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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신화에 관하여
작가 : 펭윙
작품등록일 : 2017.11.3

21세기,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이시대에 갑자기 오래전 모습을 감췄던 신들과 악마들이 나타난다. 인류와 함께 악마들과의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는 신들과, 신들을 굴복시키고 인류를 타락시키려는 악마들의 마지막 이야기


 
첫 전투(3)
작성일 : 17-12-09 01:16     조회 : 289     추천 : 0     분량 : 5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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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네놈들이 그렇게 찾고 싶어 하던 원천이야."

  천자마는 바닥에 힘없이 쓰러져 있는 보우 앞에 아수라가 방금 가져온 나무 상자를 던졌다. 보우는 그걸 보고 허무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위 뒷목의 문양은 원천이 그의 가까이에 놓이자마자 경복궁 때처럼 밝은 빛을 내뿜었다.

  "당신들, 어떻게 이걸..."

  "천사들이 왜 결국 우리한테 안되는지 알아? 걔네들은 너무 인간들을 믿거든. 이것도 겨우 내 부하 하나가 갔는데 인간 한 명밖에 안 지키고 있어서 쉽게 가져올 수 있었어. 참으로 얼빠진 놈들이지. 그렇게 허술해서야 어떻게 우리를 맞서겠다고 쯧쯧..."

  보우는 천사들을 무시하는 천자마를 증오하는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천자마는 그런 보우를 한심하다는 듯이 가증스러운 눈빛으로 보우를 깔보았다.

  "자, 이제 더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끝내자. 너도 이제 지겹잖아? 갑자기 튀어나온 개 같은 천사들과 여기저기 굴려 다니면서 더러운 짓 당하는 거, 이제 싫지? 저 상자 열어주면 집에도 보내주고, 돈이든 땅이든 네놈이 원하는 것도 다 줄게. 솔깃하지?"

  "닥쳐... 내가 미쳤다고 그걸 열어줘? 무시하지 마. 나도 생각은 있다고!"

  그 많은 협박과 회유를 해도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보우에 천자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화를 참지 못하고 발로 보우의 손을 짓밟아 뭉갰다. 보우는 팔 전체에 걸쳐 느껴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 비명도 못 지르고 흐느꼈다. 지금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무게는 평범한 사람의 무게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무겁고 쓰라렸다.

  "멍청한 새끼! 그놈들이 너에게 뭘 해줬길래 이렇게까지 하면서 돕는 건데! 난 네놈에게 천사들이 해준 것보다 더한 것을 해주겠다고 분명히 말했어! 팔자에도 없는 호의를 베풀면 그냥 받아 처먹으라고!"

  그녀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을 더 보우를 향해 발길질을 해댔다. 보우는 피가 흐르는 자신의 손을 감싸며 겨우겨우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흥분한 채 계속 보우를 가학하고 있는 천자 마에게 아수라 하나가 급하게 달려왔다.

  "천자마! 적입니다!"

  적이라는 말에 천자 마는 발길지를 멈추고 아수라를 향해 돌아봤다.

  "적? 하늘이 노래졌길래 설마 했더니 역시 천사들의 대장이 드디어 힘을 쓰기 시작했나 보군."

  "이곳은 절대 들킬 리가 없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이곳에 오지 않았던 자가 어떻게 오늘 갑자기..."

  "원천과 열쇠 다 우리한테 있으니 이제 자신들의 존재를 들켜도 좋단 거지. 원천의 힘을 쫓아왔을 리는 없고, 이 열쇠 놈을 쫓아온 것 같군."

  천자마는 엎드려있는 보우를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적? 그럼 설마 미카엘이?' 적이 쳐들어왔다는 말에 보우는 자신을 구하러 미카엘과 천사들이 왔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 희망은 곧 그들이 이곳에서 악마들을 무찌르고 자신과 원천을 구해내서 세상을 다시 안전하게 할 것이란 굳은 믿음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몇 놈이나 끌고 왔는데?"

  "그것이... 계집애 한 명뿐입니다."

  "뭐? 계집애?" 여자 하나만이 쳐들어왔다는 말에 천자마와 보우 모두 놀라 아수라를 쳐다봤다.

  '설마 시엔? 안 돼, 이 사람들은 너무 위험한데...!'

 보우는 바로 시엔 혼자 자신을 구하러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알아챘다. 방금까지 구출될 수 있을 거란 믿음은 곧 혼자 이곳에 온 시엔에 대한 걱정으로 변했다. 시엔이 왔단 것을 안 건 천자 마도 마찬가지였다.

  '그 몸 상태로는 무리일 텐데? 여기서 바로 원천을 얻고 날 상대하겠다 이건가? 그렇게 될 수는 없지."

