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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의 최종우승자 마술소녀 윤제이.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제이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의심하는 수상한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의 정체는 사생활이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는 독일에 국민마트 CEO 강철수. #티격태격, #알콩달콩, #로맨틱코미디, #츤데레 남주, #당찬 여주 habilis21@naver.com

 
54.절대 내 품에서 안 놔줄 거야
작성일 : 17-12-09 21:01     조회 : 261     추천 : 0     분량 : 8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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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절대 내 품에서 안 놔줄 거야

 

 

 

 평화로운 평일, 철수는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다며 출근을 했다.

 

 제이는 멍하니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째각거리는 시계 소리를 듣자 제이는 마음 한 구석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집 안에 철수만 없을 뿐인데 방 안의 온기가 모두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Rrrrr.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을 깨고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자, 제이는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있는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제이야.

 

  "응, 윤정아."

 

  - 뭐야,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윤정이었다.

 

  "그냥, 어쩐 일이야?"

 

  - 사실 나 오늘 수업이 3개나 있었거든. 근데 수업이 모조리 다 휴강인 거 있지? 완전 대박이야.

 

  "휴강? 오, 좋겠다."

 

  - 예쁘게 화장까지 하고 나왔는데 그냥 들어가기에는 아깜고…… 뭐해? 할 일 없으면 나랑 놀자.

 

  "음, 글쎄……."

 

 잠시 고민하던 제이는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나갈게."

 

  - 응, 그럼 너희 집 근처에 있는 카페 늘 봄으로 갈 테니까 얼른 준비하고 나와.

 

  "응, 알았어."

 

 제이는 전화를 끊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랴부랴 외출 준비를 했다.

 

 철수가 없는 집에 있어 봤자 쓸쓸할 것만 같아서 윤정과 함께 카페에서 시간이나 때우다 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요즘 노랑이는 제이와 권태기인 것인지 그녀와 함께 집에 있어도 늘어지게 잠만 잤다.

 

 이제 자신보다 철수를 더 따르는 노랑이를 보면서 서운하기도 했고, 묘하게 질투심도 생겼다.

 

 알고 보니까 노랑이는 암컷이었어……!

 

 옷을 갈아입고 카페 늘 봄으로 나갔더니 윤정이 테이블 위에 책을 펴놓고 과제를 하고 있었다.

 

 제이는 자신이 먹을 음료와 베이글을 시켜서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며 윤정에게 다가갔다.

 

 숨을 죽이고 윤정에게 다가간 제이는 윤정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윤정아."

 

  "아이고, 깜짝이야."

 

  "오오, 오윤정 양, 과제 하고 계신가요?"

 

  "뭐야, 왔으면 기척이라도 내지."

 

 제이는 생긋 웃으면서 나이프를 손에 쥐고 능숙하게 베이글에 그림 치즈를 펴 발랐다.

 

  "넌 오늘 스케줄 아무것도 없었어?"

 

  "응, 오늘 공연 스케줄은 없었어."

 

  "방송은? 방송은 안 할 생각이야?"

 

  "당분간 할 생각은 없어. 마술 연습은 항상 열심히 하고 있지만."

 

  "오오, 역시 천재 마술 소녀."

 

 윤정이 너스레를 떨자 제이가 픽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나저나 역시 황제 카드는 강철수 씨였어."

 

  "그랬나 봐."

 

  "그럼 진짜 둘이 사귀는 거?"

  "응."

 

  "잘됐다, 야."

 

 윤정의 축하에 제이는 쑥스러우면서도 자신의 행복을 기뻐해 주는 친구에게 고마웠다.

 

  "역시 입소문을 믿을 만 하다니까. 결국, 그 타로 할머니 말이 맞았네."

 

 마주 앉아서 헤실 웃고 있는 제이를 보고 윤정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두 사람 어떻게 하다가 사귀게 된 거야?"

 

  "음…… 되게 갑작스러웠어."

 

  "갑작스러웠다고?"

 

  "응, 사실 난 혼자 짝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철수 씨도 날 좋아하고 있었던 거야."

 

  "꺄악, 너무 로맨틱해."

 

 제이는 방긋 미소를 지으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철수 씨가 갑자기 날 뒤에서 끌어안고 나랑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고 말하는 거야."

 

  "오올, 강철수 씨 완전 박력남인 듯."

 

  "응, 되게 많이 남자다운 것 같아."

 

 제이는 그때를 떠올리자 수줍은 듯 볼이 발그레해졌다.

 

  "두 사람 그날 키스 한 거야?"

 

  "아니, 뭐……."

 

  "뭐야, 솔직하게 말해봐."

 

  "그럼 너는? 너는 은섭이랑 어땠는데?"

 

  "난 그날 바로 키스했지. 내가 좋다고 말하자마자 그냥 바로 내 입에 달려들어서. ……야, 난 내가 살아있는 문어를 먹는 줄 알았어."

