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이 멍청아!”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성범죄 수사팀 사무실 안을 울렸다. 꽤나 큰 소음에 다들 한껏 미간을 구기며, 양쪽 귀를 틀어막기 급급했다. 정사각형의 사무실엔 커다란 칠판과 6개의 책상과 의자, 폭신한 소파, 그리고 커다란 책상 하나가 놓여있었는데, 사무실 자체가 워낙 작은 탓에 누군가가 목소리를 높이기만해도 골이 울리는 기분이었다.
“넌 진짜, 왜 그러냐?”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연신 목소리를 높였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자고 있던 수혁까지도 몸을 벌떡 일으킬 정도였다. 휙휙, 돌아오는 시선이 짜증 그 자체였다.
“아우, 진짜! 내가 못살아!”
조용하다 싶더니, 또 저 난리다. 수영은 혀를 쯧쯧 차며 다시 컴퓨터에 시선을 박았다. 주르륵 늘어져있는 글자가 눈을 퍽퍽하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수영은 컴퓨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저 미친개에게 물릴 바엔 차라리, 시력이 떨어지는 게 나았으니까.
“넌 어떻게 그 쉬운 일도 못하냐?”
시언은 펄펄 뛰며 잔뜩 짜증을 냈다. 꽤나 거친 언행에도, 시언의 바로 앞에 서있는 여자는 미동조차 보이질 않았다. 에이씨, 욕이 샜다. 그 행동이 더 답답하기만 해, 시언은 얼굴을 잔뜩 구긴 채 애써 손질한 머리를 벅벅 헝클였다.
“너한테 뭘 시킨 내가바보지, 어? 내가 바보야!”
한껏 짜증을 내던 시언이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문을 쾅 닫은 채 사무실을 벗어났다. 금세 정적이 맴도는 사무실 뒤로, 힐끔 튀어나온 시선들이 데굴데굴 굴러가며 눈치를 보기 바빴다. 야, 이제 어떻게 하냐, 하면서.
잘게 몸을 떨던 여자가 스르르 고개를 들었다. 긴 생머리에 커다란 눈, 그리고 왼쪽 볼 전체를 덮고 있는 짙은 화상 자국까지. 성범죄 수사팀 막내인 선경은 늘 이렇게 시언에게 혼이 나곤 했다.
“죄, 죄송합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 채, 선경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늘 이런 식이었다. 누군가의 앞에만 서면 말 한마디 못하고, 꼭 나중에 후회를 하는 바보 같은 성격 말이다.
선경은 푹푹 한숨을 내쉰 채, 뚝뚝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대충 닦아냈다. 지금까지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바보 같다는 거 알았지만, 그래도 울고 있다는 사실만은 들키지 않는 게 좋았다. 눈물은 시언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으니까.
사실, 선경은 뚱뚱했다. 성범죄 수사팀에서 아니, 이 경찰서에서도 그녀만큼 뚱뚱한 사람은 없을 듯했다. 그 탓인 건지, 아니면 얼굴을 뒤덮은 화상 흉터 탓인 건지는 몰라도, 선경은 늘 음지 속에 살았다. 자신감도 없었고, 말도 잘 못했으며, 의지도 박약했다. 바보 같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한없이 무섭기만 했으니까.
어찌되었든 간에 이번일은 제 실수가 분명했다. 분명 어제까지 검찰에 넘겨야했던 서류를 깜빡하고 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선배인 시언은 검찰에게 된통 깨져야했고, 결국 그 불똥이 선경에게 까지 튀게 된 상황이었다.
충분히 화를 낼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아무 말 없이 시언의 화를 받아주고 있던 것이기도 했다. 아 물론, 제 잘못이 아닐 때도 다 받아주고 있긴 했지만, 아무튼, 시언은 늘 그랬듯, 불같이 화를 냈고 거친 언행을 일삼았다. 마치, 분노 조절 장애처럼.
시언은 이럴 때보면, 미친개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건 아닌 듯했다.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고, 수사팀 사이에 공공연하게 불리던 별명이 오늘따라 한없이 공감되었으니 말이다.
버럭버럭 화를 내는 성격하며, 사방으로 후두둑 튀기는 침방울 하며, 삐쭉 올라간 눈 꼬리까지. 사냥개를 한 마리 풀어놓았다 말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다.
사실, 시언의 성격이 이렇게 된건 일의 탓이 크기도 했다. 시언은 무려 10년차 형사였다. 성범죄 수사팀에서도, 아니, 이 경찰서에서도 가장 형사생활을 오래한 최고참이었다.
사실 10년이라는 숫자가 남들에겐 쉬워 보이겠지만, 시언과 선경이 속해있는 중구 경찰서에선 아니었다. 그도 그럴만한 게 서울 중구 경찰서에선 형사라는 이름을 달고도 얼마 못 버티고 나가는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이었다.
서울 중구 경찰서는 무슨 이유때문인지 몰라도, 사건이 많았다. 사건이 많았기에 별별 흉악범들도 많았고, 그랬기에 형사들은 늘 야근이라는 이름을 달고 살아야만했다. 아무리 버티고 버텨보아도 3년인데, 무려 10년이라니. 뭐, 따지고 보면 시언 같은 미친 성격이 안 나오는 게 더 이상할정도이긴 했다.
