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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티그리스 강가에서
작가 : 애플타운
작품등록일 : 2016.5.19

빚을 갚기 위해 마을을 벗어나 시내로 일자리를 얻게 된 마드린느는 저택에서 하인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저택은 완벽하지만 그만큼 쓸쓸했다.

 
13장 그녀를 찾아서 (2)
작성일 : 16-06-11 11:07     조회 : 489     추천 : 0     분량 : 8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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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브, 난 네가 여길 달가워 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아. 17세란 나이는 예민해서 상처받기도 쉬워. 그만큼 네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인데, 그 시기를 이곳에서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널 잘 모르는 종족들이야. 그저 지도자란 자리를 운명이라 여기기엔 울지 않는 산맥은 낯설지 않니? 널 좋아해주고, 네가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키운 아이들에게로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어? 너도 그 아이들을 좋아하잖아. ”

 

 “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요. 한결 나아요. ”

 

 가이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도련님으로써, 원하지 않아도 가문에 대한 이름을 짊어지는 삶에 대해 잘 순응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졌으니까.

 

 “ 언제까지 과거에, 그 아이들과 함께 할거야? 넌 이미 그 아이들을 떠났어. 이곳으로 오기로 한 건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지. 그만큼 어머니는 네게 중요한 존재야. 아마 아버지의 빈자리까지 채워주느라 상상도 못할 만큼 네게 정성을 들였을 거다. 왜냐? 내 자식이니까. 내 핏줄이자, 내 후대를 이어줄 존재니까. 그런 건 생각 안하고 너 편한 것만 생각해? 그럴 순 없어.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해. ”

 

 마드린느가 맞받아쳤다.

 

 “ 엘리브제나도 리브가 편하길 원할 거야. 리브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맞지. 어짜피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가 안 좋아지면 다른 이부터 쳐내게 되어있어. 그게 세상의 이치야. 다들 자기만 생각하며 사는 거, 그게 나쁜 게 아니라는 걸 넌 왜 모르니? ”

 

 가이온도 지지 않았다.

 

 “ 그야 넌 가문이 없으니까 그렇거다. 넌 너만 생각하면 되는 삶을 살아왔으니까. 난 내 이름인 가이온으로 불리기 보다 다른 이들이 티그리스란 성부터 먼저 생각해. 가이온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티그리스 가문의 일원으로 여겨진다.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건 엄연한 사실이지. 그걸 부정한다는 건 내 일부를 부정한다는 것과 같은거다. 부정한다고 해서 다른 선택권이 생기지는 않는 법이야. 리브도 그렇지. 여기서 네 일을, 네 운명을 부정한다면, 다들 들었지 않은가? 투르크족이 점점 쇠퇴해지고 있다는 세태를. 그렇게 그들을 놔둘거냐? 엘리브제나를 믿었던 자들은 보기 좋게 배신당했다. 리브 투르크, 네 자신에게 물어보지 그래. 다시 한번 그들을 실망시킬거냐? ”

 

 “ 실망시킨다니. 어쩜 말을 그렇게 하는 거지? 너야 가문이 주는 이득과 혜택을 잔뜩 누렸으면서 피해자처럼 말하는거야? 다른 사람들은 네 자리에 앉기 위해 신께 기도하고, 다른 삶에는 너처럼 태어나게 해달라고 말해. 넌 어릴 때부터 부족함 없이 그저 가문의 일원으로 사는 게 조금 버거웠을 뿐이었겠지만, 받은 게 있으니 그만큼 해 주는 것도 당연하다 여기는 거겠지. 리브는 달라. 모르겠어? 나와 같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과 같이 살아왔다고! 인간족과 같은 음식, 같은 노래, 같은 정서를 공유해왔어. 엘제나도 동화되어서 인간처럼 땅으로 돌아갔잖아. 리브, 그 때 너의 종족은 어떻게 행동했어? ”

 

 “ 아무도 오지 않았죠. 뭐, 연락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엘프 족은 직감으로 그런 것 쯤은 다 알 수 있는 모양입니다. 저도 그 정도는 느껴지더군요. ”

 

 리브가 ‘ 아까 밥먹었어요 ’ 라는 문장을 말하듯이 일상적으로 말했다.