 

  "뭐어?"

 

 노골적인 윤정의 포현에 제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손으로 부채질을 하던 제이도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응, 사실 나도 바로……."

 

  "그럴 줄 알았어."

 

 사실 스킨십같은 사적인 부분은 발하고 싶지 않았는데, 제이는 꼭 윤정에게 말린 것 같아서 눈을 가늘게 떴다.

 

  "사실 두 사람 한집에서 같이 살면서 너무 서로의 마음을 늦게 깨닫지 않았니?"

 

  "그, 그런가?"

 

  "그래, 완전 옆에서 보는 내가 애가 탈 정도였다."

 

 제이는 말없이 귀 뒤로 머리카락을 꽂았다.

 

  "근데 난 조금 고민이야."

 

  "왜? 뭐가 고민이야?"

 

 윤정은 그녀가 발라놓은 베이글을 한 입 먹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아무래도 같은 집에서 사니까 더 의식되고 긴장이 된다고 해야 할까."

 

  "크으, 섹슈얼 텐션이지."

  "섹슈열 텐션?"

 

  "그래, 성적긴장감."

 

  "……그래, 맞아! 성적긴장감!"

 

 제이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크게 높이고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한낮 평일 오후에 카페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진짜로 철수 씨랑 진지한 관계가 되고 나서 날 보는 눈빛이 너무…… 뜨거워."

 

  "허어, 뜨거우시니?"

 

  "응."

 

  "그러다 데는 거 아니야?"

 

  "진짜 데일 것 같아."

 

 제이의 솔직한 대답에 윤정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큭큭, 웃음을 참았다.

 

  "아주 아주 귀여운 커풀이고만. 진짜 예전에 나랑 은섭이 보는 것 같네."

 

  "그럼 너흰 이미…….'

 

 윤정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제이가 어머, 하고 탄성을 질렀다.

 

  "근데 난 아직 잘 모르겠어. 철수 씨랑 사귄 지 일주일도 안 지났는걸."

 

  "며칠 만난 게 뭐가 그리 중요해. 두 사람의 마음이 통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응, 그렇긴 하지."

 

  "철수 씨가 첫눈에 너한테 반한 게 아닐까?"

 

  "글쎄 철수 씨가 그런 말은 안 하던데."

 

  "첫눈에 반한 건 아니셨대?"

 

  "응, 첫눈에는 아니고 천천히 나에게…… 물들어 갔대."

 

 철수의 고백을 떠올리면서 제이는 다시 한번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일 줄이야.

 

 그동안 마음고생 했던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기분으로 마음이 충만해졌다.

 

  "잘됐다, 잘됐어.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린다니깐."

 

  "그래도 스킨십은 조금 천천히 했으면 좋겠어."

 

  "그래?"

 

  "……응."

 

 제이는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집에서 짧은 반바지나 티셔츠를 입을 수가 없었다.

 

 집 안이니까 조금 편한 옷차림으로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철수의 시선 때문에 에어컨을 켜고 긴 소매 옷을 입어야 했다.

 

 짧은 옷만 입고 나가면 자신의 살결에 눈을 뗄 줄 모르는 철수의 시선 때문에 온몸이 화끈거렸다.

 

  "제이야, 그럼 이 말만 명심해라."

 

  "무슨 말?"

 

  "스킨십에는 후진이 없는 법이다."

 

 윤정의 목소리를 듣고 제이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킨십에는 후진이 없으니까 브레이크를 잘 잡아야겠어.

 

 

 

 ***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꾸며진 레스토랑 안에서 철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장 검사님."

 

 가장 안쪽에 있는 VIP룸에서 철수가 만난 사람은 바로 장 검사였다.

 

 검사다운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장 검사는 단정한 양복을 입고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굳게 다문 입술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니까 강 태표님은 윤백룡 씨의 사망 사건에 대한 조사가 다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글쎄요."

 

 철수의 재수사 제안에 장 검사는 회의적인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 종결된 사건을 다시 수사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랜 시간 추적해본 결과 윤 선생님의 죽음을 단순히 급발진 사고로 치부하기에는 수상한 점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철수는 준비해 둔 서류를 장 검사에게 내밀었다.

 

  "자, 여기 제가 조사한 윤 선생님의 죽음에 대한 의문점입니다."

 

 장 검사는 철수가 건네는 서류를 받아들고 꼼꼼히 살폈다.

 

  "김태춘이라, 이 자식은……."

 

  "장 검사님도 아시는 놈입니까?"

 

  "네, 이 자는 저번에 헤체된 조폭 미나리의 행동 대장으로 있던 놈인데, 전과는 별로 없지만, 머리가 좋아서 지능범으로 주의인물로 꼽혔던 놈입니다."

 

  "그렇습니까?"

