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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백제의 한
작가 : 바위
작품등록일 : 2017.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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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한 가능성 있는 허구, 그 상상의 날개를 펼치다.

 
백제의 한
작성일 : 17-12-06 16:39     조회 : 254     추천 : 0     분량 : 1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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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

  웅진성의 공기는 기묘한 악의와 언짢은 긴장감에 휩싸여 갈팡질팡 날아다녔다. 깨어있는 자들의 머리가 정상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기분 나쁜 밤이었다. 소정방의 서신을 받은 예식과 예군은 군사들 단속하기에 바빴다. 어젯밤 생뚱맞은 전쟁의식으로 위기를 고조시킨 의자였다. 의자의 엄포대로라면 금방이라도 지방군이 들이닥쳐야 했지만 여태 감감무소식이다. 예식은 의자가 웅진성으로 입성하는 날부터 지방군 운운하며 큰 소리를 친 이유를 생각했다. ‘어라하는 처음부터 나를 의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라하는 교묘한 방법으로 나를 가지고 놀았다. 괘씸한 늙은이 같으니. 허나 이제 당신도 끝이다. 모든 일이 나와 우리가문의 뜻대로 잘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예식은 국담을 가벼이 여길 수 없었다. 지금도 국담이 버티고 있기에 함부로 의자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담만 없다면 군사들을 단속하며 이런저런 작전과 모사를 꾸밀 필요도 없었다.

  “형님, 지금 어라하와 국담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눈치를 챈 것이 확실하네. 여태 잠도 자지 않고 번을 서는 놈들을 둘러보고 있네. 뭐라더라? 오늘밤 자정, 깨어있는 자만이 역사의 증인이 될 수 있다나? 그게 무슨 말인지 원.”

  “오늘밤 자정? 역사의 증인? 형님, 우리가 짐작한대로 저들도 오늘 밤 우리가 거사를 할 줄 알고 있군요. ‘역사의 증인’이라는 말은 일종의 암호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작전에 대한 방비책인 것이지요.”

  “그러니 지금이 작전을 변경할 적기일세. 이제 곧 있으면 자정이네. 놈들과 번을 교대할 시간이란 말일세.”

  “알겠습니다. 하지만 국담이라는 놈이 계속 신경 쓰입니다.”

  “그 놈은 걱정 말게. 내가 책임지고 해치우지. 제 놈이 아무리 날고뛴다 해도 혼자서 군관수백 명을 어떻게 당해내겠나. 아무리 군호에서 모은 군사들이 있다지만 우리는 놈들보다 병력이 서너 배나 많아.”

  “형님, 이제 조금만 있으면 자정입니다. 지금부터 변경된 작전을 군관들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신속하고 정확해야 합니다.”

  예식은 군호에서 차출한 군사들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그들은 의자를 통해 모집됐음으로 의자의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처음부터 국담의 예하로 부대를 편성했다. 그 결정에는 의자나 국담도 구지 반대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웅진성 내 기존 군사들은 예식을 따를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식은 자정을 알리는 북소리를 신호로 번을 서는 국담의 군사들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려둔 상태였다. 그리고 공격시간과 작전은 국담도 알고 있으리라 판단했다. 군사들에게 작전명령을 내려둔 이상 국담의 첩자가 가만히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지금 작전을 변경해야 한다.’ 예식은 미리 생각해 둔 작전을 은밀히 지시했다. 국담에게 노출된 예식의 처음 작전은 이런 것이었다.

  - 번을 서는 곳에 우리 군사들을 미리 매복시킬 것. 교대 조는 단도를 준비하고 있다가 자정과 함께 울리는 북소리에 맞춰 국담의 군사들을 해치울 것. 국담의 군사들이 허둥대는 동안 매복한 군사들은 튀어나와 마무리를 할 것. 동시에 모든 군관들은 국담을 붙잡아 두고 의자를 사로잡을 것. 나머지 군사들은 국담의 잔당들을 해치울 것.

  그리고 지금 변경된 작전은 이런 것이다.

  - 자정을 알리는 북을 치지 말 것. 번을 서는 국담의 군사들과 교대를 해주지 말 것. 그들이 웅성거릴 때를 기다려 화살부대는 일제히 화살을 날릴 것. 동시에 날랜 군관수백 명을 투입시켜 국담을 상대하게 할 것. 나머지 군사들은 국담의 군사들을 일망타진하고 의자를 사로잡을 것.