 아까 그 고뇌하던 소년은 어디로 가 버린 걸까.

 

 이제 애를 쓰며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는 가이온과 마드린느가 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물론, 둘 다 리브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었다.

 다만 이해하기에는 달랐다.

 

 “ 봐,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했지? 최소한의 징표는 보냈어야 예의지. 남보다 못한 사이로 알지도 못하고. 그냥 얘가 찾아왔으니까 얼씨구나 하고서는 지도자 자리가 골치 아프니까 떠맡기려는 거 아니야? 얘 말고 다른 투르크는 정말 없단 말이야? ”

 

 가이온은 다시 하빈 학원에서 교육받은 지식을 꺼내며 우쭐댔다.

 

 “ 엘프족은 원래 얘를 많이 못 낳아. 그래서 번성하기가 어려운 거다. 거기에 제대로 된 지도자가 없는 처지니까 리브에게 하루라도 빨리 자리를 넘겨 주려고 하는 게 맞는 거다. ”

 

 마드린느가 침착하게 말했다.

 

 아이를 달래듯, 가장 좋아하는 과자는 맨 마지막에 먹는 게 제맛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듯.

 

 “ 중요한 건, 리브가 원하지 않는 다는 거야. 원하지 않는 자리에 왕관이 빛날 수 있겠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납득시키지 못한 자가 오래가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 걸. 너도 티그리스니 뭐니 해도 결국 그 운명이란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계약까지 철회해달라며 여기까지 온 거잖아. 너도 네 인생을 찾아가고 있는 거야. ”

 

 그제서야 가이온의 머리속에서 한 줄이 빛이 지나갔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이 큰 충격이 오갔다.

 

 벗어나지 말라, 받아들여라 말하고 있었지만 그 자신도 가문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었다.

 

 숙명에 맞서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란 말인가?

 

 아니, 모든 존재의 본성과 가치는 저항에 있는가?

 

 가이온은 자기가 틀렸음을 인정했다.

 

 “ 그런 셈이네. 네가 나보다 낫다, 마드린느. ”

 

 가이온이 리브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지금은 큰 형으로써 말하는 것이었다.

 

 “ 리브,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네 어머니도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했지 그 자리를 이어받으라고는 하지 않았지. 네가 무슨 선택을 해도 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네 인생이니까. ”

 

 각자의 인생은 각자가 힘쓰며 짐을 짊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그 짊을 덜어내거나 더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도 그 누가 뭐라 할 수 없다.

 

 리브는 고민이 다 해결됐다는 듯이 맑은 자세로 있었다.

 

 “ 그래요. 다들 의견을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러니 이만 잠자리에 들도록 하죠. ”

 

 리브가 줄을 내려 등을 껐고, 마드린느와 가이온도 피곤했던 지라 자리에 누웠다.

 

 리브는 자신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아한다는 것이 기뻤다.

 

 그는 미소와 함께 잠들었다.

 

 ***

 늪지대와도 같은 축축함. 자꾸 뭔가가 달라붙어 놔주지를 않는다. 기분이 나쁠 정도로 찝찝하다. 어깨가 무겁고 다리가 질퍽한 곳에 묶여있는 느낌이다. 가이온은 제 몸이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당황했다. 주위가 검다. 검은 커튼을 내린 것인가? 아니면 그저 빛이 없는 세상에 내가 적응하지 못한 것 뿐인가. 우선은 불을 붙여야겠지만 손에 잡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어 뭘 할 수조차 없었다. 허공에 손을 내민 채 허우적대고 있었다. 걸어보려 했지만 밖에 큰 쇳공이 묶인 죄수처럼 무거워 놀리기가 힘들었다. 뭐라도 잡아서 파악하겠다는 심정으로 이리저리 애를 쓰던 가이온은 화들짝 놀래 억 소리를 냈다.

 

 오른쪽 어깨에 차가운 손이 슬쩍 얹어졌던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뒤에서 자신이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며 조소를 짓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슬슬 성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얼굴이라도 보이는 게 예의 아니던가, 라고 사자후를 뱉으려고 했으나, 그 전에 냉기가 왼쪽 귓가를 스쳐가며 속삭였다.

