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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21세기 조선스캔들
작가 : 달빛별
작품등록일 : 2017.12.4

헬조선을 살아가는 21세기 취업준비생 여자와 연산군 시대에 태어난 사림파 가문의 남자가 만나다!

난세시대 출신의 은오와 삼포세대 출신의 지민은 시대를 뛰어넘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그들은 시간이 흘러 함께 지낼수록 점차 서로의 상처를 돌아보고, 스스로의 못난 모습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두 청춘 남녀의 시대를 넘어선 로맨스 판타지.

 
제 9화, 발칙한 조상님
작성일 : 17-12-04 20:23     조회 : 263     추천 : 0     분량 : 6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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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9화, 발칙한 조상님. >

 

 

 “잠깐만요, 거기 보호자분?”

 

 은오를 데리고 병원 밖으로 나가려는 지민의 뒤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들을 부르는지도 모르고 지민은 성큼 성큼 앞서 걸었다.

 

 “저기요! 보호자분!”

 

 간호사가 그들의 앞을 막아서곤 허리에 손을 얹었다. 흡사 어린 아이를 혼내는 자세로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보호자분께선 지금 환자를 데리고 어딜 가시려는 거죠?”

 “예? 저희들이야 당연히 집에….”

 “지금 환자분께선 깊게 다치셔서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해야 한답니다.”

 

 단호한 표정엔 너희는 한 발 자국도 나갈 수 없단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그녀의 낯을 마주하자니 절로 꼬리가 깨갱 내려갔다. 지민이 슬며시 은오의 손목을 놓았다.

 

 “저, 그럼 오늘 퇴원은 혹 안 되는지….”

 “이 분, 적게 잡아도 전치 5주예요. 지금 이렇게 다니는 게 용할 지경이에요. 안 그래요, 환자분?”

 

 차트를 확인하며 그녀가 물음을 던졌다. 지민의 고개가 은오를 향해 돌아갔다.

 

 “김은오씨 많이 아파요?”

 

 슬며시 살핀 은오의 낯빛이 썩 좋아보이진 않았다. 누가 봐도 아파 보였다. 괜히 물었나 싶을 정도였다.

 

 “지금 입원할 자리는 있나요?”

 

 지민은 다시 고개를 돌려 간호사에게 물었다.

 

 “일단 입원부터 할까요? 그래서 몸 상태도 체크하고.”

 

 간호사의 눈치를 살피며 병원 안으로 향하려던 지민을 은오가 도리어 확 잡아당겼다. 지민의 어깨에 한쪽 팔을 두른 그는 곧은 시선으로 간호사를 응시했다.

 

 “난 괜찮소.”

 “괜찮긴 무슨. 입원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상황을 수습하려는 지민의 노력이 무색하게 그는 재차 단호하게 말했다.

 

 “집에 가도 될 것 같소.”

 “아니, 환자님.”

 “저… 제가 잠시 대화 좀 해볼게요.”

 

 그의 옷깃을 당겨 구석으로 간 지민이 은오를 벽으로 몰아붙였다. 금방까지 버벅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진지함이 그녀의 낯에 떠올랐다

 

 “김은오씨 아프면 아프다고 하고 그냥 입원합시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전치 5주라고 하잖아요. 전치 5주면 그… 달리던 말에 떨어지는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거든요?”

 “아프지 않고, 지금은 집에 가서 쉬길 바라오.”

 

 지민이 오래도록 설득했지만 은오는 요지부동이었다. 한참을 실랑이 벌이던 그들의 사이로 간호사가 대뜸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는 손길로 은오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으윽!”

 

 갑작스런 손길에 은오가 신음하며 허리를 움츠렸다.

 

 “것 봐요. 괜찮긴 무슨. 입원하는 걸로 해요. 보호자분은 따라오시고.”

 

 단호히 돌아서는 간호사를 은오는 뒤에서 붙잡았다.

 

 “아니, 괜찮으니 보내주시오.”

 

 결구 은오의 끈질김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든 것은 간호사 쪽이었다.

 

 * * *

 

 지민은 흔히들 말하는 원룸촌에 살고 있었다. 작게 굽이진 골목을 지나 90도에 가까운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그녀의 집이 보였다. 평소라면 30분에 걸쳐 걸어 올라갔을 길이 택시를 타니 금방이었다.

 

 “여기예요. 집이 좀 좁을 거니까 이해해줘요.”

 

 지민은 비밀번호 네 자리수를 누르며 당부했다. 이렇게 단 기간에 만나 제 집으로 들인 사람은 은오가 처음이었다.

