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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홍콩러브트립
작가 : 제이J
작품등록일 : 2017.12.1

은퇴후 낯선 도시를 찾아온 톱스타 이한경
그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가이드 송호연
홍콩에서 시작되었던 그들만의 러브 트립

 
4. 사라지는 것들 - 심포니 오브 라이트 #2
작성일 : 17-12-09 21:51     조회 : 348     추천 : 0     분량 : 7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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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한인마트와 한식당이 즐비한 킴버리 로드는 이곳이 홍콩인지 서울인지 헷갈리는 곳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목적지까지 걸어오는 십분 남짓의 시간동안 호연은 아는 얼굴을 수도 없이 마주쳤다. 물론 그들 중 누구도 며칠째 세상을 들썩이고 있는 이한경의 여인이 호연이라는 것을 눈치 차린 인물은 없었다. 위니의 예측은 정확했다.

 

 “어이, 송가이드!”

 

 식당으로 들어서자마자 박 가이드가 아는 체를 해왔다. 대형 여행사 팀장인 그는 온갖 감언이설로 손님들을 꾀어 쇼핑센터에서의 구매를 유도하는 뻔뻔한 캐릭터로 소문이 자자했다. 반면교사의 표본격인 인물과 가능한 먼 곳에 자리를 잡으며 호연은 좌중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 얼굴 좀 자주 보자.”

 

 옆 테이블의 누군가가 뼈있는 인사를 건넸다. 타국에서 살아가면서 한인사회에 얼굴을 비쳐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의 문제였다. 오늘 그녀가 정기적인 가이드 친목 모임을 순순히 찾아온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꼬박 3일을 집구석에 혼자 처박혀 있었다. 이한경과 한진우 그리고 네팔. 세 키워드의 연관성을 찾느라 그녀는 그 시절의 모든 기사들을 검색했다. 사라지기 위해 떠나온 남자가 오래전 한 남자가 사라졌던 도시를 찾아간 거였다. 형체가 모호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자려고 누우면 불길한 상상이 나래를 펼쳤다. 차라리 여자를 만나러 간 거였음 좋겠다 싶었다. 당신도 설마 거기서 사라질 거에요? 당장이라도 전화해서 묻고 싶은걸 참느라 고역이었다. 왁자지껄한 사람들 틈에서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면 좀 나아질지도 몰랐다.

 

 “호연, 너 또 한 건 했다며?”

 

 비아냥거림이 역력한 어조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혹시 이한경과 동행한 여자가 자신이라는 걸 알아차린 걸까 싶어 호연은 서둘러 상대와 눈을 맞췄다.

 

 “내가 뭘?”

 “며칠 전에 경찰서가서 위조지폐 쓴 애들 빼냈다며. 야, 그냥 영사관에 취직을 해. 넌 가이드니 해결사니?”

 

 뼈가 박힌 말이었다. 남의 손님을 뺏거나 투어 가격을 후려치는 비양심적 행동을 하는 게 아님에도 호연은 늘 다른 가이드들의 눈치를 봐야했다. 물론 이한경이 자신의 손님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것보다야 훨씬 나은 일이었다.

 

 “너 그거 공정거래법 위반이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한테 내가 신고 할거야.”

 

 벌써 취한 듯 박 가이드가 혀 짧은 소리로 헛소리를 해댔다. 돌판에 올려진 삼겹살들이 채 익기도 전에 이미 소주 대 여섯 병이 비워져있었다. 사는 나라가 바뀌어도 한결같은 한국인들의 술자리 문화는 고질병이 분명했다.

 

 “너무 그러지들 마. 나 몇 달 쉬어요. 이제 일 안 해.”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옆자리의 민지가 소주잔을 건네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지. 그 일이 보통일이 아니지. 근데 그 일이 또 비밀유지가 생명이라서.

 

 “에세이 북 계약했는데 원고를 좀 빨리 달래. 그래서 몇 달 쉬려고.”

 “자, 간만에 파도한번 탑시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박 가이드가 좌중을 훑으며 말했다. 술 마시자는 게 아니라 전쟁이라도 나가자는 것처럼 얼굴이 비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야야, 첫 타자부터 맥빠지게 꺽으면 어떡하냐? 원샷해, 원샷.”

 

 홍콩인들은 저러지 않는다. 자신의 주량에 맞게 마신 뒤 깔끔하게 헤어지는 게 그들의 일상적인 술자리이다. 못마땅하긴 하지만 분위기를 깨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호연은 단숨에 소주잔을 비웠다. 이 자리의 목적은 간단했다. 먹고 죽자. 그러려고 나온 자리였다.

 

 “참, 기사 봤지? 이한경 홍콩 왔다는 거.”

 “그러니까, 이게 무슨 일이래?”

