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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ANTI(안티)
작가 : 고전부
작품등록일 : 2017.10.30

한 독자의 초대장을 받고 일본 오사카로 간 작가 '시호'. 그곳에서 '시호'의 소설 속 장면과 똑같은 살인이 벌어진다.

 
18. 궤적의 경로
작성일 : 17-12-10 15:22     조회 : 229     추천 : 0     분량 : 8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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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궤적의 경로

 

 

 “모든 게 들어맞네요. 효정 씨라면 소은 씨의 발목에 돌을 묶었던 줄을 자르는 것도 가능할 테니까요. 그 유별난 카드로 말이죠.”

 

 수연이 두 손을 꽉 쥔 채 이를 갈며 물었다.

 

 "밀실에서 벌어졌던 요코 씨의 살인 사건도 효정 씨가 범인 B라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저와 스미레 형사가 감시하고 있었을 때 요코 씨의 방에 들어가 시호의 흔적을 남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이에 대한 해답은 수경 씨의 진술로

  해결됩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수연의 얘기를 경청했다. 수연은 막힘없이 얘기를 이어나갔다.

 

 "다락방을 조사했던 유이토 형사에 의하면 겉보기엔 쉽게 발견할 수 없지만 다락방 벽장엔 곧바로 요코 씨가 있던 방으로 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하더군요. 수경 씨가 연행되기 직전에 '이 하숙 집은 꽤나 넓은 곳이더라고요'라고 했던 건 이 공간을 의미했던 거였죠."

 “…….”

 "사건 발생 당시 다락방에 갔었던 건 효정 씨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은 15분 정도. 조금 촉박하긴 하지만 요코 씨의 손목을 긋고 벽에 메시지를 남기기에 충분하죠. 요코 씨는 이미 죽어있었으니까요."

 

 수연의 목소리엔 화를 억누르는 듯한 절제된 감정이 내재되어 있었다. 유정의 뻔뻔한 태도 때문이었다. 수연의 눈앞에서 태연하게 웃음 따위나 걸치고 있는.

 

 “하지만 효정 씨가 범인 B라 해도 사실상 효정 씨에게 성립되는 죄는 얼마 되지 않죠. 효정 씨는 고작 이미 죽어있는 시체를 훼손한 게 전부니까요.”

 

 도연이 조금은 씁쓸한 투로 말을 이었다. 도연의 눈에 나무에 목을 매단 효정은, 결국 일종의 희생양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수경 씨가 범인으로 지목된 후 하숙집 안에 저를 포함한 형사는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수경 씨가 진범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저까지도요. 왜냐하면 다른 이가 대신 범인으로 지목됐을 경우에 진범은 잠시 상황을 인지할 시간을 가지게 될 확률이 높거든요. 아니. 사실 사건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될 가능성이 더 높죠. 범인이라고 지목됐던 수경 씨가 부재한 상태에서 또 다른 살인이 일어나면 결국 진범 스스로가 수경 씨의 결백을 입증하는 셈이 되니까.”

 “…….”

 “그래서 전…혹시 진범이 다시 살인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그 직후는 아닐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다시 사건을 되짚어 볼 시간을 가지려 했죠. 물론, 제 잘못된 판단이었지만요.”

 

 수연이 멍하니 바닥을 응시하며 말하다 유정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유정은 어느새 자신의 손에 채워진 수갑에 익숙해진 듯 두 손을 모은 채 손가락을 폈다 접으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수연의 어깨 위에 그늘진 상실감을 엿보며.

 

 “소은 씨를 죽인 이유는 뭐죠. 수경 씨가 이미 진범으로 지목된 상태에선 섣불리 죽여 봤자 유정 씨에게 유리할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요.”

 

 수연이 아까보다 훨씬 맥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기력이 소진된 듯 보였다. 유정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수연은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소은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져 있는 것이었다. 유정은 수연이 맛보는 그 고통이, 몹시도 짜릿했다.

 

 “경위님 말이 맞아요. 수경 씨가 대신 잡히고, 저도 요코 씨를 죽이는 데서 손을 떼려고 했는데…소은 씨가 제 방에 찾아왔어요. 수경 씨가 잡혀가고 모두들 방으로 들어간 직후에요.”

