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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잿빛세상에 뜬 붉은 달
작가 : AT하나
작품등록일 : 2017.12.6

가상세계인 'D월드'가 상용화된 현재, D월드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처리하는 VA수사대원으로 일하게 된 주인공 린느 후즈가 겪을 미래의 이야기

 
009. 세잎클로버(3)
작성일 : 17-12-10 23:29     조회 : 250     추천 : 0     분량 : 9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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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곧 건물 가까이 갔을 때, 노아를 기다리고 있던 봉사자가 노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대표님, 와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에요. 이쪽은 오늘 도와줄 린이에요. 어디로 가면 될까요?”

  “이쪽이에요.”

 

  어쨌든 노아도 린이 ‘루나’라고 불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는 걸 알기에,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에게 ‘린’이라고 소개했다. 반이 ‘루나’라는 애칭을 들은 건, 노아가 린을 부르는 걸 들었을 뿐이고 말이다. 봉사자를 따라 노아와 린은 그 건물 2층으로 갔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 문 앞에 섰다. 문에는 ‘안정실’이라고 적혀 있다. 린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린과 노아를 그쪽으로 안내한 사람은 짧게 설명을 덧붙였다.

 

  “이곳은 신경 쪽에 문제가 생겨 장애를 가진 분들이 계시는 곳이에요. 특히나 ‘안정실’에는 이렇게 된지 얼마 안 된 분들이 계셔서 매우 예민하세요. 그러니까 조금 더 조심스럽게 행동해주셔야 해요. 일단 안정실에서 시트 확인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갈아야 하는 건 제가 할게요. 확인만 부탁드려요.”

  “네.”

 

  노아는 린을 돌아보았다. 린은 노아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고 이내 옅게 미소를 보였다. 린과 노아가 안으로 들어갔다. 안정실은 매우 조용했다. 그리고 안정실 안에 있는 특수침대에서 나오는 파란빛만이 유일한 빛이었다. 안정실은 남자들이 있는 곳과 여자들이 있는 곳이 나뉘어 있었는데, 린과 노아가 맡은 곳은 여자들이 있는 쪽이었다. 남자들 쪽은 다른 봉사자가 확인해주고 있다고 이미 들은 터이기 때문이다.

  린은 이곳에 별로 오고 싶지 않았다. 이곳은 장애인들의 숙소와도 좀 별도로 떨어져 있는 곳이다. 요새 특별히 관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한데, D월드 접속에 실패한 사람들이 신체에 장애를 갖게 되어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지내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린에게 D월드라는 건 평화의 상징이기 때문에, D월드로 인해 이렇게까지 심하게 다치고 장애까지 생긴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힘든 일이었다. 이 사람들도 D월드에서 평화롭게 지내고 싶어서 접속을 택한 것일 텐데, 결과가 이렇게 되었으니 얼마나 예민할까. 예민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린과 노아는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신경이 상했다고는 하지만, 모두 다 똑같은 곳을 다치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팔에, 어떤 사람은 다리에, 어떤 사람은 시력에, 청력에…. 침대 발치에는 어디가 아픈지 적혀 있다. 그래서 최대한 그 사람들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두 사람은 조용히 시트와 환자복을 확인했다. 그래도 안정실에는 많은 사람들을 두지 않기 때문에 일이 금세 끝날 것 같았다. 마지막 환자만 체크하고 나가려고 하는 순간, 린의 핸드폰이 주머니에서 빛을 냈다. 문자가 온 모양이다. 린은 일부러 이곳에 올 때 무음을 해두는데, 이렇게 어두운 곳이다 보니 주머니에서 빛이 뚫고 나왔다. 린은 당황해서 손으로 빛을 가렸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노아가 얼어 있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지막 자리에 누워 있던 환자가, 일어나 앉아 있다. 그리고 정확히 린의 주머니 쪽을 보고 있다. 환자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숨을 들이마시기만 했다. 노아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환자에게 달려갔다. 곧 환자는 울부짖기 시작했다.

 

  “아파!!!! 아니야.. 대체 왜 나한테.. 내가 왜 이런 일을……!!!”

  “시끄러워!! 귀가 울리잖아!!”

  “너만 억울한 게 아니야….”

  “루나, 정신 차려! 얼른 도움을…!”

  “너 때문이야!!”

