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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백제의 한
작가 : 바위
작품등록일 : 2017.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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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한 가능성 있는 허구, 그 상상의 날개를 펼치다.

 
백제의 한
작성일 : 17-12-07 17:26     조회 : 256     추천 : 0     분량 : 7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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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의 결전

  임존성의 흑치상지는 아무리 복신이 안달복달해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어라하께서 파천한지 4일째며 예식이 어라하를 잡아 바치면 백제는 끝이고 흑치상지도 끝, 이라는 복신의 협박은 먹히지 않았다. 흑치상지는 오히려 복신의 ‘끝’이라는 협박에서 답을 얻었다. 흑치상지는 예식의 배신으로 의자가 소정방의 포로가 된다 해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의자는 백제의 왕으로서 그만한 대접을 받을 것이며 백제는 당나라의 속국이 되어 대국의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백제귀족들의 기득권은 그대로 보장될 것이다.’ 흑치상지의 이런 생각이 복신의 애간장을 녹이고 있는 것이다. 결국 흑치상지의 머릿속에는 백제의 왕 의자는 없고 귀족들의 기득권만 있을 뿐이었다.

  ‘어라하께서 웅진성으로 파천하신지 4일째다. 흑치상지는 기어코 군사 3만이 모아져야 웅진성으로 가겠다고 한다. 저 자는 지금 술에 취해 비몽사몽이다. 저 자의 술이 깨고 군사를 모으러 나간다 해도 오늘은 어려울 것이다. 오늘 밤이 고비인 것 같은데 내일 군사를 모아 달려간들 무슨 소용이랴. 무슨 수작인지 저자의 고집은 도저히 꺾을 수 없다. 그렇다면 나라도 웅진성으로 가야 하는데 나 혼자서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복신은 다시 잠자리에 들려는 흑치상지를 깨워 애원하듯 말했다.

  “이보게 달솔, 지금 모은 만 오천 명의 군사 중 오천 명만 빌려주게. 내가 먼저 웅진성으로 갈 테니 자네는 나머지 군사가 모아지는 대로 오게.”

  “안 됩니다. 반드시 3만을 모아야 승산이 있습니다.”

  “아니, 웅진성 내 예식의 군사들이라고 해봐야 겨우 몇 천에 불과한데 만 오천으로 승산이 없다니. 이거 너무 억지 아닌가.”

  억지는 분명한 억지였다. 하지만 논리로는 그 억지를 꺾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복신은 흑치상지가 딴 마음이 있음을 확신했다. 그렇다면 다른 방도를 써야하는 것이다.

  “그럼, 이천이라도 내 주게.”

  흑치상지는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잠 좀 자고요.”

  물러날 복신이 아니었다. 흑치상지의 성격에 다른 사람 같으면 칼을 빼들고 목을 쳐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복신은 신망 높은 왕족이자 좌평이었다. 흑치상지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군사 천 명을 내주겠다고 했다.

  천 명의 군사를 얻은 복신은 서둘러 병장기를 챙기고 어수선한 군대를 수습했다. 복신이 말을 몰아 웅진성으로 달려가는 동안 밤은 깊어만 갔다. 7월의 청개구리들이 구슬프게 울자 하늘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

  자정이 되었는데도 웅진성에서는 북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교대를 기다리고 있던 국담의 군사들이 우왕좌왕했다.

  “장군, 매복이 없습니다.”

  매복한 예식의 군사들을 처치하려던 군관이 헐레벌떡 달려와 보고를 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의자가 읊조리듯 물었다.

  “정보가 잘못됐거나 놈들의 작전이 변경된 것 같습니다.”

  “그럼 어찌한단 말인가.”

  “교대 조는 오지 않을 것···.”

  국담이 급하게 말끝을 잘랐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것이다.

  “모두 납작 엎드려라!”

  국담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예식의 진영에서 불화살이 날아들었다. 국담의 병사들 중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 발로 불을 짓이겼다.

  “몸을 일으키지 마라!”

  성급하게 몸을 일으킨 군사들을 향해 예식의 맨 화살이 쏟아졌다. 순식간에 수십 명이 고꾸라졌다. 군사들은 방패를 우산처럼 들어 올려 화살을 막아냈다. 하지만 예식은 계속해서 활을 쏘라고 명령했다. 화살이 방패에 붙인 철판사이를 뚫고 들어오자 철판이 너덜너덜 해졌다. 방패를 거머쥔 군사들은 깜짝 놀라 머리를 깊숙이 땅으로 처박았다.

  “그만, 그만 좀 쏘란 말이여!”

