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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공포물
경성크툴루
작가 : 최믹하
작품등록일 : 2017.11.17

경성에서 일어나는 수상한 일들, 괴력난신 소녀와 유학파 탐정사무소 소장님이 진실을 파헤쳐갑니다.

 
평이한 시체 이야기 (6)
작성일 : 17-12-10 20:29     조회 : 515     추천 : 0     분량 : 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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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말했다.

 

 “말해주세요, 규현 씨. 사후세계는 좀 어때요?”

 “음…”

 “산 사람에게는 비밀인가요?”

 

 규현 씨는 느리게 대답했다.

 

 “음, 지금 너무 졸려서…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역시 영원히 잠드는 건가요.”

 

 규현 씨는 힘없이 웃었다.

 물론 나도 규현 씨가 잠들지 못하게 하려고 시덥잖은 말을 거는 감도 약간 없다못해 있었다. 규현 씨는 자신의 예견대로 이제 슬슬 의식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가물가물하고 있었다.

 

 우리는 연희동 공동묘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물론 자전거였다.

 

 어떻게 규현 씨를 무덤으로 다시 데려갈지 고민한 끝에, 우리는 내가 타고 온 자전거 짐 칸에 방석을 접어서 끈으로 묶은 뒤, 거기 가물거리는 규현 씨를 앉혔다. 규현 씨의 등에는 큼직한 삽이 두 개 메어져 있었다. 그 동안 경아 씨는 집구석을 뒤져서 거뭇한 거적데기 같은 것을 하나 들고 왔다. 누군가 이 모습을 본다 해도 추워하는 빈민 정도라고 생각하기를 애써 바라면서.

 규현 씨가 썩어가는 몸과 삽을 거적데기로 숨긴 뒤, 우리는 긴 인사 없이 빠르게 헤어졌다. 규현 씨는 당장이라도 다시 시체로 돌아갈 것 같았고, 산 사람 세 명 중 누구도 썩어가는 시체를 등 뒤에 태우고 달리다가 순사를 마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규현 씨도 폐를 끼칠 생각은 없었다.

 

 우리는 으슥한 골목을 주로 이용해서 달렸다.

 약간 빙 돌아가는 감이 있었지만, 쓸데없이 사람과 마주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내가 서울 지리에 능하지는 않았지만, 규현 씨는 그럭저럭 내가 방향을 헛갈릴 때마다 길을 안내할 수 있을 정도로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연희동이유.”

 “거의 다 와가는군요.”

 “이제 공동묘지까지는 진짜 인적이 드물겠시유.”

 

 규현 씨는 잠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다급하게 되물었다.

 

 “규현 씨?”

 “아, 아… 죄송합니다. 뭐라고 했죠?”

 

 다행히 규현 씨는 바로 대답했다.

 이따금씩 의식이 깜박깜박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의식이 사라지는 간격이 길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랬으면 진작에 자전거에서 고꾸라졌겠지.

 나는 재촉하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려고 애쓰며, 부드럽게 한번 더 이야기했다. 얼결에 서울 말씨가 나왔다.

 

 “공동묘지까지는 인적이 드물 것 같다고요.”

 “예, 굳이 이 밤중에 공동묘지를 올 사람은 별로 없겠죠… 최대한 빨리 묘지로 돌아가고 싶군요; 너무 졸려서…”

 

 규현 씨는 잠에 취한 사람 같은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들으니 죽음을 영원한 잠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힘을 주어 페달을 밟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네, 미안해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규현 씨는 겸연쩍다는 듯 웃었다.

 

 “미안하기는요. 제가 신세지고 있는데.”

 “아뇨, 미안한 건 이제 난폭운전을 할 거라.”

 “헉.”

 

 인적이 드물어진다면, 사람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달려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허벅지에 꽉 힘을 줬다. 귀에서 바람 스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급변하는 속도에 규현 씨는 당황해서 내 어깨를 붙들었다. 나는 흘끔 등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꽉 잡으시유.”

 “네, 네.”

 

 어쩐지 역할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인데.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힘차게 연희동 공동묘지로 향했다. 약간의 오르막이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힘찬 발길질에 자전거는 날듯이 언덕을 달렸다. 규현 씨가 지난 3년간 누워있던, 그리고 앞으로도 누워 있을 곳이 천천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진짜… 난폭운전이군요….”

 “금방 가자매유.”

 

 자전거 바퀴가 돌부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폐부에 가해지는 거친 충격에 규현 씨는 강제적으로 숨을 확 내쉬었다.

 

 “컥, 네, 그랬죠…”

 

 망자의 원한과 후회는 여기서 생겨나지 않을까 싶은, 거친 귀갓길이었다.

 

 

 우리가 공동묘지에 도착한 것은 달이 공동묘지 위로 휘영청 떠오를 때 쯤이었다.

 

 운좋게 순사나, 우리를 유심히 보는 사람까지는 만나지 않았지만, 이제 공동묘지니 묘지관리인이 있을 법도 한데… 시체를 돌려주러 온 거니까 만나도 좀 봐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닌가… 역시 한 방 먹이고 도망가야 하나…

 

 다행히도 쓸모없는 걱정이었다.

 묘지 초입에 자전거를 세우고 산기슭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겨도, 이따금씩 들리는 들짐승의 소리나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기이하게 흐느끼는 바람 소리 외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규현 씨를 돌아보았다.

 

 “관리인이 있을 법한디… 안 보이네유.”

 “그러게요. 생각해보니 저도 만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밤엔 퇴근하나…”

 

 말은 그렇게 해도, 여전히 우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여차하면 묘지 뒤로 몸을 날릴 각오를 하며 걷고 있었다. 커다란 삽을 지고 있어서 뭔가 도굴꾼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아무도 만나지 않으면 좋을텐데.