 

 문을 여는 순간, 아침에 정리하지 못하고 나온 게 뒤늦게 기억났지만 굳이 은오가 온다 해서 치울 본인이 아님을 알았기에 그러려니 넘겼다.

 

 “여기서 사시오?”

 

 좁은 방으로 들어선 은오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럼요. 그래도 그 가격에 이런 집 얻기 힘들어요.”

 

 지민이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구석으로 밀어 넣어 은오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여기 앉아요. 따뜻한 거, 시원한 것 중에 뭐 마실래요?”

 “날이 추우니 따뜻한 차가 좋겠소.”

 “알겠어요.”

 

 지민이 부엌으로 향해있는 동안, 은오는 근처에 놓인 낯선 물건들을 훑었다.

 

 처음 보는 광경들에 몸을 주춤거리던 그가 손에 밟히는 부드러운 천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지민이 구석에 밀어 넣다 만 옷가지들이었다. 한복과는 사뭇 다른 촉감이었다.

 

 슬그머니 검지와 엄지 사이에 끼워 들어 올리자 여기 오면서 목격했던 차림들과 닮아있는 해괴한 천 조각들이 딸려 나왔다.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는데, 우리 집엔 이거뿐이라서.”

 

 지민이 쟁반 위에 커피 두 잔을 내오다 헉, 하고 기겁을 금치 못했다. 은오의 손에 들린 것이 낯익다 싶었더니 줄줄이 엮인 제 반바지와 속옷이었다.

 

 “그건 손대지 마세요!”

 

 쟁반을 내려놓곤 은오의 손등을 내려친 지민이 제 옷 뭉텅이를 뺏어들었다.

 

 “거 참 선비시면서 남의 물건에 그리 덥석덥석! 예? 예의도 없이?”

 “미안하오. 나도 모르게 그만.”

 “앞으로 조심하세요. 그리고 이거 마시면 돼요.”

 

 지민은 커피 잔 하나를 은오 앞에 두었다.

 

 “이건 무엇이오?”

 “커피라고, 나름대로 달달하고 맛 좋아요. 잠 올 때 마시면 효과가 최고죠.”

 “커…?”

 “커피요. 어쨌거나 이게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제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지민이 은오를 진지하게 응시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그쪽이 넘어온 시대가 연산군 즉위 시절이라는 것과 불가사의한 이 일에 내가 꼈다는 건 알겠네요.”

 “그대는 통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하는 것 같소.”

 “내 말은 당신이 살아가는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지민은 제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내 연산군을 검색했다.

 

 처음 보는 물건의 등장에 은오가 움찔 몸을 떨며 기괴한 거라도 본 것 마냥 경계했지만 지민은 아랑곳 않았다.

 

 「연산군 [燕山君] 두산백과 한국사 > 조선시대

 조선 제10대의 왕(재위 1494∼1506). 많은 신진 사류를 죽이는 무오사화를 일으키고 생모 윤씨의 폐비에 찬성했던 윤필상 등 수십명을 살해하였다. 또한 경연을 없애고... 더보기

 관련정보 - 관련정보갑자사화, 무오사화, 연산군일기, 중종반정」

 

 이 얼마나 편리한가. 조선시대에 떨어졌을 때만 해도 왕 하나 알아내기가 어려워 쩔쩔 맸는데 검색 한 번으로 모든 정보가 주르륵 눈앞에 펼쳐졌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리는 느낌이었다. 지민이 시원한 탄성을 뱉었다.

 

 “네, 여기 있네요.”

 

 지민이 손가락으로 연산군에 대한 정보를 따라가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 김은오씨가 온 저의 시대는, 댁이 살던 시대로부터… 500년, 네, 500년 후라는 거예요.”

 “500…?”

 “여기에 대해선 해줄 말이 많은데 일단 그보다 중요한 게 하나 더 남았으니 그거부터 짚고 가죠.”

 “나 역시 궁금한 게 있소.”

 “아마 공통된 의문일 것 같은데.”

 

 의문의 대상이 ‘지민’이라는 건 동일했다. 그러나 궁금해 하는 포인트가 다를 것이다.

 

 은오는 그의 시대에서 만났던 지민이 현재 그녀와 동일인물인가에 의문을 가질 테고, 지민은 어째서 본인이 그의 시대로 흘러가게 된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아마 은오씨가 궁금해 하는 것의 반 이상은 제가 해결해줄 수 있을 것 같으니 먼저 말할게요.”

 

 지민이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우선 은오 씨가 과거에서 만났던 구지민은 제가 맞아요. 다짜고짜 말을 걸고, 당신에게 주머니를 받아간.”