  어떤 병사는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화살이 너무 두려워 그만 좀 쏘라고 통 사정을 했다. 그는 징징거리며 옆에 있는 병사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니, 이게 뭔짓이여! 절루 가유. 방패가 너무 작단 말여유.”

  코가 주먹만 한 병사가 품으로 파고든 병사를 밀쳐냈다.

  “아, 쫌! 같이 좀 살어유.”

  “절대로 머리를 들지 마라. 일어나지 마라!”

  국담은 예식의 화살이 소진되어 멈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놈들의 화살이 소진되는 순간을 기다려 떨어진 화살을 수거한다. 수거한 화살을 날린다. 적들이 화살을 피하느라 혼란한 틈을 이용해 총공격을 한다. 전면전이 벌어지면 어라하를 모시고 절벽바위로 이동한다.’ 원래의 작전대로 행하려는 것이다. 그 때 방패를 두 개나 뒤집어 쓴 군사 한 명이 국담과 의자의 곁으로 촘촘히 달려왔다. 의자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라 국담의 첩자가 된 예식의 군관이었다. 벽에도 귀가 있고 눈이 있다고 했던가. 더구나 군관은 예식의 집무실 후미진 곳에 구멍을 뚫고 예식형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가 자정이 되기 전에 백고의 배신을 알게 된 일은 국담으로서는 천운이 아닐 수 없었다. 군관은 예식형제의 비밀작전을 듣자마자 즉시 국담의 진영으로 달려갔다. 그가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으면 국담은 이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의자와 군관 십여 명만을 데리고 절벽바위로 이동했을 것이다.

  “어라하, 백고란 놈이 배신을 했습니다. 예식은 백고의 고변으로 작전을 두 번이나 변경했습니다. 놈들은 어라하께서 탈출하실 절벽바위 쪽에 군사 천여 명을 보냈습니다.”

  군관은 국담의 군관들이 의자의 탈출을 도운 뒤 나머지 군사들과 함께 성문을 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배, 백고가 어찌···.”

  국담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렇다면 모든 성문을 놈들이 막고 있겠군.”

  “그렇습니다. 어라하, 성문을 막고 있는 놈들은 유사시 호각소리로 상황에 대처한다고 합니다.”

  국담은 군관과 의자가 나누는 대화가 들리지 않았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백고의 배신이 국담을 무기력하게 만든 것이다.

  “그럼, 지금 활을 쏜 놈들은 몇 안 되겠군.”

  “그렇습니다. 어라하, 저기를 자세히 보십시오. 예식이 궁병들만 데리고 이쪽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저런 간악한 놈. 주변에 쓸데없는 횃불만 잔뜩 켜두고 군사가 많은 것처럼 위장하고 있군. 그나저나 이보게 달솔, 자네는 왜 그리 얼이 빠져있나.”

  의자가 초점 없는 눈망울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국담의 어깨를 툭툭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국담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수많은 횃불이 펄럭이고 있었지만 실제로 군사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군관의 말대로 활을 쏘는 군사 몇 백 명뿐이었다.

  “어라하, 활을 쏘는 놈들뿐입니다. 그런데 저기 예식이 보입니다. 놈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걸까요.”

  “이 사람, 친구의 배신에 정신이 나갔구먼. 하기야 믿었던 사람들이 다 배신을 하고. 바야흐로 배신의 시대일세 그려, 하. 하. 하.”

  의자는 그 와중에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에는 진한 상실감이 배어 있었다. 또한 어느 정도 포기의 의미도 있었다. 의자의 웃음과 함께 쏟아지던 화살이 멈추었다. 국담의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제 적의 화살을 주어 되돌려 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얼마 되지 않는 적을 향해 화살을 날려본들 그리 큰 효과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식은 궁수부대와 일부 보병만 전진배치하고 나머지는 절벽바위와 각 성문으로 보냈겠군요.”

  “그렇다지 않나. 군사력의 우위를 앞세워 철통방위를 하겠다는 것이겠지.

  “백고라는 놈이 우리의 작전을 알려주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만, 그만 하게. 지금 그 놈의 배신에 치를 떨 상황이 아니야.”

  “어라하, 송구합니다.”

  국담은 머리를 조아린 뒤 벌떡 일어났다.

  “궁병들은 적의 화살을 주워 단 할 발씩만 날려라!”

  잠시 시간을 벌기 위한 엄호용 화살이었다.

 

  “저 놈들이 발악을 하는군.”

  국담의 화살이 날아들자 예식은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군사들은 화살을 피하느라 이리저리 도망 다니기 바빴다.

