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카르마(Karma), 사랑받지 못한 ……. - ②
국회에서 여야의 대치가 있던 날 밤, 몸싸움이 시작되기 직전 동원이 있던 곳은 국회의사당 지하의 직원 예배당이었다. 거기에서 동원은 칼날을 왼손으로 움켜잡고 그어 손바닥에 피를 낸 뒤, 그 피를 설교대 밑에 깔아 놓은 부적 위로 흩뿌리면서 주술을 행했다. 방울을 흔들고 주문을 외는 내내 동원의 뇌리엔 승희와 다정하게 있는 학현의 모습이 어른거리며 동원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럴수록 주문을 외는 동원의 목소리엔 증오와 저주가 더 짙게 묻어났다.
부적을 적신 피는 곧바로 땅속 깊숙이 스며들며 그 안에 잠들어 있던 꽃님의 넋에까지 닿았다. 그때 동원이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며 발작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러다 잠시 후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어느 새 홀연히 나타나 우두커니 서 있는 꽃님과 눈이 마주치고는 곧바로 기겁하여 허둥지둥 그곳을 도망쳐 나왔다.
주술이 실패했다고 생각한 동원은 외딴 곳에 있는 직원 화장실의 변기 칸에 숨어 혼자 초조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로텐더홀에서 여야 의원들과 보좌진들의 몸싸움이 시작되자, 그 소리를 듣고서 밖으로 나왔다가 뭔가를 발견하고는 대뜸 그들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뭐에 홀린 듯 초조하게 흔들리던 동원의 시선은 저 앞에서 야당 쪽 사람들과 뒤엉킨 채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학현을 집요하게 쫓고 있었다.
학현의 등 뒤로 돌아간 동원은 두 눈을 부라리며 품속에서 조금 전 주술을 걸 때 사용했었던 칼을 뽑아들었다.
‘너 때문이야! 너만 없었으면! 너만 없어지면! …….’
그리고 마침내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칼을 쥔 손을 앞으로 훅 내질렀다.
“이야아!”
칼이 상대의 몸에 콱 박히는 느낌이 손으로 전해져왔다. 동원은 엉겁결에 어깨가 움찔했다. 떨리는 눈빛으로 앞을 쳐다봤다. 그런데 동원의 칼에 찔린 사람이 학현이 아니었다. 지혜였다. 지혜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동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그 광경을 목격한 한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꺅! 피! 피야!”
갑작스런 비명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대번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우왓!”
“뭐, 뭐야?”
동원은 그제야 흠칫 놀라며 칼에서 손을 뺐다.
“아, 아냐 ……. 내가 한 게 아냐 …….”
지혜는 너무도 갑작스러웠던 나머지 고통보다 당혹스러움이 앞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동원……씨? 당신이 어떻게 …….”
그러는 사이 겁에 질린 채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고 있던 동원의 모습이 학현의 눈에 들어왔다.
“야 이 자식아!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학현은 그러면서 곧장 달려가 지혜를 부축했다. 비틀거리던 지혜는 그제야 다리가 풀리면서 학현의 품에 안겨 쓰러졌다.
“이봐! 괜찮아? 지혜 씨!”
지인과 승희, 승호도 헐레벌떡 달려왔다.
“지혜야!”
“언니!”
승호는 동원을 확 밀쳐내며 질책했다.
“야, 강동원! 너 이 자식 미쳤어?”
멍하니 있던 동원은 엉겁결에 중심을 잃고서 뒤로 나뒹굴었다.
“으헉!”
그런데 그러고 나서도 마치 정신이 완전히 나간 것처럼 굴며 엉금엉금 일어나더니 재차 학현에게로 달려들었다.
“으아아아!”
결국 참다못한 학현이 벌떡 일어나 동원에게 주먹을 날렸다.
“이 자식이 그래도!”
주먹은 정확히 동원의 복부로 날아가 꽂혔다. 동원은 명치로부터 쳐 올라온 날숨에 숨이 턱 막히며 입에서 외마디 신음 소리가 튀어나왔다.
“헉! …….”
그와 동시에 눈동자가 어지럽게 흔들리며 동공이 활짝 열렸다. 주변의 소란이 의식으로부터 점점 아득해져 갔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주변 전경이 동원을 중심으로 한 바퀴 홱 회전하는 것 같던 느낌이 드는 순간, 동원이 갑자기 입에서 피를 토했다.
“컥! …… 쿨럭!”
그 순간 의식이 암흑 속으로 확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사방이 단숨에 칠흑 같이 어두워졌다. 마치 캄캄한 얼음 동굴 속에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느 새 학현은 물론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그때 웬 어린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동원의 귓전을 스쳤다.
“오라버니.”
동원을 부른 듯한 그 목소리엔 어딘지 모르게 짙은 그리움 같은 것이 묻어났다. 하지만 곧바로 화들짝 놀라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사방을 휘둘러보는 동원의 눈빛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던 중 동원은 다시 불현듯 숨이 턱 막히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윽!”
그런데 가슴팍을 움켜쥐고 있는 손으로 전해지는 감각이 어쩐지 좀 이상했다. 옷의 촉감은 물론이거니와, 옷 자체도 뭔가 뜨겁고 끈적끈적한 액체에 흠뻑 젖어 질척거리는 느낌이었다.
옷이 원래 입고 있던 와이셔츠가 아니었다. 어느 새 녹색의 내관 복장으로 뒤바뀐 채 마치 방금 칼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팍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동원은 기겁하며 가슴팍에서 손을 뗐다.
“으헉!”
그러자 순간적으로 다시 빛 속으로 확 빨려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사방이 이전처럼 도로 환해졌다.