 

 유정은 수연의 질문에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착한 아이가 된 것 마냥 공손한 태도도 잊지 않았다. 자신의 범행을 떠들기 바라는 듯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소은 씨는 제가 범인인 걸 이미 알고 있더라구요? 쇼고 씨가 죽었을 때 방에서 나는 무슨 소리를 들었다나 뭐라나. 그리고는 저보고 자수를 권유했어요. 수경 씨는 진짜 범인이 아니라면서.”

 “…….”

 “그래서 창문 밖으로 밀었어요. 연못에 빠져서는 허우적대길래 바로 밖으로 나가서 머리를 밀어 넣었죠. 물 밖으로 못 나오게요. 그러더니 이내 잠잠해지던걸요.”

 “…….”

 “아. 돌을 옮기는 건 조금 무거웠어요. 어쩌면…죽이는 것보다 더?”

 

 유정이 선하게 웃어 보였다. 눈이 휘어지도록 접혔다. 유정의 뒤에서 숨을 죽인 채 잠자코 유정의 말을 듣고 있던 서정은 고개를 떨군 채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로 소은을 구하지 못한 건 수연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생각하면서.

 

 “소은 씨만 없었다면 완벽했을 텐데….”

 “…….”

 “역시 무리였나 봐요. 감쪽같은 살인 같은 거.”

 

 역시나,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

 

 유정은 그 말을 속으로 삼킨 채 웃음을 머금었다. 저를 보는 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수연과 서정, 해림과 도연까지. 하나같이 질겁한 얼굴이었다. 모두들 유정을 조금도 파악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들의 눈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적어도 유정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자, 내면에서 우월감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정리하자면 쇼고 씨를 죽인 유정 씨가 방을 나온 후, 효정 씨가 열려 있는 쇼고 씨의 방에 들어가 시호의 흔적을 남긴다. 두 번째 사건에선 자신의 방에서 노트북 선을 가지고 2층으로 올라간 유정 씨가 요코 씨의 목을 맨 뒤, 이후 효정 씨가 다락방의 비밀 공간으로 통해 이어진 곳을 통해 요코 씨의 방을 향한다. 그리고 창문을 잠그고 시호의 흔적을 남긴 후에 남아있던 혈흔을 수경 씨의 그릇에 묻힌다. 세 번째는 호수에 빠져 죽은 소은 씨를 효정 씨가 카드 속 흉기로 밧줄을 잘라 시체를 띄운다. 그리고 효정 씨는 자살을 했다…라는 게 사건의 전말이 되겠군요."

 

 수연이 말을 마쳤다. 유정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입술을 다문 채 손톱으로 아프게 손마디를 긁어도 자꾸 어딘가로 비집고 새어 나왔다. 유정은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숨이 벌어질 때마다 수갑에 달린 사슬도 팽팽하게 늘어졌다.

 

 “유정 씨는 모르겠지만, 유정 씨가 정신을 잃었을 때 스미레 형사가 유정 씨를 하숙집 안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유정 씨가 잠든 사이에 스미레 형사는 유정 씨의 방과 효정 씨의 방을 조사했고, 두 방에서 모두 똑같은 성분의 청산가리 약을 발견했습니다.”

 “아 그땐…몸이 조금 안 좋았죠. 그 사이에 그런 짓을 하셨네요.”

 

 유정이 서정을 보며 물었다. 서정은 입술을 질근 깨문 채 유정의 말을 애써 무시했다. 수연이 재빨리 말을 가로챘다.

 

 “그 후에 도연 씨와 해림 씨가 절 찾아왔죠. 진범을 확실하게 가리자면서.”

 “…….”

 “그래서 고안해 낸 게 이 연극입니다. 해림 씨의 공이 컸죠.”

