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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공포물
[완결] 생각시의 살인교사
작가 : 기쁨을아는몸
작품등록일 : 2017.10.30

국내 최초(어쩌면 그 이상으로) 국회를 배경으로 한 호러와 스릴러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미스터리. . . . .

======

#. 1506년, 9월 1일, 조선, 잉화도 양말산(현재의 여의도 국회의사당 터)

- 전날 밤 대전에서 연산군에게 겁탈을 당한 8살 생각시 꽃님이는 이날 밤 자정 박수무당 ‘천명’에게 미혹된 중전에 의해 역모(중종 반정)를 막을 주술의 산제물이 되어 혀를 잘린 뒤 10명의 다른 궁녀들과 함께 양말산 기슭에 생매장 당한다.

##. 2016년 12월 30일 자정,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처리를 앞두고 여야가 극렬하게 대치하고 있던 국회의사당이 돌연 외부와 차단되며 이세계화(異世界化)된다. 그와 때를 같이 하여 나타난 생각시 유령 꽃님이는 500년 전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던(혹은 그랬었다고 믿어지는) 사람들에게 복수를 해 간다.
- 그때 마침 청와대 최고위층 여성으로부터 탄핵을 저지시키라는 사주를 받고서 국회에 잠입해 있던 박수무당 신민철에 의해 ‘24시간 안에 국회의원들을 11명만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를 살해함으로써,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억울하게 죽은 생각시 유령의 원혼을 달래줘야 살아서 탈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 그러나 이후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가혹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각자의 가슴 속에 감춰져 있던 욕망, 야망, 원한, 본능 등이 거리낌 없이 드러나며 사태가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다.
- 하지만 그 모든 사건들의 이면엔 ‘유령인 꽃님이조차 끝내 통제할 수 없었던 진짜 내막’이 존재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생각시의 살인교사 (2)
작성일 : 17-12-06 15:09     조회 : 383     추천 : 0     분량 : 9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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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2016년 12월 31일, 24:14

 

 

 39. 생각시의 살인교사 (2)

 

 

 “아, 안 돼!”

 

 동원은 고함을 지르며 깨어났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자신의 몸부림에 놀라 덩달아 잠에서 깨어나 버린 승희의 얼떨떨해하는 얼굴이었다.

 

 ‘꿈?’

 

 벽시계를 쳐다봤다.

 

 0시 14분.

 

 자정이 벌써 지나있었다. 동원은 곧바로 얼굴이 환해져서 승희의 손바닥에다 손글씨를 썼다.

 

 ‘자정이 지났어! 이제 밖에 나갈 수 있어!’

 

 잠에서 깨어난 뒤로 계속 얼떨떨한 상태였던 승희는 그제야 얼굴이 밝아졌다. 동원은 더 머뭇거릴 것도 없이 승희를 데리고 대표실을 나섰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원래대로라면 안에서 밖으로 탈출하려는 사람들과 밖에서 안으로 구하러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뒤섞여 혼잡해야 할 현관이 너무도 한산했다. 무엇보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전혀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국회 안에는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기만 하고 있는 사람, 가만히 있질 못한 채 어수선하게 돌아다니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사람, 잔뜩 겁을 집어 먹은 채 떨고 있는 사람,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하고 있는 사람, 얼빠진 것처럼 해가지고 혼자 중얼대고 있는 사람, 유서라도 작성하듯 심각한 얼굴로 뭔가를 쓰고 있는 사람 등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들 절망에 빠진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불쑥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동원은 서둘러 승희를 데리고 건물 밖으로 향했다.

 

 그러나 현관을 채 다 나서기도 전에 동원의 안색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난 새벽 국회가 외부와 차단된 직후 처음 밖으로 나왔을 때처럼, 12월 마지막 날의 한강변 날씨답지 않게 그다지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사방이 트여 있는 여의도라 강바람이 유난히 매서워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깥의 공기는 고요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착 가라앉아 있었다.