 

  노아가 환자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다가, 다른 환자들마저 울음소리에 반응해 요란해지기 시작하자, 린에게 밖에 나가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했다. 린은 곧장 그렇게 하려고 움직이려다, 문가에 있던 환자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걸 보았다. 겨우 짓눌리는 건 면했지만, 다리를 붙잡혔다. 게다가 말도 안 되는 괴력을 내고 있다. 다리 한 쪽이 움직이지 않는지, 왼쪽 다리가 질질 끌리고 있다. 린은 겁에 질렸다. 다른 봉사에선 이런 일이 없었다. 게다가 그 사람은 계속 ‘너 때문이야’라고 말하고 있다. 밖에 소란이 들렸는지, 의사와 간호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린은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 환자를 떼어주고 자신을 붙잡아 밖으로 데리고 나온 걸 알았다. 아, 아직 노아가…!

 

  “대표님이라면 괜찮을 겁니다. 확인했어요.”

  “아…네…….”

 

  린은 대뜸 두통이 오는 걸 알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다리를 굉장한 힘으로 끌어안은 채 ‘너 때문이야’라는 말을 했던 환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보는 그 모습은 기괴스럽기 짝이 없었다. 도와주러 왔다가, 오히려 고통을 준 게 됐다. ‘너 때문’이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안정실에는 전자기기는 안 들고 들어가는 게 좋아요. 그것 때문에 다친 사람들뿐이니까.”

  “…제가 안일했네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분명히 도와주려고 오신 걸 텐데, 놀라셨겠네요.”

 

  린은 그때야 자신을 도와준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멀끔하게 생긴 남자다. 키가 굉장히 컸고, 밝은 금발을 좀 길게 기르고 있다. 옅은 하늘색 눈동자. 전형적인 색슨족 계열의 사람이다. 얼굴은 희다 못해 창백해 보인다. 그 때 안에서 나온 노아가 린을 보고 괜찮냐고 물었다. 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노아가 린을 구해준 그 백인을 보며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해요, 로빈씨. 얘는 여기가 처음이어서 많이 놀랐을 거예요.”

  “아닙니다. 어차피 도우려고 여기에 온 건데요.”

 

  로빈이 옅게 웃는다. 린은 가만히 로빈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좀 닮았다. 자신이 자주 형성하는, VA의 모습과 말이다. 물론 자신의 VA는 여성이고, 로빈은 남자지만.. 생김새도 묘하게 비슷하다. 머리색이나 눈 색깔, 피부색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이 정도로 닮은 사람이 어떻게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린은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로빈을 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본 기억은 없는데…로빈도 별로 린을 알아보는 기색은 아니었다. 오히려 로빈은 린의 그 모습에 아주 약간, 당황한 것 같다.

 

  “저…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아! 아뇨. 죄송해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린이라고 합니다.”

  “로빈이라고 합니다. 너무 겁먹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쪽으로는 봉사자가 잘 오려고 하지 않아서 일손이 언제나 부족하거든요. 린씨라도 자주 오실 수 있다면 큰 도움일 겁니다.”

 

  로빈은 미소를 보이고는, 안정실 사람들이 진정된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곧 안에서 나온 의사, 간호사들과 여유롭게 대화도 한다. 이곳에 오래 있던 사람인 모양이다. 그리고 의사와 함께 어디를 향하는데, 다리 한 쪽을 절뚝거린다. 왼쪽 다리다. 걷는 게 불편한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린을 구해준 게 참으로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로빈의 몸은 꽤 많이 기우뚱거린다. 린은 심호흡을 다시 한 번 하곤 노아에게도 사과했다.

 

  “미안, 나 때문에 오히려 더 곤란해져서..”

  “아니야. 내가 제대로 확인 안 한 것도 문제였고, 네가 힘들어하는 것도 알고 있었는걸. 부상자는 없는 것 같아. 그만…돌아갈까?”

  “아니, 괜찮아. 너는 좀 더 도와드려. 난 세탁실 쪽이나 다른 기기 문제 같은 거 봐드릴게.”

  “…응. 고마워.”

 

  린은 다시 환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조금 두려워져서, 다른 업무들을 맡기로 했다. 그 얘기를 하니, 마침 말썽인 세탁기가 있었다고 해서 린은 그것을 손봤다. 손보면서도 방금 전에 겪은 일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잔음이 남았다. 계속 자신을 향해 외치는 소리가 반복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린이 VA수사대가 되기 전에 이런 일을 겪었다면 좀 덜했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전에도 린은 D월드를 지키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수사대원까지 되어서 좀 더 힘든 건 있을 지도 모른다. 왜 인지는 솔직히,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더라도 말이다. 린이 직접 그들을 다치게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상한 책임감이 생겼다. 그런 D월드를 누리는 사람으로서 가지게 된 책임일까. 린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곧 고개를 내저었다.