 

 수연의 말에 해림이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침대 위에 누워 있던 제 자리를 한번 흘끗 보더니 다시 수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휴우카 경위가 널 의심하기 시작한 건 요코 씨가 죽었을 때야. 창문을 통해 갈 수 있는 것도, 언제든 흉기가 될 수 있는 물건을 들고 다닌 것도 너뿐이었으니까. 물론 그것도 ‘범인 A’와 ‘범인 B’라는 가설을 세우지 않은 상태였다면 불가능했겠지.”

 “…….”

 “그렇다면…나는 너를 언제 처음 범인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는지 알아?”

 

 도연이 앉아있던 몸을 일으킨 채 손을 털며 유정에게 물었다. 유정은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다 지난날을 떠올렸다. 딱히 유정이 도연에게 틈을 보인 적은 없었다. 실수를 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 흥미에 이끌려 조금 거리를 좁혔을 뿐.

 

 “네가 내 방에 대뜸 찾아왔던 날 기억해? 내가 거짓말을 했다면서 불같이 화냈었잖아.”

 

 유정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도연은 시호의 존재에 모른다고 말하면서 시호의 소설‘들’이라는 표현을 썼다. 도연이 시호의 존재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단 생각에 유정은 도연의 방으로 곧장 찾아갔었다. 그때 도연은 유정에게 3년 전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호에 대해 본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토로했다. 그게, 뭐가 문제라는 걸까.

 

 “쇼고 씨와 요코 씨까지. 두 가지 범행에서 시호의 소설 속 장면이 재연됐어. 일반인들의 생각으로는 사건의 범인은 당연히 시호와 관련이 깊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해.”

 “…….”

 “그 와중에 나는 너에게 시호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어. 넌 그걸 눈치챘고.”

 “…….”

 “보통 사람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거라고 생각해?”

 “당연히 널 범인이라고 생각했겠지.”

 

 도연의 유도에 유정 대신 해림이 대답했다. 어딘가 단순하고도 무료한 투였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쉬운 해답이었다.

 

 “그래. 그런데도 넌 날 찾아왔어. 다른 사람이었으면 혹시나 자기가 표적이 될까 무서워서라도 바로 형사에게 달려갔을 거야. 근데 넌 개의치 않고 나한테 왔어. 그건 네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야.”

 “…….”

 “네가 범인이거나, 혹은 적어도 다른 사람이 범인이란 걸 알고 있다는.”

 

 도연이 팔짱을 낀 채 여유롭게 물었다. 과연. 유정은 도연의 말을 곧바로 납득했다. 그러니까 결국, 유정이 보인 행동은 범인이 아닌 사람이라면 절대 보이지 않을 반응이었다는 말이었다. 즉, 유정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번 널 범인이라고 의심하게 되니까 상황들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지더라고.”

 

 수연은 어느덧 제 옆에 가까이 다가와 서 있는 도연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며 생각했다. 수연이 결정적인 범인의 단서를 유추할 수 있었던 쇼고의 시체 사진은 수연이 경위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열람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만약 그것을 보지 않았다면 수연은 수경을, 혹은 효정을 범인이라고 믿었을 게 뻔했다.

 

 하지만 도연은 당시 용의자의 신분이었다. 어떤 정보와 단서에도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열약한 입장에서 도연은 단순히 심리만으로 유정이 범인이라는 걸 알아챘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도연은 역시, 수연보다 앞서 있었다.

 

 “내가 해 줄 얘기는 여기서 얼추 끝이야.”

 “…….”

 “그러니까…이제 네가 입을 열 차례 같은데.”

 

 도연이 조소를 띠며 유정에게 물었다. 도연의 표정엔 묘한 자신감이 묻어나 있었다.

 

 “뭐가 궁금한 건데?”

 “전부 다. 애초에 살인을 계획한 의도부터 소우마 미나토와의 관계까지.”

 

 수연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도연을 째려보았다. 도연은 유정에게 뜬금없이 동기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그건 내가 해야 할 몫인데. 수연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도연을 보다 별 수 없다는 듯 체념하며 유정을 보았다.

 

 이제 어설픈 연극은 끝났으니, 현실 속으로 들어갈 차례라고 생각하며.

