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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홍콩러브트립
작가 : 제이J
작품등록일 : 2017.12.1

은퇴후 낯선 도시를 찾아온 톱스타 이한경
그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가이드 송호연
홍콩에서 시작되었던 그들만의 러브 트립

 
4. 사라지는 것들 - 심포니 오브 라이트 #1
작성일 : 17-12-08 14:00     조회 : 386     추천 : 0     분량 : 7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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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부. 사라지는 것들 - 심포니 오브 라이트

 

 매일 밤 8시

 이 도시의 어둠이

 환한 불빛으로 밝혀지는 순간.

 색색의 레이저 불빛이

 고층빌딩을 수놓는 십여 분의 시간.

 너의 가슴과 내 등이 맞닿았던 순간.

 내 가슴에 환한 불 하나가 켜졌던

 바로 그 시간.

 

 

 “사진 봐라.”

 

 호연은 어이없는 눈으로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죽이지 않니?”

 

 위니는 본인이 찍은 컷을 보며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다. 알록달록한 벽화가 그려진 벽에 나란히 기대어 선 두 남녀가 에그 타르트를 먹고 있었다. 세트로 맞춰 쓴 듯 보이는 검은 모자는 누가 봐도 커플 아이템이었다. 카메라의 각도상 호연의 이목구비는 보이지 않았지만, 호연을 보며 웃고 있는 한경의 얼굴은 정확하게 담겨 있었다. 말하자면 이것은 ‘이한경 여기 있다,’ 를 천명하는 사진인 셈이었다. 또 하나의 의미가 있었다. ‘이 여자 누구게.’

 

 “모델이 이한경이라 그런가 완전 화보네 화보야.”

 “파파라치 컷 찍으랬지 누가 화보 촬영하랬니?”

 

 호연은 못마땅한 눈으로 위니를 째렸다.

 

 “나더러 어쩌라고. 저 인물은 일상이 화보신데.”

 

 싱가포르발로 뿌려진 한 장의 사진은 하룻밤 사이에 수많은 기사로 재생산되었다. 파장은 예상보다 컸다. 이한경과 함께 있는 여자에 대한 가설들은 차고 넘쳤다. 오래전 첫사랑을 찾아 갔다는 순정 로맨스부터 여자가 삼합회 두목의 딸이라는 홍콩 느와르까지 장르도 다양했다.

 

 “참 호연, 나 오늘 심천 가서 며칠 있다가 올 거야.”

 

 심천은 홍콩의 북쪽에 인접해있는 작은 도시였다. 홍콩과 마카오, 심천을 묶는 관광여행 상품들도 있었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그 곳에서 관광객들은 주로 민속쇼를 구경하고 저렴한 발마사지를 받는다. 물론 그것이 위니가 심천에 가는 이유는 아니었다.

 

 “어머니 어디 안 좋으셔?”

 

 위니는 못마땅한 듯 혀끝을 톡 찼다. 심천은 위니 어머니의 고향이었다.

 

 “한동안 조증이더니 이제 울증의 시대가 도래하셨어. 영국 가겠다고 짐 싸기 전에 가서 달래야지.”

 “어머니는 아직도 청춘이시구나.”

 “노친네가 기운도 안 빠져.”

 

 심드렁하게 대꾸하는 위니를 보며 호연은 작게 웃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호연이 홍콩에 온지 얼마 되지 않던 때였다. 란콰이퐁의 작은 맥주 바였다. 홀로 술을 마시러온 두 여자가 우연히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섞게 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빠가 영국인이야. 엄마는 중국인이고.]

 

 자신의 이국적인 이목구비와 갈색 눈의 이유를 위니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우리 엄마는 얼나이였어.]

 

 얼나이. 그것은 중화권에서 현지처를 뜻하는 말이었다. 부자들의 문화처럼 여겨졌던 사회 문제이자, 현재까지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본국을 떠난 남자들이 현지에서 꾸린 또 하나의 가정. 상해에는 일본인 현지처들이, 홍콩에는 중국 본토의 현지처들이 숱하게 널려 있었다. 물론 한국인들이 데리고 사는 현지처들도 꽤 되었다.

 

 [30년 전에 홍콩으로 발령 온 영국 경찰 하나랑 사랑에 빠지셨지.]

 

 상대 남자는 본국에 처자식을 둔 유부남이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그 빤한 멘트는 위니 어머니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가 되었다. 남자는 3년을 머물다 떠났다고 했다. 예쁜 딸아이가 하나 남았다. 그는 넉넉한 생활비를 대주는 것으로 아버지의 도리를 다하고 있다고 했다. 유창한 한국어 실력보다 거칠 것 없는 그 화법에 호연은 조금 당황했다. 위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병맥주를 홀짝거리며 호연을 바라보았다. 너는 여기에 왜 왔어? 라고 묻는 듯한 시선이었다.