 국회 앞 전경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는 국회 앞뜰 너머로 빌딩과 가로등 불빛이 가득한 여의도 밤거리가 보여야 했지만, 지난 새벽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밤거리는 둘째 치고 국회에 차단벽이 생기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면 그 앞엔 자연 경찰, 기자, 구경꾼 등이 몰려와 있어야 정상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잊혀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사방이 고요했다.

 

 동원은 설마 설마하며 앞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곧 차단막 같은 것에 의해 가로막히고 말았다. 국회는 변함없이 새카만 크리스털과 같은 벽에 의해 외부와 차단된 채 고립되어 있는 상태였다. 순간 동원의 머릿속엔 방금 전 꿈에서 지혜가 자신이 기세훈을 죽였다고 말하던 장면이 스치고 지나갔다.

 

 ‘전광판!’

 

 동원은 허겁지겁 본회의장으로 가 기세훈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 돌아서자마자 그만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다. 지혜가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의사당 현관 앞에서 동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동원은 당혹감에 지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지혜는 어느 새 동원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동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니가 기세훈을 죽였어?”

 

 그러나 지혜는 동원의 짐작과는 달리 오히려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멈춰 섰다.

 

 “뭐?”

 

 동원은 지혜가 시치미를 떼고 있다고 생각했다.

 

 “니가 기세훈을 죽였으니까 국회가 아직 이런 거잖아!”

 

 지혜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런 뜻이었어? 그런데 내가 왜?”

 

 “뭐? 그건 니가 우리한테 복수하려고 …….”

 

 그러나 당황한 동원은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갔다. 그러자 지혜가 깔깔거리며 말했다.

 

 “너 그걸 정말 믿었던 거야?”

 

 “뭐, 뭐가?”

 

 “민철이 한 얘기 말이야. 의원들을 11명만 남기고 다 죽이면, 뭐 저주가 풀려서 나갈 수 있다는 얘기.”

 

 “그, 그럼 그게 아니야?”

 

 “글쎄,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겠지.”

 

 “그게 무슨 소리야?”

 

 “하지만 확실한 건 민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거야.”

 

 “뭐? 그럼 민철 씨가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거야?”

 

 “잘 생각해봐. 민철은 자기 입으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어.”

 

 지혜의 말에 동원은 민철이 지난 새벽 이곳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 민철이 “…… 의원을 …… 자정까지 …… 11명 …….” 이라고 하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다.

 

  - 그러자 웬 남자가 “그러니까 의원을 11명만 남기고 다 죽이기라도 해야 한다는 거야 뭐야?”라며 민철의 말을 가로챈다.

 

  - 민철이 말이 없어지며 표정이 굳어진다.

 

 

 지혜의 말이 맞았다. 민철은 의원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직접 자기 입으로 얘기한 적이 없었다. 동원은 놀란 눈으로 지혜를 쳐다봤다. 그러자 지혜는 한참 전에 민철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동원에게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실은 승희가 저렇게 되고 난 다음에 통한당 대표실 근처에 있는 화장실에서 민철을 만났어.”

 

 그 당시 승호가 숨어 있는 대표실로 향하던 도중 화장실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그 안으로 살금살금 들어갔던 지혜는 문득 제일 구석에 있던 좌변기 칸에서 누군가 중얼거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었다. 남자인 듯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얼핏 초조함에 잔뜩 찌들어 있는 분위기였다.

 

 “왜 자꾸 나한테만 ……. 이게 아닌가? 그럼 도대체 뭘 바라는 거 ……. 역시 날? 아냐, 아닐 거야. 그럴 거면 애초에 단번에 날 죽였겠지……. 그나저나 자정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사람들이 날 가만 안 둘 텐데 ……. 으으으, 설마 날 사람들한테 맞아죽게 하려고?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건가? 으으으 …….”

 

 그때 지혜가 화장실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러자 안에 있던 남자는 금방이라도 까무러칠 것처럼 기겁하며 야단을 피워댔다.

