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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ANTI(안티)
작가 : 고전부
작품등록일 : 2017.10.30

한 독자의 초대장을 받고 일본 오사카로 간 작가 '시호'. 그곳에서 '시호'의 소설 속 장면과 똑같은 살인이 벌어진다.

 
16. 개막
작성일 : 17-12-04 20:21     조회 : 252     추천 : 0     분량 : 7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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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개막

 

 “경위님.”

 

 서정이 단조롭게 말을 뱉었다. 수연이 단번에 뒤를 돌았다. 유정이 먼저 보였고, 그 뒤에 서정이 서 있었다. 수연은 작게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유정의 시선은 곧바로 해림에게 박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입에 거품을 문 채 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해림의 시신에.

 

 “우리 둘만 남았네. 이제.”

 

 도연의 목소리였다. 유정은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행방을 찾았다. 벽면에 도연이 수연의 옆에 나란히 서 있었다. 난 아냐. 유정이 입을 떼려다 굳어버렸다. 도연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은색 수갑이 유정의 눈에 띄었다. 믿을 수 없었다. 도연과 해림은 꽤나 절친한 사이인 줄 알았는데. 정말 도연이 한 짓일까. 하지만 내가 아닌 건 확실하니까, 남은 사람은 도연뿐이다. 유정은 그 말을 몇 번이고 속으로 곱씹었다.

 

 “너 수갑을 채우고 있는 건 무슨 의미야? 해림 씨를 죽인 게 너라는 거야?”

 

 유정이 놀랐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가슴 부근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유정은 자리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전신을 떨었다. 유정은 순간적으로 바닥을 보았다. 일전에 왔을 땐 너저분하게 널려있던 방안이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유정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분명 사색이 되어 있으리라. 유정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무섭고 믿을 수 없다는, 영락없는 어린 소녀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도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표정 또한 읽을 수 없었다. 유정이 고개를 조금 기운 채 도연의 의중을 헤아리려 쏘아볼 때였다. 도연대신 수연이 유정에게 다가왔다. 도연에게 채운 것과 똑같은 은색 수갑을 든 채였다.

 

 “아니요. 아직 해림 씨를 죽인 범인은 검거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용의자는 극명하게 좁혀지죠. 어젯밤부터 하숙집에 있었던 도연 씨와 유정 씨. 두 사람으로요.”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유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수연이 유정의 손목을 잡으며 단숨에 수갑을 채웠다. 차가운 금속이 피부에 닿았다. 유정이 저항할 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유정의 손목엔 그 짧은 사이에 수연의 악력으로 인해 붉은 손자국이 남았다. 유정은 얼빠진 얼굴로 수연을 바라보았다.

 

 “아직 누가 범인인지 확실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무력으로 수갑을 채워도 되는 건가요?”

 

 유정이 싸늘하게 물었다. 수연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톤으로 말했다. 정중하고도 단호한 어투. 역시나, 절대 거스르지 못할 것 같았다.

 

 “지금부터 두 분의 취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유정 씨가 무죄라는 게 밝혀지면 바로 수갑을 풀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이건, 도연 씨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불쾌할 정도의 대우. 유정은 속에서 억울함이 솟구쳤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유정은 열심히 취조에 응해야 했다. 무조건적으로.

 

 “해림 씨의 사망 추정 시각은 오늘 오전 8시부터 10시 사이입니다. 사인은 청산가리 복용으로 인한 질식사죠.”

 

 오전 8시부터 10시. 유정은 세상모르고 잠에 빠져있을 때였다. 하지만 그걸 증명할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유정은 더욱 속이 답답해지는 걸 느꼈다.

 

 “저와 스미레 형사는 사건을 마무리 짓기 전에 마무리할 일이 있어서 마지막에 하숙집에 들렀습니다. 10시 40분쯤 이곳에 도착했을 때 거실에서 자고 있던 도연 씨를 보고 바로 도연 씨를 깨웠죠. 그리고는 해림 씨와 도연 씨가 쓰던 방으로 향했습니다. 거기서 죽은 해림 씨를 발견했죠. 당시 시간은 10시 55분. 그 이후에 바로 유정 씨를 깨우러 스미레 형사가 2층으로 내려갔죠.”