  과연 예식은 신중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적에게 작전을 노출하고 작전을 수행하기 직전에 변경된 작전을 펼친다. 그러면 첩자는 또 다시 의자에게 보고를 할 것이다. 하지만 의자가 변경된 작전을 알았을 때는 이미 작전이 수행된 다음이다. 작전은 예식의 최측근 군관들에 의해 속전속결로 수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식은 이런 자신의 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 기도가 영험했던지 예식은 잠시 후 국담의 옛 친구 백고에 의해 엄청난 사실을 전해 듣게 된다.

 

  자신의 군사들에게 예식의 배신과 음모사실을 모두 설명한 국담은 전쟁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예식의 군사들은 우리 군사들보다 훨씬 많음으로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국담은 전투가 치열해진 틈을 이용해 의자와 함께 성을 탈출할 계획을 세웠다. 절벽바위 아래 강가에는 사공을 미리 대기시켜 두었다. ‘예식이 어라하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찾을 것이나 절벽으로 탈출하려는 우리의 계획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백고, 나와 어라하가 절벽바위 쪽으로 이동을 하면 나머지 군사들을 이끌고 성문으로 달려가게. 성문을 부수든 성벽위로 올라가 뛰어 내리든 무조건 탈출해 임존성으로 집결해야 하네.”

  국담은 백고에게 이후의 지휘권을 주고 반드시 살아서 임존성으로 갈 것을 신신당부했다.

  “좌평어르신을 비롯한 신료 분들은 가만히 계십시오. 저들이 여러분들까지 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곧 모시러 오겠습니다.”

  이렇듯 국담은 예식의 공격을 단순하게 여겼다. 따라서 성문으로 대부분의 군사를 이동시키는 척 하면서 자신은 의자와 함께 배를 타고 탈출을 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국담은 모든 군사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의자만은 반드시 탈출시키려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던 것이다. 국담은 번을 서는 군사들의 교대시간에 맞춰 전투를 치를 생각이었다. 예식의 모반은 의자가 잘 것 같은 시간을 이용해 일어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국담의 생각이 바뀐 건 역시 첩자로부터 예식의 작전을 전해들은 뒤였다.

  “어라하, 저들이 치밀하게 작전을 모색한 것 같습니다. 놈들의 작전대로라면 번을 서는 우리 군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당하고 맙니다. 전면전을 이용해 탈출하려는 계획을 변경해야겠습니다.”

  “어찌 말인가.”

  “놈들이 우리 군사들을 치기 전에 선수를 쳐야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국담의 작전은 이런 것이었다.

  - 번을 서지 않고 있는 군사를 몰래 잠입시켜 매복한 적들을 처리할 것. 그 자리에 우리 군사들을 매복시킬 것. 적들이 번을 서는 우리 군사를 단도로 찌르려 할 때를 기다려 창으로 선제공격을 할 것. 적들의 교대 조를 처리한 뒤 여세를 몰아 예식의 본영으로 쳐 들어갈 것. 그 사이 군관들은 어라하를 호위하고 절벽바위 쪽으로 이동할 것. 어라하가 무사히 배를 타면 모든 군관들은 나머지 군사들과 힘을 합쳐 성문을 열고 임존성으로 탈출할 것.

  국담의 작전 또한 급조된 것이었지만 현재로써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지금으로써는 그 방법밖에 없겠군. 백고는 지금 당장 이 작전을 군관들에게 전달하라.”

  하지만 백고는 군관들에게 명령을 전달하러 가는 척 하다가 예식의 진영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 말이 어김없는 사실인가.”

  예군이 시체처럼 싸늘한 표정으로 백고를 째려보았다. 백고가 예군을 올려다보며 오소소 몸을 떨었다. ‘보면 볼수록 피도 눈물도 없는 야차처럼 생겼구나. 자칫하면 뼈도 못 추스르겠군.’ 백고는 예군의 눈빛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국담의 작전을 빠짐없이 예식에게 고해 바쳤다. 그러니까 지금 국담과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하는 그 백고가 국담을 배신하고 예식의 첩자노릇을 하려는 것이다.