 

 “ 눈을 떠야지. ”

 

 눈?

 내가 여태껏 눈도 안 뜨고 장님 행세를 했단 말인가?

 

 이상한 소리라 여겼는데, 눈꺼풀에 힘을 주자 서서히 눈이 떠졌다. 빛이 갑작스레 들어와 낯설었다. 눈이 부셔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이 빛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다시 눈을 떴다.

 따스한 모닥불이 앞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불타오르고 있었다. 자신은 안락한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다.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앞으로 흔들, 뒤로 흔들. 발을 구르자 그네처럼 움직이는 재미가 있었다. 바닥에는 파란 제복을 입은 장난감 병사들이 입을 벌린 채 누워 있었다. 흐트러져 있는 모양새로 보아 아이가 가지고 놀다가 정리함에 넣어두지 않고서 내팽개친 것 같았다.

 

 ‘ 나도 저 장난감 병사들 참 좋아했었지. ’

 

 한쪽으로 좀 치울 생각에 흔들 의자에서 일어난 가이온은 의자에서 내려오기가 꽤 버거웠다. 원래라면 아주 가볍고 일상적인 동작이어야 맞는 거였다. 의아함을 가지고서는 고개를 숙였다.

 

 아뿔싸!

 

 긴 다리는 어디가고 난쟁이처럼 짧은 두 다리만 뭉뚱그리 남아 있었다. 놀라 몸을 더듬자 더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팔도 짧아져있었고, 몸도 작아져있었다. 방 구석의 큰 전신 거울을 보고선 재빨리 다가가 몸을 비춰봤다.

 큰 눈방울에 새빨간 볼이 앙증맞은 이 아이는 가이온이 10살 때의 모습이 아니던가! 너무도 놀란 나머지, 울음이 나왔다. 훌쩍거리는 자신을 보며 가이온은 기가 찼다. 원래대로라면, 긴 검으로 이 일의 주동자를 찾아 단 숨에 베어버리고서는 그 주동자의 아들, 아내, 어미까지 죄를 물었을 터인데. 거울 앞에서 놀라다가 울어버리다니. 몸이 줄어들면서 마음까지 어린 아이가 된 모양이었다.

 

 “ 이런 거 완전 싫어. 나 이런 거 진짜 싫어해! ”

 

 저음의 목소리가 나와야 하건만, 쨍쨍거리는 목소리만 나왔다. 자신의 목소리까지 듣자 이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가이온 아벨 티그리스, 10 살로 돌아오다.

 

 돌아왔다고? 그럼 그 전의 나는 누구였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멍하니 거울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노크도 없이 들어온 여자가 가이온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혀를 찼다.

 

 “ 어머머, 우리 꼬마 도련님. 또 우신거에요? 얼굴 좀 보세요. 아주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됐네요. ”

 

 상냥하게 대해주는 이 여자는 누구길래 나를 안아들며 달래주는 걸까.

 

 “ 도련님, 아버지 때문에 그러신거죠?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

 

 그녀의 품 안은 따뜻해 흔들 의자와도 같았다. 가이온처럼 발그레한 뺨에, 하트형 얼굴이 사랑스러웠다. 아몬드 모양의 파란 눈동자에 금발의 조화는 무지개의 일곱가지 색처럼 조화로웠다. 눈썹도 금색이니 염색이나 가발이 아닌 날 때부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금발이라 생각이 되었다.

 

 ‘ 금발은 흔치 않지. 정말로 보기 어려워. ’

 

 가이온은 그 전까지 놀라 울던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서는 자신을 안아드는 여자를 보고 있었다. 여자는 생긋 웃어주며 가이온에게 두런두런 말을 걸어 주었다.

 

 “ 도려님의 형인 마운 티그리스, 누나인 맥 티그리스가 도련님을 예뻐하며 아버지로부터 보호해주려고 하지 않던가요? 3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어쩜 쌍둥이 남매분들이 동생은 그리도 이뻐하시는지, 기특해 죽겠다니까요. ”

 

 아, 나한테 형이 있구나. 누나도 있네.

 게다가 나를 보호까지 해주는구나…

 고마운걸.

 쌍둥이 형과 누나라니.

