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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사장님이 보고 있다!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2.9

시각장애인 사장님께 경제 신문을 읽어주는 개인비서 한지현.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야. 25살 넘어가면 안 필린 다니깐."
남성우월주의자 할머니는 마음대로 그녀의 배우자 모집 광고를 신문에 내버린다. 꼼짝없이 할머니가 소개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했던 지현. 평소에는 단 한 차례도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 없었던 사장님이 신문에 실린 광고를 봤다면서 지현에게 청혼한다.
"이 배우자 모집 광고에 내가 지원하고 싶습니다.“
사장님, 정말 진심이십니까?
habilis21@naver.com

 
사장님이 보고 있다! 1화
작성일 : 17-12-09 20:08     조회 : 380     추천 : 0     분량 : 8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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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배우자 모집 광고

 

 

 딩동, 딩동, 딩동.

 

 지현은 긴장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이내 인터폰에서 누구세요, 하고 묻는 도우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지현이에요.“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삐, 하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대문이 활짝 열렸다. 문이 열리자 서울 도심 한가운데 있다고 믿기지 않는 웅장한 한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지현은 본가에서 일하는 분들께 인사를 하고 가장 큰 방으로 들어갔다.

 

  "오라고 하면 얼른 올 것이지. 여자애가 엉덩이 무거워서 어디다 쓰려고 그러니.“

 

 곱게 한복을 입은 조 여사는 그녀를 보자마자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조 여사는 설날이나 추석 같은 큰 연례행사가 있지 않으면, 본가로 출입하지 않는 지현에게 서운하다는 표현을 자주 하셨다. 지현도 시간이 날 때마다 본가에 있는 조 여사를 자주 찾아뵈려고 했지만, 자신의 얼굴을 볼 때마다 한숨을 내쉬는 조 여사와 마주치면 저절로 힘이 빠졌다.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눈동자를 아래로 내린 지현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일단 앉아라.“

 

 되도록 빨리 본론을 말해주셨으며 좋겠건만, 조 여사는 지현을 앞에 두고 또 일장연설을 펼칠 모양이었다.

 

  ㅡ 지현아. 나다. 너 지금 당장 본가로 좀 와야겠다. 안 오면 너의 부모가 너 교육 잘못시킨 거로 알고 친척들한테 다 소문낼 테니까 그런 줄 알아라.

 

  "그냥 오라고 하시지. 왜 제 부모님 얘기를 꺼내시는 거예요.“

 

  "그래서 화났냐? 이번에는 외국으로 나가려고?“

 

  "할머니.“

 

 지금 한복을 입고 곱게 머리를 쪽지고 계신 분은 궁중음식의 대모라고 불리는 조덕만 여사이자 지현의 친할머니였다.

 

  "어이구, 삭신이야. 늙으니까 어디 성한 곳이 없네.“

 

 조 여사는 어깨와 팔을 두드리면서 신음을 내뱉었다. 진짜 아파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 지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조 여사의 어깨와 팔을 주물렀다.

 

  "아무래도 난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 같아. 그래도 죽기 전에 지현이가 결혼하는 건 보고 죽어야 할 텐데.“

 

 이 소리를 10년째 듣고 있는 지현은 조 여사의 어깨에서 손을 내렸다.

 

  "할머니, 전 결혼하고 싶은 생각 없어요.“

 

  "아니, 왜 결혼을 안 한다는 거야. 자고로 여자는 적당한 시기에 듬직한 남자랑 결혼해서 희생하고 공경하며 사는 게 최고의 삶이야.“

 

 등긁개로 바닥을 내려친 조 여사는 눈을 흘기며 지현에게 돌아앉았다. 똑같은 말을 여러 번 하는 것도 지친 지현은 일자로 입을 꾹 다물었다. 조 여사가 탁상 아래에서 신문을 꺼내 던졌다.