 

 [아빠가 홍콩인이야. 엄마는 한국인이고.]

 

 위니가 가만히 호연을 바라보았다. 호기심이 묻은 눈은 아니었다. 같은 처지의 이방인에 대한 동질감이었다고 오랜 후에 위니는 그 날을 떠올리며 말했었다.

 

 [우리 엄마는 여행자였어.]

 

 그날 그녀들은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철없는 여자를 엄마로 두었다는 것과 이 도시에서 그녀들이 사랑에 빠졌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위니가 한국드라마 마니아라는 것도, 호연이 요즘 가장 핫한 드라마의 원작자라는 것도 그 자리에서 서로가 고백한 것들이었다.

 

 “현실은 막장 드라마인데, 자기는 로맨스 인줄 알아요.”

 “그래도 너네 어머니는 드라마 분량은 뽑으셨잖아. 우리 엄마는 고작 1박 2일짜리 단막극 두 편이었어.”

 

 그녀들은 마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함께 지낸 5년간 그녀들은 늘 솔로였다. 접근해오는 남자들은 꽤 있었으나 누구도 진지하게 만나지 않았다. 그녀들은 쉽게 사랑에 빠질 수 없었다. 스스로의 존재가 위험한 사랑의 결과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랑의 결말이 어떠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것은 버려지고 남겨진 사람의 인생을 오랫동안 지켜봐온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체득하게 된 생존법같은 거였다. 혼자가 안전하다는 것. 차라리 외로운 게 낫다는 것.

 

 “아, 너도 이한경이랑 심천으로 넘어올래? 내가 사진 죽이게 찍어줄 수 있는데.”

 “이한경 지금 홍콩에 없어. 개변이랑 같이 새벽에 출국했어.”

 “어디로?”

 “네팔.”

 “네팔? 네팔을 왜?”

 

 의아함이 잔뜩 묻은 위니의 물음은 어제 저녁 호연이 한경에 던졌던 것과 정확히 같았다.

 

 [네팔? 네팔에 왜 가는데요?]

 

 란콰이퐁 에서부터 병맥주를 하나씩 들고 마시며 오던 길이었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가 끝나가는 한가한 주택가에서 한경은 네팔 행 계획을 알려왔다.

 

 [사적인 질문은 안 한다며.]

 [내 손님이 마카오도 아니고 네팔을 다녀오겠다는데, 그럼 그냥 그러세요. 해요?]

 [거기 하늘이 예쁘대서.]

 

 천하태평도 저런 태평이 없어 보였다. 물론 그것이 실없는 농담이라는 것도 이제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한경 가이드 이틀 차, 그 정도는 껌이었다.

 

 [이한경씨, 등산 좋아해요? 히말라야 등반 같은 거?]

 

 그것 말고는 다른 목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의 상식선에서 네팔은 험난한 산을 오르려는 목적이 아니고는 갈 이유가 없는 곳이었다.

 

 [궁금하면 같이 갈래?]

 

 호연은 어이없는 눈으로 한경을 올려다보았다. 어처구니없는 제안이었다. 목적도 불분명한 여정에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난 이한경씨 가이드이지, 여행 동반자가 아니거든요.]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가.]

 

 말문이 막혔다. 누구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찾게 해주세요.’ 만모사원에 걸었던 그의 소원이 떠올랐던 탓이었다. 호연은 황급히 질문을 바꿨다.

 

 [갔다가 언제 오는데요?]

 [하루나 이틀? 아니면 그 이상? 그때까지 송호연씨는 자유야. 다른 여행객이랑 바람나지 말고.]

 

 시기상으로 적절한 도피이긴 했다. 온갖 언론들이 이한경을 찾겠다고 홍콩 시내를 뒤엎고 다닐 터였다. 어쩌면 어제의 일정은 네팔행을 위한 밑밥이었을지도 몰랐다. 철두철미하다는 구석이 이런 쪽인 모양이었다.

 

 “야, 이한경은 네팔에 왜 갔냐니까.”

 “누굴 만나야 된대.”

 

 은퇴를 하고, 소속사와의 싸움을 무릅쓰면서까지 찾고 싶은 사람. 그렇게 절절한 이야기의 카테고리는 보통 하나였다. 사랑. 그 놈의 지긋지긋한 사랑. 인생에 3년을 함께 보냈던 남자를 찾아 영국으로 가겠다며 주기적으로 난리를 치는 위니의 엄마처럼, 인생에 단 며칠을 함께 보냈던 남자를 찾아 매년 홍콩에 왔던 호연의 엄마처럼, 한경 역시 그런 걸지도 몰랐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헛헛함이 느껴졌다.

 

 “네팔까지 가서 만나야 될 사람이 누군데?”

 “나도 몰라.”

