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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에디온
작가 : 염적
작품등록일 : 2017.11.7

과거 중간계를 휩쓸었던 원인모를 악마들의 습격이 일단락 된지도 어느새 20년, 전쟁을 종식시키는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세 명의 인간영웅 에디온 중 가장 강력한 자인 에르세데스 메데스의 아들인 에르세데스 이안은 평화속에서 평범한 삶을 살며 20살의 성인으로 거듭난다. 처음으로 맞는 방학에 떠난 첫번째 여행. 하지만 여행도중 대륙 곳곳에서 이상현상들이 발견되고, 이안과 일행의 앞에 다시 한 번 악마들의 위협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 1장 : 온실 속의 영웅 (2)
작성일 : 17-12-07 01:15     조회 : 213     추천 : 0     분량 : 9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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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드의 뙤약볕은 거셌다. 추수가 코앞인 지금 해는 그 어느 때보다 매섭게 농부들의 피부를 쏘아댔다. 농업으로 먹고사는 도시 본드에서 추수는 피할 수 없는 필수적 일이었기에, 수많은 농부들은 경작을 한 순간도 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는 피부가 하얀 사람들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다행히도 밀레는 원래부터 피부가 검었던 탓에 죽일듯이 쏘아대는 자외선에 하얀 피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억울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벌써 농사일을 손에 잡은 것도 벌써 4년이 다되어갔다. 저 멀리 바다 건너 아누스들의 도시에서 처음 인간들의 대륙으로 건너올 때는 걱정이 앞섰지만, 지금 보아하니 걱정은커녕 오히려 너무 적응을 잘할 것을 우려했어야 했다. 그만큼 농사는 밀레에게 천직이었다. 어쩌면 과거 해오던 일들에 비하면 이런 일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무엇이든 간에 풀떼기를 잡아 이리저리 심었다 거두는 일은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이제 곧 추수가 끝나면 이안이 다시 마을로 돌아올 것이었다. 밀레는 잠시 쉬지 않고 거두던 곡식들을 놓은 채 고민에 빠졌다. 이번 해는 이안이 성년이 되고 처음 맞는 해였다. 주어진 방학 기간도 사 개월이 되는 마당에 이전같이 훈련만 해대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다른 걸 하자니 마땅히 할 게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농사일이라도 가르쳐볼까...’

 밀레는 자신도 방금 내뱉은 말에 어이가 없었는지 실없는 웃음을 뱉어냈다.

 “고민이라도 있나? 낯빛이 어두워.”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밀레의 귀에 들어왔다.

 예순 언저리 나이의 농부 하덴이 밀레 옆에 다가와 걸터앉았다. 그는 흰머리가 눈에 보일 정도로 드문드문 나있었고, 몸은 나이에 맞지 않게 탄탄한 편이었다. 아마 본드에서 가장 건장한 농부 중 한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는 농사를 사랑했고 건강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밀레의 옆에 앉아 있으니 세월이 팍팍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참 자네는 언제 봐도 적응이 되질 않는군. 난 아직도 자네가 나보다 다섯 살은 많다는 것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가 않네.”

 “굳이 애를 쓰면서 까지 받아들일 필요는 없네. 그래서 말을 놓으라고 한 것이니까.”

 밀레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소매로 닦아내며 답했다.

 머리를 싹 밀어서 일수도 있지만, 수염에서 조차 흰 빛을 찾을 수 없는 것, 그리고 매끈한 피부는 그가 60대 후반이라는 것을 완벽하게 부정하는 요소들이었다. 하지만 밀레는 두 해 후면 나이 70을 바라보는 분명한 노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50대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어보이는 젊은 외모였다.

 밀레는 남들과는 달랐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외모 뿐만이 아니라 그의 직위 또한 그러했다.

 “세계를 위해 봉사한 대가라고 하기엔 싼 편 아닌가?”

 밀레가 덧붙였다.

 그는 수호자였다. 악마의 침입과 여러 분쟁들을 조정하는 세계 최고의 기구, 그는 수호의회의 소속이었고 그에 걸맞는 힘을 가진 자였다. 그는 중간계를 돕기 위해 천상의 직위를 버리고 내려온 고귀한 천사 우리엘에게 힘을 하사받았고, 에디온을 지키고 있는 중대한 임무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하덴이 밀레를 따라 땀을 닦으며 물었다.

 “그냥 이안이 돌아오면 무얼 해야 할까 생각 중이었네.”