 

  "이게 뭐예요?“

 

  "거기 제일 아래에 있는 광고 한 번 크게 읽어봐라.“

 

 신문을 펼친 지현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배우자 모집 광고]

 

  - 여 28세(신장 : 168cm)

  - 대기업 비서로 근무 중

  - S 대학교 경영학과 영어, 독일어, 중국어 등 4개 국어 가능

  - 텝스 823점 / 한국사 능력(1급) / 한자 자격증(2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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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미 : 피아노 반주, 클래식 음악 듣기, 책 읽기, 꽃꽂이, 수묵화, 유화 그리기, 서예, 사군자 치기

  - 본인은 전통과 뼈대가 있는 가문의 딸로서 지금까지 학업에만 열중했으며 그 어떠한 이성 교제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숙맥이지만, 국내 굴지의 대기업 비서로 양가 어르신들의 축복 속에 교제하여 평생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실 분을 기다리겠습니다.

 

 문의 : 010 - 4X4X - 44XX

 

 

 

  "이, 이게 뭐예요?“

 

 신문을 잡고 있던 지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거기 제일 밑에 전화번호가 할미 전화번호인 거 알고 있지?“

 

  "……네.“

 

  "너 거기로 연락 오는 남자랑 결혼해라.“

 

 조 여사는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는 부채로 태연하게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뭐라고요?“

 

  "결혼하라고.“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아직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리고 결혼은 제가 하고 싶은 사람이랑 할 거예요.“

 

 지현은 들고 있던 신문을 방바닥으로 내팽개치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등을 돌렸다.

 

  "에고, 역시 부모가 교육을 잘못해서 위아래를 모르고 할미한테 역정을 내는구나.“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불러낼 작정인 듯 통곡하는 조 여사의 목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다.

 그 소리에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 지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할미가 결혼하라면 결혼해야지. 무슨 그렇게 말이 많으냐?“

 

  "할머니.“

 

 몸을 돌려 조 여사를 바라본 지현이 어금니를 꽉 깨문 채로 말을 이었다.

 

  "결혼은 제가 알아서 해요. 제가 적당한 시기에 할 테니까 제발 좀 신경 쓰지 마세요.“

 

  "아이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

 

 목이 터지라 고함을 치는 조 여사를 보고 지현은 질끈 눈을 감았다. 이미 조 여사의 막무가내 성격을 알고 있는 집안의 사람들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지현은 다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자리에 앉았다.

 

  "왜 자꾸 저한테만 결혼하라고 성화세요. 저만 결혼 안 한 것도 아니잖아요. 아직 막내 고모도 있잖아요.“

 

 조 여사가 느지막이 본 딸 송이는 지현보다 아홉 살이나 많은 나이였다. 조 여사가 지현의 손을 두 손으로 꼭 부여잡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너는 우리 집안의 장손녀 잖니.“

 

 누구는 장손녀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

 

 지현의 이마에 빠직하고 힘줄이 솟아났다.

 

  "요즘 누가 장손녀니 뭐니 그런 걸 따져요. 지금은 조선 시대가 아니라 21세기 대한민국이라고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지현의 눈동자에 서러움이 짙게 묻어났다.

 

 할머니는 왜 나한테 결혼하라고 이리 성화이신 걸까.

 

 지현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 보고 연락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그러자 입꼬리를 위로 씨익 올린 조 여사가 이죽거리며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그건 모르는 일이다. 내가 여기 말고도 광고를 여럿 냈으니까 분명히 남자들한테서 연락이 올 거다. 너는 그중에서 네가 제일 마음에 드는 놈을 골라서 결혼하면 돼.“

 

 단호하게 내뱉는 조 여사의 목소리에 지현의 팔에 오도도 소름이 돋았다.

 

  "내가 너한테 선택권을 안 주는 것도 아니지 않니? 내가 골라주는 남자랑 결혼하라는 것도 아니고 신랑감은 네가 선택하는 거라니까.“

 

 무슨 짓을 해도 조 여사의 계략에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치자 지현은 고개를 거칠게 내저었다.

