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무너지는 탑 - ②
그러다 엘리베이터 곁을 지나칠 때였다. 갑작스런 ‘땡!’ 하는 소리에 동원의 시선이 엉겁결에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닌 지혜였다. 동원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멈칫했다. 그러다 문득 지혜의 손에 피 묻은 칼이 들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반사적으로 승희를 등 뒤로 숨기며 지혜를 쏘아붙였다.
“니, 니가 여긴 왜 왔어?”
지혜는 피식 웃었다.
“몰라서 물어?”
그러나 동원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지혜가 들고 있는 칼 쪽만 계속 힐끔거렸다. 그것을 눈치 챈 지혜는 칼을 들어 보이며 경멸의 눈초리로 비아냥거렸다.
“왜? 내가 이걸로 니들을 찌르기라도 할까봐? 흥, 겁쟁이 새끼. 자.”
그러더니 칼을 동원의 발 앞에다 툭 던졌다.
동원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대리석 바닥에 떨어진 칼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회전해 오다가 동원의 발 앞에서 딱 멈췄다. 동원은 얼떨떨해하며 지혜를 쳐다봤다. 지혜는 풋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이 와중에 쫄은 거야? 어차피 죽을 놈이 …….”
그 말에 동원은 화들짝 놀라며 바닥의 칼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눈초리로 지혜를 경계했다.
“오, 오지마!”
지혜는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다 나왔다.
“나 참, 이거 갈수록 태산이네. 야 이 병신아, 니가 지금 그러고 있을 때야?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뭐, 뭐가?”
지혜는 사람들이 떨어져 죽어가고 있는 로텐더 홀 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걸 보고도 모르겠어? 너흰 이제 여기서 못나가.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고. 그런데 그 칼로 뭘 어쩌겠다는 거야?”
동원은 혼란스러웠다.
“왜? 승호 형이 너 때문에 목숨까지 버렸단 말이야. 그런데 왜 …… 설마, 민철 씨가 거짓말을 했던 거야?”
지혜는 빈정대며 뜸을 들였다.
“글쎄 ……. 승호가 죽은 다음에 기세훈을 죽이니까 이런 일이 일어난 걸 보면 딱히 거짓말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후후.”
동원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왜? 왜 그랬어? 그럼 너도 죽잖아!”
그러나 지혜는 되레 더 큰소리였다.
“야,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너 같으면 니 언니 죽인 놈한테 복수하는데 일일이 자기 목숨 아껴가면서 할래? 어?”
동원은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그런 말도 안 되는 …… 지인 씨를 죽인 건 우리가 아니잖아! 꽃님이잖아!”
그러나 그런 항변은 지혜를 오히려 발끈하게 만들었다.
“그래! 나도 알아! 그치만 사람이 귀신을 어떻게 이겨? 그러니 인간에게라도 복수할밖에!”
“뭐?”
동원은 울컥했다.
“그럼 차라리 처음부터 우릴 다 죽여 버리지 그랬어! 어?”
지혜는 코웃음을 쳤다.
“흥, 멍청한 녀석. 단순히 죽인다고만 해서 그게 복수가 된다고 생각하냐? 진정한 복수란 건 말야, 상대를 죽이기 전에 먼저 절망에 빠트려야 되는 거야. 그래야 의미가 있는 거라고! 알아?”
동원은 그런 지혜의 사고방식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럼 다른 사람들은? 지인 씨가 죽은 거랑 아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까지 그렇게 몰살시킬 필욘 없었잖아?”
그러자 지혜는 오히려 바락 악을 썼다.
“없긴 왜 없어? 어차피 우리 언니가 죽을 때 멀쩡히 살아 있던 놈들은 다 죽었어야 했어!”
“넌 미쳤어!”
“그래 미쳤다! 눈앞에서 언니가 그렇게 억울하게 죽었는데 안 미칠 년 있으면 어디 나와 보라 그래!”
둘은 서로를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무섭게 노려봤다. 씩씩대는 입술이 씰긋거려질 때마다 흡사 성난 승냥이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대듯 “으으으으”하고 분을 삭이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러다 별안간 지혜의 표정이 돌변했다. 그러더니 마치 달콤한 말로 파우스트를 꾀려는 메피스토처럼 묘한 미소를 흘리면서 동원에게 성큼 다가섰다.
“큭큭, 어때? 너도 날 미치도록 죽이고 싶지? 그럼 어디 한번 죽여 봐? 자, 얼른?”
그러면서 뜻대로 해보라는 듯이 양팔을 활짝 펼쳐 보이며 동원을 도발했다. 당황한 동원은 들고 있던 칼을 재차 지혜 쪽으로 겨누며 경계했다.