 뭔가 익숙하다.

 익숙하면서도 그리워.

 그리우면서도 안타까워.

 

 어린 가이온의 두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시 가이온이 훌쩍이기 시작하자 여자는 놀란 듯이 가이온을 쳐다보며 달래기 시작했다.

 

 “ 울지 마세요, 작은 주인님. 간식 먹으러 우리 식당에 내려갈까요? 맛있는 팬케익에 향긋한 허브티까지 없는 게 없답니다. 강아지나 말 모양의 쿠키는 어떠세요? 말만 하시면 다 만들어드릴게요. ”

 

 가이온이 눈을 비비면서 작게 웅얼거렸다.

 

 “ 좋아… ”

 

 여자가 귀엽다는 말을 연발하며 가이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면서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식당으로 내려가자 대리석으로 만든 큰 테이블이 있었다. 테이블은 넓직하면서도 홀을 가로지를정도로 길었는데, 가이온이 보기에는 코끼리의 코보다도 긴 것 같았다. 성인 몇 사람이 팔을 크게 벌린 채로 서 있어도 테이블이 더 클 것 같았다.

 

 여자가 테이블의 가장 정 중앙에 가이온을 앉혔다. 의자는 가이온에 비하면 너무나도 거대하고 뾰족한 장식도 많았다. 차가운 금속으로 만들어 진 것 같았다. 앉자 냉기가 그대로 전해져 일어나고 싶었지만 그래도 간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하니 참고 앉았다.

 

 여자가 은쟁반에 여러 케이크들을 층층히 쌓아 올린 케이크탑을 가져왔다. 레드 벨벳에, 티라미슈에, 딸기 생크림까지! 가이온이 좋아하는 케잌들로만 이뤄져있는 케이크탑이었다. 보자마자 군침이 돌았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 손뼉까지 짝짝 하고 쳤다.

 

 “ 많이 먹어, 가이온. ”

 

 포크를 들고서 가이온은 한 입씩 간식을 음미했다. 도련님으로써 어릴 때부터 음식은 교양있게, 예절을 지켜가며 먹어야 한다고 배운 몸이니 아무리 반갑다 해도 급하게 배우지 못한 사람들처럼 천박하게 먹을 순 없었다. 안 그렇게 하면 또 혼이 날 테니까.

 

 금발의 여자가 옆에 앉아 가이온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바다처럼 파란 두 눈에, 입가에는 조소가 올라가 있었지만 가이온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태도를 알아차리기에는 입 안에 든 케잌은 너무 맛있었고, 또 어렸다. 그는 지금 10살의 어린 꼬마니까.

 

 붉은색 머리를 한 여자가 다른 그릇을 가져왔다. 동물 모양의 다양한 쿠키였다. 버터와 아몬드를 듬뿍 넣은 강아지 쿠키, 초콜릿 칩을 넣은 낙타 모양의 쿠키, 건포도를 넣은 창 모양의 쿠키, 화이트 초콜릿을올려 귀엽게 장식을 더한 토끼 모양의 쿠키.

 “ 다 내가 좋아하는 거야! ”

 

 가이온이 신이 나서 크게 외쳤다. 영락없는 애였다.

 

 쿠키를 가져온 여자도 금발의 여자 옆에 앉았다. 한 쪽 눈을 안대로 가린 채로 다른 여자가 그릇을 가져왔다. 이번에는 초콜릿 분수였다. 콸콸 초콜릿을 뿜어내는 사람 얼굴만한 분수가 놓여졌다. 그릇은 계속됐다. 물레방아가 계속해서 돌아가듯 멈추지 않았다. 가이온의 식욕도 멈출 생각이 없는 지 계속해서 그릇들을 비워나갔다. 그릇이 나오면서 가이온의 옆과 앞쪽에는 많은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 모두가 가이온이 먹는 모습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 많은 케잌들과 땅콩버터를 바른 샌드위치, 쿠키들, 사탕들, 초콜릿 분수 같은 음식들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로지 가이온만 쳐다보았다. 그가 간식이라도 되는 듯이. 가이온이 먹는 모습을 보며 점차 여자들은 생글생글 웃고만 있었다. 그 큰 테이블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여자들이 자리를 채우자, 가이온은 뭔가 이상하다는 기운이라도 느꼈는지 주위를 돌아봤다. 생김새는 다르지만 많은 얼굴들이 자신만을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섬뜩했다.

