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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저승에서 왔소이다
작가 : 앤시
작품등록일 : 2017.12.5

저승 최고의 가십지인 '저승일보'의 인간출신 파파라치 기자 이은라.
그리고 염라대왕이 수명에 얽힌 저승사자들의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이승으로 보낸 암행어사 박씨가문의 현도.
거기다 차기 염라대왕으로 낙점당해 언제 저승에 끌려갈지 모르는 비운의 인간 소년 강씨가문의 진성까지.
어찌된 일인지 자꾸 꼬이고 꼬이는 세 사람의 이야기!

 
6. 저승의 10첩반상
작성일 : 17-12-05 20:46     조회 : 252     추천 : 0     분량 : 5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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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저승의 10첩반상

  “아, 뜨끈하니 좋다.”

  문까지 걸어 잠그고 혼자 남은 은라는 햇볕을 쬐는 늙은 고양이처럼 골골대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흐뭇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종일 엉덩이 시려오는 찬 바닥에 돗자리대신 잡지 하나 깔고 앉아 있다가 침대도 아닌 따끈함이 절절 끓는 온돌 바닥을 만나니 은라는 너무 좋았다. 캬, 한국인은 역시 온돌이지. 따끈한 바닥에서 몸을 지져야 피로가 풀린다니까. 저승으로 끌려오며 은라는 말 그대로 산을 건너고 강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고 구름까지 탔다. 영혼이라 웬만한 데는 부딪히든 밟히든 날아가든 별로 다치는 건 아니었지만 아직 인간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걸까. 은라는 내내 피곤하다, 아프다, 허리가 쑤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다가 영혼 상태에서 깁스를 하거나 휠체어를 타야 하는 건 아닐까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아프다고 좀 쉬었다 가면 안되냐고 살짝 물어봤다가 얄짤없이 냉정한 저승사자한테서 자기 평생 아프다고 이렇게 징징대는 영혼은 처음 봤다며 혼나기만 했다. 결국 그 저승사자는 은라의 애원에도 눈하나 깜짝 않고 쌩하니 오랏줄을 끌며 저승행 강행군을 펼쳤다. 꼭 왕복 비행기 티켓에 식사, 숙소 비용까지 다 포함되어선 종일 관광지와 싸구려 쇼핑마켓을 하루 종일 오고가는 3박 4일까지 동남아시아 단체 패키지 관광을 온 것 같았다. 하긴, 그 때 우리 팀(?)을 인계하던 저승사자가 몸집도 있는 게 좀 많이 관광가이드 스럽긴 했지- 라고 생각하면서 은라는 갑자기 또 쑤셔오는 팔다리를 열심히 주물렀다.

  과정이야 어떻든 지금 은라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이승에서도 못 누려본 초호화 궁궐, 거기에서의 하룻밤이라니. 죽어서야 누려보는 사치라는 점이 조금 씁쓸하긴 했지만 할머니 말씀대로 좋은 게 좋은 거다. 고급 펜션, 한옥식 풀빌라에 놀러온 셈 치자 싶으니 마음까지 여유로워져서는 죽을 것이냐, 살 것이냐 하는 고민과 아기 이은라와 그 부모님에 대한 걱정 근심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나 키우느라 평생 고생했던 울 할머니. 살아서도 이런 데 못 가보셨을 건데. 나처럼 죽어서라도 이런 덴 가보셨을까.’

  그러다가 또 은라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라며 은라 널 두곤 못 죽는다고 연신 천년만년 살거라던 할머니의 우스개소리이자 평생의 희망사항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유일한 가족, 유일한 버팀목이자 울타리였던 할머니. 할머니는 죽는 순간까지도 은라 걱정뿐이었다. 할머니 생각이 나자 은라는 또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할머니는 어디 계실까?’

  할머니는 평생을 착하게 사셨으니 지옥에 떨어지진 않았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딘가에서 저승인으로 남아서 은라를 기다리고 있거나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 새 삶을 살고 계실 것 같았다. 혹시 염라대왕님한테 물어보면 알려줄라나? 하지만 세상에 죽어서 오는 영혼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기억할 수 있겠어? 라는 생각에 또 시무룩해졌던 은라는 그렇게 이승과 저승을 오락가락하며 할머니와의 추억을 곱씹었다. 그러면서 할머니의 명복과 함께 부디 할머니가 행복한 제2의 삶을 누리며 다시 태어났길 응원하고 있던 중, 은라는 문득 찝찝함을 느꼈다. 방바닥에서 뒹굴대다가 문득 며칠 째인지 모르지만 죽 입고 있는 ‘옷’이 생각났던 것이다. 저승에서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딱 봐도 비단금침이란 생각이 드는 부드러워 보이는 베개와 이불에 어쨌든 산 구르고 바다 구르며 온갖 비바람을 다 쐰 이 옷을 입은 채로 기어들어가는 건 영 민폐다 싶었다. 이렇게 자각하고 나니 은라는 온몸이 다 찝찝해지기 시작했다.