 

 “으헉! 난 몰라!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는 민철이었다. 게다가 변기 칸 안쪽 벽엔 수십 장의 부적들이 덕지덕지 도배 돼 있었다. 수상한 예감이 든 지혜는 곧바로 민철의 멱살을 잡아채며 캐물었다.

 

 “너 지금 뭐라고 지껄였어? 그리고 이것들은 다 뭐야? 너 뭐 감추는 거 있지? 그치? 어서 말해!”

 

 하지만 민철은 딱 잡아뗐다.

 

 “무, 무슨 소리야? 난 아무것도 몰라! 모른다고! 켁켁 …….”

 

 이에 지혜는 민철의 멱살을 더 억세게 틀어쥐며 윽박질렀다.

 

 “그런데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당장 말해! 안 그럼 죽여 버린다!”

 

 그러면서 품에서 단도를 꺼내 민철의 목에다 겨눴다. 민철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본회의장에서 민철이 지혜를 죽이려고 했을 때 썼던 바로 그 칼이었다.

 

 “아, 알았어. 마, 말할 게. 말할 테니까 일단 이것부터 좀 치워줘.”

 

 지혜는 그제야 민철을 뒤로 확 밀쳐내며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민철은 목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실은 내가 의원 비서로 들어온 건 사흘 전이야 …….”

 

 민철은 국회에 들어오기 1주일 전 청와대 최고위층의 어떤 여성을 그녀를 보좌하는 정순실 비서관의 소개로 청와대에서 은밀히 면담했었다. 민철을 처음 본 그녀는 자신이 찾고 있던 사람이 남자라는 사실에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용하다는 무당이 박수(博數)였다니 의외로군요.”

 

 그녀의 말에 민철은 눈으로만 살짝 웃음을 흘리고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거만해보일 수도 있는 태도였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런 민철이 내심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내가 왜 당신을 찾았는지 알고 있나요?”

 

 민철은 히죽 웃으며 바로 대답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절 찾으실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예전부터 그리 정해져 있었습니다.”

 

 민철의 말에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정 비서관을 쳐다봤다. 그러자 정 비서관이 말했다.

 

 “실은 이 사람이 지난 번 대선 때 대통령님의 당선을 득표율까지 정확히 예측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녀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래요? 그런데 왜 난 모르고 있었죠?”

 

 “그게 선거 막판에는 서로 자기 쪽 형세가 불리하다고 읍소하는 게 기본 전략이기도 했고, 무속인의 예언이 보고할 만한 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해 일부러 함구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아무튼 그 정도로 용한 사람이라면 오늘도 빈손으로 오진 않았겠군요. 그래, 방법이 있을까요?”

 

 민철이 대답했다.

 

 “탄핵안이 처리되려면 재적 의원 2/3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렇죠. 그러니 탄핵을 추진하고 있는 통일한국당 의원들 중에서 3명이 반대표를 던지거나 기권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만들 확실한 방법이 없으니…….”

 

 민철은 씩 웃었다.

 

 “그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요? 그게 뭔가요?”

 

 “통일한국당 의원 11명이 죽는 것입니다.”

 

 “네?”

 

 그녀는 어이가 없었다. 곁에 있던 정 비서관은 민철에게 버럭 역정까지 냈다.

 

 “아니 이 자가? 지금 우리가 그런 말장난이나 하자고 당신을 부른 줄 아시오?”

 

 그러나 민철은 태연했다.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헛된 말을 하겠습니까?”

 

 민철의 당당한 태도에 그녀는 일단 한 번 들어나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 비서관에게 잠자코 있으라 손짓을 한 뒤 민철에게 말했다.

 

 “그래요? 농담을 한 게 아니라면 어디 한 번 끝까지 들어봅시다.”

 

 그러자 민철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현재 의원직을 상실한 18명을 제외하면 재적 의원수는 총 281명입니다. 그리고 탄핵안을 추진하고 있는 통일한국당의 의원 수는 190명이죠.”