 

 “난 이미 내가 범인이라는 자백을 한 셈이고, 알리바이며 증거까지 다 알아낸 상태에서 구구절절 말할 필요가 있나?”

 

 유정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범인의 시인. 그것 하나면 충분했다. 사건을 종결시키기 위한 조건은.

 

 “그래도 그렇게 궁금하다면 말해줄게.”

 

 마른침을 넘기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그만큼이나 유정의 말에 방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서정은 방문에 기댄 채 두 발을 더 꼿꼿이 폈다. 수연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티 나지 않게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해림과 도연은 굳은 듯 유정에게로 자세를 고정시켰다. 그리고 유정은, 천천히 입을 떼었다.

 

 마치 그들의 주목을, 즐기고 있다는 듯이.

 

 “그냥 알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어디까지 사건을 파헤칠 수 있는지.”

 

 유정이 맞잡은 두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양 검지를 핀 채 총구와 같은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누군가를 겨냥했다.

 

 “저, 신페이 탐정이.”

 

 조준은, 성공적이었다.

 

 

 *

 

 

 “한 마디로 신페이 탐정을 시험해보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그런 말인가요?”

 

 수연이 게슴츠레 눈을 뜬 채 유정을 흘겨보며 물었다. 갖은 사건을 겪은 수연조차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동기였다. 왜냐하면 그런 동기 따위론 유정에게 아무런 득이 될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 아주 오래전부터 신페이 탐정을 알고 있었어요. 우연히 본 기사에서.”

 

 시간은 대략 5년 전이었다. 유정과 도연이 19살이었을 때였고, 시호가 이제 막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할 시기였다. 도연이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도연은 14살에 일본을 갔다. 도연의 아빠의 친구가 도쿄 경시청에 근무하고 있었고, 그가 도연의 아빠에게 일자리를 알선해줬기 때문이었다.

 

 도연은 도쿄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연은 그저 아빠의 사건 얘기를 듣고 또 들었다. 그리고 자랐다. 18살에 경시청에서 일하게 된 도연은 딱 1년을 근무한 후 머지않아 관두게 된다. 그리고는 스스로 탐정이 되겠다고 자처하기에 이른다. 도연의 아빠가 더 이상 일본에 있지 않아도. 이유는 간단했다. 사건을 해결한 후에 오는 공로가, 오로지 자신에게만 오길 바라서였다.

 

 “그때 신페이 탐정은 이렇게 말했어요. 날 완전히 모르는 이들만 있는 외지에서 평가를 받고 싶다고.”

 “…….”

 “19살의 나이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이에요. 그만큼 스스로를 위대하다 여겼던 거죠.

 “…….”

 “제가 제 자신에게 늘 갖고 있던 생각과 똑같았어요. 어찌나 반갑던지.”

 “…….”

 “하지만 그건 친구를 발견했을 때와 같은 그런 동질감 따위가 아니었어요. 그저, 나랑 같은 부류를 만난 것뿐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건 결국 나 같은 존재가 유일하지 않다는 말이죠. 그리고 신페이는 나 따위완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저 높은 곳에 올라선 채였죠. 이미 한참을…앞서 간 채였다고요.”

 

 유정이 독백을 하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격앙된 상태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는 견딜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유정이 무엇을 싫어하는지 여실히 티가 났다. 자신보다 누군가가 앞서가는 것. 그로 인해 주목을 받는 것. 유정은 더 이상 주위를 신경 쓸 겨를 따위는 없었다. 도연이 제 앞에 있었다. 더 이상 위선을 떨 필요는 없었다. 승부는, 이미 끝났으니까.

 

 도연이 유정의 말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는 미묘하게 몸을 떨었다. 화가 난 걸까, 혹은 몹시도 기뻐하고 있는 걸까. 수연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죠. 부럽기도 하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자극제도 되고. 하지만 가장 크게 들었던 감정은…동경. 그리고….”

 

 유정은 도연의 그 한 문장 속에서 도연이 자신과 똑 닮은 부류라는 걸 단번에 깨달았다. 낯익고 친숙한 곳, 몸이 편안하다 느껴지는 곳. 도연과 유정에게 그곳은 바로 낯선 이들이 널려있는 곳이었다. 자신을 모르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극도로 경외하는. 그들의 그 모순된 감정에서 도연과 유정은 희열을 느꼈다.

