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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두 세계 이야기
작가 : 한니발렉터
작품등록일 : 2017.12.10

문명세계에서는 꼬맹이 현상금 사냥꾼, 카슨 더 키드,
야만세계에서는 백년에 한번 나올 위대한 전사, 웅크린곰.
두 세계의 이야기.

 
Ch.1 두 세계 - 03
작성일 : 17-12-11 15:21     조회 : 321     추천 : 1     분량 : 4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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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세 명의 전사들이 환호를 뒤로하고 부락 밖으로 나섰다. 백여 채의 집들이 모여 있는 부락 외곽에는 공동으로 쓰는 밭이 펼쳐져 있었고, 그 밭을 넘으면 ‘어머니 대지’의 가호가 서려 있는 숲과 평원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셋은 햇빛을 받으며 평원을 향해 말을 달렸다.

 마침 하늘도 티끌 하나 없이 맑았다. 웅크린곰은 허벅지에 힘을 줘서 말을 더 빠르게 몰았다. 전투와 살인을 앞둔 지금은 우중충한 먹구름 낀 날씨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역시나 맑고 푸른 하늘은 따라올 수 없었다. 폐를 아침공기로 가득 채우면서 웅크린곰은 말을 달리고 또 달렸다. 타고난 기수의 솜씨였다. 덕분에 뒤에서 따라오는 두 전사들만 죽을 맛이었다.

 여러 개의 언덕을 넘고 개울을 건넜으며 협곡을 가로질렀다. 때로는 말에게 풀을 먹이고 때로는 전력질주하며 나아갔다. 마침내 ‘경고의 창’에 도착했을 때는 그날 저녁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산 뒤로 넘어갈 때쯤에 세 명의 전사는 말의 속도를 줄였다. 평원 한가운데에 꽂힌 ‘경고의 창’은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하고 깃털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멀리서 눈에 띄기 때문이었다.

 이 창은 경고용이었다. 이곳부터 우리의 사냥터니까 절대로 침범하지 말라는 씨족들의 경고. 경고의 창을 뽑거나 부러뜨리는 것은 씨족 전체와 싸우겠다는 선전포고였다. 또한 씨족원이 남의 땅에서 죽는다면 시체를 이곳에 눕혀놓는 암묵적인 전통도 있었다. 전사들이 하루에 한 번씩 순찰을 돌기 때문에 시체가 썩거나 뜯어 먹히기 전에 빨리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크로우족이 시체를 이곳에 놓아둔 것은 나름대로 예우를 한 셈이었다. 하지만 웅크린곰은 크로우족의 사정 따위는 봐주고 싶지 않았다. 모처럼 찾아온 싸움의 기회를 이대로 놓친다면 바보 멍청이니까.

 웅크린곰은 경고의 창 주위를 빙빙 돌며 적들의 흔적을 살폈다. 인간의 말은 귀로 듣지만 땅의 말은 오감을 동원해 들어야 한다. 말똥의 온도, 먹다 남긴 음식의 흔적, 말발굽에 패인 흙. 타고난 추적자인 그가 알아내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놈들은 서쪽으로 갔다.”

 웅크린곰이 손가락을 들어 해가 지는 방향을 가리켰다. 사실상 둘러리나 마찬가지인 두 전사는 멍하니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가만히 따라오기만 한다면 그것은 전사가 아니라 애완견이다. 하여 미친 사슴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했다.

 “놈들이 서쪽으로 갔고, 마침 해도 지고 하니 이곳에서 하루 야영하고 가는 게 좋겠어. 내일 해가 뜨면 곧바로 출발해 놈들을 쫓자고.”

 “아니.”

 웅크린곰이 곧바로 대답했다.

 “밤새 말을 달리면 내일 아침쯤에는 따라잡을 수 있겠어.”

 “하지만 말이 지쳤어.”

 “뛰지 않고 걷기만 해도 괜찮으니, 조금 더 고생하라고 해.”

 그 말에 미친 사슴은 어깨를 으쓱하며 굴러다니는 바위를 바라보았다. 굴러다니는 바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는 웅크린곰이 더 잘 알 것이다.

 “그럼 오늘 밤새 놈들을 추적하는 건가?”

 “그렇다. 피곤하다면 이곳에 남아도 좋아.”

 “그럴 리가. 나는 가겠어. 크로우 놈들의 머릿가죽을 벗기고 뛰어오르는 사슴의 원수를 갚아야지.”

