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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스네이크맨
작가 : 엄길윤
작품등록일 : 2017.11.8

뱀의 능력을 가진 남자가 성범죄자를 처단한다.

 
여혐? 남혐?(2)
작성일 : 17-12-07 01:10     조회 : 241     추천 : 0     분량 : 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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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에 할 말을 해야 한다. 놈에게 다가갔다. 노려보며 물었다.

 

 “왜 이런 짓을 하는데?”

 

 알 것이다. 일인시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놈이 대답했다.

 

 “헬조선에서 남자로 태어난 게 잘못이니까.”

 

 이해가 안 돼 다시 물었다.

 

 “그게, 뭐?”

 

 “한 번은 썸 타던 년이 그러더라. 뭐 먹고 싶은지 자꾸 묻지 말라고. 그건 나를 만날 준비가 안 된 거래. 자기는 그런 취급 받고 싶지 않다면서 우리 헤어져. 이게 말이 돼?”

 

 “그게 이유냐?”

 

 “그런 말은 만나자마자 하든지. 꼭 다 얻어먹고, 생일이랍시고 선물도 처받아 놓고선. 꼭 맨 마지막에 그러지. 씨발 김치년이.”

 

 주위에 있던 여자들이 그 말을 듣고는 아우성쳤다.

 

 “저거 봐요, 저거! 다들 김치년이라는 거 들었죠? 저런 게 바로 여혐이라고요! 지가 일방적으로 퍼줘 놓고선. 저런 남자가 꼭 그래요. 헤어지면 준 거 다 내놓으라고 개진상 떨지.”

 

 “여자가 현명했네요. 아주 잘 헤어졌어. 여자는 자기를 소중하게 대해줬으면 하는 건데. 것도 모르고 김치년이네. 먹튀네. 꼭 이래요. 그게 한남의 한계거든.”

 

 여자들의 빈정거림에 주위 남자들이 발끈했다.

 

 “여자가 뭐 벼슬이에요? 그럼 남자는? 남자도 인정받고, 위로받고 싶은 건 똑같다고요. 왜 꼭 여자만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해요? 이러면서 차별하지 말라고? 댁들이나 차별하지 마요.”

 

 남자들의 외침 사이로 놈이 말했다.

 

 “봤지? 여자는 나쁜 거야. 이렇게 이기적이거든.”

 

 “개새끼야. 그러니까 그게 이유냐고.”

 

 끝까지 안 들어도 뒤에 무슨 말이 나올지 알 것 같았다. 몇 마디 더 하려다가 오히려 뒤로 물러섰다. 느끼는 바가 있었다. 같이 뒤엉키면 안 된다. 내가 왜 성범죄자들을 처단할까? 나쁜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여혐 남혐이 무슨 상관인가? 중요한 건 놈이 강간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그것도 여섯 명이나. 여혐은 그냥 핑계였다. 분노와 혐오의 대상이 필요한 것뿐이었다.

 

 일종의 수렁이라고 보면 된다. 여혐과 남혐의 프레임에 갇히게 되면 수렁 속에서 뒤엉키듯, 서로에 대한 분노만 쏟아내다가 자멸하는 거였다.

 

 몇 발자국 더 물러선 뒤 놈을 응시했다. 놈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왜 그냥 가는 거냐고? 가는 게 아니다. 멀리 떨어진 채 상황을 따져봐야 한다. 누가 이런 상황을 이용할까? 뱀 여자다. 오히려 놈을 통해 여혐과 남혐을 조장하고 있다. 놈에게서 뱀 여자의 의지가 그대로 느껴졌다. 뱀 여자는 지옥을 원한다. 서로 미워하고 혐오하는, 그런 세상을 간절히 바랐다.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웃긴 건 놈도 그 생각에 동조한다는 거였다. 사람이란 게 그렇다. 쉽게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억지로 뱀 여자의 의지가 덧씌웠다면.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풍겨 나오는 의지가 마치 한 몸처럼 딱 맞아 떨어지지 않을 거였다. 뭔가 잡음이라도 있었겠지.

 

 놈은 지하철역 앞에서 계속 피켓을 든 채로 서 있었다. 그건 곧 여혐과 남혐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여자들이 놈을 끌어내려고 안달하고, 남자들이 그걸 막아섰다.

 

 놈은 제자리에 가만히 선 채 자신에게 달려드는 여자들을 지켜봤다. 아마도 죽일 여자들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중일 거다. 물론, 이제 죽을 여자는 없다. 내가 있는 한.