 

 유정과 도연의 시선이 엉켰다. 압박감이 들 정도의 무거운 공기가 주위를 감쌌다. 도연이 평소처럼 제 방에서 잠을 잤다면 도연이 범인일 확률이 더 높아진다. 유정이 의심을 살 가능성이 적어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도연은 어쩐 일인지 거실에서 잠을 청했다. 이유가 뭘까. 유정은 다시 어젯밤 일을 떠올렸다.

 

 도연은 유정에게 이제 어떻게 할 건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이에 유정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말을 했다. 도연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유정은 남아있던 차를 마저 마셨고, 그 사이에 해림은 먼저 자겠다며 계단을 올라갔다. 3층에서 나는 발소리를 들었으니 해림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건 틀림없었다.

 

 이후 유정은 다시 머리가 어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빈 잔을 내려놓고 도연에게 자신도 먼저 방으로 가겠다고 하자 도연이 손을 내밀었다. 작별 인사로 악수를 하자고 했다. 유정은 도연과 얼마간 손을 잡다 2층의 자기 방으로 향했다. 결국 거실에 끝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도연이었다. 그 이후 도연이 뭘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유정은 곧바로 잠에 들었으니까.

 

 유정은 티 나지 않게 입술을 씹으며 생각했다. 결국 해림의 사망 추정 시간 동안 유정과 도연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수 있는 건 어디에도 없었다. 둘은 똑같은 출발선에 서 있었다. 아직 조급해하긴 일렀다.

 

 “저나 유정 씨나 똑같은 진술을 할 거 같은데.”

 

 도연이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수갑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저희는 어젯밤 10시 정도까지 거실에서 얘기를 나눴고, 그 이후에 각자 방에 들어가서 잠을 잤습니다. 전 그냥 하루쯤 편하게 자고 싶어서 거실에서 잔 거구요. 먼저 방으로 들어간 건 해림이고, 그다음에 유정 씨가 올라갔습니다. 물론 증명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죠. 유정 씨도 마찬가지고요.”

 

 도연이 유정이 생각한 것을 그대로 읊으며 말했다. 별다른 대안이 없는 유정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연을 보았다. 도연과 피차일반이라는 뜻이었다.

 

 “결국 유정 씨와 도연 씨가 범인일 확률은 모두 50%로 한 치의 오차도 없다는 말이군요.”

 

 수연은 얼마 간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그리고는 확신에 찬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럼 별 수 없군요.”

 

 수연이 팔짱을 끼며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끝말을 흐렸다. 그리고는 턱에 손을 가져다 대더니 다시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다른 가능성도 한번 열어두도록 해볼까요. 가령…외부인의 침입이라든지.”

 “저희가 오늘 아침에 여기에 왔을 때 문이 열려있긴 했었죠. 대문은 물론 현관으로 통하는 문까지도.”

 

 서정이 수연의 말에 동조하며 맞장구를 쳤다. 유정은 그 말을 듣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뜬금없이 외부인의 침입이라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지나친 억측 아닐까요. 하숙집이 깨끗하고 없어진 물건이 없는 걸 볼 때 도둑은 아니에요. 혹여 살인을 목표로 한 외부인이 침입했다 해도 굳이 3층까지 올라가서 해림 씨를 죽일 이유는 없죠. 거실에 있는 도연 씨나, 아니면 2층에 있는 저를 노리기 더 쉬웠을 테니까요. 거리상으론.”

 “만약 그 침입자가 우연히 1층에 내려온 해림 씨와 마주했다면요? 그래서 홧김에 죽인 거라면요?”

 

 서정이 재차 물었다. 유정은 조금 맥 빠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랬다면 분명 큰 소란이 났었을 거예요. 만약 여자인 해림 씨가 저항할 틈도 없이 몸을 덮쳤다고 해도 사인은 청산가리 독약으로 인한 질식사에요. 타인의 집에 급습한 사람이 취할 행동은 아니죠. 그리고 굳이 시신을 3층으로 옮기는 것도 이상해요. 그것도 그 외부인은 해림 씨의 방을 모르는 상태일 텐데.”

 “…….”

 “정말 외부인의 침입이 맞는다면…거실에 있던 도연 씨가 가장 먼저 알지 않았을까요. 물론, 도연 씨의 진술이 ‘진짜’라면.”