“오, 오지마! 어차피 너 때문에 조금 있으면 우린 다 죽어! 그런데 왜 마지막까지 서로 죽이게 못 만들어서 안달이야?”
하지만 지혜는 멈춰 서기는커녕 되레 한 발짝 더 다가서며 동원을 몰아세웠다.
“왜냐고? 너같이 정신이 약해 빠진 놈은 날 죽이고 나서도 오히려 지가 더 죄책감에 괴로워할 게 뻔하거든? 그러니 기왕에 죽을 거 좀 더 괴로워하면서 죽게 만들면 더 좋잖아? 안 그래?”
동원은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동원의 눈에 지금의 지혜는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쳐 있었다. 동원은 급기야 겁을 집어먹은 채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으으으으…….”
그러나 지혜는 어느 틈에 벌써 동원이 겨눈 칼 끝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자칫 숨 한번만 잘못 쉬어도 칼에 찔리고 말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혜는 오히려 동원을 더 사납게 윽박질렀다.
“야! 이건 니가 나한테 복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잖아! 그러니까 어서 찔러! 콱 찌르란 말이야!”
동원은 질겁하여 엉겁결에 두 눈이 질끈 감겼다.
“저, 저리가!”
그러나 지혜는 더 바락바락 악을 쓰며 매섭게 몰아쳤다.
“뭘 망설여! 찔러! 찌르라고! 이 씨팔!”
그 순간 동원은 마치 까무러치는 것처럼 몸서리를 치다, 저도 모르게 칼을 쥐고 있던 손이 앞으로 소스라쳐 뻗어나가 버렸다.
“으, 으아아!”
이어 들고 있던 칼이 어딘가에 콱 박히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눈이 번쩍 떠졌다. 칼끝이 지혜의 심장 한 가운데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동원은 흠칫 놀라며 얼른 칼에서 손을 뗐다.
“아, 아냐 ……. 내가 한 게 아냐 …….”
그때 동원의 뇌리로 최면 상태에서 봤던 장면들이 잇따라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하나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내관이 가면 쓴 무당의 가슴을 칼로 찌르고 나서 넋 나간 표정으로 횡설수설하며 “아, 아냐 ……. 내가 한 게 아냐 …….”라고 되뇌는 장면이었고, 이어진 또 다른 하나는 최면에서 깨어나기 직전 가면을 쓴 무당이 칼에 찔린 채 비틀거리고 있는 모습 위로 아주 짧은 순간 지혜가 마찬가지로 가슴에 칼이 박힌 채 피를 토하면서 자신을 향해 히죽거리고 있는 모습이 겹쳐져 보였던 장면이었다.
동원은 떨리는 눈빛으로 지혜의 얼굴을 쳐다봤다. 지혜는 피를 토해내고 있으면서도 입은 히죽거리고 있었다.
“큭큭, 쿨럭 …… 바보 같은 녀석 …… 그 죄책감, 지옥까지 가져가라 …….”
가슴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던 지혜는 그 말을 끝으로 앞으로 풀썩 고꾸라졌다. 동원은 자신의 품 쪽으로 쓰러지는 지혜를 엉겁결에 끌어안다 같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동원의 품안에서 지혜는 한순간 보일 듯 말듯 눈웃음을 지어 보이는가싶더니 이내 온몸을 축 늘어트리며 숨을 거두었다. 동원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게 저주를 퍼부어놓고는 정작 스스로는 그렇게 평온한 얼굴로 죽어버리는 지혜가 원망스럽고 또 원망스러웠다.
그때 등 뒤에 있던 승희가 갑자기 다급하게 신음 소리를 냈다.
“으읍! 으읍!”
언제 나타났는지 궁녀 유령이 승희를 등 뒤에서 결박하듯 부둥켜안고 있었다. 동원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승희에게 달려갔다.
“승희야!”
그러나 간격은 좀처럼 좁혀지지가 않았다. 승희를 안은 유령은 동원의 손에 닿을 듯 말 듯한 거리를 계속 유지하면서 스르르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마침내 막다른 벽에 다다랐을 때 승희와 함께 벽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동원의 눈빛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때 문득 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홀!’
유령에게 끌려간 사람들이 로텐더 홀로 떨어지고 있다는 게 생각난 것이었다.
동원은 곧장 계단 쪽으로 달려갔다. 로텐더 홀로 올라가는 계단은 이미 홀에서 떠내려 온 주검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도 여전히 시체들이 쏟아져 내려오며 쌓여가고 있었다. 하지만 동원은 망설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곧바로 시체들을 밟고 헤치고 밀치면서, 네발로 기다시피 하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승희야! 승희야! …….”
하지만 계속해 쏟아져 내려오는 시체들로 인해 마음처럼 앞으로 나가지지가 않았다. 그러다 급기야는 도중에 한 남자의 주검이 정면으로 덮쳐오는 바람에 그와 뒤엉켜 계단 밑으로 굴러 떨어지기까지 했다.