  천자마는 이를 빠드득 갈고 아수라에게 명했다.

  "가서 모두한테 전해. 지금 쳐들어온 년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썩어가고 있는 오래된 수박 같은 년이니, 망설이지 말고 바로 공격하라고! 이번 일이 끝나면 가장 적극적이었던 놈에게 상을 주겠다 해. 알아들었어?"

  아수라는 그녀의 명을 받들고 방을 나서고, 천자마는 보우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매우 흥분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너도 일이 골치 아프게 된 거 눈치챘지? 좀 빨리 서둘러줬으면 좋겠어. 지금 마음만 같아서는 네 머리통을 바로 갈아버리고 싶거든?"

 

  시엔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밀려들려오는 아수라들과 마귀에게 홀린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람들이 쌓여있었고, 그녀의 앞에는 먹잇감에만 집중하는 하이에나 같은 기세로 달려드는 적들이 가득이었다.

  "공을 세운 자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는 천자마의 말씀이시다! 모두 저년을 찢어 죽여라!"

  천자마의 명에 아수라들은 모두 흥분해 더 사나운 기세로 그녀에게 돌진했다. 어느새 그들은 인간의 탈을 벗고 악마 그 자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시엔은 점점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서 너무 많은 힘을 쓰면 어제처럼 또 천자 마에게 당하고 보우를 구출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전략적으로 영력을 써서 적들을 상대해야 했지만, 그녀의 몸은 이미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시엔의 몸에서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할 때,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렸다. 총에 맞은 적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고, 시엔의 뒤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1팀은 악마에 홀린 사람들을 전담하고, 2팀은 마귀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모두 정신 바짝 차려!" 

  놀랍게도 그들은 무장을 한 요원들이었다. 매서운 기세로 적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고 놀란 시엔 옆에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혼자 고생이 많네요. 저 자식들 다 상대하려니 아무래도 신이라도 무리죠?"

  시엔에게 말을 건넨 사람은 기 요원이었다. 시엔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해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지금..."

  "저희 요원들입니다. 당신들과 성직자들 도움 없이도 영적 존재들 상대하려고 창설한 유니아스 산하 군이죠. 저 무기들, 이래 봬도 100년 동안 만들어온 거예요." "잠시만, 그럼 마귀들은 그렇다 쳐도 악마에 홀린 사람들은 그냥 저렇게 죽이는 거야?" "몸 안에 있는 마귀들은 저희가 어떻게 못해요. 저 사람들한테 쏘는 건 일종의 마취총 같은 거예요. 잠시 기절시킨 뒤 STO 시설로 데려가 거기서 치료를 잘 겁니다. 뭐 사람들 수가 꽤 많아서 오랜만에 바빠지겠네요 거기도."

  기 요원의 설명에 시엔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들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을 때 인간들 나름대로 악마에 대해 대비를 한 것이 기특하기도 했고, 보우를 구하지도 못했을 수 있는 상황을 피한 것에 대한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그새 악마들에게 홀린 사람들은 모두 쓰러졌고, 요원들과 시엔의 앞에는 아수라들만이 길을 막고 있었다.

  "어? 야 거기! 아까 종묘에서 나 죽이려 했던 놈이지? 꼼짝 말고 기다려! 너는 반드시 내가 처리한다!"

  기 요원이 아수라들 중 하나를 보고 소리쳤다. 그녀의 도발에 그녀를 공격했던 아수라는 얼굴을 찡그렸다.

  "저 미친년이... 죽었다 살아나니까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보군. 다 쓸어!"

  곧 수백의 아수라들이 칼을 뽑고 공격해오기 시작하고, 기 요원은 다른 요원들과 수비 태세를 갖췄다.

  "1팀과 2팀 모두 총알을 대악마용으로 바꾸고, 애써 급소 맞추려 하지 말고 무조건 쏟아부어. 어차피 쟤네들은 인간들이나 짐승도 아니고 급소가 딱히 없으니까, 회복할 시간 주지 말고 계속 쏴, 알았어? 정신 똑바로 차려! 방심하면 바로 홀린다!"

  기 요원 또한 총을 꽉 쥐고 달려오는 아수라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그리고 시엔에게 말했다.

  "우리가 쟤네들 붙잡고 있을 테니까, 당신은 어서 그 소년을 구하러 가요. 그래야 우리도 마음 편해지니까. 어서요!"

  기 요원의 말에 시엔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요원들의 엄호를 받으며 폐건물의 중심부를 향해 달렸다. 중간에 아수라 몇몇이 그녀를 위협했지만, 요원들의 사격과 시엔의 공격에 모두 맥없이 물러나야 했다. 아수라들은 결국 시엔은 일단 포기하고 요원들부터 공격하기로 하고 더욱 매서운 기세로 그들에게 공격을 가했다. 기 요원은 아수라들에게 계속 총알을 퍼부우면서 소리쳤다.

