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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작가 : 지평선
작품등록일 : 2017.10.31

30일 뒤에 지구가 운석에 충돌해 멸망한다.
지구의 멸망을 막으려는 영웅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멸망하는 지구를 분석하는 공상과학물도 아니다.

삶이 30일 남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사람들의 버킷리스트.

 
D-24, 물과 기름
작성일 : 17-12-07 17:32     조회 : 246     추천 : 0     분량 : 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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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내 인생에서 이렇게 내일을 기다렸던 적이 있었던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세상이 완전히 박살나기까지는 24일 정도가 남았다.

 나는 이제야 겨우 사는 게 재밌다고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왜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그렇게 열을 올리며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살았을까?

 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억지로 어울리며 시간을 낭비했을까?

 왜 그렇게 불필요한 것들을 위해 힘빼며 살았을까?

 

 

 후회된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결코 짧지 않았던 시간들.

 

 뭐든 조금만 더 빨리 깨달았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우리가 서로에게 동시에 '고마워'라고 말한 순간을 떠올렸다.

 

 그 말과 함께 너의 입모양을 떠올리자 퍼뜩, 네가 어제 임혜성에 대해 말했던 것도 떠올랐다.

 

 

 

 

 

 

 

 

 

 

 

 

 

 

 

 

 

 

 

 "어, 태양이 맞지?"

 

 

 뜨겁고 찬란한 늦봄의 햇살이 대학 캠퍼스 곳곳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빛을 받은 청춘들은 가벼운 옷깃을 흩날리며 서로 하하호호 웃었다.

 

 그 사이로 역광에 얼굴이 가린 남학생이 반가운 걸음으로 걸어왔다.

 오른손을 펼쳐 어떻게든 얼굴에 비치는 햇볕을 가려보려 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는 흰바탕에 파란 줄무늬가 그려진 셔츠에 검은색 니트조끼를 입은 더욱 차림이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같은 과 '임혜성'이었다.

 

 그의 이마와 콧잔등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보자 아무래도 니트조끼는 벗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거울 앞에서 잔뜩 신경 써 꾸몄을 그를 상상하자 그런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나는 감자마자 대충 수건으로 털고나온 내 머리결을 쓰다듬어 보았다. 반곱슬의 굵고 까슬한 뭉치가 손가락에 걸렸다.

 

 그는 우리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이 조금 어색하다고 느꼈는지, 사소한 이야기 거리를 꺼냈다.

 

 

 "날씨 덥다. 이렇게 더울 줄 알았으면 조끼는 벗고 오는 건데. 지금은 땀차서 벗지도 못하겠다."

 

 그는 니트 조끼를 펄럭이며 그 안으로 약간의 시원한 바람이 들락거려주길 바랬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곧 동작을 멈췄다.

 

 우리는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틈 속에 나란히 섰다.

 

 "어디 가?"

 

 "난 이제 애들하고 점심먹으려고. 태양이 넌?"

 

 "난 집부회의 있어서 가는 중이야."

 

 그는 아아,하고 이해했다는 듯 끄덕였다. 인간관계 자기계발서에 나올 법한 정석적인 리액션이었다.

 임혜성의 눈동자가 햇빛을 받으니 전보다 더 갈색빛이 영롱했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선이 그의 얼굴 전체를 응시했다. 그의 희고 부드러워 보이는 피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시선을 느꼈는지 임혜성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과대는 할만해?"

 

 "뭐, 생각보다 그렇게 할 일이 많지가 않아서 괜찮아."

 

 "다른 남자 동기들이 거의 과생활 안 하는 분위기던데. 혹시 남학생 부족해서 곤란하면 나 불러."

 

 그는 내 어깨를 토닥이듯 톡톡 쳤다. 손톱이 단정하게 깎인 손가락이 시원하게 뻗어있는 예쁜 손이었다.

 신호등에 초록색 불이 들어오자 그는 경쾌하게 손을 흔들며 인파에 섞여 식당가로 사라졌다.

 

 

 

 

 

 

 

 

 집부회의라고 해봤자 오는 사람이 몇 명 되지도 않았다.

 학생회장 11학번 안동혁 선배, 부회장 14학번 김조이 선배.

 총무부장이랑 기획부장은 매번 수업이나 조별과제 회의가 있다며 빠졌고, 그나마 참석하는 사람이 복학생회장이었다.