 

 지하철역 앞이 소란스러워지자 누가 불렀는지 경찰이 출동했다. 경찰차 2대가 멀찌감치 서고, 네 명의 경찰관이 내렸다. 휴대폰으로 대충 상황 전달을 받고는 구경꾼들을 헤치며 걸어왔다.

 

 “신고하신 분 누구예요?”

 

 경찰관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구경꾼들 중의 한 명이 나섰다.

 

 “전데요. 보니까 상황이 심각한 것 같아서요. 저러다 다칠 것도 같고.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게 다른 사람들한테도 피해가 가고. 일단은 지하철역 앞인데 통행에 방해되잖아요.”

 

 경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로 소리 지르며 엉킨 두 무리의 사람들에게 걸어갔다.

 

 “진정들 하세요! 이러지 마시고, 일단은 뒤로 물러나세요. 그러다 다칩니다!”

 

 경찰관 네 명이 중간으로 비집고 들어가 남자들과 여자들을 막아섰다. 하지만, 이미 말리기엔 너무 늦었다. 감정싸움으로 치우쳐 서로가 상대방이 먼저 시작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몸싸움하며 밀고 밀리다가 다쳤다고, 비명을 지르며 상대방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중간에 낀 경찰관들은 파도에 휩쓸린 해초처럼 사람들의 물결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경찰들의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더는 안 되겠는지 경찰관 한 명이 무전으로 지원 요청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놈이 들고 있던 피켓을 내렸다. 지하철역 입구에 세워놓고는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남녀가 뒤엉킨 곳이었다.

 

 저 새끼가 뭐 하려고 저러지? 얼른 사람들을 헤치며 놈에게 다가갔다. 수십 명의 사람이 뒤엉킨 터라 서로 남자와 여자라는 것 외에는 구분하기 힘들었다. 조금 전까지 피켓을 들었던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상대방과 몸싸움을 벌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남자들의 무리에 뒤섞인 놈은 사람들을 가르며 여자들에게 다가갔다. 놈에게 항의를 했던 여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른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다. 놈이 그 여자 앞에 떡하니 섰다. 경찰들이 양쪽을 번갈아 가며 살폈다. 고작 네 명뿐이었다. 사각지대가 너무 많았다. 놈의 온몸이 더욱더 차갑게 식는 게 보였다. 여자를 죽이려는 거였다. 이 개새끼가 어디서 감히!

 

 온몸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만약 놈이 저 여자를 죽이게 된다면 제2의 강남역 살인 사건이 될 터였다. 서로에 대한 증오가 폭발하듯 터져 나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될 거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더구나 너무 많은 사람이 얽혔다. 보통 사람들은 시야가 가려져 누가 누군지 구분하지 못한다. 놈은 그걸 노리는 거다. 여자를 죽이고 빠져나가면 그만이었다. 나 말고는 아무도 놈이 한 짓을 모를 거다.

 

 어쩔 수 없다. 힘을 써야 한다. 눈앞의 사람들을 잡아당기고, 밀쳐냈다. 나가떨어진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욕설을 퍼부었다. 상관없다. 사람들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시퍼렇게 식은 놈을 살폈다. 놈이 나를 돌아보고는 여자에게 급히 다가갔다. 아직 놈과의 거리가 5m 넘게 남았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저기 좀 보세요! 일인시위 하던 사람이에요!”

 

 손가락으로 놈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건 엄청난 실수였다. 사람들과 경찰들의 시선이 일순간, 나에게로 쏠렸다. 그건 오히려 놈에게 기회를 준 셈이었다. 놈을 바라봤다. 눈앞의 여자에게 손을 뻗어 목을 움켜쥐었다. 저기에서 조금만 힘을 줘도 목이 부러지는 거였다. 여자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땅을 박차고 놈을 향해 뛰어올랐다. 지금은 복면을 쓸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일단 막아야 했다. 사람들이 멍한 얼굴로 공중에 치솟은 나를 올려다봤다. 놈이 여자의 목을 쥔 채로 나를 돌아봤다.

