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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아트리타스
작가 : 솔성
작품등록일 : 2017.12.7

[회귀/3일회귀/리얼짐승남주/다정남주/이미 사랑에 빠진 남주/약먼치킨/황녀여주/서로의 맘을 지들만 모름/말랑말랑]



“시간을 돌려줘. 삼 일. 딱 삼 일 전으로.”


마수의 총공격이 시작되기 삼일 전으로. 그때로 돌린다면 말도 안 돼는 황태자의 계책도 막을 수 있고 그렇게만 된다면 루펠루스가 죽을 일도 없을 것이다.

신수의 푸른 눈과 리타의 푸른 눈이 마주했다. 이번에는 거절의 말을 꺼내지 않은 신수를 보며, 리타는 간절한 눈으로 신수를 응시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리타는 머리가 울리는 진동에 멈췄던 눈물이 다시금 샘솟는 것을 느꼈다.


[그대의 소원을 들어, 계약을 이행하려 한다. 그대가 날 부를 이름을 알려다오.]

“그러면, 정말 시간을 돌릴 수 있나?”


삼일의 시간을 돌려, 루펠루스를 살릴 수 있나?


[이름을.]


검은 뱀이 머리를 낮추어, 이름 받기를 소원했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리타가 외쳤다.


“페토. 네 이름은 페토. 그러니 내 소원을 들어 줘. 당장.”


[계약이 성립됐다. 스물다섯의 생일이 지나 자격이 생긴 이여, 나 페토는 그대와의 계약을 이행하겠다.]


열망을 담아 지은 이름에 페토의 푸른 눈이 빛났다. 검은 뱀이 큰 입을 쩍 벌리고, 이내 어둠이 리타를 덮쳤다.


 
프롤로그
작성일 : 17-12-07 00:11     조회 : 384     추천 : 0     분량 :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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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각! 퇴각하라!”

 

 

 하늘을 향해 치켜든 검에서 검은 빛이 터져 나왔다. 하늘 높이 향한 검은 신력이 푸른 하늘을 잡아먹을 듯이 퍼져나가고, 이내 하늘에는 검은 얼룩이 지기 시작했다. 그 얼룩을 보지 못한 병사가 없었고, 선명하게 퍼져나가는 아트리타스의 외침을 듣지 못한 이가 없었다.

 

 퇴각을 외치면서 아트리타스, 리타는 적진을 향해 나아갔다. 리타의 인도를 받은 흑마가 겁 없이 마수를 향해 돌진했다. 흑마의 거친 발길질이 마수의 수많은 다리를 짓밟고 리타는 검을 휘둘렀다. 베고, 베고, 또 베어내며 리타는 전진했다. 오직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갑옷들이 맞부딪치며 내는 쇳소리, 마수들의 기괴한 비명, 미처 피하지 못한 병사들의 외침에 머리가 얼얼할 지경이었지만 리타는 멈추지 않았다. 싸늘한 가을 기온에 하얗게 서린 숨은 투구 밖을 벋어 나지 못한 채 잔득 습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라오는 한기는 가을의 것 치고는 매서웠다. 그 한기에 피로를 풀지 못한 몸이 곧장 반응을 보였다. 시야가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리타는 애타게 한 사람을 찾아 헤맸다.

 

 

 ‘제발, 제발, 제발!’

 

 

 짧은 스물넷의 생에 이렇게 간절히 기도해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기도가 길어지기에는 리타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달려드는 마수가 너무 많았다. 리타는 이를 악물었다. 황태자의 계책은 완전히 실패했다. 숨어 있는 마수가 이렇게 많은 것도 파악하지 못했고, 애초에 군을 세 개로 분리하는 것 부터가 문제였다. 황태자의 계략은 변수가 너무도 많았다.

 

 그 때 확실히 반대 할 것을, 군을 나누지 말자고 말해 볼 것을, 선두에 서지 말라고 부탁이라도 해볼 것을. 후회되는 행동이 너무나도 많아 셀 수 없었다. 제발 살아만 있어 준다면, 같이 살아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를 베었는지, 얼마를 달렸는지 알 수 없을 쯤 리타는 그렇게 찾아 헤매던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총사령관 각하!”