  “씻고 싶다. 근데 그건 무리겠지?”

  은라는 버스에서 사고가 나면서 죽었던 그 차림 그대로 저승에 왔다. 그래서 은라는 반팔 티셔츠에다 회색 셔츠, 긴 스키니한 청바지 차림에 하늘색 운동화를 쭉 신고 있었다. 간만에 운동화를 벗고 이불까지 깔린 방에 들어가 노곤하게 몸을 녹이고 있으니 이대로 쭉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이불에 들어가 그 따뜻함을 더 만끽하려니 자신의 꼬질꼬질함이 마음에 걸렸다. 씻고 나서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 귤을 까먹고 밀린 예능을 보며 깔깔대는 그 안락하고 소소한 행복. 저승에서 예능이며 귤까지 바랄 순 없지만 그래도 따끈한 이불 속 안락함은 누릴 수 있는데, 우리 집도 아닌데 그냥 철판깔고 이불 속에 쏙 들어가고 싶단 유혹이 컸지만 그 전에 씻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 안에는 씻을 곳이 없던데.’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나. 그럼 누굴 불러야 하는데 그럼 어떻게 부르지? 하고 은라가 어쩌나 하며 앉아있던 그 때. 때마침 밖에서 똑똑 하는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십니까?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아가씨.”

  “네, 가요!”

  식사다! 밥! 은라는 발딱 일어나선 대충 운동화를 꺾어 신고서 헐레벌떡 뛰어가 문을 확 열어 젖혔다. 문 앞에는 갑작스레 열린 문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조선시대 상궁같은 옷차림이지만 보라색 상의에 까만 치마를 입은 여인이 서있었다. 으레 조선시대 드라마에 나오는 상궁들과 달리 현대의 커리어우먼들처럼 머리는 반듯하게 하나로 틀어올린 모습이었다.

  “하하, 안녕하세요!”

  앞에 서있는 분이 너무 놀란 듯해 민망했던 은라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밝은 인사에 여인도 이내 웃어주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이곳의 음식이며 청소 등 전체적인 살림을 담당하고 있는 관리, 정 실장입니다. 간만에 손님이 이런 밝은 분이라 좋네요.”

  실장님이라니!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정장 빼입고서 서류에 사인하고 회의들 주도하고 외제차를 타는 그런 미남 실장님만 보다가 이런 단아하게 한복 입은 미중년의 여자 실장님을 보니 새삼 이승과 저승의 괴리가 팍팍 느껴지는 은라였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은라에요! 그냥...... 잘못 죽어서 온 영혼입니다. 하하.”

  말은 살림담당이라고 했지만 그건 곧 이 곳의 모든 것을 담당하고 있다는 거나 다름없는 소리. 중세시대 시대물에서 나오는 집사같은 역할이지 않을까 싶어 은라는 오늘따라 귀한 분을 여럿 만나는구나 싶었다. 이승에선 흔하디 흔한 대학생에 알바생 신분만 전전했었는데 저승에 오니 신분이 급상승한 느낌. 아무래도 난 이승보단 저승이랑 궁합이 맞나봐, 하면서 은라는 참으로 빈약한 자기소개를 읊었다. 아, 말하고 나니까 한층 더 자신이 초라해보인다고 생각하며.

  “그래요. 저승다운 음식을 원하셨다고 들어서 준비해봤는데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은라의 자기소개를 들은 뒤 정 실장은 스윽 한쪽으로 비켜났다. 거기엔 음식이 정갈하게 담긴 수레가 있었다. 수레는 바닥에 바퀴가 달렸는데 몸체는 옻칠을 한 나무로 만들어진 듯 짙은 검은 갈색빛으로 윤기가 났다. 곳곳에 용이며 연꽃 등 익숙하게 보던 무늬가 새겨져 있어 더 우아해보였다. 거기다 정갈하게 그 위를 알록달록한 조각무늬 천을 엮어 만든 우산 모양의 상보가 덮여 있었는데 그 밑에선 차마 감추지 못하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솔솔 풍겨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만에 맛보는 음식인지 모를 따뜻한 음식냄새에 은라는 어느새 헤실헤실 입가에 기대어린 행복한 미소를 가득 물고 있었다.

  “저승에서는 음식의 맛을 즐기는 이들이 그리 많이 없답니다. 허기를 채우는 데 족해서 그저 먹는 것, 따뜻하게 몸을 데우는 것, 끼니를 때우는 것만으로도 족하는 이들이 많지요.”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보여주는 은라의 모습에 정 실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간만에 이렇게 음식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을 보니 만든 사람으로서 아주 보람이 크네요. 그럼, 어서 드실 수 있게 이만 들어가 볼까요?”

