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충분히 정리한 리타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컹.”
내쉬고.
“키잉.”
크게 숨을 쉴 때 마다 늑대가 낑낑 거렸으나 리타는 숨을 고르는데 성공했다.
“좋아. 준비됐습니다.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리타는 눈앞에 있는 새끼늑대, 루펠루스일지 모르는 그 작은 동물을 들어올렸다. 사실 새끼 늑대는 그렇게 작은 크기가 아니었다. 리타의 팔뚝만한 크기의 동물이 작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리타는 수월에 새끼 늑대를 들어올렸다. 새끼 늑대가 반항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도 한몫했고 왠지 모르게 전 보다 힘이 세진 느낌도 들었다.
막사 한쪽에 마련된 목제 테이블 위에 있는 군사지도는 모두 치우고, 그 위에 새끼 늑대를 내려놓은 리타는 빈 종이와 펜을 찾았다. 새끼 늑대가 귀를 쫑긋거리며 리타가 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종이 몇 장을 늑대 앞에 내려놓고, 리타는 거침없이 펜을 놀렸다.
“각하. 제 말을 알아 듣겠습니까?”
새끼 늑대의 작은 머리통이 위아래로 작게 까딱였다. 긍정의 답인 것 같기는 했으나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제 질문에 ‘예’면 고개를 끄덕이고, ‘아니오.’면 도리질하세요. 그리고 여기 있는 종이 중 맞는 답에 발을 올리면 됩니다.”
두 개의 종이에 ‘예’, ‘아니오’를 적은 리타가 새끼 늑대의 금안을 보며 물었다. 혹시 모를 우연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총사령관 각하, 루펠루스 대공이 맞습니까?”
계속해서 반복된 질문에도 새끼 늑대는 일관적인 답을 표했다.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예’라는 종이에 두툼한 발을 척하니 올린 것이다. 리타는 잠시 침묵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새끼 늑대로 변한 루펠루스부터, 머릿속을 울리는 신수의 목소리까지.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저거 마수라니까! 콴리의 냄새가 진해! 진작 마수가 안 된 게 신기할 정도로 냄새가 진동을 한다구.]
“끼잉, 낑, 컹!”
뒷골이 당기는 느낌에 리타는 뒷목을 주물렀다. 뭐 하나 제대로 설명 된 것이 하나도 없다. 리타는 머릿속에서 울리는 신수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했다.
“일단은…. 혹시 마수입니까?”
“켕!”
새끼 늑대, 루펠루스 대공이 날카롭게 짖고는 ‘아니오’라고 쓰여 있는 종이에 척하니 발을 올렸다. 고개도 열심히 도리질 하는 것이 완강히 거부하는 모양새였다.
[야, 거짓말 하면 안 되지. 그 꼴을 하고 마수가 아니라고 하면 누가 믿어?]
이제는 옆에서 누군가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머리가 찌르르 울렸다. 리타는 지끈 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중얼거렸다. 무시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울림이 되었다.
“좀 조용히 해. 머리 울려.”
“끼잉?”
루펠루스가 길게 소리를 늘이며 울었다. 고개를 갸웃 거리는 것이 제법 귀여워서 두통이 조금이나마 가셨다.
[지금 나한테 그런 거야? 야! 왜 저 마수한테는 상냥하고, 나는 막대해?]
다시금 찌르르 머리가 울렸다. 그야 당연히.
“내가 저주 받았다는 증거였으니까.”
[와, 취급 봐라.]
루펠루스에게 건네는 조심스러운 어투와 달리, 제법 거친 말이 리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머릿속에서 기가 찬 듯 한 소리가 들렸다. 루펠루스의 금안이 리타를 응시했다. 새끼 늑대가 몸을 일으켜 리타에게로 다가가 팔에 머리를 비볐다.
보드라운 감각을 느끼기도 전에 새끼 늑대가 허공에 펄쩍 뛰며 뒤로 물러섰다. 리타의 오른쪽 손등에서 느닷없이 뱀이 머리를 들어 올렸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검은 뱀이 리타의 손등을 타고 빠져나와 목제 탁자 위를 점령했다.
[내가 왜 저주 받았다는 증거야? 이십 사년동안 들었지만 이해가 안 가거든?]
머리가 징징 울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상대방을 마주하고 보는 것 같은 진동이었다. 어둠 속에서 보인 커다란 몸체가 아닌, 테이블의 삼분의 일 정도만을 채운 작은 크기의 검은 뱀이 머리를 들어 올려 리타를 보았다.
페토의 뒤에서는 루펠루스가 몸을 낮추고는 그르렁 거리는 울음소리를 냈다. 당장이라도 달려 들 것 같은 모습에 리타는 급하게 말했다.
“루펠루스. 제 신수에요. 딱 봐도 알겠죠? 괜찮아요.”
리타의 말에 루펠루스가 낮췄던 몸을 세우더니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페토의 옆으로 다가왔다. 이 제국에서 검은 뱀은 오직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신수였다.