동원은 그제야 자신이 짧은 순간 넋을 놓은 채 있었으며, 그러는 사이 며칠 전 국회에서 겪었던 일들이 눈앞에 보이듯 뇌리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마지막 장면만은 기억에 전혀 없는 낯선 광경이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아니 오히려 그 순간만은 마치 그 일을 당장 겪고 있었던 것처럼 기억이 생생했다. 흡사 꿈에서 깨어나기 직전 가수면(假睡眠) 상태에서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혼동될 때의 느낌처럼, 일시적으로 기억과 현실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졌었던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때 한동안 흐릿해져 있었던 시야가 다시 확 선명해지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자 곧바로 여전히 천장에서부터 수평 자세로 옷자락을 하늘거리며 자신에게로 강림하듯 다가오고 있는 꽃님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동원의 뇌리엔 방금 자신을 향해 ‘오라버니’라고 불렀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꽃님이 틀림없을 거란 생각이 섬광처럼 스쳤다.
그런데 지금 꽃님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아까전과는 사뭇 달랐다. 부릅뜬 눈에서 느껴지던 서늘한 기운은 누그러지다 못해 되레 한결 푸근해진 느낌이었고, 기분 탓인지 창백하던 얼굴에는 혈색까지 새로 돌고 있는 듯했다. 그때 꽃님의 눈엔 침대에 누워 있는 동원의 모습 위로 그 옛날 자신에게 무지개떡을 쥐어주면서 싱긋 눈웃음을 짓던 강 내관의 모습이 겹쳐져 보이고 있었다.
꽃님의 눈가로 수줍게 눈웃음이 번졌다. 그러나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동원의 눈빛은 오히려 점점 더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러다 돌연 꽃님이 다가가는 걸 멈추면서 공중에 그대로 머물렀다. 하늘거리던 옷자락도 마치 빳빳하게 풀이 먹은 것처럼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순간 둘 사이엔 숨 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다.
그때 갑자기 꽃님의 눈가에 걸려있던 눈웃음이 사라지면서 눈꼬리가 위로 확 치켜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얼굴도 순식간에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꽃님의 눈에 동원의 모습 위로 겹쳐져 보이고 있던 강 내관의 모습이 어느 새 새하얀 가면을 쓴 ‘천명’의 모습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꽃님은 곧장 마치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이 주체가 안 되는 것처럼 전신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시뻘겋게 충혈 돼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같이 커지는 눈, 산발이 되어 사방으로 가닥가닥 뻗쳐 올라가는 머리, 메마른 고목나무 껍질처럼 딱딱하게 굳으며 쩍쩍 갈라져가는 피부. 그렇게 변한 상태에서 동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꽃님의 모습은 다름 아닌 흉측한 악령 그 자체였다. 동원은 하얗게 질렸다.
그 순간 꽃님이 돌연 밑으로 훅 떨어지며 동원을 덮쳐왔다. 마치 꽃님을 천장에 매달고 있던 줄이 갑자기 탁 끊어져버린 것 같았다. 질겁한 동원은 전율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으헉! 으아아악!”
동원의 눈엔 그 광경이 흡사 깎아지른 절벽에서 투신한 피투성이의 아이가 자신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마침내 꽃님과 동원 사이의 간격이 막 서로의 이마가 맞닿을 것처럼 가까워진 순간, 시간이 갑자기 숨 막힐 듯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아니 그렇게 느껴지는 듯했다.
꽃님의 몸이 순식간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깃덩이처럼 새빨갛게 변했다. 그리고 다시 핏물이 가득 찬 풍선처럼 훅 부푸는가싶더니, 갑자기 팍 소리와 함께 그 안에 있던 걸쭉하고 비릿한 핏물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면서 동원을 단숨에 덮쳤다.
“으아악! …… 커헉! 쿨럭! …….”
한순간에 동원의 몸 전체가 피로 뒤덮였다. 눈두덩으로 고여 든 피는 눈을 뜰 수 없게 만들었고, 콧구멍으로 흘러들어간 피는 숨을 쉴 수 없게 만들었다. 입속에 가득 찬 피는 비명을 지를 때마다 목구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동원은 고개를 마구 휘저으며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으아악! …… 컥! 큭! 그르륵! …….”
급기야는 몸부림이 발작과 경련으로 이어지며 동원의 정신을 나락까지 헤집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병실 문 유리창 너머의 화림과 승희 일행들의 눈엔 그저 아무 이유 없이 동원 혼자 발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러다 결국 심상치 않음을 느낀 화림이 황급히 간호사를 데리고 병실로 들어와 동원을 살폈다.
“강동원 씨! 괜찮아요! 진정하세요! 꽃님인 없어요!”
이어 간호사가 가져온 신경 안정제가 동원의 팔에 주사되었다.
동원의 발버둥이 점차 잦아든다. 신경 안정제의 효과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는 몸부림에 지쳤기 때문인지 자꾸만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그만 …… 제발 이제 그만 …… 흑 …….”
흐느끼면서 차오른 눈물이 감겨진 눈 가장자리의 선을 따라 또르르 흘러내린다.
잠시 후, 화림이 나가고 승희 일행도 돌아간다. 병실에 혼자 남겨진 동원은 어느 새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다. 그리고 꿈속에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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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텐더 홀에 북쪽으로 접해 있는 카페의 로비.
- 동원은 문득 어디에선가 희미한 방울 소리가 나는 것 같은 느낌에 주변을 돌아본다. 승희가 그런 동원을 이상하게 여기며 묻는다.
- “오빠? 왜 그래?”
- “어? 아니 그게 …… 어디서 방울 소리 같은 거 못 들었어?”
- “방울 소리? 아니, 난 못 들었는데?”
- 그러자 옆에 있던 승호가 핀잔을 준다.
- “야, 너 겨우 집에 며칠 못 들어갔다고 이제 환청까지 들리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