 “그러고 보니 성년이 되고 첫째로 맞는 자유시간이구먼.”

 “뭐 추천해줄 거리라도 있나?”

 하덴은 고심하는 듯 고개를 기울여 팔짱을 지었다.

 “뭐, 애를 키워봤어야지.”

 이내 고개를 저으며 그가 대답했다.

 밀레는 별다를 것 없는 그의 대답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일단 추수부터 끝내고 생각해보지.”

 하덴은 그 말을 하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잠시 몸을 숙여 허리를 폈다. 허리에서는 우드득 소리가 밀레의 귀에까지 들려올 정도로 선명하게 들려왔다. 하덴은 잠시 찡그린 표정을 짓더니 이내 상쾌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여행을 한 번 가보는 것은 어떤가?”

 하덴이 다시 한 번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밀레는 가만히 앉아있다 들려온 생각치도 못한 제안에 머리에 한 줄기 번개가 지나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으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여행이라. 꽤나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아브스쿰에서 본드로 이안을 데려온 후 밀레는 본드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본드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학업에 지친 이안에게 딱 적합한 휴양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렇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뭐든 지나치면 질려버리는 법이라고, 이제는 밀레 자신조차도 이곳의 나른한 삶에 조금은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랬으니 이안은 얼마나 더 지루해했을지, 지금와서 생각하니 꽤나 자신에게 답답한 면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면에서 여행은 모든 문제들을 타파하기에 완벽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괜찮을까 걱정이네.”

 “무엇이 말인가?”

 “고작 20여년밖에 지나지 않았잖나.”

 밀레의 말이 맞았다. 세계를 휩쓸었던 악마들의 침공이 일단락된지도 고작 그 정도의 세월밖에는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세계는 그 짧은 시간동안 정말 빠른 속도로 원상태의 모습을 찾아갔다. 물론 아직 세계가 온전히 원상회복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과거의 공포와 두려움을 잊어버릴 정도로 파괴된 유산들과 터전들을 복구해내었다고는 말할 수 있었다. 세상은 그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이 평화를 되찾았다.

 악마들이 나타나지 않은 지도 어언 이십 여년이 흘렀다. 불로의 몸을 지닌 종족들에게는 찰나와도 같은 순간이겠지만, 적어도 이곳 아틀로스 대륙의 주인인 인간들에게 있어서 그 세월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참전하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세월은 과거의 고통을 잊기에 부족한 시간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밀레 자신조차도 최근에 나태해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밀레는 그런 나태함 속에서도 자신의 임무를 다해왔다. 이안이 평범한 인간들의 도시로 건너 온지도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이안은 본드와 프레스틴을 제외한 그 어느곳도 가보지 못했다. 밀레는 그 점을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들만큼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랬던 이안의 친부 메데스의 말이 귓가에 항상 맴돌고는 했다. 그래서인지, 이번만큼은 무언가 색다른 방학을 보내게 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다가온 여행이라는 큰 무게감에 밀레는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걱정되나 보군.”

 하덴이 나지막히 말했다.

 “걱정이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지난 이십여년간 아무일도 없었고, 이안도 이제 성년이니 슬슬 세상을 돌아다녀봐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설령 미래에 다시 악마들이 돌아온다고 해도 이를 통해 얻는 교훈들이 상당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네.”

 “그래, 내 생각도 그렇네. 하지만 만약여행 도중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걱정도 팔자로군. 악마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상 수호자인 자네와 에디온의 자식인 이안에게 일어날 문제가 뭐가 있겠나?”

 하덴의 말이 맞았다. 이 대륙에서 지금 자신에게 피해를 입힐 존재를 굳이 찾자면 용을 제외하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바다에 사는 괴수 네스들과 타락한 신나리온인 헬리온들조차도 떼거리로 몰려오지 않는 이상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과거 선악의 분쟁 때 체결 된 전 세계적 협약인 아니미 동맹 협약이 맺어진 이후로 대부분의 용들은 인간들에게 우호적인 성향을 띄고 있었다. 최소한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심지어는 그 포악하다던 고룡 크로나샤르조차도 협약을 맺은 이후 단 한 번도 인간이나 아누스들을 살해한 전적이 없었다. 게다가 설령 협약을 벗어난 용들이 있을지언정, 고작해야 지성이 존재하지 않는 소룡 정도에 불과할 터이니 그다지 걱정할 것은 없었다. 지금 장애가 되는 것은 오직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뿐이었다.

 “한 번 쯤은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있지. 그것이 여행의 묘미 아닌가?”