 

 목구멍을 넘어가던 소주가 턱 걸렸다. 호연은 콜록거리며 기침을 해댔다. 생각하기 싫어서 도망 나온 사람의 이름이 테이블위에 떡하니 올라앉았다.

 

 “누구 직접 본 사람 없어? 기사 뜬 날 하루 종일 소호랑 미드레벨 쪽에 있었나 보던데.”

 “미드레벨에 송가이드 살잖아. 못 봤어?”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꽂혔다. 호연은 입꼬리를 간신히 끌어올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능한 자연스럽게 보여야 했다.

 

 “글쎄. 난 그날 사진 찍는 친구 일 도와주고 있어서.”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한경과 함께 그 친구의 모델이 되었다는 게 문제일 뿐.

 

 “그날부터 소호 쪽은 난리도 아니에요. 이한경이 사 먹은 에그 타르트 집은 줄이 어찌나 길던지.”

 홍콩 관광산업 부흥에 본의 아니게 이바지하게 된 장본인은 할 수 있는 게 술 마시는 것 말고는 없었다. 호연은 빈 잔에 서둘러 소주를 채웠다.

 “근데 그 여자, 누굴까요? 한국 사람 같죠?”

 “여기에 살고 있는 한국인은 아니야.”

 

 박 가이드가 단언을 하고 나섰다. 뭘 믿고 그러는지 표정이 자신만만했다. 눈앞에 앉아있는 그 여자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발언이었다.

 

 “내가 홍콩 산지 15년째잖아? 어지간한 모임에는 다 속해 있거든.”

 

 그는 한인사회의 마당발이었다. 스무 살에 워킹 홀리데이로 건너와 안 해본 일이 없다는 이 바닥의 전설 같은 이었다. 한인교회, 한인 축구회, 한인 야구회, 한인 식당 연합회. 그가 모르는 한인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홍콩에 거주하는 한국인에게 그의 이름을 물으면 십중 팔구는 아는 이라 대답할 거였다. 가이드계의 오지라퍼가 송호연이라면, 한인사회의 오지라퍼는 저 남자였다.

 

 “여기 홍콩에 이한경이랑 다닐 수 있을 만한 미모의 한국 여자는.”

 

 취기가 잔뜩 묻은 느끼한 시선이 좌중을 한눈에 훑었다.

 

 “없어.”

 “…….”

 

 의문의 1패를 당한 모든 여자들이 똥씹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박가이드님은 참 여전하시네요.”

 

 옆자리의 민지가 나직하게 말하며 웃었다. 호연은 헬쓱한 그녀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통통한 볼살이 트레이드마크였던 얼굴이 떼꾼했다.

 

 “민지 너, 어디 아파? 얼굴이 왜 이렇게 안 좋아?”

 

 앞자리에 앉은 가이드가 호연을 보며 눈을 찡긋거렸다. 민지와 같은 소규모 여행사에 속해있는 이였다. 호연은 입술만 움직여 왜? 라고 물었다. 상대 역시 소리 없이 복화술로 답을 건넸다. 헤어졌대. 헉 소리가 나오는 걸 호연은 간신히 집어삼켰다.

 

 “그 사람 돌아갔어요.”

 

 민지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가이드들에게는 연애 불문율이 있다. 여행을 온 사람과는 사랑에 빠지지 말라. 떠나갈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말라. 그 사람은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벗어난 자신을 사랑하고 있을 뿐이다.

 

 “그 사람 약혼자 있었다며?”

 

 찍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이 어느 자리든 있기 마련이다. 이 좁은 바닥에 그런 핫한 소문은 순식간에 퍼지는 게 당연했다.

 

 “말하자면 내가 현지처였던 거죠. 얼나이라고 하던가.”

 

 신랄한 자기비판에 좌중의 분위기가 서늘해졌다. 투어가이드와 여행객으로 만났던 그들은 다음 해 남자가 홍콩지사로 발령을 오며 정식연인이 되었다. 그들이 데이트하는 모습을 호연은 몇 번 본적이 있었다. 증권가 사람답게 깔끔한 인상의 남자였다. 어딘가 차가워 보이기도 했다. 민지를 보는 남자의 눈보다, 그를 향한 민지의 눈이 더 반짝였던 것을 호연은 기억하고 있었다. 애써 외면했던 불길한 예감이 기어코 맞아 떨어진 모양이었다. 민지와 호연은 동시에 술잔을 비웠다. 입이 썼다. 속은 더 썼다.

 

 “사실은 알고 있었어요. 이렇게 끝날 거라는 거.”

 

 호연은 의아한 눈으로 민지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타이밍에 민지는 욕을 한 바가지 퍼붓는 게 맞았다. 그러다가 펑펑 울어버리는 게 맞았다. 같이 욕을 하고, 새로운 사랑이 나타날 거다 희망의 말을 건네는 게 일반적인 위로의 절차였다.