  백고는 백제 대성팔족 중 백씨집안의 자손이다. 선조들은 하나같이 중앙정계를 주름잡았고 백고역시 전도가 양양한 젊은이였다. 그는 중앙귀족의 자손답게 일찌감치 왕실호위대 역할을 겸했던 수도방위대의 군관으로 들어갔다. 수도방위대의 군관이라면 16관제 중 중간의 관등으로서 8품 시덕이나 9품 고덕쯤 된다. 아주 젊은 나이에 이런 등급으로 출발한데다가 집안의 비호가 있으니 머지않아 고위관직을 차지할 것은 빤했다. 그런데 그 즈음 두세 살이나 어린 국담이 수도방위대로 들어왔다. 국담 역시 백고 못지않은 집안출신인데다가 지력과 용력이 뛰어나 단숨에 백고를 제치고 방위대장 미추의 총애를 독차지 했다. 게다가 미추는 백고보다 훨씬 빨리 국담을 승차시켜 상관노릇을 하게했다. 하지만 미추는 국담에게 항상 이런 말을 했다.

  - 이무기를 없애 나라를 구한 영웅에게 너무 약소한 대접을 하는 것 같군. 하지만 태자와 귀족들이 더 이상 용인을 안 하니, 이거야 원.

  국담은 그럴 때마다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곤 했다. 백고는 그런 국담을 상대로 드러나지 않는 질투를 키워가고 있었다. 백고의 질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고는 늘 국담을 추켜세워 주었다. 방위대의 선배에다가 나이도 더 많았지만 친구임을 자처했으며 공적인 자리에서는 깍듯이 상관으로 모셨다.

  국담을 따라 웅진성으로 들어온 백고는 누구보다 빨리 돌아가는 상황을 간파했다. 그러느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정보를 입수하고 다녔다. 소정방의 서신이 도착한 날, 백고는 대담하게도 예식의 집무실로 몰래 숨어들었다. 그러다가 소정방이 예식을 지원하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황이 예식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눈치 챈 것이다.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살아온 백고는 결국 대세를 선택했다. 예군은 첩자를 자처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백고에게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놈이로구나. 너 같은 놈은 찢어 죽여야 마땅하다, 며 긴 칼을 빼 들었다. 하지만 예식의 생각은 달랐다. 비사도리처럼 족쇄만 제대로 채운다면 이용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백고의 정보가 없었다면 의자가 절벽바위 쪽으로 도망쳐 배를 타려고 하는 사실도, 이를 속이기 위해 나머지 군사들이 성문을 향해 내달릴 것이라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작전이 바뀌었기 때문에 단도를 준비할 필요도, 매복을 할 필요도 없어졌지만 전군을 희생시켜 탈출을 시도한다는 위장술은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방령, 저 놈 말이 사실이라면 큰 일 아니오. 또 다시 작전을 변경해야겠네.”

  “일단 어라하를 잡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군사들을 대거 절벽바위 쪽으로 이동시켜야겠습니다. 이 작전은 자정이 되는 순간 실행되어야 합니다. 그동안은 우리 외에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됩니다.”

  몽글몽글 떠있는 검은 구름들 사이로 들어갔다 나왔다 숨바꼭질을 하던 달이 배롱나무 꼭대기에 걸리자 드디어 자정이 되었다. 동시에 예식의 군사 천여 명이 절벽바위 쪽으로 달려갔다. 이러한 사실도 국담에게 여과 없이 전달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알았다 해도 국담이 행동을 개시한 후일 터, 그렇다면 국담의 작전은 허사가 된다.

  *

  “거, 누구냐!”

  김흥원의 병사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목청을 돋우었다. 당연히 여자진의 군사들이었다. 군사들은 매복을 한 자세로 잔뜩 움츠리고 있었으나 특별한 은폐물이 없는 작은 언덕 밑에서 고개를 빠끔 내밀고 바스락거리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매, 매복이다. 적들이다!”

  무언가를 발견한 김흥원의 병사가 또 소리를 질렀다. 그는 자신이 제일먼저 적을 발견했다는 공명심에 마구 들떠 있었다. 그 때 사방에서 여자진의 군사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꽹과리를 치며 오망스럽게 떠들어댔다. 하도 요사스럽고 방정맞은 소리라 신라 군사들의 간담은 짜증을 내며 오그라들었다.

  “화살을 날려라!”

  여자진의 명령에 불화살과 맨 화살이 동시에 쏟아졌다. 여기저기서 신라 군사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신라군의 숫자가 아무리 많다고 하나 한 곳에 몰려있는 이상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몇 백의 군사로 언제까지 3천이라는 대군을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 여자진은 신라군의 혼을 쏙 빼놓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군사들은 열나게 꽹과리를 쳐대며 도망을 쳤다. 여자진의 유인책이었다. 꽹과리 소리와 함께 함성을 지르며 달아남으로써 정무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것이다. 작전은 대 성공이었다. 드디어 정무의 척후병들이 여자진을 발견한 것이다. 척후병들은 득달같이 정무에게 달려가 사실을 보고했다.