미친개, 아니 시언의 타겟이 되는 사람은 늘 선경뿐이었다. 선경은 한없이 느리고, 답답했으니까. 워낙 급한 성격인 시언과 자주 부딪치게 되는 건 어찌 보자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둘의 성격은 정반대라고 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거의 매일같이 시언에게 깨지는데도 불구하고 선경은 이상하게도 시언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건 시언을 짝사랑 하고 있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사실 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왜냐,
“멍텅구리 김민식!”
“바보 이수영!”
조금 괴팍하긴 했어도, 시언은 누구한테나 다 똑같이 대했으니까.
선경은 외모 탓인지는 몰라도, 늘 다른 시선을 받으며 살아왔다. 이곳 수사팀에 와서는 조금 덜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똑같이 대하려고 해도, 뚱뚱하고 얼굴에 흉터가 있는 여자에게 주어지는 시선과 편견은 꽤나 단단했다. 계속해서 깨보려 애를 써봐도 절대 깨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화를 내고 밖으로 나오긴 했는데, 영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시언도 마찬가지였다. 후, 한숨이 샜다. 문틈으로 슬쩍 선경을 들여다본 시언이 잔뜩 미간을 구겼다.
“또 우네.”
선경은 울고 있었다. 잘게 떨리는 어깨가, 한껏 움츠러든 목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티를 안내려는 듯, 고개를 바닥으로 푹 떨군 채 서있었지만, 다 티가 났다. 워낙 감정 숨기는 것에 약했던 선경이었으니까.
“에이씨.”
시언은 땅에 힘껏 발길질을 했다. 늘 화를 내고 난 뒤에 하는 후회이긴 했지만, 오늘따라 더 마음이 좋질 않았다.
*
유연이 경찰이 되기로 마음을 먹게 된 건 참으로 진부하면서도 뻔했다. 더 이상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래왔으니까.
유연은 형사가 되자마자 성범죄 수사팀을 차렸고, 성범죄 피해자들을 줄이기 위해 두발 벗고 사건현장에 뛰어들었다. 진정제를 먹으면서도 늘 유연은 사건에 열심이었다.
바보 같다는 거 알았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일에 빠지면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으니까. 긴 시간이 지난 지금도 과거를 생각하면 한없이 약해지기만 해서 도피처로 찾은 게 일이기도 했다. 뭐, 더 이상 악몽 속에 살고 싶지 않았고, 더 이상 아파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길 바래왔으니까.
담담한척 하는 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진정제를 먹고 있다는 것도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 그걸 숨기는 것도 꽤나 곤욕스럽기도 했다. 뭐, 수사팀 식구들에겐 털어놓아도 문제가 될 건 크게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사이가 틀어질 수 있었기에 조심해야했다. 왜냐, 성범죄 수사팀은 유연의 전부였으니까.
사실 맨 처음 유연이 성범죄 수사팀을 꾸리겠다고 했을 때, 검찰 측에선 강력하게 그 것을 만류했다. 그깟 팀을 꾸려서 뭐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검찰에서도 막았던 팀을 꾸릴 수 있었던 건, 시간이 갈수록 성범죄가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슬프게도, 성범죄 수법은 갈수록 다양하고, 끔찍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뭐, 화장실 몰래카메라는 말할 것도 없고, 납치를 하거나, 단체로 성폭행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피해자는 많아지는데, 딱히 조사의 진전은 보이질 않은 상태라 경찰 쪽에서도 곤욕을 치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다양한 성범죄들을 처벌할 법도, 그 범죄자를 잡아넣을 인력도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 딱 마침 유연이 성범죄 수사팀을 건의하게 된 것이었고.
성범죄 수사팀은 총 10명으로, 남자 3명과 여자 7명으로 구성된 팀이었다. 남자의 비율이 적은 탓에 아쉽긴 했지만, 유연은 한편으론 이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늘,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들이 사건에 대한 진술을 할 때, 아무리 형사라고 해도 남자들 앞에서 얘기하는 걸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아무튼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서, 사건현장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하얀 시트위엔 붉은 혈흔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긴 막대기가 놓여있었다. 나무젓가락을 길게 늘어놓은 듯한 긴 막대기는 끝이 몹시도 뾰족했는데, 그 끝에는 약간의 혈흔이 묻어있어 꿉꿉한 비린내를 풍겼다.
“이걸로 도대체 뭘 한거야?”
유연은 장갑을 낀 손으로 그것을 집어 올리며, 이곳저곳을 살펴봤지만 좀처럼 용도를 알 수가 없어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아야만했다. 감식반이 오기 전까진 되도록이면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았다. 혹시라도, 잘못 만진 탓에 증거가 훼손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머지않아, 모텔 방안으로 감식반이 들어섰다. 최첨단 장비를 들여왔다고 하더니, 이것저것 꺼내는 물건이 많았다. 감식반은 제일 먼저 침대 위를 수색했다. 침대 위는 유일한 증거가 남아있는 곳이었으니까.
침대 위는 깨끗했다. 아, 물론 핏자국만 없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