 

 “살다보면 그럴 때 있잖아요. 안 되는 거 아는데 어쩔 수 없이 시작되는 그런 거. 끝이 어떨지 알면서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거.”

 

 그렇게 시작한 사랑들은 호연은 알고 있었다. 잠시 머물다 갈게 빤한 사람들을 사랑했던 여자들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위니의 엄마가, 호연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옆자리의 민지가 그랬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또 열렬히 사랑할 수 있을까. 이런 사랑이 또 올까.”

 

 호연은 한국을 떠나오며 사랑도 거기에 두고 왔다고 믿었다. 다시는 누군가를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 현수와의 이별은 세상이 주는 경고였을 터였다. 그것 보라고. 사랑 따위 믿지 말라 하지 않았냐고. 싸늘하게 식어버린 가슴은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그럴 줄 알았다. 누군가 다가오려 하면 한발 물러서고, 누군가의 호의도 저의로 의심하며 오랜 세월을 보내왔다.

 

 “언니는 그런 적 없어요?”

 

 기습이라도 받은 것처럼 호연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민지의 질문은 가슴속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테이블위의 핸드폰이 드르륵거렸다. 호연은 서둘러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나 돌아왔어.]

 

 내내 호연을 불안하게 했던 무언가가 스르르 녹아내렸다. 소주잔을 쥔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어디야?]

 “모임 있어서 나와 있어요.”

 [난 지금 엄청 좋은 데에 와 있는데.]

 

 호연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엄청 좋은 데라 불릴만한 장소들은 손에 꼽힐 거였다. 그것들 중 어느 곳도 이한경이 나타나기엔 적당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홍콩에서 최고로 핫한 인물이었다.

 

 “좋은데 어디요?”

 [택시 기사가 이 시간에 가장 좋은 데로 데려다준대서 방금 내렸어. 와. 저건 강인가?]

 

 천진한 목소리는 위기감을 몰고 왔다. 홍콩에는 강이 없다. 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물길은 짜디짠 바닷물이다.

 

 “강이 아니라 바다.”

 

 그저 어느 한가로운 바닷가였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상황은 그녀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아? 여기 뭐야? 건너편에 건물들이 완전 높아.]

 

 호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비상등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뭐가 보여요? 스타벅스 보여요? 아니면 이소룡 동상?”

 [모르겠어. 사람들만 엄청 많은데.]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지금 시간 7시 15분. 잠시 후면 홍콩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려들 곳에 이 웬수가 있다는 거였다. 매일 밤 8시. 홍콩의 빅토리아 하버에는 마법 같은 쇼가 시작된다. 센트럴에 위치한 고층빌딩들이 음악에 맞춰 색색의 레이저 불빛을 밝히며 빛나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는 홍콩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으로 손꼽히는 것이다. 이한경은 지금 그 핫한 장소에 있는 거였다.

 

 “높은 시계탑 보여요?”

 [어. 바로 그 옆이야.]

 “그 시계탑 아래에서 꼼짝 말고 기다려요.”

 

 높이 44미터의 붉은 화강암 시계탑은 유럽까지 넘어가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출발역이었다. 많은 중국인들이 그 곳을 통해 세계 전역으로 이민을 가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곳은 심포니 오브 라이트쇼의 명당이자 매일 일일투어가 시작되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호연은 그 곳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을 만나왔다. 모두가 스쳐갔던 인연들이었다. 짧게 만나고 쿨하게 헤어지는 게 가이드의 일상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이렇게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호연은 식당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

 

 시간이 흐를수록 인파가 늘어났다. 홍콩의 관광객이란 관광객들은 죄다 여기로 쏟아져 나왔나 싶을 만큼 인산인해의 풍경이었다. 한경은 머플러를 칭칭 동여맨 채 익숙한 얼굴을 찾기 위해 눈을 분주히 움직였다. 시계탑을 향해 뛰어오는 호연의 모습이 저만치에 보였다.

 여자는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두 눈은 누군가를 절실히 찾고 있었다.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처럼 경황없는 눈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며 부주의하게 지나갔다. 호연의 몸이 맥없이 휘청거렸다. 한경은 그녀 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거리는 몸을 그는 황급히 붙들었다.

 

 “가이드가 제 몸도 제대로 못 챙기면 어떡해.”

 

 호연의 눈이 한경에게로 들어 올려졌다. 찾았다는 안도감이 두 눈에 스치고 있었다. 긴장이 풀리는 듯 그녀는 낮은 한숨을 입술 사이로 내뱉었다.

 

 “추운데 옷은 왜 그렇게 입었고.”

 

 한경의 눈이 호연의 얇은 반팔 티셔츠를 훑었다.

 

 “아, 내 야상.”