  린과 노아가 그곳에서 나섰을 때, 린은 매우 지쳐있었다. 노아는 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준비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무작정 데려갔던 걸까? 수사대원이 되기 이전부터 D월드에 대한 책임감이 이상하리만큼 많았던 아이였는데…분명히 접속실패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된 분들을 보기 어려울 거란 건 예상했는데.. 노아는 걸어가면서 다시 한 번 린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루나. 내가 너무 밀어붙여서..”

  “그만, 노아. 나 지쳤어. 다음번엔 좀 더 잘 해볼게. 우리 좋은 일 하려다가 실수한 거잖아.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이해해가면서 도와드리면 될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린의 말에 노아는 매우 감격한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어느 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린이 움찔하자 노아는 린에게 달려들어 린을 꼭 끌어안았다. 물론 린 쪽이 더 키가 컸기에 노아가 매달린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린은 노아를 떼어내고 반이 갔던 복지관 쪽으로 다시 움직였다.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반도 아마 지쳤을 것이다. 린은 걸어가면서 반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반은 벌써 그쪽에서의 일을 끝내고 아동관으로 간 모양이었다. 노아에게 말하니, 둘은 곧 바로 옆으로 지나가고 있던 아동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반이 아이들하고도 잘 맞나봐. 하긴, 워낙 성격이 밝은 아이니까.”

  “그런 체질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긴 하겠지.”

 

  린도 그 부분만은 인정했기에 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이 2층으로 올라가 해바라기 반 쪽으로 몸을 돌렸을 때, 아까 린에게 그랬듯 반을 둘러싸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많이 친해진 것 같다. 반은 아이들이 매달려 있어서 좀 힘들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반은 아이들에게 놓아달라고 말하다가, 노아와 린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씩 웃는다.

 

  “누나 왔어? 노아씨도 안녕하세요.”

  “고생이네. 얘들아, 다쳐. 내려와.”

  “그래. 그러다가 반이 다시 안 온다고 하면 어쩌려고?”

  “아니에요! 온다고 했어요. 약속 했어요!”

  “남자는 약속 지키는 거라고 했어. 그치?”

  “그래.”

 

  아이들이 다시 환호하며 반에게 달려들다가 린이 다시 한 번 다그치니 그때야 떨어졌다. 반은 지쳤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방금 전에 여기 도착했는데, 여기에 가기 전에 들르겠다는 말을 지켰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이렇게나 좋아할 줄 몰랐다. 아이들이 선생님과 노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고, 린은 반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었다.

 

  “그래도 제법이네. 친해진 것 같아 보여서 다행이야.”

  “응. 좀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어. 이 애들도 나를 좋아해줘서 기뻤고.”

 

  반이 배시시 웃는다. 린은 아직도 사랑이 고픈 꼬맹이인가 싶었지만 그런 말을 굳이 내뱉지는 않았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었으니까. 그 때 안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 엔이 반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반이 엔을 보았다. 아직도 묻지 못했다. 반은 엔이 듣고 싶은 대답은 꼭 해줘야겠다고 생각했기에, 린이 있었지만 그냥 엔에게 이야기해주기로 했다. 독립하고 나서 꼭 하고 싶었던 것.

 

  “사람을 찾고 있어. 나한테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서, 꼭 찾아야만 하거든.”

  “여자 친구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정말 중요한 사람.”

 

  엔은 반의 표정을 보고 그게 진짜라고 느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생기는 거구나. 이렇게 큰 형도 꿈을 찾아 헤매는구나. 그리고 결국 할 일을 찾는 거구나. 엔은 아주 약간 안심했다. 하고 싶은 일이 어떻게 해도 생기지 않는 게 이상했는데, 그게 자라는 게 다르듯 다 다른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 키도 언젠가는 저 형처럼 크려나. 엔의 마음은 아주 많이, 편해졌다. 그리고 장난기도 다시 돌아왔다.

 

  “그럼 여자 친구는 린 누나야?”

  “뭐? 엔, 너 그런 소리 할래?”

  “아니야, 그런 거. 하지만 친한 누나동생은 되고 싶어.”

  “친한 누나동생이면 여자 친구지! 형은 누나가 좋구나?”

  “응, 그건 맞아.”

  “반, 너 진짜! 애들한테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어머? 린 귀가 빨개졌네?”

