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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벨트는 제 겁니다, 전하
작가 : 곰고미
작품등록일 : 2016.9.3

창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남자는 얼굴 한가득 화사한 미소를 띠었다.

"바지 좀 벗어주겠는가, 그대."

어머니. 일하러 왔는데 순결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는 즐겁다
작성일 : 16-09-04 00:20     조회 : 440     추천 : 0     분량 : 5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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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그는 고요하게 서있었다.

 

 구름에 가려져 은은하게 흘러 들어온 햇살이 꿀을 한껏 머금은 듯 금빛을 가진 머리칼에 반사되어 부서지고 드래곤의 보석, 루비를 연상시키는 붉은 눈동자는 하늘을 떠다니는 흰색 구름을 물들이기라도 할 것처럼 구름을 가득 담았다.

 

 평화롭다. 그는 창 밖의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며 한참을 자리에 서있었다. 가만히 서있는 그와 뒤쪽으로 펼쳐져 있는 풍경은 서로 어우러지며 보는 사람이 감탄을 자아낼만한 그림 같은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지금 그의 주변에는 그 모습을 볼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설사 누군가 있다 하더라도 지금의 그는 신경 쓰지 않을 터였다.

 

  "......"

 

 아무도 없는 고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그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안정을 느끼게 할 정도로 평화로운 광경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심경은 더할 나위 없이 심란했다. 그래도 오늘 같은 일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기에 크게 감흥은 없다.

 

 적응? 아니, 체념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기억도 가물가물한 옛날의 그 순간부터 오늘과 같은 일은 항상 그의 속을 헤집어 놓았다. 제대로 서있지도 못 하도록. 제대로 된 사고가 힘겨워지도록. 항상 그의 모든 것을 헤집고 잘게 찢어 흩뿌려 놓았다.

 

 매번 반복되는 일은 어느새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그저 그렇게 지나가버릴 일상.

 

 다른 사람들도 겪는 일이다. 너만이 특별한 게 아니야. 모두가 자신이 무너지고 다시 세우고. 그러면서 살아나가지 않는가. 한 치의 미동도 없던 그의 입가에 살풋 미소가 어린다.

 

 그래. 그뿐인 일이다.

 

 잘게 흩어진 조각들을 보던 그는 그것들을 긁어 모아 하나하나 제자리에 맞춰 나갔다. 모으는 사이 몇몇 조각들이 도망가버렸으나 괜찮을 것이다.

 

 그로써는 그저 움직이기만 하면 될 뿐인 일이니.

 

  "저 구름은 크로켓 같군."

 

 침묵을 깨고 움직인 입술이 의미 없는 말을 자아낸다. 고요를 깬 것에 불만을 표시하기라도 하듯 눈동자 가득 담겨있던 구름들이 유유히 빠져나갔다. 구름을 벗어난 햇살이 어느새 비어버린 눈동자에 들어가려 했으나 들어가지 못했다.

 

 구름을 한가득 담고 있던 눈동자는 햇살을 앞에 두고도 어둠을 가득 집어 삼켰다.

 

  "...많기도 하군."

 

 눈으로 해야 하는 일을 확인했으나 할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방으로 가자 생각했었는데 걸음이 멈춰선 것은 서류들이 잔뜩 쌓여있는 집무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 곳으로 오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중증이다 싶다.

 

 슬쩍 고개만 돌려 책상을 확인한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바깥을 바라보았다.

 

 분명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고 있을 정원은 이상하게도 무채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없앨 수 있을까 싶어 바라 본 바깥인데 이런 광경이라면 없던 생각도 날 것 같다. 지루해서 말이지. 실제로도 떠오르지 않던 기억들마저 떠올라 그의 안을 휘휘 흔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만 보면 되지 않을까. 그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창가를 떠날 수가 없었다. 이건 마음의 문제라기보단 기력의 문제였다. 그만큼 그는 지쳐있었다.