  “방패로 막고 전열을 흩트리지 마라!”

  예식은 국담이 활을 쏘며 대응할 줄은 몰랐다. 대량으로 쏟아 부은 화살을 피한 뒤 각자 예정된 장소로 빠르게 이동할 줄 알았다. 예식은 더 이상의 화살이 날아오지 않자 국담과 의자를 예의주시했다. ‘활로 응대를 했다면 잠시 후 활을 몇 번 더 쏠 것이다. 그리고 국담은 의자와 함께 절벽바위 쪽으로 도망을 치겠지. 나머지 군사들은 이쪽을 향할 것이고. 형님은 국담을 막고 의자를 잡을 것이다.’ 예식은 군사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국담이 없는 군대는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놈들이 미리 파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한꺼번에 때려잡는다.’ 예식은 함정에서 탈출한 군사들이 성문으로 도망치면 기다리고 있던 자신의 군사들이 아주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예식은 국담이 더 이상의 화살을 쏘지 않자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다. 계산대로라면 몇 차례의 화살이 더 날아와야 했다. 예식이 사태를 파악하기위해 잠시 뜸을 들이는 동안 국담은 빠르게 작전을 지시했다. 국담의 작전은 의자를 피신시키는 쪽으로만 집중되어 있었다. 이 점은 예식도 마찬가지였다. 의자만 잡으면 모든 상황은 종료되는 것. 국담과 예식은 아주 단순한 일을 놓고 복잡한 머리를 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군사가 많은 예식은 모든 군사를 동원해 의자와 국담을 포위하면 되고, 국담은 모든 군사를 동원해 포위망을 뚫고 도망치면 된다. 도망치는 마당에 위험한 절벽바위로 갈 필요가 뭐 있겠는가. 수많은 군사를 희생시켜서라도 이판사판 성문을 부수고 나가면 그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식과 국담이 그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서로를 잘 모르고 있거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예식이 군사력을 앞세워 무조건 밀어붙이지 못하는 이유는 국담이라는 상대가 두려웠기 때문이고, 국담이 전면전을 벌여 성문으로 치달리지 못하는 이유는 몇 배나 많은 예식의 군사력 때문이었다. 이렇듯 전투의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찾고자 절치부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담의 작전은 그리 획기적이지 않았다. 적의 작전이 변경된 이상 군사의 숫자가 달렸기 때문에 특별한 수를 내기가 어려웠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전처럼 군사를 나누지 않고 모두가 함께 움직이는 것이었다. 국담은 예식을 무시하고 전군을 절벽바위 쪽으로 향하게 했다. 이미 눈앞에 있는 적을 알았음으로 분산되어 있는 나머지 적들을 찾아 시간을 뺏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담이 상대해야할 적은 삼천이 아니라 절벽바위에 있는 천명의 군사였다. ‘삼천이 아니라 천 명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놈들을 상대하는 동안 사공의 생사를 확인한다. 사공이 살아있으면 배를 타고 어라하를 모시면 되고 죽었다면 일제히 성문을 향해 돌진한다. 놈들의 주력부대를 무너뜨려 시간을 버는 것이다.’ 예식이 이러한 국담의 의도를 알았다면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바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국담의 예상대로 자신의 주력부대가 갑자기 당한다면 군사들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며 성문으로 탈출하는 국담을 쉬 막아내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 절벽바위를 향해 내 달린다!”