 

 복학생 회장은 12학번 곽성한이라는 선배였다.

 재수생이라 나이가 11학번과 같았기 때문에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도 대부분 11학번이었고, 거의 11학번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까무잡잡하게 탄 얼굴과 짧게 깎은 검은 투블럭 머리. 그 와중에 멋을 낸다고 어떻게든 손질한 티가 반질반질 났다.

 180이 넘는 큰 키에 튼실하게 붙은 살집. 째진 눈과 얇은 입술. 볼에 붙은 주근깨.

 

 그는 맨투맨에 얇은 패딩조끼를 입고 등장했다. 그러나 오늘 날씨는 패딩조끼를 입기에도 충분히 더운 날씨였다.

 곽성한은 손등으로 이마에 땀을 훔쳐 바닥에 털며 자리에 앉았다.

 더운 날씨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그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패여있었다.

 

 "아오, 더워. 이게 다 온 거냐?"

 

 약속 시간에 늦어 헐레벌떡 뛰어와도 모자를 판에 어슬렁거리며 들어오질 않나,

 제일 늦게 온 주제에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이게 다 온 거냐며 툴툴대질 않나.

 

 "성주랑 지혜는 안 오냐?"

 

 "걔들은 수업 들어가야 된대."

 

 그 얘기를 들은 곽성한의 오른쪽 눈썹이 씰룩거렸다. 학생회장의 변명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누구는 수업 없나-', 그는 작게 중얼거리며 쌍시옷 발음을 입안으로 씹었다.

 

 "오늘 뭐 해야 되는데?"

 

 "조금 있으면 과엠티잖아. 그래서 과엠티 관련해서 좀 상의하려고 모이라고 했어."

 

 안동혁 선배가 차분하게 답변했다.

 그 옆에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 곽성한 선배.

 

 나는 이 묘한 자리배치에 대해 생각했다. 왜 김조이 선배가 애인을 두고 내 옆에 앉았을까?

 자리에 앉은 이후로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고 시선을 내리깐 김조이 선배를 흘끗 쳐다보았다.

 곽성한 선배가 오기 전까지 흐르던 어색함과 긴장감이 둘 사이의 애정전선이 아니라 결별기류였다면….

 

 

 누가 만나고 헤어지는 건 상관없지만 이런 식으로 만날 때마다 불편한 건 곤란했다.

 

 

 

 "과엠티 가는 거면 성주랑 지혜가 와야지. 나는 필요 없는 거 아니냐?"

 

 "안 그래도 남자 일손 부족한 거 몰라?"

 

 "무슨 일꾼도 아니고 맨날…."

 

 "좀 도와줘. 이번에 15학번에도 과엠티 오는 남자애 별로 없단 말이야."

 

 

 이 말에 곽성한의 고개가 내 쪽으로 돌아왔다.

 자연스레 안동혁 선배의 시선도 내 쪽으로 따라왔다.

 

 "야, 태양아. 15학번에 이번에 몇 명 오냐?"

 

 은근히 아랫사람 부리는 듯한 태도로 곽성한이 물었다.

 

 

 "남자는 아마 저 빼고 1명 정도…."

 

 "그럼 여자애들은 몇 명 오냐?"

 

 그렇게 말해놓고는 뭐가 재밌는지 안동혁과 곽성한은 서로 마주보며 낄낄 웃어댔다.

 

 

 "확실하게 온다고 말한 사람은 15명 정도에요."

 

 "너네 한 학번에 서른 명 가까이 되지 않아? 여자애들은 다 참석하라고 해."

 

 "근데 과 생활 잘 안 하는 애들도 있어서요. 억지로 오라고 하기는 좀…."

 

 "내가 오라고 한다 그래. 여자애들은 무조건 필참 가자."

 

 그 말이 끝나자 또 낄낄 웃었다. 카페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이 음흉한 웃음소리가 카페를 메웠다.

 

 

 "이 새끼 농담하는 거야. 그렇게 진지하게 들을 필요 없어."

 

 가만히 정색한 채 앉아 있는 나를 향해 안동혁 선배가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별로 기분은 좋지 않았다.

 

 

 "오면 멋있는 남자 선배들이 놀아준다고 그래. 특히 소희인가? 걔는 꼭 오라고 그래라."

 

 "소희는 벌써 나한테 온다고 그랬어, 임마."

