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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집사와 남편 사이
작가 : 루야
작품등록일 : 2017.11.7

메이블 공작, 비올레타 메이블에게 7살 이전의 기억은 없다.

그녀의 나이 7살, 죽을 뻔한 비올레타의 앞에서 부모는 걱정 하나 하지 않았다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죽을뻔한 너를 살린 사람은 황제 폐하이니 그 분께 평생을 바쳐라.'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소녀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노예처럼 부려지는 것에 불만을 가졌고 스물이 넘은 후로는 반항심이 생겼다. 하지만 무려 7살 때부터 지속된 세뇌는 그녀를 당당해질 수 없게 만들었다.

26살, 19년 동안의 속박을 마침내 예정된 죽음으로서 벗어나게 된 그녀. 행복한 삶은 고사하고 그저 죽음으로 도망칠 생각 뿐이었는데...

'저는 주인님의 충직한 종복이니까요.'

그대는 왜 내게 다가오는가.
마음을 열어 내 뒤를 맡기고 했건만 그대는 왜 존재하지 않을 나의 미래를 이야기하는가.


[ 시한부여주, 공작여주, 무심여주, 흑막남주, 여주호구남주, 남주후보 아마도 셋, 조금의 힐링물(잔잔X), 피폐물ㄴㄴ 초반부에 살짝 스릴러, 새드엔딩 아니에요 :D ]

-표지는 shutterstock!
-조아라와 동시 연재중..!

 
20화. 아들과 집사, 그리고 황태자
작성일 : 17-12-08 22:09     조회 : 270     추천 : 0     분량 : 5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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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데없이 내 마음을 읽는 능력만 뛰어나서는.”

 

 비올레타는 노엘에게 지시해야 할 내용을 꼽으며 피식 웃었다. 상황을 살펴보자면, 그는 비올레타와 메이블 대부인 루이안의 관계를 어림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문틈으로 엿듣는 노엘의 좋지 않은 버릇이 발동했는지 비올레타가 원래 불임이었다는 말도 들은 것이 분명했다.

 

  “의사의 말을, 들었나?”

  “예, 감히 엿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대부인과 내 관계도 알겠지.”

 

 그녀는 불임사실을 루이안에게 숨기지 않았다. 아니, 숨길 수 없었다. 그렇게 그녀의 불임소식에 루이안은 비올레타를 결혼동맹에 써먹겠다는 생각을 접어야 했다. 혹시라도 정략결혼 후에 불임 사실이 들통 나면 곤란해지니까. 그런데 그랬던 루이안이 비올레타가 월경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어봐라.

 

 필경, 어떻게라도 그 사실을 이용해먹으려 들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을 것이야. 그러니 노엘, 그대는 별장 내에 있을 대부인의 끄나풀을 색출해 내 주었으면 해.”

  “…….”

  “물론 기사들에게 맡겨도 되지만 그들이 시종인 들을 감시하는 건 어딘가 부자연스럽잖나.”

  “찾아낸 후에는, 어찌할까요?”

 

 귀를 막고 있는 베르안의 얇은 팔을 쓸어내리며 비올레타는 고민했다. 너무 대놓고 끄나풀을 색출하는 건 안 된다. 끄나풀을 찾아내고도 그, 혹은 그녀가 색출되었다는 것을 티내면 안 되고. 그렇다면 조금 복잡하고 귀찮지만 확실한 방법을 써야 한다.

 

 일단 루이안의 끄나풀을 오히려 포섭하는 전략. 그것이 성공하지 못할 것 같다면 끄나풀과 접촉하지 않고 끄나풀이 수도로 보내는 편지를 다른 내용으로 바꾸어 보내야 했다. 복잡하다. 비올레타는 습관처럼 관자놀이를 짚었다. 물론 영특한 노엘은 쉽게 알아듣겠지만 그가 알아듣는다 해서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나에 관한 소식도, 끄나풀이 잡혔다는 소식도, 대부인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라. 그대의 능력으로 충분히 그 정도는 수행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명 받잡습니다. 물러가 보죠.”

 

 침실 문을 닫고 계단을 내려가는 노엘의 구둣발 소리가 요란했다. 마치 어딘가에 화라도 난 듯 뚜벅 뚜벅 자비가 없는 소리였다.

 

 

 * * *

 

 

 델라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편지지를 꺼내들었다. 어서 알려야 했다. 메이블 대부인이 그녀에게 주기로 한 액수가 얼만가! 자그마치 1000골드(1억)였다. 시녀로 일하며 한 달에 받는 월급이 25골드(250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메이블 공작 별장’에서 ‘시녀’로 3년 4개월을 일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불임이었던 메이블 공작이 달거리를 시작했다는 정보를 전하는 것 치고는 엄청나게 고급스러운 보수였기에 델라는 한없이 기뻤다. 1000골드를 받으면 어떤 것을 할까 고민하던 델라가 머릿속에서 상념을 털어버리고 깃펜을 꾹 움켜쥐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경쟁재보다 빠르게 소식을 전하는 게 중요해!’