 

 기어코 시호가 글을 쓰게 만든 근원이 되고 만.

 

 “…짓밟고 싶다. 처절하게”

 

 유정이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 섬뜩한 얼굴에 서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해림은 어느 순간부터 말을 잃었다. 도연에게선 무엇도 파악할 수 없었다.

 

 수연은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며 생각했다. 유정의 생각은 상식의 범위는 물론, 누군가의 이해를 바랄 수 있는 범주를 완전히 넘어섰다. 그 누구도. 어쩌면 유정이 스스로와 같다고 여기는 도연조차도.

 

 “그래서 죽여 본 것뿐이에요.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오자마자 눈에 띄었던 건 가장 몸이 불편해 보였던 쇼고, 그다음엔 불안정한 상태의 요코…. 다들 운이 없었을 뿐이죠.”

 

 유정이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도연의 기사를 접한 후 자신이 범했던 행동을 떠올렸다. 무언가에 홀린 마냥 미친 듯 글을 휘갈겼던 나날들. 도연이 해결했던 사건들의 트릭을 인용했던.

 

 그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도연보다도, 위대한 존재인 걸 입증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정말 얘도 나와 같이 대단한 사람일까. 그럼 과연 내가 범인인 걸 알아챌까 하는 마음에. 만약 알아채지 못한다면 꽤나 무너질 테니까. 물론 그게 가엾기도 하면서…즐거울 테니까.”

 

 결국 유정의 삶을 휘청거리게 만들고, 기어코 유정을 여기까지 끌고 온 건, 모두 한 문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도연의 입에서 나온.

 

 “스미레. 연행해.”

 

 수연이 나지막하게 지시했다. 유정의 말을 더 들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영역이었으니까. 그만큼이나 엉망진창인.

 

 머리를 감싸 쥔 채 겁에 질려있던 서정은 떨리는 손으로 유정의 손목을 잡았다. 유정은 움직이지 않고 도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유정 씨.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방문을 연 수연이 의연하게 물었다. 입술이 희미하게 떨렸다. 수연도 유정의 모습에 오싹한 기운이 퍼진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에 동요해선 안됐다. 무서워해서도, 동정해서도 안됐다. 그게 살인자들에게 가져야 할 자세였으니까.

 

 “소우마 미나토는, 당신의 지시 하에 범행을 도운 건가요?”

 

 방 밖으로 나가려 걸음을 떼려던 서정은 그대로 멈춘 채 뒤를 돌아 유정을 보았다. 수연의 물음에 유정은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마치 오래된 기억을 되짚는 듯한 태도였다. 그만큼이나 소우마 미나토의 존재는, 유정에겐 무가치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했다.

 

 “그녀는 군말 없이 저를 도왔어요.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죠.”

 “…….”

 “심지어 제가 그녀에게 독약을 건넸을 때조차.”

 

 섬뜩하도록 비어있는 공백이, 유정의 몸에 가득해 보였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소우마 미나토는….”

 “…….”

 “…나의 팬이었으니까요.”

 

 유정은 마지막으로 서정과 수연, 해림과 도연에게 눈길을 돌리다 앞을 보았다. 이제야 제 손목에 채워진 수갑에 순응하겠다는 의사를 표하고 있는 듯 보였다.

 

 “최유정.”

 

 두 걸음을 뗀 유정이 우뚝 멈춰 섰다. 유정을 부른 건 도연이었다. 서정과 유정을 따라 나가던 수연이 뒤를 돌았다. 서정과 해림과 수연의 시선이 모두 도연에게 쏠렸다. 하지만 정작 유정은, 여전히 앞을 보고 있는 채였다.

 

 “네가 진 거야. 우리 둘의 싸움에서.”

 

 과연 그럴까. 유정은 자그맣게 비웃었다. 도연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연도 보이지 않는 유정의 얼굴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승리감에 도취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서로, 다른 의미의 승리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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