 

  안에서 나오고 있던 노아가 한 마디 덧붙이자 엔은 신이 난 듯 안으로 달려 들어가 자신이 방금 발견한 사실을 아이들에게 마구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앞 다투어 밖으로 나와 린과 반을 쳐다보며 웃고 있다. 반이 말한 건, 정말 친한 누나동생 사이가 되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그리고 린의 귀가 빨개지는 건, 꽤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감정컨트롤이 잘 안 될 때에도 그랬지만,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될 때에도 그랬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귀는 좀처럼 식을 줄을 몰랐다. 노아도 같이 웃음을 터뜨렸고, 린은 애꿎은 반을 노려보았다. 반은 억울했지만 어쨌든 자신의 말 때문에 엔이 저렇게까지 한 걸 알기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시끌벅적한 해바라기 반에서 벗어난 노아와 린, 반은 린의 기분이 매우 나쁘다는 걸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나왔다. 노을이 지고 있다. 린은 씩씩거리며 걸어가다가 우뚝 멈추고는 뒤를 돌았다.

 

  “너, 얼른 차 갖고 와.”

  “아, 응!”

  “노아, 그리고 방금 애들이 놀린 걸로 날 놀리면 진짜….”

  “안 해. 걱정 마. 네 귀가 한두 번 빨개지니?”

 

  하지만 그러면서 웃는 노아의 얼굴에 린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식으로 직장 동료랑 이상하게 엮이는 거 정말 싫은데! 일할 때 방해된단 말이야…. 린은 정말적인 감각이 들어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곧 노아가 린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이으니 그것을 듣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우리 루나가 즐거워보였네. 최근엔 여기 와서도 별로 기분이 안 좋았잖아.”

  “무슨 소리야, 노아. 여기니까 내가 마음이 편한 것뿐이야. 여기뿐이라고. 너도 잘 알잖아.”

  “하지만 분명히 느껴졌어. 오늘만큼 손꼽을 정도로 즐거워 보이는 루나 보기 어려웠는걸. 반에게 감사하네.”

  “걔 얘기가 왜 또 나와?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할래?”

  “알았어, 알았어. 정문 쪽으로 가자. 그래야 차 타기 편하니까.”

 

  노아가 린을 달래서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린은 여전히 입을 삐죽거렸지만, 곧 반이 끌고 온 차에 타서 노아와 작별인사를 할 땐 다시 웃는 얼굴을 보였다. 곧 세잎클로버에서 나와 돌아가는데, 반의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치긴 한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배가 고프다고 꼬르륵 소리가 날 줄이야. 반도 처음 겪는 상황에 매우 당황했다. 린은 반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음식을 오랜만에 먹어서 위가 반응을 보인 것 같다. 캡슐 같은 걸로 영양소만 채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일 테니 말이다.

 

  “뭐야. 배고파? 뭐라도 먹을까?”

  “그, 그렇긴 한데 이렇게까지 요란한 소리가 난 건 처음이라고..”

  “그럼 내 비밀 아지트로 데려가주지.”

  “비밀 아지트?”

  “진짜 비밀이다. 알려지면 네 탓이야.”

  “응.”

 

  반이 정말 배가 고팠는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린의 방향지시를 기다렸다. 린은 다시 한 번 풋, 웃고는 오른쪽을 가리켰다. 이리저리 복잡하게 꼬인 길을 지나고 있다. 어느 새 린의 집 근처까지 오기는 했는데 린의 집은 보이지 않는다. 정확히는 린의 집 뒤쪽인 것 같다. 그리고 어느 골목에 세우라고 하더니만, 린이 차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반도 따라서 내려서 린의 뒤를 따라갔다. 린이 걸음을 멈춘 곳은, 매우 어두운 곳이었으나 가게 맞은편에 있는 가로등 하나로 밝히고 있는 허름한 가게였다. 센트럴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허름한 곳이었다. 게다가 가게가 닫혀 있다. 반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린에게 왜 그쪽으로 가냐고 물으려다가, 린이 가게 앞마루에 앉아 가게 문을 두 번 노크하자, 문에서 작은 창문 같은 것이 열리며 어떤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 걸 목격했다. 린은 그쪽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오늘은 좀 어때요?”

  “끌끌. 아주 좋지. 뭐든 있어.”

  “그럼 오늘은….”