 미친 사슴이 말갈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땀이 식으면서 한기가 느껴지는지 말이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었다. 이어 웅크린곰은 굴러다니는 바위를 바라보았고, 굴러다니는 바위는 “네 뜻에 따르겠어.”라고 한 마디 했다.

 “좋아. 도중에 쉬지 않을 테니 식사는 지금 말등에서 해 둬.”

 “말에게 물을 주지 않아도 괜찮을까?”

 “경고의 창에 도착하기 전에 한 번 먹였으니, 내일 아침까지는 괜찮아.”

 웅크린곰은 내일 아침까지 적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얼마나 오랜만의 전투인가. 적의 머리를 곤봉으로 으깨고 칼을 가슴팍 깊이 찔러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배도 고프지 않았다.

 칼로 자른 마른 고기를 입에 넣고 씹으며 간단한 식사를 끝냈다. 셋은 다시 말을 몰아 출발했다. 해가 이미 넘어가서 하늘은 어두웠고, 의존할 것은 희미한 달빛밖에 없었다. 과연 길을 찾을 수 있을까 회의하는 둘과는 달리, 웅크린곰은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고 말을 몰았다.

 밤이 깊어왔다. 풀벌레 우는 소리와 때때로 말이 콧김 내뿜는 소리가 전부였다. 아주 가끔 먼발치에서 암호랑이가 우우웅거리며 수컷을 부르는 소리도 들려왔다. 뒤따르는 둘은 바짝 긴장해 창을 꼭 움켜쥐었지만, 웅크린곰은 흔들리는 말 위에서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단순한 싸움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살인을 좋아하는지 한번 깊이 숙고해본 적도 있었다. 오랜 기간 고민한 결과 낸 결론은 ‘우열을 가릴 수 없다.’라는 것. 싸움이라 하면 회색곰과 창 하나 들고 싸우는 것도 싸움이었고, 주먹싸움이나 곤봉싸움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것도 진짜 적의 살을 뚫고 머리를 부수는 전투만큼의 희열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전투욕이라는 것은 성욕이나 식욕과 다를 바 없어서, 끊으면 끊을수록 갈망은 더더욱 심해진다. 겨울철 배를 곯은 노인네들이 잠만 퍼자듯이, 전투욕을 채우지 못한 웅크린곰도 잠밖에 자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괜히 웅크린곰이 된 것이 아니었다. 씨족 사람들은 그를 겨울잠 자는 곰에 비유했다.

 이상하게도, 잠을 자면 잘수록 개운하지가 못했다. 뭔가 선명한 꿈을 꾼 것도 같은데 기억나지도 않는 이상한 현상 하며, 톡 쏘는 푸른색 연기, 그리고 간간히 들려오는 천둥소리. 그것이 꿈의 전부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웅크린곰은 그 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

 

 “꼬맹아, 꼬맹아!”

 카슨은 눈을 떴다. 문짝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경첩이 위태로울 정도로 삐걱거렸다. 자기도 모르게 가슴팍에 놓아 둔 권총을 집어 든 카슨은 공이를 살짝 잡아당겼다.

 “꼬맹아! 이 빌어먹을 놈아. 문 좀 열어 보라니까!”

 익숙한 목소리였다. 웨던의 목소리 아닌가. 그제서야 그는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느꼈다. 광활한 대지가 아니라 좁아터진 여관방이 현실의 장소였고, 싱그러운 풀냄새 대신 안 씻은 담요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현실의 냄새였다.

 카슨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광활한 평야를 말을 타고 누빌 때의 해방감은 이미 싹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여전히 권총을 손에 꼭 쥔 채 그는 문을 열었다.

 “빌어먹을, 꼬맹아. 왜 이리 굼뜨냐? 언제부터 불렀는데?”

 “뭐에요, 뭐? 용건이나 말하시죠.”

 “그게....”

 기껏 불러놓고 말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있는지, 웨던이 우물쭈물댔다. 사실 그가 말하기도 전에 카슨은 이미 알아챘다. 아래층에서 떠들썩한 외침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제인 누님이 또 미쳐서 날뛰고 있나요?”

 “....그래.”

 “제가 간다고 뭐 해결이 될 것 같아요?”

 “싸우란 게 아니야. 그....총만 좀 쏴 달라는 거지.”

 웨던이 목소리를 한껏 내리깔고 말했다. 자기보다 한참 어린아이한테 이런 부탁을 하는 데 최소한의 양심이 가책이라도 느끼는 모양이었다.