  “뭐라고? 여자진이 이 산속에서 놈들을 공격하고 있단 말이냐?”

  다행히 정무는 여자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숨어 있었다. 골짜기가 깊고 여기저기 바위굴이 많아 숨어있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숨어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여자진이 상대도 되지 않는 병력으로 김흥원의 대군을 가지고 논다는 말에 고무된 것이다. 게다가 자신을 만나러온 여자진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무는 척후병에게 자신의 위치를 일러주라고 말한 뒤 여자진을 마중 나갔다.

 

  여자진의 예상대로 김흥원은 꽹과리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조금 이상한 것은 꽹과리 소리였다.

  “근데 저 자식들이 왜 꽹과리를 치면서 지랄을 하는 거야. 도망을 치려면 곱게 도망칠 것이지.”

  김흥원은 꽹과리를 치며 도망치는 적들이 여자진의 군사들이라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도망친 정무의 군사들이라면 숫자가 빤했다. 그 정도 숫자라면 유인책이고 뭐고 그냥 밀어붙이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유인책에 걸려 병사들 몇 백 명쯤 다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병사들의 희생으로 적의 위치를 알게 되면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여 일망타진하면 그만 이라는 계산을 했다.

  여자진은 정무가 있음직한 곳으로 이동하며 끊임없이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우거진 나무숲에 화살이 박혀 그리 많은 사상자를 내지는 못했다. 하기야 여자진은 정무를 만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었음으로 날리는 화살은 적의 추격을 저지시키기 위한 일종의 엄호용에 불과했다. 여자진은 계속해서 산 속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이 때 누군가가 여자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정무가 보낸 척후병이었다.

  “구마노리성의 여자진 장군님 어디계십니까?”

  여자진은 척후병의 안내를 받아 계곡 쪽으로 이동했다.

  “여자진 장군!”

  “정무장군님!”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었다. 두 충신은 의자를 살리기 위해 갖가지 방법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김흥원이라는 그다지 신통치 않은 적장에게 잡혀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장군께서 오시지 않아 이렇게 직접 왔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로군.”

  “저 띨띨한 놈만 아니었어도 벌써 자네와 만나 웅진성으로 들어갔을 텐데.”

  정무는 그간의 사정을 세밀하게 털어 놓았다.

  “정말 얄궂은 운명이군요. 어쩌다가 저런 놈에게 걸려···.”

  “병력 때문이지.”

  “그나저나 한시가 급합니다. 어쩌면 예식이 이미 모반을 일으켰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좋겠나.”

  “놈들이 이 산속으로 들어온 이상 전세는 우리에게 무척 유리합니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겠지. 하지만 놈들을 짧은 시간에 박살내기는 어렵네. 그러다보면 많이 지체될 텐데.”

  “하는데 까지 해보고 기회를 봐서 웅진성으로 달려가야지요.”

  “그렇게 해보세. 제발 그때까지 어라하께서 무사하셔야할 텐데.”

  “장군, 놈들의 횃불이 코앞입니다. 어서 작전을···.”

  여자진의 요구에 의해 정무가 내놓은 작전은 이러했다.

  - 꽹과리를 치는 병사들로 하여금 적을 유인할 것. 병사들을 백 명 단위로 묶어 지형이 가파른 커다란 바위 뒤에 매복시킬 것. 적이 가까이 다가오면 바위를 굴리며 맨 화살을 날릴 것. 갈팡질팡하는 적들을 향해 전군 총공격을 할 것. 신호를 하면 일제히 절벽이 있는 계곡 쪽으로 후퇴하는 척 하다가 백 명 단위로 뿔뿔이 흩어져 적의 후미로 갈 것. 적의 후미에서 우렁찬 함성을 지를 것. 살수들은 화살을 날리며 총공격을 할 것. 다시 신호를 하면 쏜살같이 하산하여 웅진성으로 달려갈 것.

  드디어 정무의 작전이 개시되었다. 잠시 멈추어 있던 꽹과리소리가 다시 살아났다. 꽹과리를 치는 병사들이 신나게 북채를 놀려대자 추격하던 신라군의 횃불들이 목표를 발견했다. 신라군의 횃불이 그을음을 날리며 꽹과리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신라의 군사들은 이제 꽹과리소리가 지겨워 죽을 지경이다. 산 속 이곳저곳에서 잠을 자던 짐승들도 머리를 이곳저곳에 부비며 괴로워했다. 숲속의 제왕 호랑이는 귀가 찢어질 정도로 짤랑거리는 소리에 어쩌지도 못하고 짜증스런 포효만 계속했다.