 

 지민은 제 허리춤에 매여 있던 주머니를 풀어내 은오의 손 위에 얹어주었다.

 

 “그러나 저는 그 시대 사람이 아니에요.”

 “그게 무슨…”

 “엘리베이터에서 제가 없어진 건 기억하죠?”

 “자네의 말 중 반만 알아들을 수 있겠소.”

 “그러니까 그쪽이 서 있다가 절 발견한 곳이요. 제가 거기서 갑자기 없어졌었잖아요.”

 “아.”

 “은오씨가 있었던 거기를 엘리베이터라고 해요. 그러니까 제 말은 제가 없어졌던 순간 저는 은오 씨의 시대에, 그것도 그쪽이 이곳으로 넘어오기 얼마 전의 과거로 흘러갔었어요.”

 “그렇다면 그대가 외지에서 왔다는 것과 유생이라는 것 모두 거짓이었단 소리요? 혈족의 호패로 생활한다는 것 역시?”

 “별 수 있나요. 사실대로 말했으면 그쪽이 저를 믿었겠어요?”

 

 지민의 말대로 그녀가 사실을 고했어도 은오는 믿지 않았을 거다. 직접 보고 들어도 믿기지 않는데 생판 처음 듣는 그때 이야기를 덜컥 믿었을 리가 있겠는가.

 

 지민의 거짓말이 잘못된 건 아니다. 그녀의 말마따나 별 수 없던 상황이었다. 그가 지민이었어도 거짓을 말했을 것이다. 은오가 고개를 저으며 지민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런데 다른 건 넘긴다고 쳐도,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이해가 안가는 게 하나 있어요. 어째서 나마저 당신의 시대로 거슬러 갔냐는 거죠.”

 

 의문을 제기하는 지민이 미간을 좁혔다.

 

 이건 너무할 정도로 복잡했다. 따져보면, 그를 처음 만났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 아닌가.

 

 지민과 은오는 그녀가 그를 탈의실에서 발견하기 훨씬 전인 과거에서 일찍이 만났던 거다. 지민은 뒤죽박죽 흐트러진 시간을 끼워 맞추려 했지만 뭐가 먼저였는지는 감히 말할 수 없었다.

 

 “자네.”

 

 은오가 미처 결론을 낼 겨를도 없이 지민의 손목을 덥석 잡으며 그녀를 불렀다. 사념에 빠져있는 지민이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다가 성큼 다가와 있는 그의 낯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조금만 더 다가섰다간 콧잔등이 부딪칠 만큼 아슬아슬한 거리였다.

 

 워낙 집이 좁아 어쩔 수 없이 가깝게 앉아있어 안 그래도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런데 은오가 작정하고 다가서자 긴장감에 마른 침이 삼켜졌다.

 

 “어어, 왜, 왜요?”

 

 시야에 들어오는 높다란 콧날과 깊이 찢어진 눈매가 서늘했다. 마주친 은오의 눈동자가 아스라이 흔들리고 있었다.

 

 “난 돌아가야 하오.”

 ‘깜짝이야.’

 

 고작 돌아가야 한단 소리를 위해 이렇게까지 분위기를 잡았단 말이야? 지민은 어쩐지 허탈하기까지 했다.

 

 “당연하죠.”

 

 손을 뻗어 그의 가슴팍을 슬며시 밀어낸 지민이 옆으로 시선을 돌리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저도 계속 그쪽과 함께 할 순 없거든요.”

 

 힐끔 살핀 은오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일단 서로 사정도 알고 연결되어 있는 것 같으니 김은오씨가 돌아가기 전까진 이 좁은 집에서 같이 지내야겠죠.”

 

 아주 잠시 이성 친구에게 은오를 부탁할까 고민도 해봤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른 이유라면 모를까 아예 다른 시대에서 온데다, 자그마치 500년 차이다.

 

 시골에서 올라와서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하기에는 뛰어넘은 시간의 부재가 너무 컸다. 은오와 그녀의 친구를 서로 이해시키고 맞춰가게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차라리 서로 조심한다는 전제로 지민과 함께 사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조선시대에서 선비 출신 아니었던가. 그와 아주 오래 안 사이는 아니지만, 은오는 여자보단 서책을 더 좋아할 사람 같았다.

 

 가끔 덥석 덥석 잡아 확 끌어당기거나 금방 전처럼 서로의 얼굴이 가까웠던 상황만 제외하고 생각하면 그는 꽤 믿음을 주는 사내였다.

 

 ‘그렇겠지, 아마…?’