 

 “그렇죠.”

 

 “여기서 통한당 의원 11명이 죽게 되면 재적 의원 수가 270명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더불어 통한당 의원 수도 재적 의원 2/3인 180명에 1명 모자란 179명이 되죠.”

 

 그러나 그녀가 듣고자 했던 것은 그런 머릿수 계산 얘기 따위가 아니었다.

 

 “그걸 누가 모릅니까? 설마 지금 나보고 사람을 시켜 그들을 죽이기라도 하란 소린 아니겠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말씀드렸다시피 그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죽게 만들 방법이 있습니다.”

 

 순간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인가요?”

 

 “물론입니다. 실은 지금 국회 터는 그 옛날 조선시대 궁녀들의 무덤 터였습니다. 그런 탓에 그곳엔 음기가 충만하고 한을 품은 원혼들이 수없이 많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이용해서 주술로 그들을 불러내 의원들에게 저주를 건다면, 어렵지 않게 하룻밤 안에 급살을 맞아 죽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녀는 귀가 솔깃했다. 물론 처음에 민철이 의원들을 죽이면 된다고 말했을 땐, 그것이 썩 내키지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 민철의 말대로라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연사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딱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확실성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드는 게 정말 가능한가요? 만에 하나라도 효과가 없으면 …….”

 

 그러자 민철은 히쭉 웃으며 그녀에게 역제안을 했다.

 

 “정 못 믿으시겠다면 그 전에 시험을 해보셔도 좋습니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오늘 밤 안에 증명해보이겠습니다.”

 

 “그래요? 흐음, 좋습니다.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니 한 번 믿어보죠. 단 실패할 경우엔 어떻게 되는지는 말 안 해도 잘 알고 있겠죠?”

 

 “물론입니다. 다만 …….”

 

 “다만?”

 

 “제가 국회 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십시오.”

 

 “아, 그건 걱정 말아요. 내가 정 비서관을 통해 조치해 둘 테니까. 그럼 일 끝나고 다시 봅시다. 사례는 그때 한 번에 몰아서 하지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그로부터 정확히 나흘 후 민철은 정 비서관을 통해 배주호 의원실의 수행비서로 들어갔고, 이어 청와대에서 약속한 대로 어제 밤 국회 지하예배당에서 귀신들을 불러들이는 주술을 행한 것이었다.

 

 민철의 이야기를 다 들은 지혜는 그 내용을 정리하며 곱씹었다.

 

 “그러니까 니 말은 청와대 쪽의 지시로 귀신들을 불러서 의원들 11명을 죽이려고 했는데 갑자기 귀신들이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한 거다?”

 

 “그래.”

 

 “그럼 니가 아까 밖에서 말한 건?”

 

 “응? 뭐가?”

 

 “의원들을 11명만 빼고 다 죽여야 한다며!”

 

 “나, 난 그런 적 없어!”

 

 “뭐? 없다고? 내가 그 앞에서 똑똑히 들었는데?”

 

 “아냐! 잘 생각해봐. 난 ‘11명’이라고까지 밖에 얘기 안했어. 나머지 뒷얘긴 다른 사람이 멋대로 붙인 거라고.”

 

 과연 곰곰이 생각해보니 진짜 그랬다. 그런데 그 순간 지혜의 머릿속으로 기가 막힌 생각이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는 사이 민철은 지혜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애원했다.

 

 “이봐, 지금 얘긴 다른 사람한텐 비밀로 해줄 거지? 사람들이 알면 날 죽이려 들 거야. 제발…….”

 

 그러자 지혜는 뜻밖에도 씩 웃으면서 민철의 부탁에 순순히 응해줬다.

 

 “그야 물론이지. 사람들한테 알려져 봐야 좋을 거 하나도 없잖아?”

 

 민철은 반색했다.

 

 “정말? 고마워! 이 은혜 진짜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게!”