 “자네 말이 맞네. 이제 이안도 조금은 자유를 누릴 때가 되었지.”

 밀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흙이 잔뜩 묻은 엉덩이를 털자 연 노랑색의 모래먼지가 잔뜩 묻어나왔다. 밀레는 흙먼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지를 계속 해 털어댔다.

 “충고 고맙네. 덕분에 어쩌면 이안에게는 잊지 못할 성년 선물이 될지도 모르겠군.”

 

  

 

 * * *

 마침내 그날이 밝았다. 지루한 마지막 역사 시험도 이틀 전에 끝났고, 지겨운 학교도 이제 졸업식만 무사히 지나가면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하는데?”

 옆에 있던 에든이 물었다. 하기야 남이 보면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만도 했다.

 “방학이잖아. 뭘 물어?”

 나는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제 이것만 끝나면 쉴 수 있다고.”

 그 말을 끝으로 둘은 대화를 끝낼 수 밖에는 없었다. 연단위로 학교장이 발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서 가장 나를 힘들게 한 것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 눈앞의 늙은 남자는 최고봉이었다. 깐깐하기의 정도가 상상을 넘어서는 저 남자는 자신의 연설 중 작은 잡음이 발생하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독재적이라고나 할까, 참 여러 가지로 정을 붙이기 힘든 노인이었다. 본드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전혀 저렇지 않은데, 어떻게 보자면 지위와 권력이 사람을 망쳐놓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백년을 채 못사는 인간이 감당하기에 달콤한 힘의 유혹은 선택받은 자가 아니고서야 불가능 할지도 모르겠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학생분들, 길고도 짧은 한 해가 마무리 되어갑니다.”

 “웃기고 있군, 언제나 시작은 되도 않는 사랑타령이라니까.”

 나는 가식이 뚝뚝 떨어지는 말투에 진저리가 나 불평을 내뱉을 수밖에는 없었다.

 졸업식은 길고도 길 예정이었다. 보아하니 교장은 오늘도 말을 짧게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방학식 축사만큼은 기대를 걸어보았건만, 어림도 없었다.

 “좀 자야겠다. 에든 너도……”

 나는 말을 아꼈다. 에든이 이미 골아 떨어져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마 나도 곧 잠에 빠져들 것만 같았다. 잠은 놀랍게도 초침이 시계를 채 반도 돌지 않아 쏟아져 내렸다. 이런, 이렇게 갑자기 피곤해져본 적은 처음인데. 나는 그렇게 몰려오는 잠결에 결국 눈을 감고는 몸을 맡기고 말았다..

 

 주위는 들려오는 소음들로 잔뜩 소란스러웠다. 나는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몸을 벌떡 일으켰다. 본능적으로 눈은 시계를 향했다. 식이 끝나고도 벌써 10분이 넘는 시간이 지났었다. 인기척에 옆을 돌아보니 에든은 어느새 일어나 짐을 챙기고 있었다.

 “일어났네? 안 그래도 깨우려고 했었는데.”

 나는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놀랍게도 지금 나는 피곤했다. 자고 일어나서 피곤함을 느끼다니, 이건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느낌이다.

 “너 좀 피곤해 보인다?”

 “그러게, 오랜만이네 이러는 것도.”

 나는 기지개를 피며 한 마디 덧붙였다.

 “학교가 어지간히 지겨웠나보지.”

 “어쩌면 연설이 못 들어줄 지경이었을 수도 있고.”

 “뭘 들었어야 알지.”

 에든은 가방을 매며 내게 물었다.

 “그래서 이젠 어디로가?”

 “뭐, 집에 가야지. 내가 달리 갈 데가 어디있어.”

 가방은 어지간히 무거웠다. 처음 입학할 때만 해도 짐이 일 년을 버티기에는 하염없이 모자라 보였는데, 지금 보니 쓸데없는 짐이 그렇게도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확실히 기계적인 생활에서는 그다지 필요한 것이 없다.

 “그럼 넌 또 본드로 가는 거네?”

 “그렇지. 일단 아버지부터 만나야 하니까... 뭘 할지는 우선 가면서 생각해 봐야지.”

 “할 일 없으면 놀러와. 우리 동네에는 꽤나 할게 많거든.”

 나는 에든의 실없는 말에 콧바람을 뀌었다. 에든의 집이 있는 곳인 아릴다드는 우리 집으로부터 족히 삼, 사일은 걸리는 이곳 프레스틴보다도 더 먼 곳에 위치한 곳이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방학은 길잖아. 이정도면 시트리아 호수를 한 번 둘러보고 오기에도 그다지 부족한 시간은 아니지.”