  “뭐야 이거, 정말 짜증나 죽겠네. 야, 얼른 쫓아가서 다 죽여 버려!”

  김흥원은 눈꺼풀을 촛불처럼 깜박거리며 짜증을 냈다. 이때 정무의 명령이 떨어졌다.

  “바위를 굴려라!”

  백제의 군사들은 온 힘을 쏟아 바위를 밀었다. 그러자 집채만 한 바위들이 기우뚱 하더니 데굴데굴 아래로 굴렀다. 가속도가 붙은 바위는 신라의 군사들을 가차 없이 깔아뭉개기 시작했다. 바위에 치인 어떤 병사는 인형처럼 공중으로 날아올라 어디론가 쑤셔 박혔다.

  “불화살을 날려라!”

  활활 타는 불지옥에 휘발유가 뿌려진 듯했다. 여기저기 화살 꽃이 피어나고 불화살을 맞은 신라 군사들은 싸울 의지를 잃어버렸다.

  “무조건 쳐 박혀 숨어. 빨리! 빨리! 빨리!”

  가죽갑옷에 붙은 불을 정신없이 끄고 있던 신라의 한 병사가 동생 쯤 되 보이는 또 다른 병사에게 거품 끓는 목소리로 방정을 떨었다. 그리고는 자신도 자그마한 바위아래 꿩처럼 고개를 처박고 엉덩이를 하늘로 들어 올렸다. 무방비상태로 노출된 엉덩이에 뜨겁고 따끔한 불화살이 언제 꽂힐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김흥원도 커다란 바위아래 몸을 숨기고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도와줄 사람을 기다릴 정도였다.

  화살세례가 멈추었다. 잔뜩 움츠리며 숨어있던 신라 군사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쓰러져 있던 신라 군사들이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었다. 바위와 화살에 죽거나 다친 군사들은 천여 명에 가까웠다. 김흥원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빠끔 내밀자 또 다시 꽹과리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신라 군사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쳐 박았다. 김흥원의 솜털도 곧추섰다. 하지만 군대의 수장으로서 더 이상 숨어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꽹과리소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저 놈들을 지옥 끝까지라도 쫒아가서 죽여 버려라!”

  이 마당에 김흥원의 명령이 제대로 먹힐 리가 만무했다. 사태가 이 정도라면 마지막 수단을 써야 한다. 김흥원은 칼을 빼들고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한 병사의 목을 쳤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상황에서 군사들이 해야 할 선택은 빤했다. 신라의 군사들은 열흘 굶은 개처럼 비실거리며 꽹과리소리를 따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김흥원은 군관들을 시켜 빨리 뛰지 않는 병사들에게 채찍을 가하도록 했다. 꽹과리소리가 동쪽으로 점점 멀어지다가 환청처럼 들렸다.

  “선두는 추격을 멈추어라!”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김흥원이 추격을 멈추게 했다. 조금 전 당했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이놈들이 또 흉악한 수작을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김흥원은 그제야 나름대로 작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매복을 하고 있다가 기습을 하겠지. 더 이상 당해서는 안 된다.’ 워낙에 많은 병력이었기에 어디서건 그냥 밀어붙이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깊고 험한 산 속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김흥원은 결국 병력을 여럿으로 나누어 포위망을 좁혀가는 작전을 쓰기로 했다.

  “놈들은 분명 꽹과리소리가 나는 곳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다. 부상병을 뺀 나머지 병력을 육백 명 단위로 나누어 수색작업을 벌인다.”

  육백 명도 적지 않은 단위의 부대였다. 김흥원은 부대를 넷으로 나누어 동 남북 방향으로 배치했다. 그리고 일단 꽹과리소리가 나는 동쪽 절벽바위를 향해 육백 명을 전진시켰다. 이들은 일종의 선발대이자 희생양이었다. 자신이 속한 또 한 부대는 선발대의 뒤를 멀찌감치 떨어져서 따라가게 했고, 나머지 두 부대는 북쪽과 남쪽으로 이동해 동쪽으로 전진케 했다. 선발대는 숫자를 부풀려 보이기 위해 횡렬로 드문드문 늘어세워 전진케 했으며 횃불을 환하게 밝히도록 했다.