 

 하지만 마음먹음과 다르게 떨리는 그녀의 손은 몇 장의 편지지를 버려먹고서야 제대로 된 것을 완성해냈다. 델라는 편지지를 곱게 접어 편지봉투에 넣고 봉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고리를 잡았다.

 

  “꺅-”

 

 그러나 문고리는 그녀가 돌리는 것보다 훨씬 재빠르게 돌아갔다. 확 얼굴 앞으로 다가온 문에 델라가 편지를 떨어뜨리며 문에 박은 코를 감싸쥐었다.

 

  “으……, 아파.”

 

 코허리가 시큰거리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는 급하게 편지를 주워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제 코를 다치게 한 원흉을 노려보았다. 문을 닫고 태연하게 잠그기까지 한 남자는 싱긋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힉- 델라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어, 어떻게.”

  “주머니에 넣은 종이 쪼가리, 주시죠?”

 

 무의식적으로 손목을 바들바들 떨며 델라가 뒷걸음질 쳤다. 한 손을 내밀고 예쁘게 웃는 남자가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좁은 방에 도망갈 틈새가 있을 리가. 곧 그녀는 침대에 주저앉고 말았다. 털썩- 절망과 공포에 젖은 몸이 침대에 내리눌러졌다.

 

 아아 망했어, 조금 더 서두를 걸. 델라는 체념이 제 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남자의 커다란 그림자는 어둠처럼 다가왔다. 순간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떠올랐다.

 

  ‘안 돼! 1000골드는 그렇게 쉽게 벌 수 있는 돈이 아니잖아!’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녀는 꼭 돈을 받아야 했다. 그 돈만 있으면, 다 쓰러져가는 집안을 어떻게든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러니…… 꼭 이 편지를 전해야 한다. ‘델라’의 이름으로.

 

  “델라, 착하게 굴어야죠. 그래야 부모님이 칭찬해 줄 거예요.”

 

 악마, 악마보다 더한 놈! 델라의 턱이 요동쳤다. 가까이 다가온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자, 어서. 내게 건네요.”

  “시, 싫어. 꺼져버려-!”

 

 제 딴에는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모두 끌어서 남자를 밀어냈건만 그는 그 자리에 사신처럼 굳어져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삐뚜름하게 한 쪽 입 꼬리를 끌어올린 남자가 그녀의 위로 상체를 숙였다. 처음에 보았을 때는 세상 그 무엇보다 예쁘다고 생각했던 머리칼이 물귀신의 머리칼처럼 소름끼쳤다.

 

  “가족이 소중하다고 했나?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럴 텐데 말이야…….”

  “무, 무,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 거야.”

  “이것 좀 봐. 내 부하가 보내주었는데 꽤나 혐오스러워서 네게도 보여주려고.”

 

 델라는 목을 움츠리며 남자의 내밀어진 손을 살며시 쳐다보았다. 설마 설마 했지만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아……, 아흐- 으아아악!”

  “……닥쳐, 시끄러우니까.”

 

 징그러운 화상 자국이 즐비한 누군가의 손가락 두 마디였다. 델라는 바로 알아챘다. 태생적으로 새카만 피부에 어릴 적 큰 사고를 당해서 커다란 화상이 있는 기형 손가락. 그건 그녀의 여동생의 것이었다.

 

 남자가 징글징글 하다는 듯 델라의 입을 틀어막았다. 밖으로 나오지 못한 울음이 억지로 입 안으로 삼켜졌다. 동생의 손가락을 두 손으로 꼭 쥔 델라는 서럽게 울었다. 동생이, 매일 마녀라 놀림당해 의기소침할 때면 그녀에게 안겨오고 했던 동생이……. 제 심장을 잃은 짐승처럼 울부짖는 그녀를 앞에 두고도 남자는 귀찮다는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평정을 잃은 델라는 남자의 멱살을 움켜쥐며 절규했다.

 

  “죽었어? 설마…… 죽인 건 아니지?”

  “더러우니까 이 손은 놓고.”

 

 나른하게 목을 돌리며 남자가 그녀의 손을 때어냈다. 그리고는 이를 드러내며 화려하게 미소 지었다.

 

  “안 죽었으니까 진정해요. 앞으로 내게 협조해주면 멀쩡하게 풀어줄게요.”

  “하……. 하……. 우린 같은 편 아니었어? 대체 정체가 뭐야?”

  “그냥 죽일까요? 빨리 대답해 주었으면 하는데?”

