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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홍콩러브트립
작가 : 제이J
작품등록일 : 2017.12.1

은퇴후 낯선 도시를 찾아온 톱스타 이한경
그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가이드 송호연
홍콩에서 시작되었던 그들만의 러브 트립

 
3. 너에게 가는 길 -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2
작성일 : 17-12-07 13:24     조회 : 358     추천 : 0     분량 : 7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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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이국적 가게들이 모여 있는 소호거리는 유명 관광지답게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한경과 아영을 무심히 지나치던 사람들은 고개를 다시 돌려 그들을 힐끔거렸다. 설마 하는 눈들이 경악으로 색을 바꿨다. 호연은 마스크를 눈 밑까지 올려 썼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선글라스 없어요? 좀 더 가려봐요.”

 “송호연씨가 자꾸 까먹나 본데, 이렇게 생긴 얼굴이 흔치 않다니까. 뭔가로 가려질 외모가 아니라고.”

 

 호연은 어이없는 눈으로 한경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이 신이 난 듯 보였다. 길거리의 모든 가게를 들락거리고 자판 앞에 주저앉아 구경하기도 서슴지 않았다.

 

 “이한경씨, 솔직히 말해봐요. 소속사랑 싸운다는 거 다 뻥이죠? 그냥 놀러왔죠? 사람이 어쩜 이렇게 태평해요?”

 “그렇게 보이는 게 내 목적인데, 성공했네.”

 

 한경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가 위니에게 내건 사진의 조건도 그것이었다. 누가 봐도 속편하게 놀고 있는 모습을 담아 달라.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을 놓치지 말라. 호연은 뒤를 돌아보았다. 한 블록 뒤쯤에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 위니와 개변의 모습이 보였다. 혹시 카메라를 의식하고 연기라도 하는 건가?

 

 “이 동네는 호텔있는 쪽하고는 완전 분위기가 다른데?”

 

 한경은 알록달록한 벽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예술가들이 소호 지역에 작은 갤러리를 열고 정착하며 그리기 시작한 벽화들 중 하나였다. 커다란 벽에 그려진 여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호연은 미심쩍은 눈으로 한경을 보며 입을 열었다.

 

 “거기는 센트럴이니까요. 시청에 세계은행 본사들까지 죄다 모여 있는 이름 그대로 홍콩의 심장부.”

 “그럼 여기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이 호연에게로 돌아왔다. 자신의 파파라치 컷을 부탁한 스타의 얼굴이 아니었다. 매일 같이 보아온 표정이 남자의 얼굴에 떠 있었다. 가이드를 바라보는 관광객의 얼굴. 모든 것이 신기해 죽겠다는 바로 그 얼굴. 연기라고 하기엔 쓸데없이 디테일했다. 어찌됐든 질문을 받았으면 답을 하는 것이 가이드의 본분인 법.

 

 “이 지역은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이 처음 들어온 곳이에요. 저 계단 보여요?”

 

 호연은 오래되고 낮은 돌계단 언덕을 가리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갖가지 상점들이 양 옆에 빼곡했다.

 

 “저기가 포팅거 스트리트에요. 홍콩 최초의 포장도로이자 가장 오래된 길이죠. 저 계단으로 홍콩인들이 영국 관료들의 짐을 날랐어요. 여기가 올드타운 센트럴이라고 불리는 이유 중 하나죠.”

 

 한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그 역시 익숙한 장면이었다. 설명이 끝나면 모두가 아하 하는 표정으로 주위를 새삼스럽게 돌아보는 모습. 물론 몇 가지 다른 점은 있었다. 오늘의 고객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스타라는 것.

 

 “저쪽으로 가면 되나?”

 

 반대편 길을 향해 몸을 돌리며 한경이 물었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아무데로나 가요. 여기는 길이 다 통해요.”

 

 몇 시까지 집합하고 몇 시에 출발하고 몇 시에 어딘가에 도착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 그래서 오늘만큼은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걸어도 된다는 것. 뒤통수에서 위니의 카메라 셔터소리가 들렸다. 호연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재밌어 죽겠다는 위니의 얼굴이 보였다. 심난해 죽겠다는 개변의 얼굴도 보였다. 한경만 혼자 태연했다.

 

 “여기로 가면 어디가 나와?”

 

 끝없이 이어지는 골목을 한참 걷던 한경이 물었다. 향냄새가 코 끝에 닿았다. 돌 담벼락을 타고 내려온 보리수 나무의 긴 뿌리를 바라보며 호연은 대답을 이었다.