  "와 봐 이 마귀 새끼들아! 너희들을 지옥으로 귀향시켜줄 테니까!"

 

  천자마는 애써 버티는 보우의 팔을 억지로 잡아당겨 그의 피로 흥건한 손을 상자 쪽으로 끌어당겼다.

  "빨리 열어! 어서 저 상자 속의 힘을 나에게 바치란 말이야!"

  보우는 이미 수많은 구타를 당했음에도 정신을 겨우 의지하며 완강히 천자 마의 요구를 거부했다.

  "못해... 절대 당신들에겐 못 줘... 이건 시엔이 가져야 해..."

  "이것이 끝까지 나를 능멸하는구나. 야, 지금 내가 너를 심하게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냐? 아니, 내 성격이었으면 넌 진작 이곳의 먼지가 되어 날아갔어야 해! 이 정도 친절을 베풀었으면 네놈도 그에 맞는 답례를 해야지?"

  "... 닥쳐... 당신이 나에게 어떤 짓을 하든지 상관없어. 난 사람들이 당신들에게 고통받는 걸 볼 수 없다고..."

  "뭐? 사람들이 고통받는 걸 볼 수가 없다고? 그렇게 혼자 고상한 척 착한 척하면 누가 너를 알아봐 줄 것 같아? 천만에, 지금 사람들은 너 같은 놈에게는 관심도 없어! 네놈이 여기서 나에게 처맞고 죽임을 당한다 해도 우리는 새로운 열쇠를 찾으면 되고, 사람들은 네놈의 헌신을 아무도 모르게 되겠지! 그래도 정녕 고집을 부리고 싶어? 널 인정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보우는 천자마의 말을 듣고는 그녀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실소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의 그런 모습에 천자 마는 약간 당황한 듯 미간을 찡그렸다.

  "... 뭐야, 방금 너 웃은 거야?"

  "그래... 당연히 사람들은 모르겠지. 내가 그들을 위해 이 짓을 당해가며 버틴 것을. 인정도 물론 못 받겠지. 근데, 왜 꼭 인정받아야 하는 건데? 나는 인정을 받으려고 이러고 있는 게 아니라 내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뿐이야. 다른 사람들의 인정? 그런 건 부모님을 잃었을 때부터 이미 받은 지 오래야. 난 예전부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고, 지금도 그럴 거야. 그러니 차라리 날 죽여. 네가 백날을 노력해도 내 신념을 절대 못 꺾으니까!"

  천자마는 보우의 말에 표정이 싹 굳더니 그에게 다가가서 손으로 그의 머리를 계속 치기 시작했다. 보우의 입에서 괴로운 신음 소리가 나든 말든, 그의 얼굴에서 진홍색 피가 흐르든 말든 그녀는 보우가 의식을 완전히 잃을 때까지 계속 구타를 반복했다. 한참을 계속 구타당하던 보우는 결국 얼굴에 피멍이 가득 든 채로 숨소리도 멎은 채 의식을 잃었다. 천자마는 그가 완전히 쓰러진 것을 확인하고 그의 몸뚱어리를 상자 쪽으로 끌고 갔다.

  "또 영력을 쓰면 그 중놈의 사리가 또 난리를 칠 테니, 내 분도 풀 겸 친히 내 손으로 네놈을 잠들게 해주었다. 어차피 네놈의 손모가지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상자를 열고난 뒤 네 녀석에 목숨을 거두어주지."

  그녀는 그의 손을 억지로 상자의 뚜껑에 새겨진 문양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상자의 문양이 저번 경복궁 때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천자 마는 드디어 이 힘을 얻는다는 쾌감에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날카로운 웃음소리를 냈다. 더욱더 강력해진 힘으로 자신의 주인과 함께 모든 인간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릴 생각에 그녀는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아니 그보다도 더한 자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금방이라도 열릴 것처럼 빛나던 상자는 다시 빛을 잃고 평범한 상자로 되돌아왔다. 천자 마는 열리지 않은 상자에 당황하여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어째서?! 왜 열쇠를 갖다 댔는데도 열리지가 않은 거야! 이젠 감히 일개 상자마저도 감히 나를 능욕하는구나! 대체 무엇 때문에 이토록 나를 거부하는 것이야! 도대체 왜!"

  천자마는 자신의 분을 참지 못하고 상자를 집어던졌다. 상자는 한참을 날아가고 구르더니 이내 방의 문 앞에 떨어졌다. 그때, 문이 열리고, 바깥에서 들리는 아수라의 소리와 요원들의 총 소리 사이로 시엔이 터벅터벅 걸어들어왔다.

 

  "보우...보우는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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