 

 자신을 달래주며 맨 처음으로 음식을 가져다주던 여자가 가이온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 잘 먹는구나, 가이온. 다 우리가 한 거야. 우리가 부엌에서 배고파하며 만든 것들이지. ”

 

 조심스럽게 가이온이 답했다.

 

 “ 고,고마워. ”

 

 입안에는 먹다 남은 빵이 씹다 만 채로 있어서 웅얼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가이온에게 여자가 미소와 함께 질문을 던졌다.

 

 “ 그래, 그런데 왜 우릴 죽인거지? ”

 

 다른 여자들이 합창했다.

 

 “ 그래, 왜 우릴 죽인거야? ”

 

 탁-

 밝게 빛나던 샹들리에가 단번에 불이 나가더니 가이온의 주위만 빼고서는 전부 어두워져 버렸다. 근데도 여자들의 얼굴은 또렷이 볼 수 있었다. 물에 젖은 채로 축축해 보이는 얼굴과 퉁퉁 불어터진 손등이 눈에 들어왔다. 어루만지던 손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 그가 잊고 싶어했던 기억이 돌아왔다. 맨 처음에 만났던 여자는 벨체 라 돌리아 저택에서 일하던 알피가 아니던가. 그 금발을 어찌 잊겠는가. 활발하고 자상했지만 오갈 데 없는 처지였던 알피. 그 옆에 앉아 있는 여자는 제인이었다. 알피가 오기 전에 저택에서 일하던 제인은 수더분한 사람이었다. 그 옆에는 로라, 젬므, 요니… 다들 저택에서 일하던 하녀들이었다. 아무 말 없이 저택을 위해 희생된 여자들이 가이온의 옆에 앉아 그들을 죽인 이유가 뭐냐며 다그치고 있었다.

 

 “ 왜 그런거야. 왜 말도 없이 그런 거야? ”

 “ 아무 잘못도 없었는데. 그저 일만 묵묵히 했는데. ”

 “ 체스 위에 놓여진 말들도 우리보다는 더 아꼈을거야. 이 테이블을 감싸고 있는 여자들을 봐. 모두 다 젊은 나이에 죽어버렸어. ”

 “ 너네 집안 때문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내가 죽어야 했어. 이건 다 너 때문이야. ”

 “ 가이온, 우리가 강물 밑에서 숨을 죽여가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넌 대체 뭘 했어? ”

 

 시퍼런 얼굴들이 원망으로, 한이 섞인 채 굵은 목소리로 또는 째질 듯한 하이톤의 목소리로 하나같이 가이온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질 않았다.

 

 “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

 

 가까스로 내뱉은 말이라곤 그게 전부였다. 그는 그의 잘못으로 그 여자들이 죽은 게 아니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마드린느를 구한 행동은 명예롭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모든 게 자신의 책임이 아닌 가 싶었다. 내가 다 바꿀 수 있어. 바꿔야만 해. 왜냐면, 나도 티그리스니까. 내가 티그리스니까. 어쩌면 마지막으로 제정신인 티그리스일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아도 겁에 질려 잊기 일수였다. 다시 어른으로 돌아왔다 여겼는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있었다. 아직도 아이인건가? 아니면 어른인데도 겁을 먹은 건가? 여자들이 팔을 뻗어 다가오고 있었다. 테이블 위로 그릇을 던지며 올라오고 있었다.

 

 퀭, 퀭퀭!

 크르르..크르르릉..

 

 짐승의 소리였다. 검은 염소와 돼지, 소, 말과 같은 가축들이 검은 눈을 가지고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성이 난 게 보였다.

 

 이마에서 땀이 계속 흘렀다. 손은 이미 축축한지 오래였다. 쥐고 있던 포크를 호신용 무기삼아 이리저리 휘둘렀다. 어딜 봐도 사방팔방 다 원망하는 눈빛이다. 아, 다가오지마. 부탁이야. 무서웠다. 다들 내 목을 원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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