 

  "그래도 전 결혼 절대 안 할 거예요.“

 

 

 

 ***

 

 

 

  "지현 씨, 점심시간이야. 지금 식당으로 내려와요.“

 

 도우미 아주머니의 말에 신문 자료를 뒤적이던 지현이 계단을 따라 1층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누가 보면 의아해할지도 모르겠지만 비서로 일하고 있는 지현이 매일 아침 차를 타고 출근하는 곳은 한남동에 있는 단독 주택이었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저택에서 일하는 20명의 사람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옆집 사시는 회장님이 바람이 나셔서 요즘 그 집안 분위기 장난이 아니래.“

 

  "혼외자까지 있다는 소문도 있던데.“

 

  "쉬잇, 그거 다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얘기잖아. 함부로 입에 올리면 안 돼.“

 

  "옆집 사모님 자존심이 보통이 아니시던데. 아마 이혼하시겠죠?“

 

  "옆집 회장님이 처가 힘으로 회사 키운 거 온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인데, 사모님은 절대 이혼 안 해주실 거야.“

 

  "안 그래도 내 친구가 거기서 일하는 데 사모님이 회장님한테 이혼하고 싶으면 회장 자리 내려놓고 나가라고 하셨다네.“

 

 재벌 집에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직원들은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불륜 스캔들 이야기에 한창이었다. 지현은 식탁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고 어색하게 앉았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장님도 조금 저기압이지 않아요? 일주일 전부터 매일 침대 시트를 바꾸라고 하시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여정이 눈살을 찌푸리며 숟가락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사장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왜 이렇게 불평불만이 많아?“

 

 이곳에서 30년 동안 가사 도우미 일을 해온 여정의 불호령에 기가 죽은 하늘은 급하게 변명했다.

 

  "아니, 불평하는 게 아니라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시나 걱정하는 거죠.“

 

  "괜히 자기 일 늘어나니까 불만 쌓여서 그러는 거 다 알고 있어. 걱정은 무슨.“

 

 여정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을 이어갔다.

 

  "이곳에서 오래 일하려면 입이 무거워야 하는 거 몰라? 옆집 회장님이 뭘 하시던 우리 사장님이 뭘 시키시던 떠들지 말고 다들 자기 할 일이나 해.“

 

 단순히 가사 도우미라고 칭하기엔 이 집안에서 존재감이 어마어마했던 여정의 말 한마디에 주변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이상한 소리 하면 이 집에서 나가게 할 테니까 그런 줄 알아.“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한 여정이 식당을 나가자 하늘이 목소리를 낮추고 수군거렸다.

 

  "아오, 진짜 불편해서 같이 밥 못 먹겠네.“

 

  "하늘 씨, 그래도 참아요. 여기서 구여정 선배님한테 찍히면 당장 모가지야.“

 

 다시 시끌벅적해진 분위기에 지현은 빨리 먹고 나가는 게 낫겠다 싶어서 빠르게 숟가락질을 했다.

 

  "아무튼, 우리 사장님도 진짜 불쌍하시지. 가진 거 다 가지신 분이었는데 1년 전부터 눈이 안 보이는 병에 걸리실 줄이야.“

 

  "1년 전부터 안 보이시던 거였어요? 원래 그러신 거 아니었어요?“

 

  "그래, 태어날 때부터 눈이 안 보이시던 건 아니셨대.“

 

 AK 그룹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던 지현에게 회사가 내린 첫 번째 업무는 시각장애인인 사장님께 각종 경제 신문을 읽어주는 개인 비서 일이었다. 세계적인 그룹 AK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지만, 회장 일가에 대해선 잘 몰랐던 지현은 그룹의 단 하나뿐인 후계자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었다.