킁킁 거리며 페토의 냄새를 맡는 루펠루스를 보며 리타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페토의 안위를 걱정한 것이 아니라, 루펠루스의 안위를 걱정해서였다.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페토는 저 상태로도 충분히 루펠루스를 위협 할 수 있었다. 다행이 루펠루스와 페토는 별다른 기류를 보이지 않았다.
리타는 루펠루스에게 잠시 신경을 끈 뒤, 뱀의 푸른 눈을 응시했다. 저와 똑같은 푸른 눈이다. 채도도 빛깔도 완벽히 일치했다. 그 푸른 눈에는 서운함이 한가득 이었다.
[내가 널 살리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저 마수 새끼 보다 못하다는 거야?]
검은 뱀의 머리가 추욱 늘어트려졌다. 마지막에 가서는 이내 목소리가 축 늘어졌다. 그 모습이 퍽 가여워 보여, 리타는 한숨을 푹 쉬고는 입을 열었다.
“무슨 노력을 했는지 모르지만 페토. 이십 년이야.”
페토가 고개를 살짝 치켜들었다. 리타는 페토의 푸른 눈을 보며 연이어 말했다.
“이십 년동안 너와 함께 태어났다는 이유로, 머리가 검다는 이유로 저주받았다는 소리를 지겹게 들었어. 스물다섯이 넘기 전에 죽는다는 소리도. 물론 네 덕분에 루…”
루펠루스가 살았지만. 리타는 턱 밑까지 차오르는 말을 삼켜 넣었다. 페토의 뒤에서 루펠루스가 저를 빤히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루펠루스는 자신이 시간을 돌린 것을 알까? 아직 말할 수 없었다. 말해야 할지, 숨겨야 할지도 몰라서 리타는 다른 말을 꺼냈다.
“그런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어. 단번에 좋은 소리가 나올 리 없잖아.”
리타는 손을 뻗어 뱀의 머리 부근을 엄지로 문질렀다. 이건 불가항력이었다. 검은 신수와 함께 한 순간부터 리타의 생은 스물다섯, 짧은 생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것도 최대로 잡아 스물다섯이었다.
“하지만 고마워.”
소원을 이루어 줬으니까. 시간을 돌려줬으니까. 루펠루스가 살았으니까. 그러니까 고마워. 이십사 년 동안의 감정을 그것으로 대체 할 수 있었다. 약간의 불쾌함은 남았지만. 지금 당장 페토가 죽으라 해도 죽을 수 있었다. 루펠루스가 살아 있는 걸 확인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의 페토는 밉지만 미워 할 수 없는 존재였다. 페토가 리타의 손가락에 머리를 비볐다.
[안 죽어.]
마치 리타의 마음속을 훤히 들여 본 것 같은 울림이었다.
[넌 안 죽어. 이제야 제대로 계약했어. 제 계약자를 죽이는 신수가 어디 있어? 넌 안 죽어. 죽어서도 안 되고.]
페토의 말에 리타는 설핏 웃었다. 죽음이란 꼬리표로 달라붙던 신수가 죽지 말라하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었다.
“말은 고마워.”
[그리고 너 스물 넷 아니야.]
페토가 리타의 손등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항상, 이십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오른 손등을 타고 올라가 팔을 칭칭 감고, 목을 쭉 빼며 페토는 리타와 눈을 맞췄다. 페토의 얼굴이 바로 지척에 오자, 리타는 검은 공간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제 몸통 만했던 페토의 머리. 그때처럼 페토의 얼굴이 시야에 가득찼다. 그리고 페토는 그때도 같은 말을 했었다.
‘스물다섯 생일이 자나 자격이 생긴 이여.’
“페토, 난 스물넷이야.”
[스물다섯이야.]
페토가 단호하게 말했다. 당사자 보다 확신에 찬 말이어서, 순간 리타는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뻔 했다.
“아니, 스물넷이라고.”
[계약의 말을 묻는 건 스물다섯 살이 되는 생일, 네가 태어난 시간이야.]
“그러니까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난 올해 스물 넷이야.”
삼일 뒤가 제 생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리타는 스물 다섯이 아닌, 스물 넷이었다. 그건 확신 할 수 있엇다. 황족은 나이를 속일 수 없다. 황족이 잉태됨과 동시에 신단수는 새로운 신수의 알을 품는다. 황족이 태어나는 날, 신수는 알을 깨고 나온다.
리타 역시 그랬다. 비록 어머니가 저를 임신 한 뒤 도망쳐, 신수와 일년 늦게 만나기는 했지만 그 사실이 변할리는 없었다. 게다가 페토의 말이 맞아 스물 다섯이라고 해도, 리타는 그것을 납득 할 수 없었다.
검은 신수와 함께 태어난 왕족은 스물 다섯 생일을 맞이하기 전에 광증으로 미쳐 죽는다. 전대 검은 신수의 주인이었던 황자는 스물 다섯 생일 전날 죽었다. 그 스물 다섯 해가 여지껏 검은 신수와 운명을 함께한 황족들 중 제일 길게 살아온 것이다.