 

 

 리타의 외침을 듣지 못했는지 남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오로지 정면만을 바라보며 검을 휘둘렀다. 그의 주변은 가히 시체의 산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수많은 마수의 시체가 주변에 널부러져 있었으나, 그를 향해 달려드는 마수의 수는 줄지 않았다. 리타는 흑마의 배를 걷어찼다. 그와 함께 오른팔을 옥죄는 느낌이 들었다.

 

 칠년의 전쟁 속에서 몇 번 느껴본 감각이었다. 죽음이 가까울 때, 황가의 상징인 신수가 보내는 경고. 오른 팔을 감고 있는 검은 뱀이 이 자리를 도망치라 경고하는 것이다. 주인의 안전을 위해. 그러나 리타는 그 경고를 들을 생각이 없었다. 이 경고로 목숨을 구한 적이 있으나 제 목숨보다 중요한 이가 바로 앞에, 아군은 하나도 없이, 마수의 공격을 받으며 서있다.

 

 리타는 다시 한 번 말의 배를 걷어차며 속력을 높였다. 정말 사정없이 검을 휘두르며, 이내 그와 가까워졌다. 리타는 한 번 더 외쳤다.

 

 

 “루펠루스 대공!”

 

 

 리타의 새 된 외침을 들은 루펠루스가 고개를 돌렸다. 정면만을 향하던 얼굴이 리타를 향했다.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리타는 루펠루스의 상태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군마와 투구는 어디로 간 것인지 그는 맨 얼굴로, 땅위에 두 발로 서 있었다.

 

 짙은 회색이었을 머리칼은 마수의 피로 인해 제 색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얼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의 금안 만큼은 선명해서 리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 덕분에 대공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으나 그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어서, 리타는 환하게 웃었다. 투구에 가려 보이지 않겠지만 리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게 웃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루펠루스가 잠시 리타에게 눈을 돌린 사이 마수가 달려들었다. 루펠루스는 침착하게 뒤로 크게 물러난 뒤 앞으로 튀어나가며 마수의 가슴을 길게 베었다. 표범을 닮았으나 그 크기는 루펠루스의 키를 훌쭉 넘어선 마수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리타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흑마를 몰았다. 루펠루스와 바로 지척에 다가선 순간, 리타는 손을 내밀었다. 미친 듯이 달려가는 흑마의 속도를 줄일 수는 없었다. 잘못하면 낙마에, 재수 없으면 말이 아닌 마수의 발에 깔려 죽을 수도 있다.

 

 루펠루스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그 손을 맞잡았다. 미리 합이라도 맞춘 듯 깔끔한 동작으로 리타의 뒤에 올라탄 대공이 외쳤다.

 

 

 “여기가 어디라고 옵니까! 황녀전하!”

 

 “변명은 다음에 하겠습니다!”

 

 

 리타 역시 지지 않고 외쳤다. 리타는 거칠게 고삐를 틀어쥐고 방향을 틀었다. 루펠루스는 급하게 리타의 허리를 잡으며 검을 들었다. 지금까지 적진을 향해 달렸다면 이제 줄행랑을 칠 차례였다. 도주길 역시 마냥 쉽지는 않았다. 퇴로를 뚫으며 달린 것도 아니어서 리타와 루펠루스는 다시금 마수들과 마주했다.

 

 루펠루스를 향해 달려 온 것과 비슷한 강도로 리타는 검을 휘둘렀다. 쉼 없이 피가 튀고 시야가 붉어지고, 하얗게 점멸하기를 반복했다. 피를 뒤집어 쓴 것이 아니라 목욕한 수준이 되었지만 두 사람은 팔 놀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멈추는 순간 죽을 것이다. 암묵적인 생각에 두 사람은 부지런히 검을 놀렸다.