 

 델라는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뒤져 편지를 찾아냈다. 손에 잡히는 감촉이 절망적이었다. 이것을 저 악마에게 준다면 가족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편지를 수도로 보낸다면 1000골드의 돈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고민할 수 없었다. 델라의 삶은 온통 가족들뿐이었으니까.

 

 남자는 그녀가 주저하며 꺼내든 편지를 낚아채 북북 찢어버렸다.

 

  “고마워요. ……이제 쉬어요.”

 

 가증스럽게 웃음 지은 남자가 갈가리 찢긴 편지지를 짓밟고 방을 나간다. 델라는 침대 깊숙이 몸을 묻었다. 희망을 빼앗기고 나니 남은 건 짙은 실망감뿐이었다. 다 끝났어, 그녀가 깊은 무의식으로 빠져들며 중얼거렸다. 애초에 그녀를 사주한 사람은 어째서 저런 무서운 남자를 함께 고용했을까, 누구에게 가야할지 몰라 방황하는 원망감이 허공을 부유했다.

 

 

 * * *

 

 

 아멜리안 지방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오웬은 성이 없었다. 평민조차도 가지고 있는 성이 없는 그는 천민이었다. 노예. 그런 그를 해방시켜 준 사람은 몇 달 전 아멜리안 영지에 내려온 이름 모를 귀인, 오웬이 18살 인생에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남자였다. 그날 이후로 오웬은 남자가 시키는 일이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도 망설임 없이 행할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지금, 은인은 처음으로 그에게 일을 시키고 있었다.

 

  “이 편지를 수도의 메이블 공작 저로 가져가요.”

  “메, 메, 메이블 공작 저…… 요?”

 

 은인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웬은 졸도할 뻔 했다. ‘메이블 공작 저’가 저렇게 쉬운 단어였나. 황제의 개라고 불리는 가문. 그러나 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제국 최초의 여성 가주가 있는 권력에 정점에 선 대귀족. 맙소사, 그런 곳에 가서 편지를 전달하라니.

 

 오웬은 기절할 듯한 정신을 막 붙잡고 은인을 돌아보았다. 빛에 밝은 머리카락이 환하게 빛나고 있는데 어째 은인의 얼굴은 좆같이 일그러져 있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으셨나 보다, 그는 마음속으로 짐작했다.

 

  “언제까지 가져가야 되요?”

  “여기.”

 

 오웬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돈주머니를 뒤적인 은인이 1골드짜리 금화를 그에게 건네주었기 때문이었다. 왕복 뱃삯이 40실번데……. 그는 굳이 착한 척 돈을 돌려드리지는 않았다. 그저 주는 대로 받고 명하는 대로 알아들으면 된다. 군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1골드를 주었다는 건 최대한 빨리 배달하라는 것. 수도에 있는 메이블 저택까지 걸리는 시간을 가늠하던 오웬은 1골드를 소중하게 바지주머니에 집어넣고 편지를 받아들었다.

 

  “위험하지는 않을 거예요. 공작 저에 도착한 후에는 문지기에게 대부인을 만나게 해달라 부탁해요.”

  “대, 대…… 부인. 알겠어요.”

  “혹시라도 너를 내쫓으려고 한다면 이 표식을 보여줘.”

 

 은인이 공손히 모아진 오웬의 손바닥 위에 내려놓은 것은 은과 동을 섞어 만든 어떤 문장이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모양새에 오웬이 보석 모시듯 조심 조심 문장을 다뤘다. 귀인 모시듯 모셔갈 편지지에 표식까지. 짧은 여정이 쉽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 그리고 이 것도 처리해 주겠나?”

 

 앞에서 은인이 부탁했던 것들을 오히려 더 어려워하던 오웬은 이번 것에는 별 반응 없이 순응했다. 빈민가에서 태어난 노예아이가 하던 일은 험한 것이 다수였고 누군가의 손가락을 처리하는 것 따위는 시체를 처리하는 것만큼이나 익숙했기에.

 

 은인이 내민 손가락 하나를 손아귀 안으로 감춘 오웬이 꾸벅 인사를 하고 갈 길을 가려던 참이었다. 은인이 듣기 좋은 목소리로 그를 불러 세웠다.

 

  “오웬.”

  “네? 왜 그러세요?”

  “고마워요.”

 

 오웬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의 볼이 발갛게 상기되었다. 굳이 하지 않으셔도 될 감사인사를……. 오웬이 은인의 부탁을 들어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일부러 쑥쓰러움으로 달아오른 볼을 숨기며 크게 대답했다.

 

  “당연한데요, 뭘 그러세요.”

 

 젠장. 은인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말의 끝마디에서 톤이 삐죽이 올라간 걸 들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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