 

 벨이 꼬였다. 가이드랑은 이런 사진을 찍어서 세상을 벌컥 뒤집어놓고 정말 사랑타령 하러 네팔까지 간거야? 같이 가자는 소리는 뭐야. 그 여자를 찾아가 사진 속의 여자의 정체라도 밝혀주고 싶어서? 이 여자는 가이드일 뿐이다. 안심시켜 주려고? 비약한 상상들이 제멋대로 날개를 펼쳐댔다.

 

 “나 알았다. 딱 감 왔다.”

 

 위니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향 피우러 갔네. 시간을 되돌리려고.”

 

 호연은 눈을 끔벅끔벅했다.

 

 “드라마 나인 몰라? 타임슬립하러 간 거지. 네팔에서 형이 죽은 거야. 그 시체를 찾으러 갔는데 향을 피우고 시간을 거스르게 되는 거지. 그래서 과거를 되돌리려는 아홉 번의.”

 “너 심천 간다며. 안 나가니?”

 

 쓸데없이 이어지는 친구의 헛소리를 단칼에 자르며 호연은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한경도 없고, 나도 없고, 투어 예약도 당연히 없을 거고 너 그럼 뭐할 거야?”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간만에 자유를 만끽하며 밖을 싸돌아다닐 상황도 아니었다. 갑자기 나타나신 누구 덕분에, 이딴 사진이 온 세상에 퍼진 덕분에.

 

 “방구석에 처박혀 있어야지 뭐. 이런 사진이 찍혔는데 어딜 나가겠어.”

 “이런 사진이 어때서?”

 

 위니가 태연한 얼굴로 물어왔다. 그런 사진을 찍어준 당사자가 할 소리는 아니지 싶었다.

 

 “몰라서 물어? 인터넷 안 봤니? 지금 이한경이랑 같이 있는 여자 누구냐고 난리 났어. 수배령 떨어졌다고.”

 “그거 넌 줄 아무도 몰라. 내가 기가 막힌 각도로 찍었어요. 한번 밖에 나가봐. 너라고 알아보는 사람 한명도 없을 거라는 데 내 손모가지 건다.”

 

 위니는 카메라 가방을 챙겨들고 일어서며 호언장담을 했다. 호연은 미심쩍은 눈으로 화면 속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너무도 평범해서 특정인을 떠올리기 힘든 모습이긴 했다. 보통 키에 보통 몸매, 보통의 옷차림. 평범 그 자체인 이런 여자는 홍콩 바닥에 수백, 수 천명은 될 거였다.

 

 “다녀올게.”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작은 아파트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호연은노트북 옆에 놓아둔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네팔로 떠나신 인물께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도대체 네팔을 왜 간 건데. 네팔 출신 미녀배우를 만나나? 아니면 네팔 로케 촬영중인 영화나 드라마가 있던가? 호연은 포털 창을 열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두 개의 키워드를 빠르게 입력했다. 이한경, 네팔.

 상관관계가 전혀 없어 보이는 두 단어는 예상과 달리 수많은 기사와 사진들을 그녀의 눈앞에 늘어놓았다. 검은 양복을 입고 충혈된 눈으로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한경의 사진이 가장 먼저 그녀의 시선을 붙들었다. 오래된 사건 하나가, 잊혀진 사람 하나가 그렇게 불쑥 드러났다. 6년 전 네팔에서 사라진 한 남자, 당시의 인기 배우 한진우였다.

 

 [나는 홍콩에 사라지러 온 거야.]

 

 무심결에 흘러들었던 한경의 그 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

 

 “반갑습니다. 이한경씨.”

 

 카트만두 공항 옆 작은 호텔 카페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기자가 악수를 청했다. 마른 몸에 순한 얼굴의 사내는 온갖 세상일들을 들추고 다닌다는 탐사보도 기자로 보이지 않았다. 햇볕이 강한 나라를 오래 떠돈 탓인지 얼굴은 검게 그을어 있었다. 한경은 상대가 내미는 손을 서둘러 잡았다 놓았다. 웃어 보이고 싶었지만 얼굴 근육이 맘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찾으셨습니까?”

 

 자리에 앉자마자 한경은 본론부터 들이밀었다. 생략된 목적어를 정확히 아는 듯 기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한경씨 짐작이 맞는 것 같습니다.”

 

 발을 디딘 바닥이 쑥 꺼지는 기분이었다. 눈앞이 희붐하게 흐려졌다. 곁에 서있던 은혁이 그의 어깨를 지그시 짚었다.

 

 “6년 전, 한진우씨 사고에 설계가 있었습니다.”