 

 뒈져버려! 이 강간 살인마야! 놈을 덮치면서 주먹을 날렸다. 놈이 여자의 목을 쥔 채로 고개를 살짝 틀어 주먹을 피했다. 이건 못 피할걸? 그대로 놈을 향해 온몸을 내던졌다. 그러자 놈이 여자의 목을 놓더니, 오히려 내 멱살을 잡고는 땅에다 메다꽂았다. 세상이 한순간에 뒤집히면서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주위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갑자기 놈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내 목을 움켜쥐었다. 엄청난 힘이었다. 전의 발바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숨이 막혔다. 누운 채로 놈의 팔을 두 손으로 잡았다. 힘을 줘 떼어내려고 했지만, 팔이 돌덩이처럼 단단했다. 놈의 손아귀가 점점 목을 조였다. 눈물이 나고, 눈앞이 하얗게 흐려졌다.

 

 무릎을 힘껏 들어 올려 놈의 랄부를 때렸다. 턱! 무릎이 놈의 다른 손에 막혔다. 놈이 내 무릎을 움켜쥐고는 힘을 줬다. 관절에 강한 힘이 가해지자 서서히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완력이었다. 서로 몸싸움을 벌이던 사람들이 뒤로 물러서서 나와 놈의 격투 장면을 지켜봤다. 경찰들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 놈의 팔을 잡은 두 손을 풀었다. 한쪽 팔을 들어 팔꿈치로 놈의 팔을 내려찍었다. 놈이 내 목을 쥔 손을 슬쩍 놓았다. 팔꿈치가 공중을 갈랐다. 이때다! 상체를 일으켜 머리로 놈의 얼굴을 들이받았다. 놈이 고개를 옆으로 틀어 내 이마를 피하고는 다시 제자리로 머리를 돌려 내 관자놀이에 부딪혔다. 퍽!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눈앞이 번뜩였다. 놈은 내가 하는 공격을 다 피하고, 반격까지 가했다.

 

 머리가 울려 다시 바닥으로 쓰러졌다. 발바리와의 격투 때도 그랬다. 어떤 공격을 할지 미리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놈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아니, 오히려 발바리보다 훨씬 더 강했다.

 

 아무래도 뱀 여자에게 능력을 받은 터라 나에 대한 내성이 패시브처럼 장착된 모양이었다. 형광 뱀을 잡아먹어서 그런 것이리라. 내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놈이 위에서 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고개를 틀어 피하자마자, 무릎으로 내 복부를 찍었다. 우욱! 입을 벌리며 상체를 들어 올렸다. 놈이 히죽 웃었다. 기회다! 이걸 노린 거였다. 놈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갈 순간을!

 

 놈이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려고 손을 뻗었다. 그대로 몸을 앞으로 숙인 후 얼굴을 돌렸다. 이 정도까지 접근하면 아무리 미리 안다고 해도 피할 시간이 없다. 입을 벌려 놈의 목을 힘껏 물었다. 빠득. 살이 얼마나 질긴지 이빨이 부러졌다. 입안으로 피가 울컥 쏟아지는 걸 느끼며 놈의 목을 잘근잘근 씹었다.

 

 놈이 비명을 지르며 내 머리를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얼굴이 뒤로 젖혀졌다. 부러진 이빨이 놈의 목에서 떨어져 나왔다. 하지만, 놈은 아까보다 힘이 약해졌다. 잡아당기는 완력 자체가 달랐다. 이미 상당량의 독이 주입된 거다. 발바리와의 싸움에서 배운 게 있었다.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독에 당하면 그걸로 끝이라는 거였다. 동생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발바리한테 죽었을 거다.

 

 놈이 주먹으로 내 얼굴을 마구 때렸다. 눈앞으로 별이 펑펑 터졌다. 맞아가면서도 다시 놈을 물기 위해 머리를 들이밀었다. 저지하려던 놈이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놈 또한 나를 물려고 이를 드러냈지만, 온몸이 마비되는 중이라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내 이빨이 놈보다 더 빠르다. 경찰들이 달려오더니 바닥을 뒹구는 우리를 뜯어말렸다. 아직 독의 주입량이 충분치 않았다. 이 정도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이 힘을 되찾을 거다.

 

 놈이 벌떡 일어나 달라붙은 두 명의 경찰을 뜯어냈다. 경찰들이 어이쿠! 신음을 흘리며 나가떨어졌다. 놈이 황급히 주위를 살피고는 구경하는 사람들 쪽으로 뛰었다.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양옆으로 갈라섰다. 놈이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잡아야 한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놈을 영영 잡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 몸에 매달린 경찰들을 떼어낸 후 놈을 쫓아 뛰었다. 놈이 긴장한 얼굴로 연신 뒤를 돌아보며 달아났다. 놈은 지금 무척 당황한 눈치였다. 시간이 없다. 독이 다 해독되기 전에 놈을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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