“으악!”
정신이 아득해지고 몸은 얼얼해졌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걸 돌아볼 여유 따윈 없었다. 동원은 자신을 덮치고 있는 남자의 시체를 밀쳐내고 일어나서 다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동원의 얼굴이며 머리며 옷은 이미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피로 온통 시뻘겋게 물이 들어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동원의 등과 목덜미, 그리고 왼쪽 뺨 쪽에서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직전까지 미친 듯이 허우적대던 동원의 팔과 다리의 움직임도 덩달아 점점 둔해져갔다. 동원은 천천히 눈을 내리깔며 턱밑을 살폈다. 목덜미 쪽에서 웬 어린 아이의 한복 소매가 눈에 띄었다. 동원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설마?’
제발 아니길 바라며 뒤를 돌아보던 동원은 그러나 자신의 목에 매달려 있는 꽃님이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쳐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곧바로 질겁하며 꽃님을 떨쳐내기 위해 미친 듯이 몸부림을 쳐대기 시작했다.
“으악! 저리가!”
그러나 꽃님은 동원의 등에 찰싹 달라붙은 채 절대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 로텐더 홀 위쪽에서 익숙한 여자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으읍!”
승희였다. 날개 잃은 비둘기가 추락하듯 승희가 새하얀 원피스 자락을 나부끼며 거꾸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순간 승희와 동원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아니 동원의 시선이 승희의 눈동자에 닿았다. 승희는 허우적대며 동원이 있다고 생각되는 쪽으로 팔을 뻗었다. 그리고 우연히도 그곳엔 정말 동원이 있었다. 동원도 다급한 마음에 승희를 향해 팔을 뻗으며 소리쳤다.
“승희야!”
그러나 승희의 몸뚱이는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혔다. 동원은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두 눈은 휘둥그레졌고 동공은 파문이 이는 것처럼 활짝 열렸다. 숨 막힐 듯한 절망이 순식간에 말문을 막고, 귀를 닫고, 울음을 집어 삼키고, 눈물을 말려버리고, 사지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마치 멈춰진 시간의 결계에 갇혀 버린 듯 했다.
그러다 정지해있던 눈동자의 초점이 다시 어지럽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말랐었던 눈물도 다시 눈가를 따라 차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렁그렁해진 눈물이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내리던 그 순간, 멈췄던 시간의 결계가 도로 깨졌다. 동원은 마치 정신이 나가버린 사람처럼 승희의 이름을 연달아 불러대며 다시 미친 듯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승희야, 승희야, 승희야, 승희야 …….”
그러나 아무리 팔과 다리를 허우적거려도 계속 미끄러지기만 할 뿐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손 짚는 곳, 발 딛는 곳마다 죄다 시체들이 널브러져서 가로 막았고, 목덜미에 매달려 있던 꽃님도 동원을 계속 뒤쪽으로 잡아 당겼다. 그러는 사이 계단 저 끝에서 피로 물든 하얀 옷의 주검이 동원의 눈에 들어왔다. 승희였다.
“승희야!”
동원의 절규 섞인 외침이 홀 전체에 메아리쳤다. 그 때문이었을까? 승희의 주검이 다른 시체들을 타고 머리부터 거꾸로 단번에 주르륵 동원의 바로 앞까지 미끄러져 내려왔다. 미처 감지 못한 승희의 눈꺼풀 사이로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드러나 보였다. 눈동자 위로 동원의 얼굴이 비쳐났다.
“승희야…….”
동원은 울먹이면서 엉금엉금 승희에게로 기어갔다. 그러나 곧 목에서부터 숨이 턱 막혀버렸다. 꽃님의 팔이 거역할 수 없는 단호한 힘으로 동원의 목을 붙들고 있었다.
‘조, 조금만 더!’
동원은 사력을 다해 팔을 뻗으며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되레 어느 순간부터는 동원의 몸이 뒤로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한참을 끌려가던 동원은 어느 샌가 마치 늪 속에 빠진 것처럼 자신의 몸이 뒤에서부터 공간의 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음을 눈치 챘다. 틈 속으로 빨려 들어간 부분은 동원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승희를 향해 뻗은 오른 팔과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사라져 있었다.
동원은 목을 더 길게 늘이고 팔을 더 힘껏 뻗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동원의 몸은 공간의 틈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이 되었을 때, 동원은 남은 힘을 쥐어짜내 얼굴을 틈 밖으로 내밀며 소리쳤다.
“승희 …… 승희야! …….”
그게 마지막이었다. 동원의 모습은 마침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사라지면서 동원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승희의 눈가를 따라 또르르 흘러내리던 붉은 색의 피 한줄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