 

  "아-이-우-에-"

 

 두 발을 땅에 대고 서있는 것도 지쳤지만 주저앉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무언가를 스스로 생각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떠오르고 돌아다니는 생각들이 모든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무언가 소리를 내면 생각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 아무 의미도 담고 있지 않은 소리를 내보았지만 그것뿐이었다. 그저 소리만 날 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진절머리 나는군. 생각들이 싫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쫓아다니는 스토커처럼 계속해서 따라붙는다.

 

 이럴 때면 모든 것을 다 그만둬버릴까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민다.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해 보이는 선택지는 무심코 잡아채고 싶을 정도였으나 그럴 때면 언제나 질척질척하고 검은 무언가가 그를 옭아맸다. 항상 그것을 이기지 못해 눈 앞의 탐스러운 과실을 취하지 못했다.

 

 오늘도 역시 탐스럽게 익은 붉은 과실이 눈 앞에 나타났다. 당장 잡고 싶은 마음이 불쑥 일어났으나 못 잡을 터였다. 그럴 바엔 차라리 저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나으리라.

 

 여전히 그의 눈 안에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단조로운 풍경만이 들어찼다.

 

  '똑똑'

 

 시선은 온통 흑백일 뿐인데도 소리만은 선명하게 귀에 들어왔다. 이 곳은 그의 집무실. 그리고 그의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으니 방의 주인인 그로써는 승낙의 말이든 거절의 말이든 들려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나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은 다른 일들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이 정도는. 이런 사소한 것 정도는 하지 않아도 되겠지. 화풀이 대상이 틀린 것은 알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용납해주었으면 했다. 이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어차피 그가 대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지는 못할 터였다. 그는 이 나라에서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뒤에서 욕은 할 지언정 앞에서는 아첨의 말을 꺼내야만 하는.

 

 그러니 문을 두드린 사람의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문을 다시 두드리거나, 아니면 포기하고 돌아가거나.

 

 전자는 자신이 대답을 하지 않을 것이니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당사자에게도 자신에게도 좋지 않을까 가만히 생각하며 그는 그렇게 서 있었다. 여태까지처럼 미동 하나 없이 창 밖의 햇살을 받으며 그저 그렇게. 소리가 들려오는 문으로는 시선 한 번 던지지 않았다.

 

 깨질 듯 아슬아슬해 보이면서도 절대 깨지지 않을 무언가를 두른 채 그저 가만히 서있을 뿐.

 

  '벌컥'

 

 그러나 그 무언가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문이 다시 한 번 소리를 냈을 때였다.

 

 그가 생각했던 것들 중 소리를 내는 선택지는 한가지였다. 문을 다시 두드리는 것. 그러나 문이 만들어 낸 소리는 노크 소리가 아니었다.

 

 방의 주인에 대한 예의라고는 한 톨도 담겨있지 않은 소리. 그래. 말하자면 문이 벌컥 열리는...응? 소리의 종류를 인지함과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의문이 들어찼다. 문이 열렸다.

 

 방 주인인 그의 허락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일어난다? 그건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아주 단단히 미친 놈이거나, 그를 죽일 생각을 가진 사람이거나.

 

 둘 중 어느 것이라도 그에게는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무언가 행동을 해야 했다. 그러나 한 편,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뭐 어떠랴. 지금 그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더라도.

 

 결국 자신의 귀에 들려온 소리를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서 있었다. 미동 하나 없이.

 

 하지만 침입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그의 머리에는 새로운 가능성이 피어났다. 몸 또한 멋대로 움직여 침입자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전하. 지금 뭐하고 계신 겁니까. 드디어 눈에 문제라도 오신 겁니까? 전하 눈에는 스틱스 강 뱃사공과 이야기를 나누는 서류들이 보이지 않으신답니까?"

 

 안경 맞춰달라고 시위하는 게 아니시라면 얼른 자리에 앉아 펜을 잡으시지요. 허락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주제에 창가에 선 그를 발견하고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침입자를 바라보았다. 미간을 찌푸릴 법도 한 상황이었으나 그럴 겨를도 없었다.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그로 하여금 생각을 멈추게 만들었다.