 

  "요즘 사장님이 슈트 위에 검은색 코트 걸치고 다니시던데 정말 멋있지 않아요?“

 

  "맞아요. 진짜 멋있어요. 검은색 코트 보니까 내 남자친구한테도 선물해주고 싶더라.“

 

  "아서라 아서. 그 코트가 얼마짜린 줄 알고 남자친구한테 선물을 해줘. 분명히 중형차 한 대 값일 거야.“

 

  "그리고 사실 사준다고 하더라도 사장님이랑 똑같은 느낌은 안 날 것 같은데.“

 

  "하긴 그래요. 난 처음 출근하던 날, 사장님 얼굴 보고 진짜 깜짝 놀랐어요.“

 

  "나도. 우리 사장님은 배우 뺨치게 잘생기시고 걷는 모습도 런웨이 위에 있는 모델 같아.“

 

 도우미들은 입을 모아 사장님의 외모를 찬양했다. 사실 지현도 처음 출근했을 때 사장님의 외모를 보고 조금 놀랐었다. 사장님은 세상에 이런 남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반듯하고 멀끔한 미남이었다.

 

  "사장님은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실까?“

 

  "지은 씨, 사장님한테 관심 있는 거야?“

 

  "왜요, 그러면 안 돼요? 사장님처럼 멋있고 돈도 많은 남자면 완전 땡큐죠.“

 

  "에이, 그래도 우리 사장님은 장님이잖아.“

 

  “어머, 사장님, 장님. 라임이 딱 맞네요? 호호호.”

 

 옆에 있던 지현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헛기침을 했다.

 

  "아무리 잘생기고 돈 많으면 뭐해. 눈이 안 보이는데. 자고로 인생 살면서 제일 중요한 건 건강이야, 건강.“

 

 지은이 그윽한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저한테도 경쟁력이 있는 거죠.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는 예쁜 여자잖아요. 그런데 사장님은…….“

 

  "장님이니까 지은 씨한테도 경쟁력이 있다 이거지?“

 

  "네, 바로 그거죠!“

 

 드르륵.

 

 사람들의 대화를 더 듣고 싶지 않았던 지현은 의자 끄는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전 이만 올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현이 나간 뒤에도 여전히 식당 쪽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원에 있는 나무에는 어제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이곳에서 일한 지 벌써 반년이 넘었지만 일하는 사람들과는 도저히 친해질 수가 없었다.

 

 가볍게 정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멀리서 문이 열리고 고급 세단이 안으로 들어왔다. 사장님이 차에서 내리자 지현은 머리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시선을 들어 힐끗 쳐다보니 오롯이 앞만 주시하고 있는 사장님의 손에는 흰 지팡이가 들려있었다. 시각장애인용 흰 지팡이였다.

 

 탁, 탁, 탁.

 

 사장님은 흰 지팡이로 가볍게 땅을 내리치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지현을 지나쳐 걸어갔다. 원래 사장님은 필요한 말 외에는 잘하지 않는 무뚝뚝한 성격이라 지현은 그의 행동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멋스러운 머리는 지금 사장님의 옆에 서 있는 활동 보조인이 정리해준 것일 것이다. 잘생긴 이마와 짙은 눈썹, 그 아래 눈매는 날카롭고 눈동자는 에스프레소처럼 진했다. 찌를 듯한 높은 콧대와 도톰한 입술에선 섹시한 매력이 돋보였다. 우람한 덩치에 키가 188cm나 되는 사장님의 옆에 서면 키가 큰 지현도 아담해 보였다.

 

  "……!“

 

 걸어가던 사장님이 몸을 돌리자 눈이 제대로 마주친 지현이 얼른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잠깐만, 사장님이랑 눈이 마주쳐?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는 듯해서 지현은 고개를 들어 사장님을 바라봤다. 이번에도 또다시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다니? 아냐, 그, 그럴 리가 없는데.

 

 당황해서 바닥만 주시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조용한 목소리로 지현을 불렀다.

 

  "한지현 씨.“

 

  "네?“

 

  "지금 바로 내 방으로 오세요.“

 

  "알겠습니다.“

 

 탁, 탁, 탁.