 

 “만모사원이요.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도교사원이에요. 사람들이 소원 빌러 많이 오죠.”

 

 초록 지붕이 얹혀진 평범한 주택 같은 건물 안으로 그들은 나란히 들어섰다. 연기가 자욱한 실내를 한경이 한발쯤 앞서 걸었다. 붉은 색 으로 마감된 몽환적 분위기를 한경은 신기한 눈으로 훑었다.

 

 “이곳엔 무예의 신인 관우와 학문의 신인 문창제군이 모셔져 있어요. 저 천정에 걸린 향들은 사람들의 소원이 적혀 있죠.”

 

 한경은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커다랗고 둥근 쟁반이 받쳐진 삿갓모양의 선향들이 매캐한 연기를 내며 타고 있었다. 어릴 때 엄마는 호연을 데리고 이 곳에 자주 들렸다. 키 작은 아이가 올려다본 천장은 하늘처럼 높았다. 커다란 선향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찔하게 느껴졌었다. 짙은 연기를 견딜 수 없어 어린 호연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콜록거렸다.

 

 “대형 모기향처럼 생겨서 다 타려면 엄청 오래 걸리겠는데.”

 “사나흘은 걸리죠. 그렇게 오래 걸리고 짙은 향이어서 하늘까지 잘 올라가는 거래요.”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관우와 문창제군 모형쪽을 향해 절을 하고 있었다. 저들은 무엇을 바라며 여기에 왔을까. 호연이 잠시 그들을 바라보는 사이 호기심어린 여행객은 어느새 기도 부스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한경은 지갑에서 100달러 짜리 두 장을 꺼내들었다. 안내원이 커다란 향 두 개와 붉은 종이를 그들에게 내밀었다.

 

 “향 걸자고요? 내 것도?”

 

 이 곳에 여러 번 들렸지만 호연은 지금껏 한 번도 정식으로 소원을 걸어본 적이 없었다. 미신의 힘에 의지해 이루고픈 것도, 보이지 않는 무엇에 간절히 바랄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언제나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었다. 오늘 이 투어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되길. 그것은 몇 날 몇 일 향을 태운 연기가 하늘에 닿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 하루하루의 작은 기도일 뿐이었다. 호연은 붉은 종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망설이던 그녀의 손이 한자어 몇 개를 천천히 적어 내렸다.

 

 “뭐라고 쓴 거야?”

 

 호연의 어깨 너머를 힐끔거리며 한경이 낮게 물었다.

 

 “가이드의 사생활이에요. 신경 꺼요.”

 “중국 신이라 한자로 써야 효험이 있으려나? 내 것도 써줘”

 

 한경이 호연에게로 제 몫의 붉은 종이를 불쑥 내밀었다. 호연은 사인펜을 쥔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뭔지는 몰라도 꽤 절실한 소원인 모양이었다. 부와 명성을 거머쥔 최고 톱스타의 소원이라니, 설마 불로장생?

 

 “뭐라고 써줄까요?”

 “찾게 해주세요.”

 

 호연의 손이 멈칫했다. 그녀는 한경에게로 눈을 돌렸다. 뭔가 간절한 표정이 거기에 있었다. 오래전 그녀가 수도 없이 보아왔던 엄마의 표정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그들의 사이로 어린 호연의 모습이 불쑥 끼어들었다. 엄마가 붉은 종이에 정성껏 쓰던 글자를 아이는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

 

 그것은 엄마의 기도였다. 십 수 년을 걸쳐 한결같이 빌었으나 이루어지지 못했던 바람이었다. 그녀의 기도를 실은 향의 연기를 어느 하늘로 흩어졌을까. 신은 왜 기어코 그것을 외면했을까.

 

 [엄마가 찾고 싶은 게 뭔데요?]

 [……사랑, 추억.]

 

 당신은 무엇을 찾으려는 거냐 물을 순 없었다.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면 어찌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엄마에게 그랬듯 그게 누구냐, 다시 물을 수 없을 거였다. 그것은 가이드가 여행객에게 물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호연은 붉은 종이로 황급히 시선을 옮겼다. 매년 엄마가 썼던 그 문장과 똑같은 것을 적기 시작하는 그녀의 손이 작게 흔들렸다. 두 장의 소원 종이를 받아든 안내원은 그들의 향을 천정에 고정시켰다. 그들의 소원종이를 매단 선향에 불이 붙었다.