 

 테이블에 놓인 생수를 집어 드는 한경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불길한 예감이 가장 최악의 과녁에 꽂혀버린 순간, 아니기를 바랐던 마지막 희망이 짓밟힌 순간. 무슨 말인가를 해야 했지만 입술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한경은 심호흡을 했다. 진우의 환한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머뭇거리는 한경대신 은혁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한진우씨가 죽은 게 사고사가 아니라 타살이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기자가 테이블 위로 봉투를 내밀었다. 그들이 원했던 자료일 터였다. 한진우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증거물들일 거였다. 황유라를 상대할 마지막 히든 카드.

 

 “황대표 남편인 김이사는 중국 본토 삼합회와 연계되어 있어요. 마약, 살인 못할 게 없는 사람들이죠. 그들이 움직였습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유라와 내연 관계였던 진우를 김이사가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건 이 바닥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던 일이었다. 큰 게 터질 거라고들 했다. 누군가는 그것이 마약혐의일거라 예상했고, 누군가는 성범죄 문제일거라고 추측했다. 주제가 무엇이든 최고 인기배우를 골로 보내기에 충분할 무엇이리라 짐작했었다. 그 결말이 죽음이라는 것을 예측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기자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는 스타그룹의 비자금 내역을 수년간 쫓으며 스타 저격수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내부 제보자들로부터 받은 그의 정보는 충분히 신빙성이 있었다. 그가 머뭇거리는 건 불확실성 때문이 아니라 사건이 복잡하다는 의미일 터였다.

 

 “김사장이 설계한 사고는 상해에서의 교통사고였어요”

 

 행간의 의미들이 해석이 되지 않았다. 진우는 네팔의 안나푸르나에서 행글라이딩을 하다가 실종되었다. 그는 준선수급의 프로였다. 그런 날씨에 그런 높이에서 뛰었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억지로 떠밀렸거나 죽은 채 하늘을 향해 날려 보내진 걸지도 모른다는 게 한경이 품어온 의심이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한진우씨가 네팔에서 사망한 건 김이사의 설계가 아니라는 겁니다.”

 

 기자는 명쾌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한경의 눈썹이 휘어 올라갔다. 기자는 또 하나의 봉투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설계된 사고가 일어나기 일주일 전 한진우씨는 네팔에서 사고를 당했어요.”

 “그럼, 네팔에서의 사고는 자연사란 겁니까?”

 “아니요. 또 하나의 설계였습니다.”

 

 한경은 귀를 의심했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대체 몇 명이 동원된 걸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죽이겠다고 작정했다는 건가. 진우의 잘못이 무엇이었나. 황유라를 사랑한 것? 그 사랑을 끝내지 못한 것? 스타버스트의 은밀한 치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는 것?

 

 “그 사고의 설계자는 황유라씨 였습니다.”

 

 머리를 감아쥐고 있던 한경이 고개를 들었다. 벌겋게 충혈된 눈이 기자를 마주보았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스타그룹은 분식회계로 여론이 안 좋았어요. 정치권 로비문제도 같이 터졌죠. 임원들이 줄줄이 소환되어 갔죠. 한진우씨의 죽음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두 빨아들였습니다. 블랙홀처럼.”

 

 진우의 실종 소식을 전해 들었던 날, 시신도 없는 장례식장의 영정사진을 들여다보던 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이 눈물만 흐르던 그날이 떠올랐다. 진우는 한경에게 가족 같은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연극판에서 함께 뒹굴며 지내온 형이었다.

 

 [제가 네팔에 갈게요. 가서 진우 형 찾아올게요.]

 

 넋 나간 얼굴로 한경은 중얼거렸다. 감독을 꿈꿨던 진우형은 그 어떤 영화보다 비극적인 엔딩을 맞았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정신 차려. 한진우는 죽었어.]

 

 유라는 차갑게 말했다. 눈물 한 방울 맺혀있지 않는 눈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메라 쫙 깔렸었어. 실수하지 마.]

 

 그래서 그랬던가. 그래서 그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는가. 모든 것이 묻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가. 한경은 진우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는지 알고 있었다. 형은 알고 있을까. 결국 그 사랑이 스스로를 죽게 했다는 걸.

 창밖의 네팔 하늘은 유난히 파랬다. 진우가 마지막으로 날았던 안나푸르나의 하늘은 어느 쪽인가. 하늘을 나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아느냐고 진우형은 물었었다. 언젠가 너도 꼭 한번 그 기분을 느껴보라고. 이 형이 알려주겠노라고. 그럴 일은 영영 없을 거였다. 저 하늘에서 진우가 사라진 한 영원히 그럴 거였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게 정리되지 않은 증거들이에요. 이 정도 수준으로는 싸움을 할 수 없습니다. 너무 빨리 움직이셨어요. 이한경씨.”

 “어쩔 수 없었습니다.”

 

 중얼거리듯 한경은 말했다. 체념에 가까운 말투였다. 그는 멍하니 창밖의 푸른 하늘을 내다보며 말을 이었다.

 

 “시간이 없어요. 다음 타깃이 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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