 

  린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반을 슥 보고는 손가락 두 개를 보였다. 그러자 문이 다시 닫힌다. 반은 마치 무슨 밀수 현장을 목격한 것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린은 그런 반을 보며 다시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꾹 참았다. 곧 다시 그 문이 열리고 뭔가를 담은 종이봉투가 쓱 나왔다. 그리고 문이 다시 닫힌다. 린은 멀뚱히 보고만 있는 반에게 턱짓으로 앉으라고 하곤 종이봉투 안을 뒤적인다. 반은 얼떨떨한 얼굴로 린에게 조용히 물었다.

 

  “뭐야, 방금 그 할아버지…? 엄청 수상하게 생겼는데….”

  “음? 과일가게 아저씬데. 자.”

  “어?”

 

  의외의 대답에 놀라는 반의 앞으로 꽤 커다란 사과 하나를 내미는 린. 그리고 종이봉투 안에서 사과를 하나 더 꺼내고는 린이 먼저 덥석 먹는다. 반은 아까 그 할아버지가 준 걸 먹어도 괜찮은 건지 의심하려고 했으나 린이 먼저 저렇게 먹고 있으니 일단은 먹었다. 그리고 정말 맛있어서 금세 한 입 더 베어물었다. 린은 다시 생각해도 웃긴지 다시 한 번 쿡쿡거리며 웃곤 반에게 입을 열었다.

 

  “저 아저씨가, 그런 첩보영화를 좋아해. 그래서 내가 근처에서 과일 가게를 찾다가 겨우 발견한 곳이 여기였는데, 밤에 올 땐 꼭 그렇게 해달라고 말씀하시기에 그렇게 하고 있어. 근데 나름대로 재밌더라고.”

  “아…진짜 그것뿐이야?”

  “응. 그쵸, 아저씨?”

  “아니, 혼자 올 줄 알고 그런 부탁 한 건데 왜 또 똘마니까지 데리고 왔어? 큼큼.”

 

  의외로 아저씨는 반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게 좀 민망했던 모양이다. 반도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비밀아지트라기에는 지나치게 어두운 곳이기도 하고, 의자도 제대로 된 게 없었지만, 하나 분명한 건 처음보다는 느낌이 괜찮다는 것이었다. 처음 왔을 땐 왜 이렇게 이상한 곳으로 오나 싶었는데, 조용한 것이 어두울 때 오니까.. 밤 산책을 나온 기분이었다. 물론 지금 시간은 그렇게 아주 밤은 아니지만 말이다. 금세 사과 하나를 먹어 치운 린은 종이봉투 안에서 물티슈를 꺼내 손을 닦아내곤 반도 다 먹은 걸 봤는지 종이봉투에서 물티슈를 꺼내 주었다. 그리곤 언제나 자신이 여기에 와서는 집까지 가져가지 않고 여기서 먹으니 꼭 물티슈를 챙겨주신다고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생각보다 굉장히 친절한 할아버지구나.. 반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과를 먹으니 속이 제법 든든해졌다. 린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만 반에게 입을 열었다.

 

  “그럼 난 여기서 집으로 바로 갈게. 가까워.”

  “내가 데려다줄게.”

  “됐어. 세잎클로버까지 데려다주고 그랬는데, 뭐. 충분해. 내일 회사에서 보자.”

  “응.”

  “그리고 세잎클로버 얘긴 웬만하면 다른 사람들한테 하지 말아줘.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거기 다닌다는 거. 별로 생색내고 싶은 것도 아니니까.”

  “명심할게.”

 

  린은 고개를 끄덕이곤 익숙하게 어두운 골목으로 뛰어가 버렸다. 반은 왔던 길로 가서 차를 타고 되돌아갔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겨우 씻고 순식간에 잠들었다. 그건 린도 마찬가지였다. 피곤하긴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제법, 의미 있는 피로여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작가의 말
 

  세잎클로버 에피소드는 일단 여기에서 끝입니다:) 다시 수사대의 일상으로 돌아가야겠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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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008. 세잎클로버(2) 2017 / 12 / 9 247 0 12680   
7 007. 세잎클로버(1) 2017 / 12 / 9 262 0 9112   
6 006. 수사대 첫 임무(4) 2017 / 12 / 9 233 0 4911   
5 005. 수사대 첫 임무(3) 2017 / 12 / 9 227 0 10289   
4 004. 수사대 첫 임무(2) 2017 / 12 / 7 238 0 7314   
3 003. 수사대 첫 임무(1) 2017 / 12 / 7 241 0 10554   
2 002. VA수사대(2) 2017 / 12 / 6 258 0 6350   
1 001. VA수사대(1) 2017 / 12 / 6 393 0 1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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