 

 공동묘지 위에는 보름달 비슷한 것이 휘영청 떠 있었다.

 환한 달빛이 묘비들을 내리쬐고 있었다.

 그야말로 월하의 공동묘지였다.

 

 의외로 시체와 함께 걷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별로 무섭거나 으슥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을 만날까봐 잔뜩 긴장하고 있어서겠지. 차라리 다른 시체나 귀신을 만나는 건 그렇게 무섭지는 않을 테니까.

 귀신, 귀신이라.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귀신이면 나타나고 사람이면 썩 물러가라…”

 “무슨 말입니까?”

 “아, 아니유, 생각나서.”

 

 나는 대충 대답했다.

 소장님과 손이 묶인 귀신을 만났던 이야기를 규현 씨에게 할 필요는 없겠지. 그러고보니 요즘 죽었던 사람을 자주 만나고 있다. 뭐, 그런 이야기를 다 할 정도로 우리에게 시간이 남아나는 것도 아니었다.

 

 “자, 그러믄… 무덤은 어디 있을까유?”

 

 나는 옆으로 지나가는 묘비들을 눈으로 훑으며 중얼거렸다.

 송현 씨가 중턱 쯤이라고 이야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바로 알 수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애초에 공동묘지라는 곳에 와본 것도 처음이다. 규현 씨도 생전에 자주 와봤을 리는 없는 것이고.

 하지만 의외로 규현 씨는 자기 무덤을 금방 알아봤다.

 

 “아, 여깁니다.”

 “생각보다 바로 알아보시네유.”

 

 자기 무덤 앞에 서서 손을 흔드는 규현 씨를 향해, 나는 삽을 들고 다가갔다. 슬슬 육체노동의 시간이었다.

 규현 씨는 나를 향해 상큼하게 웃었다.

 

 “제가 같이 무덤을 파다 잠들면, 미안합니다만 혼자 좀 부탁드립니다. 어려운 부탁은 아니죠?”

 “고의적으로 먼저 자지 마시유.”

 “아뇨, 그냥 필연적일 겁니다.”

 

 완전 고의적으로 느껴지는 말인데. 나는 삽을 들어올리며 입을 비죽였다.

 

 “젠장, 힘 자랑을 하는 거시 아니었는디.”

 

 규현 씨는 낄낄 웃었다.

 

 “오른 손목의 원한을 갚을 때가 왔군요.”

 “아이구, 내가 내 무덤을 팠구먼.”

 “사실 파야하는 건 제 무덤이지만요.”

 

 우리는 시덥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땅을 파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땅을 파는 것은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았다. 규현 씨와 내 어깨 위로, 그리고 죽어버린 무덤의 잔디 위로 시리도록 달빛이 떨어지고 있었다. 커다란 달이 떠오른 공동묘지 치고는 굉장히 생활감 넘치는 상황이었다.

 나는 죽은 잔디를 한 삽 퍼내고, 다시 옆에서 죽은 잔디를 한 삽 더 퍼낸 뒤 의아한 표정으로 규현 씨에게 말을 걸었다.

 

 “흠, 잔디가 죄다 죽어있네유.”

 

 역시 죽은 잔디와 뒤섞인 흙을 한 삽 퍼낸 뒤, 규현 씨는 흘끔 자신의 묘지를 둘러보고는 대충 상황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땅을 마구 헤치고 나왔으니… 아마 그걸 대충 덮은 모양입니다.”

 “그런 것 치고는 옆 자리 무덤도…”

 

 나는 규현 씨 무덤의 옆 무덤을 흘끔 바라보며 말했다. 옆의 무덤도 잔디가 하얗게 죽어 있었다. 뭔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방금 전의 말을 곱씹었다.

 

 “…옆의 무덤도… 잠깐?”

 

 잠깐, 잠깐, 잠깐.

 나는 기겁해서, 삽을 움직이다 말고 벼락처럼 규현 씨를 돌아보았다.

 

 “잠깐, 잠깐. 깨어났을 때… 혼자였나요?”

 

 규현 씨는 잠깐 내 기세에 눌렸지만, 천천히, 그 말의 뜻을 헤아리는 듯 시선이 허공을 더듬다가… 이윽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얼굴로, 찡그린 눈썹과 살짝 벌린 입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니요, 아니었어요.”

 

 놀랍도록 환한 달빛이 공동묘지를 내리쬐고 있었다.

 

 산기슭을 깎아 만든 공동묘지여서, 길게 늘어선 묘지들이 비탈을 따라 줄지어 서 있었다. 산 중턱에 위치한 규현 씨의 묘지. 그렇다면, 여기서 한 눈에 볼 수 있는 묘지는 전체의 반 정도다…

 

 나는 발 아래 드리워진 공동묘지들을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죽은 잔디는 달빛 아래서 희끗하게빛나고 있었다. 푸른 잔디가 아니야. 희게… 잔디가 죽어 있는 묘지는…

 

 “다섯 개.”

 “그럼 저 위는 몇 개나 더 있을까요…?”

 

 규현 씨와 나는 사색이 되어서 서로를 바라봤다.

 떨리는 시선이 서로의 당황과 공포로 거미줄처럼 얽혀들었다.

 도대체 이 도시에 복수를 위해 깨어난 망자는 몇 명이나 되는 걸까. 얼마나 더 많은 시체가 경성을 배회하고 있는 걸까.

 

 우리의 창백한 얼굴을 달빛이 비춰주고 있었다.

 

 끝.

 

 
작가의 말
 

 평이한 시체 이야기, 끝입니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어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수는 있겠죠.

 최선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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