 

 이어 지혜의 손을 덥석 붙잡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지혜는 씽긋 웃어 보이며 화답했다.

 

 “아니, 나야말로 고맙지.”

 

 민철은 얼떨떨했다.

 

 “어? 고맙다니 ……?”

 

 바로 그때 지혜가 들고 있던 칼이 민철의 목덜미를 확 그었다. 민철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지르며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끄허억!”

 

 그러고는 비틀거리며 휘둥그레진 눈을 지혜에게서 떼지 못하다가 이내 좌변기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축 늘어졌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지혜의 입가엔 씨익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좋은 정보 고마워. 그리고 은혜는 이걸로 갚은 걸로 쳐줄게, 훗.”

 

 그러고는 그곳에서 나와 세면대에서 칼과 손에 묻은 피를 씻어냈다. 거울 속의 지혜는 뺨에 피가 튀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는 듯 입을 히죽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동원에게 자신과 민철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지혜의 입도 새어나오는 즐거움을 참지 못하고 히죽거리고 있었다.

 

 반면 지혜의 이야기를 들은 동원은 마치 빈껍데기만 남아버린 것처럼 머릿속이 멍해졌다. 동원의 뇌리엔 지금까지 민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바람에 죽어갔던 사람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 끝엔 동원이 본회의장에서 선동을 하는 바람에 몰살당하게 된 500명의 사람들과, 승희를 살리기 위해선 이 방법 밖에 없다며 동원이 건네준 칼로 자살을 했던 승호가 있었다. 그렇게 한번 떠오른 장면들은 머릿속에서 점점 더 선명하게 거듭나며 동원의 정신을 집요하게 옥죄어갔다. 결국 참다못한 동원은 진저리를 치며 지혜를 향해 울분을 터트렸다.

 

 “너 때문이야!”

 

 그러나 지혜의 반응은 사뭇 시큰둥해 보이기까지 했다.

 

 “뭐가?”

 

 “다 니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 니가 그 사실을 감추지만 않았어도 그 많은 사람들이, 승호 형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진 않았을 거라고!”

 

 지혜를 노려보는 동원의 입술이 분을 삭이지 못하며 씰긋거렸다. 그러나 지혜는 되레 콧방귀를 뀌며 되받아쳤다.

 

 “안 감췄으면? 그럼 안 죽고 여기서 나갈 수 있기라도 했을 것 같아?”

 

 동원은 말문이 막혔다.

 

 “그, 그건 ……. 그렇지만 그렇게 했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 노력이라도 했을 거 아냐?”

 

 “흥, 멍청한 놈. 지금까지 꽃님인가 뭔가 하는 그 꼬맹이 년이 한 짓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걔가 한 짓이라니 ……?”

 

 “잘 생각해 봐. 민철이가 지어낸 얘기에 지금까지 묘하게 장단을 맞춰 왔잖아.”

 

 동원은 순간 마치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해졌다. 지혜의 말대로 과연 꽃님은 민철이 의심을 받거나 궁지에 몰릴 때마다 매번 구세주처럼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켜 주었었다. 지혜는 동원을 거듭 몰아붙였다.

 

 “이제 알겠냐? 그 녀석은 애초부터 우릴 살려 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어. 그냥 싸이코패스처럼 이 상황을 즐겼던 것뿐이라고!”

 

 하지만 동원은 그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냐 ……, 그럴 리가 없어 …….”

 

 그때 동원의 뇌리로 꽃님이 자신에게 ‘무너지는 탑’ 카드를 건넸던 일, 무지개떡을 내밀었던 일, 그리고 임산부의 피로 자신의 얼굴과 가면 쓴 무당의 얼굴과 민철의 얼굴을 연달아 그려서 보여줬던 일들이 잇따라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분명 무슨 의도가 …….”

 

 그러나 지혜는 콧방귀를 뀌며 동원의 말을 일축했다.

 

 “의도는 무슨.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해.”