 

 “뭘 찾느냐고 안 물어봐?”

 

 매운 연기에 기침을 쿨럭이며 사원을 나서던 한경이 물었다. 호연은 짐짓 태연하게 대꾸했다.

 

 “가이드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질문을 받고 답을 해주는 사람이지.”

 “그럼 당신 소원은 뭐였는데?”

 “사적인 질문도 사양해요.”

 “그럼 나한테 공적인 질문을 해. 내가 황유라랑 무슨 싸움을 하는 건지 뭐 그런 거.”

 

 연예인들이 소속사와 소송을 벌이는 일은 흔한 뉴스거리였다. 받지 못한 출연료, 불공정한 계약, 신뢰가 깨진 인간관계. 이상한건 싸움의 방식이었다. 은퇴라는 카드를 던지고 바다건너 날아와 시작하는 이 싸움의 목적이 쉽게 짐작되지 않는 이유였다.

 

 “무슨 싸움인데요?”

 “자유를 위한 투쟁?”

 “…….”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고군분투?”

 

 뜬 구름 잡는 소리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호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은 내가 바보지.”

 “어쩌면 한 여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 그리고 한 남자의 억울함을 밝히려는 추적.”

 

 얼핏 올려다본 한경의 얼굴은 어느새 굳어져 있었다. 이 사람은 농담속에 진담을 버무려 던지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괜한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그는 어떻게 살아온 걸까. 화려한 그 세계에서 어떤 일을 겪은 걸까. 왜 이런 일을 벌인 걸까. 그리고 무엇을 찾으려는 걸까.

 

 “뭐, 세기의 대결쯤으로 해두지.”

 “세기의 대결이요? 일일투어 가이드랑 스냅사진 작가를 데리고?”

 

 호연은 어이없이 되물었다. 그렇게 대단한 상대라면 로펌을 통째로 동원하여 붙어도 시원찮을 거였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건 호연와 위니 그리고 싸가지 밥 말아드신 변호사 친구 뿐이었다. 사원에서 나서는 그들을 향해있는 위니의 카메라가 길 건너편에 보였다.

 

 “한국의 언론사와 포털은 황유라의 손이 작용해. 난 싱가포르 쪽 외신으로 속보를 낼 거야. 이미 내가 전해준 자료들을 바탕으로 보도기사가 줄줄이 준비되어 있지. 수많은 전문가가 스탠바이중이고.”

 

 한경은 모퉁이에 있는 에그 타르트 가게를 발견하고는 그쪽을 향해 걸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먹을 건 다 챙겨 먹으려는 모양이었다. 방금 구워진 타르트를 한 봉지 사든 그가 그 중 하나를 크게 베어 물었다. 뜨거운 커스터드 크림에 입천장을 데었는지 아뜨 아뜨를 연발하며 작은 소란이 이어졌다.

 

 “당신 친구가 찍은 사진들 중 적당한 것들이 넘어 갈거야. 우리가 원하는 프레임의 사진이 세상에 뿌려지겠지.”

 “원하는 프레임?”

 “일단 오늘의 주제는 행복한 남자.”

 

 호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남자는 파파라치 컷과 화보 컷을 헷갈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곳에 싸우려 온 게 아니라 인생샷을 건질 생각인가 보았다. 오늘 차려입은 복장도 그랬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긴 했지만 마소재의 칠부 셔츠와 슬림한 셔츠는 공들여 골라 입은 티가 역력했다.

 

 “나는 그 여자한테 내가 이 곳에서 얼마나 행복하고 재밌는지 보여줄 생각이야. 당신을 떠난 나는 이렇게 행복합니다.”

 

 뭔가가 이상했다. 그것은 소속사와 싸우는 남자의 태도가 아니었다. 그건 마치.

 

 “저기요. 혹시 사랑싸움 중이세요?”

 

 한경이 낄낄거리며 한참을 웃어댔다.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한경을 닮긴 했는데, 미친놈마냥 길거리에서 낄낄대는 걸 보니 아닌가보다 하는 듯한 눈이었다.

 

 “사랑싸움은 아니지만 이별여행은 맞아.”

 

 그 말을 뱉은 후, 한경은 잠시 침묵했다. 떠나온 많은 것들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떠나보내야 할 무언가를 짐작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호연은 다른 질문을 무심하게 던졌다.

 

 “이길 수는 있는 거에요?”