 카슨은 짜증이 폭발할 것 같았다. 다시 꿈속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꿈은 꿈이었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그가 발 딛고 사는 곳은 이 무법천지의 북부 개척지였다.

 웅크린곰의 몸속으로 들어갈 때, 그는 웅크린곰이 느끼는 모든 감각을 느꼈다. 아침이슬이 막 내린 풀숲을 맨발로 걸을 때의 상쾌한 기분, 말등에 타고 평원을 질주할 때의 시원한 기분. 그리고 한겨울에 곰가죽을 두르고 모닥불을 쬘 때의 따뜻함도.

 하지만 감각뿐이었다. 그는 웅크린곰의 몸을 조정할 수는 없었다. 웅크린곰의 마음을 느낄 수도 없었다. 그가 느끼는 것은 오로지 감각뿐이었다. 그래서 꿈은 어디까지나 꿈이지 현실이 될 수 없었다.

 “알았어요. 내려가서 누님 좀 말리고 계세요.”

 “내가 말려서 해결될 일이 아니긴 하다만....어쨌든 알았다. 칼부림 나기 전에 빨리 내려와라!”

 카슨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꽝 닫았다. 문 너머로 웨던이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가로 다가간 카슨은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달빛에 의존해 그는 권총을 요 위에 늘어놓고 총알이 장전되어 있는지, 화약은 잘 다져져 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했다. 확인을 끝낸 그는 허리춤에 권총 네 정을 양측에 두 자루씩 나누어 찼다. 그리고 벽에 걸어둔 초록색 모자를 쓰고 나섰다.

 계단 아래 1층은 시끌벅적했다. 부모와 성기를 번갈아 언급하는 온갖 상스런 욕지거리와 꽥꽥 거리는 고함소리가 합쳐져서 화음을 이루었다. 그 중에서도 제인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유난히 뚜렷했다.

 “네가 내 엉덩이 만졌잖아, 이 썩을 뻐드렁니 새끼야!”

 카슨이 삐걱거리는 계단을 짚고 내려가자 고래고래 소리치는 제인이 보였다. 그녀는 비쩍 마르고 뻐드렁니를 한 남자와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남자의 패거리’와 싸우는 중이었다. 다만 다섯 명이 내는 목소리보다 더 큰 것이, 목소리만 따지면 거의 일기당천의 기세였다.

 “만졌으면 돈을 내던가 사과를 해라고, 이 못생긴 염소대가리 새끼야. 비쩍 마른 네 몸만큼 양심도 말라 비틀어졌나 보지. 더러운 새끼!”

 “이 미친년이 뭐라 지껄이는 거야. 네가 네 펑퍼짐하고 못생긴 엉덩이를 왜 만지냐?”

 “그래, 이 년아!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판돈이나 내놔! 게임에서 졌잖아!”

 “얼씨구. 이 새끼들이 반성은커녕 헛소리만 찍찍 내뱉는 거 보소. 그깟 병신 같은 카드게임으로 딴 돈보다 내 엉덩이 가격이 더 나가면 어쩔 건데? 네놈들이 돈을 더 낼거냐?”

 카슨에게는 지겹도록 익숙한 패턴이었다. 이쯤 되면 웨던이 나가서 만류할 때가 되었는데. 그리고 역시나 그랬다. 웨던이 둘 사이를 어떻게든 갈라놓고 협상하려 하다가 제인에게는 “네가 내 편이냐 저 놈들 편이냐?”라는 소리를, 패거리들에게는 “대머리 새끼야 저리 꺼져.”라는 소리를 듣고 풀이 죽어 물러났다.

 

 아무도 어린 소년인 카슨에게는 신경쓰지 않았다. 카슨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

 목표는 제인과 가장 가까운 비쩍 마른 뻐드렁니 남자. 설사 빗나가서 제인이 맞는다 해도, 딱히 가슴 아프지는 않을 것 같았다.

 -탕!

 여관에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정지했다. 싸우던 자들, 구경하던 자들 할 것 없이 전부 다. 움직이는 것은 카슨의 권총에서 피어오른 푸른색 화약 연기뿐.

 “그만들 하시죠.”

 카슨이 뻐드렁니 남자를 보면서 말했다. 입을 쩍 벌린 그가 반쯤은 본능적으로 머리를 더듬었다. 쓰고 있던 회색 모자는 총알구멍이 난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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