  정 실장이 긴 수레의 손잡이 부분을 잡고서 말했다. 그제야 은라는 “앗!” 하며 옆으로 비켜났고 정 실장은 물흐르듯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수레를 밀고서 안에 들어갔다. 그리곤 탁자 위에 은라가 올려두었던 서류를 화장대 위에 옮겨두고선 상보를 걷고 상 위에 테이블보를 착 깔았다. 그 뒤 수레 위의 음식들을 하나하나 상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은라는 내심 저 많은 걸 언제 다 옮기나 싶었는데 음식뿐만 아니라 상차림에도 노련함이 있는 듯 정 실장은 순식간에 밥과 국, 찌개, 반찬 등을 옮기고 수저 받침까지 꺼내 수저와 젓가락도 가지런히 놓고 잔에 물까지 따라 놓았다. 밥부터 국, 반찬까지 모두 다 뚜껑이 있는 도자기 그릇이었는데 푸른색의 연꽃 그림이 그려져 있어 단아하게 예뻤다. 게다가 그릇을 전부 탁자 위로 옮겨놓으니 차마 숨기지 못하는, 한층 더 후각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가 풀풀 풍겼다. 그래서 은라는 어느새 자리에 앉아 수저와 젓가락을 들려고 정 실장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 솔직한 모습이 정 실장은 흐뭇했던지 옆자리에 앉아서는 밥공기의 뚜껑이며, 국그릇, 밥그릇의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주며 설명을 했다.

  “흑미와 백미를 섞어 만든 잡곡밥이에요. 백미로만 밥을 짓는 것보다 건강에도 좋고 씹는 맛도 더 좋지요. 또 이렇게 하면 백미가 포도빛으로 물이 들어 고와 보이기도 하구요.”

  뽀얀 더운 김이 올라오는 가운데 흑미와 섞어 지은 덕에 예쁜 보랏빛으로 물든 밥 한 공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밥과 국, 김치를 기본으로 찌개와 찜에 10가지 반찬을 놓은 10첩반상이에요. 12첩 반상은 궁중 수라상이라 은라 아가씨가 드실 수 있는 건 이 정도 반상이 최대랍니다.

  국은 맑은 쇠고기 무국이구요. 낙지며 전복 등 갖은 해산물을 넣고 해물찜을 했어요. 두 국물요리가 맑은 편이라 찌개는 칼칼하게 된장찌개로 차려보았구요.

  소고기무국이 있어서 돼지갈비찜을 올렸답니다. 매운 맛도 좋아하실 것 같아서 매운쭈꾸미볶음을 했고요. 고사리나물무침과 오징어젓갈, 깻잎장아찌도 챙겨봤어요. 또 버섯전, 명태전, 배추전, 호박전으로 모듬 전을 해봤어요. 원래 전은 한 번에 3가지 이상을 해서 올리는 것이거든요.

  돼지고기와 파, 오징어 등을 꿰어 구운 산적구이도 있답니다. 청포묵 무침과 잡채, 굴비도 한 마리 구워 올렸지요. 그 외엔 후식으로 얼린 홍시와 입가심용으로 매실차를 준비했답니다.“

  정 실장이 음식 한 가지를 소개할 때마다 딸깍 딸깍 소리를 내며 뚜껑들이 열리고 수레 위에 가지런히 놓여졌다. 차려진 음식들은 이걸 어떻게 혼자 다 먹나 싶을 만큼 가짓수가 많았다. 비루한 자취생 신분이라 가장 많이 줄였던 게 바로 식비였던 은라에게는 너무나 호화스러운 한상이었다. 여유가 있을 땐 근처 음식점에서 나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었지만 쪼들릴 땐 학식 중에서도 가장 싼 백반정식만 먹었었다. 그나마 학식을 사먹을 여유도 안 되고 시간마저 없을 땐 편의점에서 참치마요삼각김밥이나 전주비빔삼각김밥에 생수, 컵라면 하나 정도가 고작이었다. 말하자면 하루 세 끼를 만원에 끝내고 남는 돈으로 커피까지 사먹을 수 있었을 정도의 식단이었던 것. 그렇게 먹고 살던 은라에게 지금 갓 지은 밥과 국이며 찌개에 반찬까지 한아름 담긴 한정식 밥상은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그 정성에 맛에 감동한 은라는 반짝반짝한 눈으로 정 실장을 쳐다보았다.

  “정말 너무 맛있을 거 같아요, 실장님!”

  “어머, 고마워라. 어서 드세요, 은라님.”

  정 실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은라는 수저를 들었다. 따뜻하고, 맛있는 식사. 은라에게는 여기가 저승이라는 것도 그리고 내일 아침이 될 때까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대한 결정을 해야한다는 것도 그에 따른 부담감도 그리고 여기까지 오며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까지 모조리 잊어버리게 할만큼 행복한 식사였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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