 “할일은 많을 거야. 정 할 일이 없으면 가보지 뭐.”

 “난 할 일 없는 배짱이라 집에만 쳐 박혀 있을 테니 아무 때나 와.”

 나는 말 대신 미소로 답했다.

 “나 그럼 먼저 간다?”

 에든이 출구로 발걸음을 옮기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에 똑같이 손을 들어 흔들어 주었다. 에든은 그렇게 고개를 돌려 밖으로 나갔다.

 에든이 나가고 난 후 나는 가방을 들고 남은 짐들을 챙기기 위해 기숙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학교 안은 수업이 끝나고 방학을 만끽하는 학생들로 붐볐다. 나는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학생들 틈을 비집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갈 마차를 찾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날씨는 정신없이 비가 내리던 어제의 날씨와는 정반대로 쨍쨍한 햇빛이 구름 사이로 땅을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로시스의 우기는 정말 종잡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내가 학교 밖으로 나서자 입구 쪽에 마차 한 대가 자리를 잡고 서있는 것이 보였다. 익숙한 문양과 마부자리에 앉은 낯설지 않은 남자 한명. 나는 한 번의 눈길과 함께 바로 그것이 내 마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부는 가만히 앉아 졸며 고개를 까딱이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의 앞으로 다가가 주변 군중들의 소리를 뚫을 정도의 목소리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레이널 아저씨, 저 왔어요.”

 아저씨는 내 인사를 듣고 흔들던 고개를 치켜들며 잠에서 깼다. 그가 답했다.

 “아, 이안 왔구나. 어서 타렴.”

 나는 짧은 인사말을 나눈 후 마차 안으로 몸을 옮겼다. 마차 안은 넓고 아늑했다. 학교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었기에 아저씨와 나는 늘 그렇듯 중간에 에스일라에 들려 하루를 지낼 예정이었다. 말은 푸르릉 소리를 내며 레이널의 채찍질과 함께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말발굽이 얕게 자라난 진흙 사이의 잔디들을 재치는 소리가 은은한 바람소리와 함께 마차의 창문 틈을 통해 내게 들려왔다.

 대학의 첫 번째 학기가 끝났지만, 나는 별다른 느낌을 느끼지는 않았다. 아직 에든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친하다 할 친구도 없었고, 내 성격 상 두루두루 친구들을 넓게 사귀는 편이 아니었으니까. 정말 친한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에든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대학은 말 그대로 학문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거기에 일상의 지루함을 탈피시켜주기도 했으니 나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그게 아마 내가 대학에 기대하는 전부였을 것이다. 실제로 보니 그 기대조차도 채워주지 못하는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간에 모든 것은 한 번 쯤은 경험해 볼 만한 것이다.

 어느새 학교는 천천히 멀어져 가고, 대신 드넓은 평야가 두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이 평야는 족히 몇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야 모습을 감출 것 이었고, 나는 집에서 대학으로 갈 때 보았던 그 거대한 평야를 기억하고 있었다. 일 년에 달하는 시간동안 학교에 치여가며 떠올릴 기회조차 없었건만, 드넓은 초목들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눈에 익숙했다.

 평야는 광활한 자유로움을 내뿜으며 넓게 펼쳐진 채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나는이 광경이 곧 지루한 풍경으로 뒤바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차라리 그러기 전에 조금은 아쉬운 채로 머릿속에 남겨두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창문에 괸 턱을 풀고 성인 남자가 눕고도 사람 한명이 앉을 만한 크기의 자리에 몸을 뉘였다. 눈을 감으니 나는 마차의 불친절한 승차감에도 불구하고 솔솔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잠결을 느낄 수 있었다. 곧 편안한 어둠이 눈앞을 뒤덮고, 오래 걸리지 않아 나는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진동에 난 금새 잠에서 깨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주변은 건물에 매달려 있는 진한 노란빛 등불들로 가득했고, 앞에는 오래 된 나무로 만들어진 벽이 세워져 있었다. 나는 오래 걸리지 않아 이곳이 에스일라의 검문소라는 것을 알았다.

 “통행권 두 장이오.”