 

 팔을 옥죄는 느낌이 점점 심해졌다. 리타는 이제는 너덜너덜한 입술을 다시금 깨물었다. 살기위해 발버둥 치는데 죽음이 성큼 다가 온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웠다. 절대로,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마침 마수의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작은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생각이 무색하게 일이 벌어진 것은 찰나였다.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순식간에 시야가 뒤집혔다. 말 위에서 떨어지고, 땅과 몸이 거칠게 맞부딪혔다. 급하게 회전한 시야 때문인지, 머리가 부딪혔기 때문인지 사고회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리타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제가 누워있는 건지, 엎드려 있는 건지도 모를 정신으로 외쳤다.

 

 

 “…각하.”

 

 

 외쳤다는 건 생각뿐이었다. 입안을 벗어 난 소리는 너무나 작아, 자신의 귀에도 간신히 들릴 정도였다. 힘겹게 땅을 짚으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자꾸만 어두워지려는 시야를 억지로 확장해가며 리타는 루펠루스를 찾았다. 그러나 흔들리는 시야 속에 그는 보이지 않았다.

 

 팔을 옥죄는 힘이 강해졌다. 그와 함께 심장이 쿵, 큰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다. 주변 일대에 듬성이 박혀 있는 거대한 가시들이 보였다.

 

 

 “하, 왜 원거리형 마수가…”

 

 

 도움 되지 않는 황태자.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잖아. 제 주변을 듬성듬성 매운 어린아이 크기만 한 가시를 보며 리타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망할.

 

 원거리 마수는 군에서도 민감하게 다루는 마수 중 하나였다. 어린 아이 크기만 한 가시를 있는 대로 내뿜는 마수는 제국군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 항상 주의하는 마수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마수는 연달아 공격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리타에게 있어서는 큰 다행이었다.

 

 이 마수는 또 다른 단점이 있는데 가시의 사정거리가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 다는 점이었다. 그 결과로 제 주변에 있는 마수들은 모두 쓰러져 있었다. 그러나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하, 허탈한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군을 향해 가고 있기에 마수가 줄었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완전한 착각이었다. 원거리 마수의 공격을 벗어나기 위해 마수들의 수가 줄어 들은 것이었다.

 

 자꾸만 땅을 향해 기울어지는 머리를 치켜 올리며 리타는 루펠루스를 찾기 위해 눈을 끔뻑였다. 온몸에 감각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제 팔을 꽉 옥죄는 신수의 느낌만이 선연했다. 리타는 그 감각을 더듬으며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다행이 루펠루스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방금 전 투구가 벗겨진 탓인지 시야가 넓어져 그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루펠루스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걸음으로 치면 다섯 걸음 정도의 거리.

 

 리타는 온 힘을 다해 그를 향해 기어갔다.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끊겼던 감각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며 리타는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간신히 서있기는 했으나 시야가 빙빙 돌았다. 짧고도 긴 거리를 걸어 그의 앞에 선 리타는 털썩 주저앉았다.

 

 

 “아….”

 

 

 절로 다리에 힘이 풀렸기 때문이었다. 리타는 천천히 손을 뻗어 루펠루스의 어깨를 톡, 건드렸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최대였다. 점멸하던 시야가 이제는 뿌옇게 습기가 끼기 시작했다. 투구를 다시 쓴 것도 아닌데 얼굴이 축축해졌다. 솟아오르는 눈물을 흘려보내며 리타는 중얼거렸다.

 

 

 “왜, 왜.”

 

 “컥.”

 

 

 루펠루스의 입에서 붉은 피가 왈칵 뱉어졌다. 리타는 황급히 루펠루스의 머리를 들어 제 무릎위에 올렸다. 각혈한 피가 역류해 질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리타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가슴이 뚫렸는데, 고작 질식사로 죽는다고? 이 무슨 질 나쁜 농담이지.

 

 

 “루펠…루…스, 대공.”

 

 

 숨을 막을 것 같은 눈물을 몇 번이나 삼킨 끝에 간신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루펠루스의 금안이 힘겹게 떠지더니, 이내 리타의 푸른 눈을 마주했다.

