했다고? 그게 말이 돼?
유연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혀를 찼다. 언제나, 가해자 얼굴을 맞대는건 영 제 성미에 맞질 않았다. 성범죄수사팀이 되지 않았다면, 이런 새끼들은 그냥 다 짓밟아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새끼들은 다 쓰레기만도 못한 놈들이었으니까.
취조실 안엔 딱 두명뿐이었다. 형사 차유연과 범인 이시완. 시완은 주변을 휘이 둘러보다가, 해사한 미소를 흘렸다. 답답한 공간, 밀폐된 공기, 그리고, 올곧이 자신만을 향하는 시선. 뭐, 상상했던 것 보다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앞에 앉아있는 여자의 얼굴이 꽤나 예뻤으니까.
취조는 뻔했다. 늘 같은 질문이 반복되고, 늘 같은 답이 오고갔다. 그래도 오늘은 좀 흥미롭다고 유연은 생각했다. 늘 질질 끌었던 다른 성범죄 사건들과 다르게 이번 사건의 범죄자는 생각보다 빨리 잡혔고, 증거도 있었으며, 피해자의 증언 역시 확실한 상태였으니까.
취조는 부드럽게 흘러갔다. 이시완이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나이가 워낙 어렸기에 생각하지 않고 뱉는 말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는 듯했다. 아까 전 민식이 하던 말로는, 이시완의 아이큐가 한자리일 수도 있다고 하던데, 처음엔 믿지 않았다가 이제는 서서히 이해가 가길 시작했다. 말하는 수준이 딱,
“김주니가 제 말을 안 들었어요.”
초등학생이었으니까.
“그래서 때렸는데, 코피가 터졌어요.”
빠른 질문에 빠른 대답, 늘 같은 질문일 뿐이었지만, 이시완에게서 돌아오는 답은 꽤나 건질 것이 많았다. 솔직하게 표현해주니, 사건에 대해 파악하기도 쉬웠고, 증거를 모으기에도 편했다. 좀 모자르긴 했지만, 그래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이시완의 대답은 김주니의 증언과 다를게 없이 흘러갔다. 이 상태로 라면 제대로 된 콩밥을 먹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보람찬 일을 하는구나. 유연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만한 게 성범죄는 생각보다 까다로워서 맘에 들만한 형량을 받은 범죄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취조실 밖에 위치한 수사팀 멤버들도 증언의 내용들을 정리하며, 사건의 조사에 박차를 가했다. 일이 술술 풀린다고 생각했다. 이젠 야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며, 민식은 펄펄 뛰며 기뻐했다. 하지만, 모두가 안심하고 있던 그때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것도 바로, 이시완에 의해서.
“좋았어요.”
사건의 상황을 설명해달라는 유연의 말에 이시완은 저렇게 대답을 했다. 그것도 아주 태연하고, 멍청한 표정으로 대담하게 말이다. 유연은 무릎위에 올려둔 양 손을 꽉, 쥐었다. 피가 안 통할 만큼 손이 하얗게 질렸는데도, 유연의 얼굴은 꽤나 무덤덤했다.
“아주, 아주 좋았어요.”
코를 긁적인 이시완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대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그때의 일을 회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시완은 이상한 손짓을 하며, 그때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는데, 그 손짓이 한없이 더럽기만 해 유연이 그 행동을 멈추게 할 정도였다. 후, 한숨이 샜다. 유연은 망연히 생각했다. 세상 살면서 별 미친놈을 만나봤지만, 이렇게 미친놈은 처음이라고.
“뭐가 좋았는데?”
유연은 마치 아이를 다루듯, 부드럽게 물었다. 그러자,
“음, 뚫는 기분?”
이시완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하, 하는 기가 찬 숨을 내쉰 유연이 머리를 쓱 쓸어 올렸다. 헤실헤실 웃고 있는 얼굴에 불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취조실 밖에 서있던 성범죄 수사팀 팀원들이 술렁술렁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유연은 최대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애쓰며, 책상 위로 상채를 기댔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는 게 주먹을 뻗기에 좋았으니까.
“아아 넣는 것도 좋았다.”
취조실 밖에 서있는 형사들은 발을 동동 구르기 바빴다. 한 팀장님, 얼른 들어가셔서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유연의 얼굴에 다들 마음을 졸이며, 상혁을 살폈다.
상혁은 이마를 취조실 문 앞에 서서, 혹시라도 벌어질 돌발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나도 기분 좋더라.”
그 모든 건 순식간에 일어나고 말았다. 휙 고개를 든 유연이 씩 웃으며 답했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리쳤다. 뭐를?
“널 때리는 기분.”
이시완의 얼굴을.
“으악!”
퍽, 돌아간 고개가 상혁은 뜨거운 이마를 짚었다. 망했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