 

 지민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커피 잔을 드는 은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향을 맡던 그가 커피를 입가에 갖다 대고선 입매를 묘하게 틀어 웃었다.

 

 “왜요? 맛있어요?”

 “이런 맛은 난생 처음이오.”

 “그래서 맛없어요?”

 “그렇진 않소. 꽤 마실 만 하오.”

 “다행이네요, 입에 맞아서.”

 

 대충 상황 정리도 끝났겠다, 씻고 싶어진 지민이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 옷장을 뒤져 편하게 입을 옷을 골랐다. 계속 조선시대 옷을 입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넉넉한 사이즈의 후드티를 찾은 그녀가 은오의 품에 옷을 던져 주었다.

 

 “이건 무엇이오?”

 “요즘 사람들이 입는 옷이에요. 제가 사는 시대에 와선 옷 입는 형태가 많이 달라졌거든요.”

 “그렇군.”

 

 수건을 목에 건 지민이 은오를 지나쳐 화장실에 가다 말고 그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그냥 김은오씨부터 씻는 게 낫겠어요.”

 

 지민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요.”

 “왜 그러시오?”

 “먼저 씻으세요. 어떻게 씻는지 알려줄 테니까.”

 

 은오는 선뜻 일어났지만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개만 두리번거렸다. 아, 맞다. 이 남자, 옛날 사람이었지. 한숨을 푹 내쉰 지민이 은오의 팔을 잡아끌었다.

 

 “걱정 마세요. 이 시대에서는 그쪽 살던 시대처럼 강가나 계곡에서 씻지 않아요. 심지어 원할 때 바로 따뜻한 물도 나오죠.”

 “아니, 그게 아니라.”

 “자자, 들어갑시다.”

 

 그의 등을 떠밀었던 지민은 종알종알 입을 놀리며 은오에게 샤워기 사용법부터 샴푸와 린스, 그리고 과거와 달라진 옷 입는 법까지 세세하게 설명했다.

 

 알겠죠? 하며 설명을 다 마친 지민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은오가 고개를 기울인 채 지민을 가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깊이 있는 눈동자 속에 지민이 담겼다.

 

 “혹시 이해 못했어요? 설명해볼래요. 내가 한 말.”

 

 이건 무슨 애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다 알아 들은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지민이 은오의 손에 샤워기를 쥐어주었다.

 

 “아니, 다 알아 들었소. 걱정 마시오.”

 

 그저 임기응변으로 했던 말인 줄 알았더니, 은오는 지민이 시범을 보였던 대로 정확하게 따라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끈 그가 샤워기를 내려놓았다. 지민은 그 모습에 안도했다. 혹 못 알아들어서 날이 샐 때까지 알려줘야 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그럼, 하며 뒤돌아서 나가려던 지민이 제 어깨에 불쑥 올라온 은오의 손에 몸을 돌려 그를 쳐다봤다.

 

 “단지 굳이 이래야 하나 싶은 거요.”

 “안 씻겠다고요?”

 

 그 흙먼지를 뒹굴고도? 하고 덧붙이려던 지민의 머리 위로 은오가 태평하게 말을 이어갔다.

 

 “같이 씻으면 될 것 아니요. 좀 좁긴 하지만.”

 

 뭐? 같이 뭐?

 

 지민이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서책만 읽고, 여자는 거들떠도 안 보는 선비라고 결론지었던 그녀는 거하게 뒤통수라도 맞은 기분이었다. 알고 보면 빨간 서적만 즐겨보던 놈 아냐?

 

 그의 손길을 확 떨쳐낸 지민이 한 걸음 물러섰다.

 

 “미쳤어요?”

 “무슨 문제라도 있소?”

 “이 집에서 쫓겨나기 싫으면 똑바로 행동하세요!”

 “아니, 나는….”

 

 은오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지민은 쿵 소리 나게 문을 닫아버렸다.

 

 “무슨 선비가 저래?”

 

 문고리를 꽉 붙든 지민이 충격에 휩싸인 양 중얼거렸다.

 

 “남녀칠세부동석이니, 정조니… 과거에는 오히려 꽉 막힌 풍습 지향하는 거 아녔나?”

 

 지민은 몰랐다. 이미 오해할 대로 오해한 그녀는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었다.

 

 설마 은오가 지민이 여자라는 것을 여태까지 모를 것이라고.

 

 그래서 지민은 의문을 가졌다. 먼 옛날 조상 뻘 되는 남자와 정녕 동거할 수 있을 것인지.

 

 이제 또 다른 앞날까지 걱정해야 하는 스물여섯의 취업준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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