 

 철수는 사진으로 본 태춘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윤 선생님과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근면성실하신 윤 선생님과 달리 요행만 바라는 태춘은 격 자체가 다른 인물이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자세히 조사하셨습니까?"

 

  "윤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조사했습니다."

 

  "윤백룡 씨와 각별한 사이셨나 보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도 피가 섞인 가족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조사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장 검사가 궁금증이 담긴 표정으로 철수를 빤히 쳐다봤다.

 

 그가 태춘의 뒤를 조사하면서 합법적인 경로만을 통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있는 눈빛이었다.

 

  "처음에는 저를 유일하게 믿어주신 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요?"

 

  "……지금은 제가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님이십니다."

 

 장 검사는 쓰고 있던 안경을 손가락으로 올리며 슬쩍 물었다.

 

  "윤백룡 씨의 따님은 마술소녀라고 불리는 윤제이 씨 아닙니까?"

 

  "네, 그렇습니다."

 

  "대표님이 제이 씨와 각별한 관계인 줄은 몰랐군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부럽네요."

 

 장 검사의 말에 철수는 피식 웃으면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자신이 제이와 사귀고 있다는 게 대한민국에 퍼진다면 모든 남자에게 욕을 먹을 것이 분명했다.

 

  "개인적인 부탁인데 김태춘 말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조사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누구 말씀이십니까?"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던 철수가 품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 사람은…… 한국에서 유명한 마술사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이분에 대해선 왜 조사해 달라고 하시는 겁니까?"

 

  "아무래도 그 사람이 윤 선생님의 죽음에 깊게 관련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김태춘과 이 사람이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하더군요."

 

 철수의 말에 장 검사가 탄성을 지르면서 슈트 안 주머니에 사진이 꽂아 넣었다.

 

  "장 검사님,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장 검사의 대답에 철수는 굳은 표정을 풀었다.

 

 믿을 만한 사람이 윤 선생님의 사건을 재수사 해준다는 사실에 마음 속에 응어리졌던 울분이 풀어지는 듯했다.

 

  "장 검사님,그럼 식사는……."

 

  "아니요, 식사는 됐씁니다."

 

  "혹시 저녁 드셨습니까?"

 

 철수는 급하게 자리를 뜨는 장 검사를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아니라……."

 

 장 검사는 단정하게 슈트를 정리하면서 짧게 대답했다.

 

  "강 대표님 윤 제이 씨랑 사귀잖아요."

 

  "……네?"

 

  "그래서 같이 밥 먹기 싫습니다. ……그럼 이만."

 

 짧게 인사를 하고 칼같이 돌아서는 장 검사를 보면서 철수는 픽,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언론에 자신이 제이와 사귄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목숨을 부지 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수는 한족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혼잣말했다.

 

 세상 남자에게 모든 욕을 다 얻어먹는다고 해도.

 

  "절대 내 품에서 안 놔줄 거야.“

 

 

 

 ***

 

 

 

 제이가 샤워를 마치고 얼굴 위에 팩을 올려놓으려고 하는데 삐, 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다.

 

  "하이, 예쁜 공주님."

 

 술 냄새를 풍기면서 들어오는 제이는 살짝 입술을 앞으로 내밀었다.

 

  "철수 씨, 뭐예요. 이 술 냄새는……."

 

  "응? 나 오늘 너무 기분 좋아서 술 한잔했어."

 

 제이는 철수에게 다가가려다가 그의 품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제이, 우리 제이, 우리 공주님. 내가 우리 공주님 차지하고 있다는 거 알면 대한민국 남자들이 다 날 죽이려고 할 것 같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여요."

 

 철수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제이는 살짝 시선을 피했다.

 

 그의 눈빛이 말하고 있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제이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철수 씨, 누구랑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신 거예요."

 

  "그냥 나 혼자 먹었지. 제이는 오늘 뭐 하고 있었어?"

 

  "오늘 윤정이가 불러서 카페에 있다가 같이 밥 먹고 헤어졌어요."

 

  "그랬어?"

 

  "네, 근데 철수 씨,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요?"

 

 철수는 제이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제이는 그의 표정을 빤히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풀지 못했다.

 

  "진짜죠? 진짜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거 아니죠?"

 

  "응, 아니야."

 

  "……하아, 진짜 다행이다."

 

 제이는 손으로 가슴팍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내가 무슨 안 좋은 일 있어서 술 마신줄 줄 알았어?"

 

  "네, 그런 줄 알고 놀랐잖아요."

 

 철수는 그녀를 보며 사랑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머금었다.

 

  "아이, 진짜 괜히 마음 졸였네. 철수 씨 앞으로 술 마시고 들어오면 나 우리집 문 잠글 거예요."

 

  "뭐?"

 

  "못 들어 오게 잠글 거라고요."