  “선발대 이외의 군사들은 횃불을 끄고 벙어리처럼 이동하라!”

  김흥원은 백제군이 횃불을 보고 선발대를 공격할 때 나머지 부대원들을 쏟아 부어 한꺼번에 소탕해버리는 작전을 쓰기로 한 것이다. 과연 그럴듯한 작전이었다. 하지만 정무의 작전은 이들을 절벽바위로 몰아 낭떠러지로 떨어뜨리려는 것이었으니 그대로만 된다면 온갖 짐승들의 10년 치 식량은 될 것이다.

  김흥원은 자신의 작전이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했지만 확신이 서지 않아 부관에게 물었다.

  “어떤가?”

  “매우 훌륭한 작전 같습니다. 오늘밤 안으로 놈들을 완전히 소탕하고 날이 새면 본진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되면 장군은 신라의 영웅이 되는 것입니다.”

  부관은 김흥원이 구지 한밤중에 백제군을 정벌하려는 것이 마땅치 않았지만 이번 작전은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그 작전대로라면 일찌감치 전쟁을 끝낼 수도 있으니 하루 밤쯤은 고생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부관의 동의를 얻은 김흥원은 신이 났다.

  “그럼, 당장 작전을 개시하라!”

  김흥원은 선발대를 뒤 따르는 부대의 맨 뒤에 서서 군관들의 호위를 받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병사들도 김흥원의 작전이 마음에 들었는지 민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횃불을 치켜든 선발대에게는 일부러 크게 떠들며 전진하라고 했지만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했다. 생사의 기로에서 오는 긴장감이 그들의 입을 막아버린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전진을 해도 사라져버린 꽹과리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이제 조금만 더 걸으면 문제의 절벽바위이다. 신라의 선발대는 물론 선발대를 뒤 따르는 부대원들과 남과 북에서 포위망을 좁혀가던 부대원들은 눈앞에 절벽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마른 침만 꼴깍꼴깍 삼켰다. 검고 거대한 구름덩어리가 달빛을 삼키자 칠악산에 떠다니는 공기가 모두 죽어버린 것 같았다. 극도의 긴장감에 오금을 저리던 선발대의 한 병사가 다리를 후들거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긴 한숨이 새어 나오며 주저앉는 병사들이 늘어났다.

  “뭐하는 짓들이냐. 빨리 일어서지 못해!”

  군관의 명령에 내려앉은 횃불이 일어서고 또 다른 횃불이 주저앉았다. 김흥원이 멀리서 지켜보니 횃불들이 파도타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건 또 뭔 짓들인가.’ 횃불들의 춤을 보고 있던 김흥원이 이상한 예감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앗!”

  엄청나게 커다란 물체가 자신을 향해 미끄러지듯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산 같은 물체는 하나 둘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산들이 달려오자 모든 군사들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앗, 저, 저건!”

  산 같은 물체에서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리고 횃불이 하나둘씩 켜졌다. 정무와 여자진이었다. 그들은 꽹과리부대원 백여 명으로 하여금 적을 유인하게 한 뒤 잽싸게 김흥원의 후미로 돌아갔다. 꽹과리를 치던 군사들은 본래 궁수부대원들로서 절벽바위 쪽에 매복해 있었다. 산 같은 물체들이 횃불을 켜들고 달려들자 김흥원의 군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절벽바위 쪽으로 달아났다. 백제의 궁병들이 이를 그냥 지켜볼 리 만무했다. 궁병들은 화살에 불을 댕겨 신라군을 향해 쐈다. 앞과 뒤에서 공격을 당하자 신라의 군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대한 산들이 다가오는 뒤쪽으로는 도망칠 수 없었다. 거대한 산 속에서 길게 호각소리가 났다. 그러자 백제의 궁병들이 활을 거두고 순식간에 절벽바위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궁병들이 사라지자 신라의 군사들은 절벽바위 쪽으로 무작정 내달렸다. 하지만 그곳은 천길 낭떠러지였다. 그렇게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은 군사가 수백 명에 달했다.

  “낭떠러지다. 그만 멈추어라!”

  김흥원이 그제서 사태를 파악했다. ‘또 당했구나. 이런 제길!’

  “전열을 정비하라. 놈들과 정면 대결을 벌인다.”

  김흥원이 서둘러 전열을 정비했지만 정무와 여자진은 사라지고 없었다.

  정무와 여자진은 김흥원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제 작전대로 의자가 있는 웅진성을 향해 내달릴 차례다.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 웅진성의 의자가 무사할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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