 

 한경은 답 대신 봉지에서 에그 타르트 하나를 꺼내 건넸다. 호연은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을린 듯 바삭하게 구워진 가장자리 빵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스쳐가는 것들, 너무 흔해서 먹지 않는 것들, 이 거리와 이 타르트가 그녀에겐 그런 것이었다. 한경은 그런 것들을 새삼 느끼게 하고 있었다.

 

 “덤빌 수 있을 때 까지 덤벼볼 생각이야.”

 “무모한 싸움인거 같은데.”

 

 한경은 멀리 보이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턱 끝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에스컬레이터도 하루에 한 번씩 방향을 바꾸는데, 그 여자 인생도 한번쯤 내리막을 맛봐야지. 그게 공평하지 않겠어?”

 

 그녀는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뒤통수를 맞고도 아무 소리 못하고 주저앉았던 그녀였다. 부러움 비슷한 감정이 불쑥 떠올랐다. 이 남자는 왜 이렇게 용감할 수 있을까. 왜 이렇게 평온하게 싸움을 시작할 수 있을까. 이런 사람과 함께라면, 이 사람이 하려는 일을 함께하면 오래전의 미련을 조금은 털어낼 수 있을까.

 

 “근데 이 타르트 진짜 맛있네.”

 

 예의 그 속없는 얼굴로 돌아온 한경이 말했다. 호연은 주변을 휘 돌아보았다. 저 복잡한 골목의 어느 쯤에서 위니의 카메라는 그들을 향해 있을 거였다.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 몇몇 사람들도 보였다.

 

 “다른 맛있는 것도 많으니까 적당히 먹어요.”

 “맛있는 거 뭐?”

 “쌀국수, 스테이크, 커피 그리고 맥주.”

 “하루 종일 여기서 놀아야겠네.”

 

 그래도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영화에 나온 어느 바에서 커피 한잔을 마셔보고. 해가지면 북적거리는 란콰이퐁 거리에 앉아 병맥주를 마시는 하루. 가이드가 아닌 여행객처럼 곳곳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하루.

 

 “여기라면 그럴 수 있을 거에요. 홍콩의 핫 플레이스라 인생샷 건지기에도 딱이고”

 “근데.”

 

 한경이 심각한 얼굴로 호연을 바라보았다. 뭔가 문제가 생긴듯한 표정이었다.

 

 “그럼 난 오늘 결국 저 에스컬레이터를 못 탄다는 거야?”

 

 한경의 손가락이 상행으로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 셈이네요.”

 “저녁에 다시 바래다줄게. 나 저거 꼭 타봐야겠거든.”

 

 쓸데없는 승부욕을 불태우는 한경을 보며 호연은 피식거렸다. 천하태평 성격은 아무래도 타고난 모양이었다. 내내 신나하던 모습이 연기가 아니었던 게 분명했다.

 

 “명색이 배우신데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타봐야죠. 저기서 영화도 많이 찍었거든요. 중경삼림, 다크 나이트. 아. 오늘 아침에 두 분도 찍으셨네. 덤앤더머.”

 “진짜 엄청 힘들었어.”

 “그러니까 뭐 하러 거기까지 올라와요.”

 “당신이 거기에 있으니까.”

 

 호연은 문득 웃음을 거두었다. 그녀는 한경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누구도 저 언덕을 걸어 올라온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낯선 땅의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아픔을 알아차려 준 사람도, 그녀의 재능을 인정해 준 사람도 없었다. 세상이 그녀에게서 등 돌렸다고 그렇게 믿고 살아왔다.

 세상에서 도망쳐 살던 그녀에게 누군가 말하고 있었다. 높은 언덕에서 이제 그만 내려오라고. 그 작은 집에서 숨어있지 말라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파묻혀 살아가지 말라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라고. 너는 정말로 잘 할 거라고. 누군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래요. 에스컬레이터 같이 타 봐요.”

 

 호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선가 낯선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내일부턴 내가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갈게요. 아침의 미드레벨은 아래로 움직이니까.”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이 쉬우니까. 세상에서 숨는 것보다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쉬울 테니까. 당신에게 가는 길은, 당신이 내게 온 그 길보다 훨씬 편안할 테니까. 호연은 손에 든 에그타르트를 한입 베어 물었다. 말랑말랑한 커스터드 크림이 입안에 퍼졌다. 말랑말랑한 무언가가 가슴에도 퍼져가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 전 만모사원에서 자신이 적었던 그 소원을 떠올리고 있었다. 당신과의 이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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