 

 여자는 그제야 두고 온 외투가 떠오른 듯 난처한 얼굴을 해보였다. 쌀쌀한 바다 바람이 그들의 어깨를 동시에 때렸다. 한경은 제 목을 감고 있던 머플러를 풀어 그녀의 목에 여러 번 돌려 감았다.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그녀의 머리위에 얹었다. 호연은 놀란 눈으로 주위를 휘둘러 보았다.

 

 “뭐해요. 사람들이 다 알아보겠네.”

 “다들 저기 보느라 정신없는데 뭘.”

 

 음악이 시작되었다. 바다 건너 고층빌딩들이 색색의 레이저 불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것들은 깜깜한 하늘로 뻗어나갔다. 음악에 맞춰 켜졌다 꺼지는 건물들의 조명 덕분에 도시 전체가 춤을 추는 듯 보였다. 그 모습들이 바닷물위에 고스란히 비쳤다. 난간으로 떠밀리듯 몰려드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의 시선도, 손에 들린 카메라와 핸드폰들도 일제히 같은 곳을 향해있었다.

 

 “저거구나. 홍콩에서 제일 멋있다는 게.”

 “그러니까 제정신이에요? 어쩌자고 이런 데에 혼자 와요? 내가 근처에 없었으면 어쩌려고. 개변은 어디 갔어요?”

 

 가이드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은 엄마 같은 얼굴을 한경은 내려다 보았다. 그녀는 다른 모든 관광객들을 이런 얼굴로 찾아다닐까.

 

 “호텔 옮기려고 알아보러 갔어.”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부주의하게 치고 지나갔다. 흔들거리는 그녀의 몸을 한경이 황급히 다시 붙들었다.

 

 “안 되겠다.”

 

 한경은 호연을 제 앞에 붙들어 세웠다. 난간과 한경의 몸 사이 좁은 공간에 호연은 우두커니 세워 졌다. 그는 백팩에서 커다란 담요를 꺼내들었다. 네팔 길거리 샵에서 사들었던 이국적인 문양의 모직 담요였다.

 

 “네팔은 춥더라고. 그 기모 후드 티셔츠를 입고 갔어야 했는데.”

 

 담요를 제 어깨에 두른 한경이 남은 자락을 손으로 쥔 채 호연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두 사람의 몸을 한꺼번에 덮고도 남을 만큼 커다랗고 포근한 담요였다. 그녀의 등에 그의 가슴이 맞닿았다. 따뜻한 체온이 번져왔다. 호연은 놀란 눈을 그에게로 돌렸다. 그는 제 턱을 여자의 어깨에 기대었다.

 

 “다녀왔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불안한 눈으로 보지 말라고 한경은 말하고 싶었다. 계속 그런 눈으로 날 기다린 거냐고 묻고도 싶었다. 그러나 물을 수 없었다.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그 다음으로 해야 할 말을 그는 알지 못했다.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났어요?”

 

 그것이 누구인지 안다는 듯 호연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들의 어깨를 덮은 담요에서 바람 냄새가 풍겨왔다. 안나푸르나의 냄새일지도 몰랐다.

 

 “아니 아직.”

 “그럼 좀 더 찾아보지 그랬어요.”

 “추워서, 돌아오고 싶었어.”

 

 그것은 참으로 돌연한 감정이었다.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경은 해 본적이 없었다. 누군가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와 본 적도 없었다. 그는 어디에 있든 늘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고, 떠나온 곳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언제든 떠날 준비를 했고, 완벽하게 사라지는 게 소원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복잡한 도시로 돌아오고 싶었을까. 왜 이렇게 복잡한 곳에 서있는 것일까.

 

 “여기, 한강보다 훨씬 근사한데.”

 “강이 아니라 바다라니까요. 우리가 서있는 이 곳은 구룡반도, 바다건너 저 쪽은 홍콩섬. 홍콩은 그렇게 크게 둘로 나뉘어요.”

 

 호연의 설명은 새삼 그들의 관계를 확인시켜주었다. 그녀는 그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설명해주고, 그가 알지 못하는 길을 안내해주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한경은 그저 자신을 안내해 줄 가이드를 찾아 다시 이 곳에 돌아온 것일지도 몰랐다.

 

 “저 불빛 쇼, 멋있다.”

 “홍콩의 Must See 아이템이라고들 하죠.”

 “계속 보고 있고 싶네.”

 “곧 끝나요. 금방 사라질 거에요. 저 불빛들.”

 

 그렇게 말하는 호연의 눈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당신은 사라질 모든 것들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일까. 그래서 이렇게 따뜻한 건가.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지만, 한가지만은 분명했다. 홍콩의 매일 밤 8시마다 시작되는 저 멋진 라이트 쇼처럼, 지금 이 순간 그의 가슴 속에서도 무언가 환한 불빛 하나가 켜졌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누군가가 기다려주는 작은 방의 불빛처럼 아주 오랫동안 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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