 

 침입자는. 여전히 흑백으로 보이는 풍경 안에서 신기하게도 색을 띠고 있었다.

 

 새로운 가능성. 감히 황태자의 집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당당하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자. 자신의 보좌관을 바라보던 그는 피식 웃고 말았다. 보좌관으로부터, 그 손이 닿고 걸음이 닿는 부분부터 천천히 색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바깥의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보다 서서히 색이 물들어가는 이 광경이 더욱 아름다웠다.

 

  "뭐가 그리도 즐거우십니까?"

 

 저 불만에 가득 찬 표정도. 어서 서류처리나 해달라 종용하는 시선도. 재미있기 짝이 없다. 분명 직책은 보좌관일진데 존경심 따위는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다. 재미있지 않은가.

 

 어느새 그의 몸은 전부 제 보좌관을 향해 있었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던 웃음은 꽃이 피어나듯 싱그러움을 담기 시작했고 그 눈동자는 눈 앞의 색채를 담아냈다. 쫓아내려 애를 쓰던 생각들은 어느새 전부 달아나 버렸다.

 

  "즐겁다니, 실례로군 그래."

  "아아 그렇습니까. 그럼 어떤 상태인지 설명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짐짓 웃음을 지워내며 말하니 하나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불신이 가득한 표정으로 눈 앞에 있는 글을 읽는 것 같은 반응이 흘러나온다. 그 모습이 또 유쾌했지만 말하던 것이 있었기에 여전히 웃음은 지운 채 말을 이었다.

 

  "난 지금 매우 상심한 상태라네. 자네는 이것이 보이지 않는가? 이 잔뜩 쌓인 서류들을 홀로 처리하느라 나는 내가 무너지고 부서져 조각조각 흩어지는 경험을 겪었다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겪고 살아가는 것이겠지만 말이야. 그런 생각에 참고 넘어가려 했네만 아무래도 부서진 내 조각을 모으다가 몇 개를 빼먹은 모양이야. 그게 아무래도 기력이 아닌가 하는데."

 

 자, 이 정도면 이해하겠나? 난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딸린단 말일세.

 

 살짝 풀이 죽어 보이는 표정을 첨가하며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과연 어떤 반응이 흘러나올까 반쯤 기대를 섞어 바라보는데 그 반응이 참... 어느 정도 예상은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정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하나...

 

  "흐음. 그러하십니까. 그럼 피로회복제를 가져올테니 그 때까지는 남은 기력으로 서류 처리를 하고 계시지요. 피로회복제를 드신 다음에는 좀 더 수월히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어디서 수작질이야? 지금 저 표정을 글로 묘사하라고 한다면 이보다 더 잘 맞는 표현은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노골적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절대 상처받지 않았다. 상처받기엔 그는 너무나도 즐거웠다.

 

 보좌관의 바램대로 자리에 앉을 생각은 한 톨도 없는 그의 입가에 한 층 더 진한 미소가 걸린다.

 

  "피로회복제라. 그것보다 확실한 피로회복 방법이 있는데 말이지. 애초에 피로가 아니라 기력부족이니 이 쪽이 더 맞을 걸세."

  "무슨 방법입니까?"

 

 이번에는 '무슨 방법이든 상관없으니 그냥 닥치고 자리에 앉아 서류처리나 해주었으면 좋겠다.' 로군. 저렇게 생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잘리지 않는 것도 참 용한 일이다. 대체 상사가 누군지 참 착하군.

 

 음? 그거 나로구먼.

 

 살짝 실없는 생각을 한 그는 말을 잇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항상 이 부분이 즐겁다. 반응이 너무 재미있거든. 벌써 무슨 말이 나올지 눈치 챈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웃음이 나온다.

 

  "바지 좀 벗어주겠는가, 그대?"

 

 레트비온 제국의 황태자 레트라 드 레트비온은 너무나도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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