 

 콴리 가문에 흐르는 수호 신수의 힘이 아니었다면 루펠루스는 진작 죽었을 것이다. 오른쪽 가슴, 심장을 비껴갔다고 하나 몸을 뚫린 순간부터 사람은 죽어가기 시작한다. 일반 사람이라면 고통에 이미 쇼크사 했을 것이다.

 

 

 “대공, 내가, 내가, 방법을 찾을게요. 이대로 죽으면 안 됩니다.”

 

 “큭. 쿨럭!”

 

 

 리타의 손에서 검은 신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검은 기운이 루펠루스의 몸을 감싸고, 리타는 루펠루스의 얼굴에 드리운 죽음을 빼앗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허무한 짓이 될 리도 없는데도 리타는 멈추지 않았다. 검은 신력은 루펠루스에게 스며들지도, 리타에게 돌아가지도 않은 채 그저 주변을 감돌기만 했다. 그 뜻이 너무나도 명확해서 리타는 루펠루스의 얼굴을 내려 보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루펠루스가 뭐라 말을 하려 입을 열었으나, 연이어 쏟아지는 피에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도 못했다. 루펠루스의 팔이 힘겹게 들리더니, 그의 손이 리타의 뺨으로 향했다. 루펠루스의 찬 손에 제 손을 겹치며 리타는 연이어 말했다.

 

 

 “죽지마세요. 죽지 마. 명령이야. 황녀로서 명령한다고! 아아, 제발. 그대를 살리기 위해 이곳에 온 나를 무시하는 건가? 저주받은 황녀의 명령이라고 듣지 않을 건가? 그댄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제발, 제발.”

 

 

 제발 죽지 마. 리타는 제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했다. 명령을 내리는지, 애원하는지, 매달리는지 조차 몰랐다. 그저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눈에 고이다 못해 흘러 넘친 눈물이 턱을 타고 흘러, 루펠루스의 볼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그런 리타를 보던 루펠루스의 입술이 드디어 움직여, 제대로 된 소리를 내었다.

 

 

 “한…, 만이…, 불, 쿨럭! 보…, 하아. …리타.”

 

 

 리타의 눈이 잠시금 커지며 제 크기를 찾지 못했다. 항상 황녀전하, 부사령관이라 예의를 담아 부르던 그였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단 하나 알아들은 단어가 있었다. 리타. 바로 자신의 이름.

 

 샛노란 금안에 후련한 빛이 감돌았다. 리타는 그 눈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이내 검은 금안이 눈꺼풀 너머로 사라졌다. 덜컹, 내려 앉는 심장소리에 리타는 본능적으로 그를 불렀다.

 

 

 “루펠루스?”

 

 

 다시 떠져야 할 그의 눈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제 볼을 감싸 쥔 온기가 싸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루펠루스.”

 

 

 한 번 더 불러봤지만 루펠루스 눈을 뜨지 않았다. 다시는 그 금안은 떠지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이 리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타는 깨달았다. 왜 그렇게 그를 찾아 전장을 달려왔는지. 칠 년간 전쟁터에서 함께한 상관이어서가 아니라, 친구라서가 아니라, 그는.

 

 루펠루스의 눈이 감기는 순간, 리타의 눈물도 멎었다.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가 죽었다는 것은 자신 역시 살 필요가 없다는 뜻과 같았다. 차라리 자신이 죽었어야 했다. 살날이 일년밖에 남지 않은 자신이.

 

 순간 팔을 옥죄던 느낌이 사라졌다. 오른 팔에 착 감겨 있던 검은 뱀이 스르륵 움직이며 머리를 치켜들었다. 뱀이 몸을 기울여 리타와 눈을 마주했다. 리타는 멍하니 뱀의 푸른 눈을 보며중얼거렸다.

 

 

 “신수는 각성한 순간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며? 내가 가진 것은 이제 일 년 밖에 남지 않은 이 목숨 뿐이야. 이게 내가 가진 전부야. 내 전부를 줄 테니 소원을 하나 들어줘. 빌어먹을, 이십 사년 동안 도움이 안됐으면 뭐라도 해줘야 할 거 아니야!”