 

 그러고는 품에서 칼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화장실에서 민철의 목을 그을 때 썼던 바로 그 칼이었다. 동원은 흠칫 놀라며 승희를 등 뒤로 숨겼다.

 

 “무, 무슨 짓이야?”

 

 지혜는 피식 웃으며 동원에게 칼을 겨눴다.

 

 “몰라서 물어?”

 

 다급해진 동원은 허겁지겁 타협을 시도했다.

 

 “조, 좋아. 그럼 내가 순순히 죽어줄 테니까 그 대신 승희는 건들지 마!”

 

 그러나 지혜는 되레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뭐? 깔깔깔! …… 착각하지 마. 어차피 승희가 먼저니까.”

 

 동원은 얼떨떨했다.

 

 “뭐? 왜?”

 

 지혜는 표독스런 얼굴로 히죽거리며 빈정댔다.

 

 “왜긴 왜야? 승희는 니가 죽는 걸 볼 수 없잖아? 그러니까 기왕 죽을 거면 니가 승희가 죽는 걸 먼저 보는 게 낫지. 안 그래? 큭큭큭.”

 

 동원은 기가 질려 할 말을 잃었다.

 

 “으으으 …….”

 

 그때였다. 별안간 지혜의 등 뒤에서 허연 팔이 쭉 뻗어 나오더니 칼을 쥔 쪽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창백하고 가녀린 여자의 팔이었다. 지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 팔을 막 뿌리치려 했다.

 

 “뭐야! 이거 놔! 놓으란 말야!”

 

 그러나 앞 머리칼이 다 헝클어질 정도로 몸부림을 쳐대도 그 팔은 꿈쩍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러 개의 팔들이 등 뒤쪽 사방에서 순식간에 더 뻗어 나오더니 지혜를 와락 끌어안았다. 지혜의 눈동자가 당혹감으로 어지럽게 흔들렸다.

 

 “왜? …… 이제 다 됐단 말이야! 다 됐는데, 왜! …… 이럴 순 없어! 이럴 수는 없다고!”

 

 그러나 하얀 팔들은 곧장 일말의 자비도 없이 발악하는 지혜를 자신들이 뻗어 나온 공간의 틈새 속으로 마구 욱여넣었다.

 

 “아악! 강동원! …….”

 

 눈 깜짝할 사이에 지혜의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그곳은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동원의 등 뒤쪽에 있던 승희가 발버둥을 쳤다.

 

 “읍! 읍!”

 

 어느 새 하얗고 기다란 수많은 팔들이 승희의 몸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뒤에서 휘감고 있었다. 다급해진 동원은 곧바로 승희의 손을 붙들었다.

 

 “승희야!”

 

 승희도 그 손을 맞잡으며 울부짖었다.

 

 “으읍!”

 

 그러나 곧 동원의 등 뒤쪽에서도 꽃님이 나타나 목을 와락 끌어안고 매달렸다. 꽃님과 팔들은 그 상태에서 동원과 승희를 서로 반대방향으로 스르르 끌고 가기 시작했다.

 

 “승희야!”

 

 “으읍!”

 

 질질 끌려가던 동원과 승희는 서로를 향해 팔을 뻗으며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점점 더 빨리 멀어져가기만 할 뿐이었다.

 

 이윽고 둘의 몸이 뒤에서부터 차례로 공간의 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서로를 향해 뻗은 팔과 얼굴을 제외한 몸의 모든 부분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둘은 기를 쓰며 서로를 향해 목을 더 길게 늘이고 팔을 더 힘껏 뻗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둘의 몸은 공간의 틈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빨려 들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 순간 동원은 남은 힘을 모두 쥐어짜내 얼굴을 밖으로 내밀며 소리쳤다.

 

 “승희 …… 승희야! …….”

 

 마침내 동원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사라지면서 동원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동원을 향해 유일하게 뻗어 나와 있던 승희의 창백하고 가녀린 손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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