  국담의 명령에 전군이 우레와 같은 소리를 지르며 절벽바위를 쪽으로 뛰었다. 거센 바람에 떠밀린 검은 구름도 국담의 군사들을 따라 절벽바위 쪽으로 날아갔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돌발 상황에 예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놈들이 이쪽으로 오지 않고 왜 저쪽으로 뛰는 거야. 앗! 저쪽은 형님이 지키고 있는 절벽바위 방향이다. 왜 저리로 가는 걸까. 그새 우리의 작전을 눈치 챈 걸까? 아니다. 순식간에 벌이고 있는 작전을 귀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안단 말인가.’ 예식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잔뜩 벼르고 있던 일이 허사로 돌아가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며 기분이 더러워졌다. 열심히 함정을 파두고 손쉽게 때려잡으려던 작전이 허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국담을 쫒아 달려 갈수도 없었다. 함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대로 있을 수도 없었다. 특별한 수를 낼 수 없었던 예식은 엉거주춤 국담의 군사들을 쫓아갔다. 예식이 아무것도 모르며 국담을 따라 달리는 것은 사실 체면을 잔뜩 구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국담이 전 병력을 동원해 절벽바위로 뛰는 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천 명의 군사와 함께 절벽바위를 지키고 있던 예군은 군관 몇 명을 데리고 바위 아래로 내려갔다. 의자를 기다리고 있는 사공을 붙잡기 위함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던 사공은 물거품이 이는 검은 바위 밑에 배를 대고 숨어 있었다. 사공은 며칠 전 사비성을 탈출한 의자를 배에 태우고 노를 저었던 때를 생각했다. 온갖 이상한 괴물들이 출연했던 그날, 사공은 매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행히 국담의 용기로 위기는 모면했지만 직감적으로 의자에게 커다란 액운이 미칠 것을 느꼈다. 웅진성으로 들어간 의자는 당장이라도 지방군이 올 것처럼 큰 소리를 쳤으나 여태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고 있다. 그런 상태로 이틀, 사흘, 결국엔 닷새 만에 성주를 피해 도망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건길지께서 무탈하게 내려 오셔야 할 텐데···.’ 만고의 충신이었던 사공은 웅진성에서마저 도망쳐 나오려는 의자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의자가 곧 백제라고 생각하며 오직 의자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예군이 사공을 찾는 데는 특별한 어려움이 없었다. 예군은 간악하게도 의자의 일행흉내를 내며 사공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렀다. ‘아! 건길지께서 무사하시니 정말 다행이구나.’ 생각보다 좀 빨리 나타나긴 했지만 사공은 아무런 의심 없이 예군의 부름에 응답했다.

  “건길지, 이쪽입니다.”

  하지만 사공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의자가 아니었다.

  “거, 건길지는 어디있소? 당신들은 누구요?”

  “그건 알 것 없다. 의자는 이곳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살고 싶으면 당장 배를 저어 이곳을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죽여 버릴 것이다.”

  “나는 건길지를 모시러 온 사람이오. 건길지께서 오실 때까지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거요.”

  사공의 완고한 태도에 예군은 더 이상 시간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했다. 그 역시 무고한 살상은 하고 싶지 않았던 터라 사공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하지만 사공을 살려두었다가 의자가 구사일생으로 배를 탄다면 거사는 실패를 할 것이기에 후환을 없애지 않을 수 없었다. 사공과 배가 없어진다면 의자가 절벽바위 아래로 내려온다 해도 강을 건너지는 못할 것이다. 이 또한 백고의 고변 때문에 알아챈 사실이니 백고는 몇 시간 전 예식에 버금가는 역적질을 하고만 것이다. 예군이 다시 한 번 협박을 했다.

  “나는 너를 죽이고 싶지는 않다. 당장 이곳을 떠나라!”

  예군이 긴 칼을 뽑아 사공의 코앞에 바짝 갖다 댔다. 그리고는 예리한 칼끝으로 사공의 콧잔등을 콕콕 찔렀다. 콧잔등이 싸하게 아리며 빨간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등줄기에도 굵은 땀방울이 맺혀 주르륵 흘려 내렸다. 하지만 사공은 굴하지 않았다.

  “이제 보니 당신들은 웅진성의 배신자들이군. 죽여라! 여기서 죽는다 해도 나는 건길지를 기다릴 것이다. 건길지는 우리 백제다. 나는 죽어도 백제를 버리지 않을 거다.”

  더 이상 재고의 여지가 없었다. 일을 빨리 처리하고 성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예군이 사공의 콧잔등에서 칼을 거두어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사공은 턱을 바짝 쳐들고 예군의 눈을 똑바로 쏘아 보았다.

  “죽여라. 빨리 죽여라!”

  사공의 목은 단칼에 잘려 물거품이 이는 검은 바위 아래로 떨어졌다. 잘린 목은 물밑으로 가라앉으면서 검붉은 피를 분수처럼 뿜어냈다. 피의 분수는 더욱 높이 솟구쳐 강물위로 떨어져 내렸다. 사공의 피는 강물을 뒤덮고 벌판과 산으로 올라가 하늘까지 붉게 물들였다. 그 장면을 본 예군은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일어서지 못했다.

  “자, 장군. 왜 이러십니까?”

  군관이 예군을 부축해 일으키려 했지만 예군의 다리는 완전히 풀려 물먹은 지푸라기 같았다.

  “저, 저것이 안 보이나?”

  예군은 식초에 절어 흐물흐물해진 것 같은 목소리로 겨우 말문을 열었다.

  “뭐가 말입니까?”

  “저 피바다가 보이지 않느냐고.”

  “아, 안 보이는데요.”

  서둘러 성내 절벽바위 쪽으로 가야함에도 불구하고 예군과 그 부하들은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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