 

 제이가 무서운 표정으로 경고하자 철수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내간 무슨 소리를 들은 거야. 대문을 잠근다는 건 내가 못 들어 오게 하겠다는 거야?"

 

 철수가 멍하니 바보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네, 못 들어오게 할 거예요."

 

  "아니, 안 돼. 그럼 안 되지."

 

  "……."

 

  "제이, 미안. 앞으론 절대 술 안 마실게."

 

 순간 철수의 머릿속에 계약서의 한 항목이 퍼뜩 스쳐지나갔다.

 

 제이는 동거 계약서를 쓰면서 그에게 집에서 술을 먹지 말기를 요구했다.

 

  "알았어. 앞으론 절대 술 안 먹을게."

 

  "약속해요."

 

 제이가 새끼손가락을 철수에게 내밀자 그는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면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제이, 근데 있잖아. 나 요즘 뭔가 이상한 것 같아."

 

  "이상해요?"

 

  "응, 요즘 내가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철수가 자신의 귓가에 속닥거리자 제이는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역시 철수 씨 어디 아픈 거죠?"

 

 철수가 대답을 하지 않자 제이는 불안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면 나한테 화났어요?"

 

  "아니."

 

  "그럼요?"

 

  "……귀여워서."

 

  "네?"

 

  "제이가 너무 귀여워서 웃음을 참고 있었어."

 

 철수의 실없는 소리에 제이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뭐예요. 그게. 난 진짜로 걱정했잖아."

 

 제이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철수가 그녀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

 

 제이도 그가 안아주는 게 좋아서, 그의 체온이 전달되는 게 좋아서 가만히 안겨 있었는데 철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제이야."

 

  "네?"

 

  "왜 자꾸 내 마음에 불을 지피는 거야?"

 

  "네에? 제, 제가 언제요."

 

 자꾸 옷 속으로 파고들려고 하는 손길에 제이가 당황해서 그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쳤지만, 철수는 팔에 힘을 풀지 않았다.

 

  "제이야, 잠깐 방으로 가자."

 

  "방에는 왜요."

 

  "잠깐 할 얘기가 있어."

 

  "미안하지만 난 없어요."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던 철수가 그의 가슴팍으로 그녀의 머리를 이끌었다.

 

 그녀의 가슴에 귀를 대고 있자 철수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빠르고 세게 뛰고 있는 심장 소리를 듣고 제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이의 표정을 보고 귀여워 어쩔 줄 몰라하는 철수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웃지 마, 네가 웃으면 내 심장이 고장 난 것처럼 뛴단 말이야."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띠던 철수는 제이의 팔을 낚아채 소파 위로 그녀를 쓰러트렸다.

 

  "엄마야!"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른 제이는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철수의 잿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왜, 왜 이러세요."

 

  "왜? 그러면 안 돼? 이제 너는 내 꺼잖아."

 

  "네? 제가 철수 씨 꺼예요?"

 

  "그럼, 내 꺼지. 내가 내 꺼에다가 내 흔적 좀 남기고 싶은데 안 될까?"

 

 제이가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데 철수가 말보다 행동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천천히 겹쳐오는 철수의 입술에 제이는 그대로 눈꺼풀을 내렸다.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잘했어, 하고 칭찬하는 것 같아서 제이는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알코올 향이 깃들은 입맞춤에 제이는 취한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졌다.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옆으로 틀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철수의 혀가 그녀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말랑한 입술을 머금은 철수는 진심을 담아 제이에게 키스했다.

 

 넘치는 애정이 담긴 야릇한 키스에 제이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흔들렸다.

 

  "나 정말로 이대로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을을 모두 다 보여주고 싶어."

 

 입술로 퍼부어지는 키스에는 철수의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너니까 내가 이러는 거야, 제이야."

 

 철수가 말을 하는 틈을 타서 숨을 들이쉬는 찰나에 그가 다시 그녀의 더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어 왔다.

 

 제이는 그의 행동에서 그가 여유로운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잇었다.

 

 분명히 그의 눈빛은 그녀와 하나가 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살짝 입술을 떼고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강한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ㅡ 스킨십에는 후진이 없는 법이다.

 

 번뜩 윤정이 했던 말을 떠올린 제이가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그의 진심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었지만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제이는 많이 망설이고 머뭇거렸다.

 

  "그래, 알았어. 제이야."

 

 철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한가득 담겨있었지만 아쉬움보다는 그녀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더 큰 듯 순순히 물러났다.

 

 철수가 그녀의 위에서 내려가자 제이는 자신의 방에 들어와서 문을 닫았다.

 

  "……하아."

 

 방으로 돌아와서 거울로 비춰본 자신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철수의 격렬한 키스로 인해 입술은 잔뜩 부어 있었고 그의 손길이 닿았던 곳이 데인 듯 화끈했다.

 

 제이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면서 중얼거렸다.

 

  "어떡해. ……나도 전진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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