 

 "야, 너 또 걔한테 찝적거리기만 해봐. 가만 안 둔다."

 

 

 농담 반 진심 반 섞인 표정으로 곽성한이 안동혁을 위협했다.

 

 옆에 앉은 김조이 선배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흘끗 쳐다보거나 하지는 않았다.

 쳐다보지 않아도 어떤 얼굴인지, 옆에서 전해지는 기운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태양, 너는 내가 만나본 남자 애들 중에 제일 섬세해.'

 

 나는 하태양의 비어있는 카톡 프로필 사진에 대고 혼자 중얼거렸다.

 

 굳이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대학을 다니는 내내 하태양과 임혜성을 비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나 말고 다른 여학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비슷한 듯 오묘하게 다른 구석이 존재하는 두 사람은 사사건건 비교대상이었다.

 다만 그걸 입 밖에 내는 여학생과 그렇지 않은 여학생이 존재할 뿐이었다.

 

 나는 입 밖에 내지 않는 쪽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걷기만 해도 마음 속으로 비교했다.

 

 악의적으로 누굴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짜 있는 그대로의 비교가 흘러나왔다.

 

 둘 다 170초중반대로 보이는 평범한 키, 너무 마르지도 살찌지도 않은 보통의 체구.

 둘 다 재수생이었고 책 읽는 것과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또, 둘 다 게임하는 것에도 관심이 있었는지 종종 함께 PC방을 다녀오는 걸 본 동기들이 있었다.

 

 심지어 게임 레벨과 플레이하는 수준도 비슷했다고 했다.

 

 분명한 것은 둘 다 결코 잘하지는 못했다는 것.

 

 하지만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훨씬 더 눈에 띄었다.

 

 우선 외적인 분위기에서도 확연히 차이가 드러났다.

 

 하태양은 검은색에 가까운 반곱슬 머리칼이었다면, 임혜성은 자연 갈색의 거의 직모라 할 수 있었다.

 

 하태양은 아침 수업이면 늘 제대로 머리를 말리지 않은 채 강의에 들어왔다.

 그에 반해 임혜성의 머리카락은 늘 반듯하게 말라있었다.

 

 이것은 분명 그 둘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틀림없었다.

 

 또 하태양은 단정했지만 별로 신경쓰는 옷차림은 아니었다.

 주로 평범한 캐주얼 스타일로 나올 때가 많았고, 아주 가끔씩 셔츠에 니트차림을 하고 와 달라보였던 적이 있었다.

 

 반면에 임혜성은 평소에도 늘 신경쓴 티가 나는 단정한 패션을 고집했다.

 딱 떨어지는 핏에 무채색 단화나 운동화를 신었는데, 더 멋을 낸 날은 워커나 구두를 신기도 했다.

 

 두 사람은 같은 국어국문학과에 다녔지만 희망하는 분야도 달랐다.

 

 하태양은 순수 문학에 뜻이 있어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어했지만,

 임혜성은 잡지 에디터나 문화 평론가와 같은 좀 더 사회적이고 활동적인 글 쓰기를 원했다.

 

 성격도 비슷한 것 같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조금 달랐다.

 

 하태양은 그렇게 말 수가 많은 편도 아니고 목소리가 크지도 않아서 비교적 얌전하고 조용해 보인다.

 하지만 막상 하는 걸 살펴보면 상당히 외향적인 편이었다. 1학년 과대를 맡은 것만 봐도 그렇다.

 

 임혜성은 사교성이 좋아서 여러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하고 이야기 하면서 잘 웃는 편이라 눈에 띈다.

 하지만 정작 꼭 필요한 활동이 아니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하태양은 좀 느리고 가끔은 둔해보이기조차 하지만 엄청 꼼꼼하고 섬세하다는 것.

 임혜성은 빠릿빠릿하고 싹싹해보이지만 사실 약간 덤벙대고 칠칠맞다는 것.

 

 특히 하태양의 섬세함은 나를 놀라게 할 때가 많았다.

 나도 꽤 예민한 편인데, 하태양은 나보다 더 했다.

 

 

 '근데 언제부턴가 좀 싸하더라고.'

 

 

 그럴 수 밖에.

 두 사람은 비슷해보일 뿐이지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진 사람이니까.

 
작가의 말
 

 춥고 건조한 계절입니다.

 항상 따뜻하게 하시고 핸드크림도 꼭꼭 바르세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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