 

 사장님은 다시 흰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면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

 

 

 

 똑똑똑.

 

 나무문을 가볍게 두드린 지현은 문을 살짝 열고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개인 비서 한지현입니다.“

 

 노크한 후 문틈 사이로 자신의 직책과 이름을 말하는 것. 지현이 처음 이곳에 출근했을 때 제일 먼저 배운 것이었다.

 

  "들어오세요.“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안으로 들어가자 고개를 아래로 반쯤 내리고 있는 사장님이 보였다.

 

  "한지현 씨.“

 

  "네, 사장님. 실은 아까 잠시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졸리기도 하고 저택 정원이 예쁘기도 해서…….“

 

 지현의 변명을 듣고 있던 사장님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사장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마를 긁었다.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긴장한 듯 손가락을 오므렸다 펼치기를 반복하던 사장님이 지현에게 신문을 건넸다.

 

  "제일 마지막 장 오른쪽 아래에 있는 광고를 읽어보세요.“

 

 사장님이 지시한 일은 지현이 늘 하던 일이었기에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

 

 자신만만하게 신문을 펼쳐 든 지현은 입술을 떼지 못했다. 신문을 펼치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은 현실도 같이 펼쳐져서 지현은 목이 콱 메어왔다.

 

  "빨리 읽어보세요.“

 

 사고가 일시 정지되어 눈꺼풀만 깜빡이던 지현은 사장님의 재촉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배우자 모집 광고, 여 28세, 신장 168cm, 대기업 비서로 근무 중, S 대학교 경영학과 영어, 독일어, 중국어 등 4개 국어 가능.“

 

 떨리는 목소리로 글자를 읽어 내려가던 지현은 결국 끝까지 신문을 읽지 못했다. 사장님이 지현에게 읽어보라고 시킨 광고는 바로 조 여사가 낸 그녀의 배우자 모집 광고였다.

 

  "그런데 이걸 왜…….“

 

 말끝을 흘린 지현은 혹시 사장님이 자신에게 잘못된 신문을 건네준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지현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좌우로 흔들렸지만, 사장님은 늘 그랬듯이 오늘도 평온한 표정이었다.

 

  "여기 배우자 모집 광고에 나온 사람이 바로 한지현 씨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분명 신문에 적혀 있는 광고는 조 여사가 낸 자신의 배우자 모집 광고였다.

 

  "이 배우자 모집 광고에 내가 지원하고 싶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나중에 아는 것보다 내가 한지현 씨한테 직접 말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 지금 얘기하는 것입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지현은 초조한 표정으로 손가락 깍지를 꼈다 풀었다.

 

  "하, 하지만 사장님 저는 당분간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 배우자 모집 광고는 왜 낸 것입니까?“

 

 사장님의 날카로운 질문에 지현은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지현을 결혼시키려는 조 여사의 성화는 그녀의 나이가 25살이 넘어가면서 더 극성스러워졌다.

 

  ㅡ 지현아,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당일인 25일보다 그 전날인 24일 날 제일 잘 팔리는 거 알고 있냐?

 

  ㅡ 할머니 그게 언제적 얘기에요.

 

  ㅡ 25일이 넘어가면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이제 더 팔리지 않아.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랑 똑같아. 너도 26살이면 다 끝났어. 한살 한살 더 먹어가면 먹어갈수록 좋은 남자 만나기 힘들어진다. 어서 괜찮은 남자 잡아서 시집이나 가.

 

 막연히 좋은 사람 만나면 결혼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경제 신문을 읽어주는 일을 하면서 경제에 눈이 뜨였던 지현은 아직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할머니가 신문에 자신의 배우자 모집 광고를 낸다고 했을 때, 설마 지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반년 동안 한 번도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 없었던 사장님이 지원하고 싶으시다니.

 

  "사장님, 정말 진심이십니까?“

 

  "네, 난 이런 거로 장난하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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