 레이널이 고삐를 당기며 말을 세운 후 검문소의 직원에게 통행권 대신 종이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종이에는 내 양아버지인 에라니스 밀레의 날인과 수호의회의 인증 인장이 찍혀 있었고 검문소의 직원은 이를 본 순간 잠시 놀란 기색을 보이더니 금세 차분함을 유지하고 입구의 문을 열어주었다.

 “고맙소.”

 레이널은 검문 직원이 소란을 피워주지 않아준 것에 대한 간단한 감사인사를 건네며 다시 마차를 출발시켰다. 마차는 벽돌로 된 바닥을 지나며 꽤나 정신없는 진동을 전했다. 나는 덜컹거림에 엉덩이가 의자에서 자주 튀어 올랐지만, 곧 여관에서 쉴 생각을 하니 그런 사소한 문제 따위는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말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마차의 덜컹거림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피곤함에 졸던 고개를 치켜세우고 밖을 내다보았다. 익숙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그것이 매번 묵던 여관이라는 것을 아는 데에는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긴 이동을 마치고 쌓인 피로를 풀 수 있다는 기대감에 난 재빨리 짐을 챙겨 마차에서 내렸다. 물론 그 와중에도 아저씨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은 잊지 않았다.

 “수고하셨어요, 레이널 아저씨.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레이널은 미소로 대답했다.

 “그래 이안, 내일 오전 11시까지 이곳으로 오마. 늦지 말거라.”

 “네, 그때 봬요.”

 나는 짧게 화답하고 재빨리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여관 안은 일 년 전과 똑같은 형태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오래 된 갈색 빛의 고목들로 만들어진 여관은 상업도시 에스일라의 붐비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조금은 외곽에 위치해 있었고, 주변은 간간히 설치되어 있는 가로등들로 은은한 분위기를 풍겼다. 에스일라의 밤은 정말 요양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나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 안내 창구로 다가갔다. 예전에 있던 백발의 노인인 주인 할머니는 온데간데없고 처음 보는 외모의 아주머니가 대신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눈이 좋지 않은지 돋보기를 쓰고 있는 그녀는 표정에 귀찮음이 잔뜩 배어있다 못해 흘러넘치고 있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치가 보였지만, 어서 방에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이 워낙 커 눈치 따위는 금세 잊어버린 채 성큼성큼 그녀에게로 다가가 물었다.

 “주인 아주머니신가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저기요, 혹시 주인 아주머니신가요?

 그러자 그제야 그녀는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아 묵으실 건가요? 하루치는 최대 2인실 기준 50타렌입니다. 조금 더 넓은 방을 원하신다면 80타렌, 100타렌 방이 있으십니다.”

 그녀는 굉장히 기계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일에 대한 귀찮음이 잔뜩 묻어 나왔다. 나는 그런 그녀의 말투가 별로 맘에 들진 않았다만, 그 불만이 쌓인 내 피로를 덮어버리지는 못했다.

 “50타렌으로 하나 주세요.”

 그녀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런 그녀의 손 위로 말없이 10타렌 지폐를 다섯 장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 돈들을 말없이 받으며 말없이 방 열쇠를 건네주었다. 나는 열쇠를 낚아채듯 받아 챙긴 뒤 인사도 없이 방을 찾아 층계를 올라갔다. 평소에 예의를 꽤나 중시하는 나였지만, 그래도 저런 무례한 사람에게까지 구차하게 격식을 차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대우를 받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는 행실의 여자였다. 나는 그런 그녀의 무례함은 뒤로하고 서둘러 계단을 올라 자신의 방을 찾기 위해 방호수들을 이리저리 바라보며 복도를 걸었다. 멀리가지 않아 나는 내 방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방금 받았던 열쇠를 꺼내 문고리에 달린 열쇠구멍에 밀어 넣었다. 내가 열쇠를 돌리자 꽤나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나는 방안에 들어가 바닥에 짐을 던져 놓은 채 석양빛에 간신히 형태가 드러난 침대에 몸을 던지듯이 뉘였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석양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 빛도 그 자취를 감추고 방안에는 어둠만이 남았다. 그리고 나는 곧 잘 준비를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어둠에 몸을 맡긴 채 곤히 꿈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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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 1장 : 온실 속의 영웅 (4) 2017 / 12 / 8 233 0 7567   
3 제 1장 : 온실 속의 영웅 (3) 2017 / 12 / 7 250 0 13730   
2 제 1장 : 온실 속의 영웅 (2) 2017 / 12 / 7 214 0 9567   
1 제 1장 : 온실 속의 영웅 (1) 2017 / 12 / 4 377 0 5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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