 

 

 중얼거림이 점차 커져 마지막은 비명이 되었다. 제 눈과 꼭 닮은 뱀의 푸른 눈을 보며 리타는 악을 썼다. 검은 뱀의 신수와 함께 태어난, 검은 머리의 황족들은 모두 광증에 미쳤고, 스물다섯이 되기 전에 죽었다. 검은 뱀은 제국의 역사상 단 한 번도 각성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리타는 악을 썼다. 억지를 부렸다.

 

 

 “살려줘, 루펠루스를 살려달라고!”

 

 

 살려내, 살려내라고!

 

 생명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들판에서 리타의 외침이 공연히 퍼졌다. 왱왱 울리는 애타는 외침 사이로 머리를 울리는 진동이 끼어들었다.

 

 

 [들어 줄 수 없는 소원이야.]

 

 

 거대한 가시 사이로 휑하니 부는 바람, 피 비린내, 싸늘한 가을의 한기가 모두 사라졌다. 리타는 눈을 부릅뜨며 이 현상을 직시했다.

 

 방금 전 까지 있던 평원은 온데 간데없이, 그저 검기만 한 공간에 저와 루펠루스의 싸늘한 시체만이 자리했다. 하니,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리타의 팔을 감고 있던 뱀이 돌연 바닥을 향했다. 검기만 해서 그곳이 땅인지, 하늘인지 알 수 없었지만 뱀은 어둠속에서 길을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팔을 감쌀 정도의 크기의 뱀이 또아리를 틀수록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또아리의 크기가 리타와 비슷해 지고, 이윽고 리타의 키를 풀쩍 넘어 섰을 때, 뱀이 돌연 머리를 들어올렸다.

 

 거대한 머리에 박힌 푸른 두 눈을 보며 리타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이십 사년 동안 제 옆에 있던 신수라는 것을.

 

 

 [계약자여. 그대의 소원은 들어 줄 수 없다. 그 마수는 이미 죽었고, 죽은 이를 살리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그것은 여신의 권능. 내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하, 기찬 소리를 내며 리타는 눈을 부릅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루펠루스를 살리는 것뿐이야. 그 이외에는…”

 

 

 한껏 목소리를 높이려던 리타는 말을 멈췄다. 루펠루스를 살릴 수 없다면 그가 죽기 직전으로 돌리면 되지 않나? 후회하던 모든 것을 하면, 그러면 루펠루스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눈과 똑같은 뱀의 푸른 눈을 보며, 실낱같은 희망을 잡기 위해 리타는 떨리는 입술을 움직였다.

 

 

 “시간을 돌려줘. 삼 일. 딱 삼 일 전으로.”

 

 

 마수의 총공격이 시작되기 삼일 전으로. 그때로 돌린다면 말도 안 돼는 황태자의 계책도 막을 수 있고 그렇게만 된다면 루펠루스가 죽을 일도 없을 것이다.

 

 신수의 푸른 눈과 리타의 푸른 눈이 마주했다. 이번에는 거절의 말을 꺼내지 않은 신수를 보며, 리타는 간절한 눈으로 신수를 응시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리타는 머리가 울리는 진동에 멈췄던 눈물이 다시금 샘솟는 것을 느꼈다.

 

 

 [그대의 소원을 들어, 계약을 이행하려 한다. 그대가 날 부를 이름을 알려다오.]

 

 “그러면, 정말 시간을 돌릴 수 있나?”

 

 

 삼일의 시간을 돌려, 루펠루스를 살릴 수 있나?

 

 

 [이름을.]

 

 

 검은 뱀이 머리를 낮추어, 이름 받기를 소원했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리타가 외쳤다.

 

 

 “페토. 네 이름은 페토. 그러니 내 소원을 들어 줘. 당장.”

 

 

 [계약이 성립됐다. 스물다섯의 생일이 지나 자격이 생긴 이여, 나 페토는 그대와의 계약을 이행하겠다.]

 

 

 열망을 담아 지은 이름에 페토의 푸른 눈이 빛났다. 검은 뱀이 큰 입을 쩍 벌리고, 이내 어둠이 리타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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