리타는 다시 한 번 제 나이를 주장하려다, 제 코 앞으로 다가온 루펠루스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일단 나이에 관한 것 보다는 루펠루스에 관한 것이 더 급했다.
“이건 나중에 다시 얘기 해. 지금 각하가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줄 수 있어? 계속 마수라고만 얘기 했잖아. 하지만 각하는 사람이야.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사람의 모습이었어. 갑자기 왜 늑대가 된거야?”
리타의 물음에 페토는 턱을 치켜들었다. 뱀의 머리가 천장을 향한 것이 퍽 건방져 보여, 리타는 실소와 같은 웃음을 내뱉었고 루펠루스는 그르렁 거리는 낮은 울음으로 불편한 심사를 표했다.
[마수의 피가 흐르니까!]
이보다 간단할 수 없다는 듯, 페토는 당당히 외쳤다. 리타의 팔을 타고 내려와 루펠루스의 앞에 또아리를 튼 페토는 늑대의 얼굴 앞으로 제 머리를 들이밀었다. 루펠루스는 작은 머리를 슬쩍 뒤로 빼고는 형용할 수 없는 얼굴로 페토를 흘겨봤다. 애초에 리타에게는 늑대의 표정을 읽을 능력이 없었다.
[계속 말했잖아. 콴리의 냄새가 난다고.]
페토의 말에 루펠루스가 다시금 몸을 낮추었다. 리타는 콴리 가문에 흐르는 수호신수에 대한 것을 떠올렸다. 황가가 신수와 계약을 한다면, 콴리 가문은 직접적으로 신수의 피가 흐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이 소문에는 좋지 않은 말이 붙었는데, 콴리 가문의 신수는 신수가 아니라 마수였다는 것이다.
제국 유일 대공가, 콴리 가문. 제국의 변방을 수호하는 변경백이자 군사권한을 가지고 있는 유일무일한 그 가문의 시초가 늑대 마수였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원래는 마수였으나 신수에게 은혜를 입고 그로 인해 마수가 아닌 신수로 돌아섰다는 가문 설화는 제국에서 꽤나 유명한 애기였다. 그 설화 덕분에 대공가는 종종 시기 어린 조롱을 받기도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뒤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황가에 충성을 맹새한 대공가를 적으로 돌리고 싶은 것이 아닌바에는.
그러나 어디까지나 가문에 타고 내려오는 얘기일 뿐이다. 역대 대공들이 늑대로 변했다는 소문은 들은 적도 없었다. 마수처럼 사납거나, 본능에 충실하기는커녕 역대 대공들은 반듯한 이미지로 유명했다.
리타는 한숨과 함께 한 번 더 물을 수 밖에 없었다.
“페토. 좀 알아듣게 설명해 줘.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
리타는 무의식 적으로 루펠루스의 머리로 손을 뻗어 쓰다듬었다. 그르렁 거리는 짖음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었다.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으며 리타는 페토의 말을 기다렸고, 페토는 연이어 말했다.
[말 그대로야. 콴리 가문에 흐르는 마수의 피를 저 인간이 깨운거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수의 피가 짠, 깨어나니 인간의 힘으로는 그걸 감당할 수 없고 몸은 살기 위해서 마수로 변했어. 그러니까 저건 지금 마수인 게 맞아.]
페토가 푸른 눈을 빛내며 리타를 응시했다. 그것이 꼭 칭잔해달라는 아이가 같아서 리타는 남은 손을 뻗어 페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왼손에는 루펠루스, 오른손에는 페토를. 각기 다른 동물의 머리를 문질거리며 리타는 말했다.
“그래서 돌아올 방법은? 지금 각하가 저런 상태면 곤란해.”
당장 내일 있을 마수들의 총공격부터가 문제였다. 총사령관이 보이지 않는 다면 그것부터 문제다. 황태자를 맞이해야 하는 것도 있고.
[돌아올 방법은 본인이 마수의 피에 적응하는 것 밖에 없어. 익숙해지고 다룰 줄 알아야 하지. 시간이 답이야.]
리타는 잠시 눈을 감고, 양손에 느껴지는 다른 두 개의 촉감을 느꼈다. 페토의 말은 전혀 해결책이 아니었다. 시간이 촉박했다.
리타는 천천히 문제들을 되짚기 시작했다. 첫 번 째. 루펠루스를 이대로 군대에 놔둘 수는 없었다. 두 번째, 내일부터 시작 될 마수들의 공격. 세 번째, 그와 비슷한 시간에 도착할 황태자.
생각을 정리한 리타는 눈을 떠, 루펠루스를 내려 봤다.
“각하. 제게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따라주실 수 있겠습니까?”
리타의 푸른 눈에는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루펠루스는 망설임 없이 ‘예’라 적혀있는 종이에 발을 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