 

 유정이 차분하게 생각들을 나열했다. 유정은 도연이 범인인 것을 확신한 채로 내뱉는 말이었다. 자신은, 정말 아니었으니까.

 

 “제 말은…어느 정도의 동기와 사연이 있는 외부인을 말하는 거였습니다만.”

 

 수연이 냉정하게 흐름을 끊었다. 동기와 사연이 있는 외부인이라니. 유정이 의아한 눈으로 수연을 보았다. 도연 또한 곁눈질로 날카롭게 수연을 보고 있었다.

 

 “저번에 말했던 소우마 미나토라면…조그마한 가능성이라도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유정은 일이 점점 이상하게 흘러가는 기분을 느꼈다. 수연은 소우마 미나토를 3년 전 사건은 물론, 하숙집에서 벌어진 일들 모두 저지른 범인이라고 지목했었다. 하지만 혐의는 효정의 자살로 일단락되었다. 그런데도 수연은 다시 화제를 소우마 미나토로 돌리려 하고 있었다. 추리의 방향이, 계속해서 미끄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소우마 미나토는 효정 씨의 자살로 인해….”

 “소우마 미나토에게는 아직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유정 씨를 만나는 거죠. 편지에 나와 있던 대로 이 하숙집 안에서요.”

 

 유정의 말을 끊은 채 수연이 냉정하게 말했다. 과연. 도연의 동조가 들렸다. 유정은 자신의 등 뒤에서 저를 똑바로 쳐다보는 서정의 눈길을 느꼈다. 모든 이들이 유정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유정은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제 편지는 단순한 장난일 수도 있어요. 혹시나 만약에 그 편지의 내용이 진짜고, 그 소우마 미나토가 정말 하숙집에 침입한 거라면 가장 먼저 절 찾아왔겠죠. 어쨌든 그는…저의 팬이니까요.”

 “유정 씨를 만난 후 둘이 함께 해림이를 죽였을 수도 있죠.”

 

 도연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도연의 눈엔 유정이 담긴 채였다. 유정의 등 뒤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모함과도 가까운 말. 도연이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자신을 몰아세우고 있다고 유정은 생각했다. 그러자 유정은, 절로 이가 바드득 갈렸다.

 

 “근거 없는 소리라는 거 경위님도 아시잖아요. 저에게는 해림 씨를 해칠 동기도 없고, 소우마 미나토라는 사람은 만나지도 못했어요.”

 “같은 시호의 팬끼리 할 얘기라도 있었던 거 아니야? 뭐…해림이를 대상으로 시호의 소설을 재연한 걸 수도 있고.”

 

 도연이 수갑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손목 부위가 가려운 듯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유정은 도연의 말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했다. 도연의 말은 논리가 하나도 없는 명제에 불과했다. 도저히 탐정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지나친 억측이에요. 전부.”

 

 유정이 언성을 높이며 두 손을 세게 마주 잡았다. 마음 같아선 도연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억울함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도연의 어이없는 말에도 수연은 별말이 없었다. 그저 유정을 지그시 쳐다볼 뿐이었다. 서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자신을 나락으로 떠미는 도연의 모함이 분명함에도, 상황은 모두 유정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듯했다. 아니, 마치 유정이 범인이 되길 바라는 것만 같았다.

 

 “죽은 해림 씨의 친구는 제가 아니라 김도연이에요. 자신의 친구가 죽었는데도 저렇게 태연한 태도에 대해선 왜 아무도 의심을 하지 않죠?”

 

 유정은 흥분했다. 얼굴이 붉어진 채로 온몸의 핏줄이 다 서도록 열을 올렸다. 생각보다도,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평소의 유정과 너무나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상식적으로 말이 안 돼요. 더군다나 시호의 소설엔 그 어디에서도 청산가리를 사용한 살인 기법이 나오지 않아요!”

 

 유정이 손목에 채워진 손목을 끊을 것처럼 두 팔에 힘을 주며 악을 썼다. 서정은 어느덧 한 발 앞으로 나와 유정을 보고 있었다. 수연과 도연과 서정. 모두의 시선이 한 곳에 모였지만 유정의 말에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수연과 서정, 그리고 도연의 행동은 마치 이미 해림을 죽인 범인의 설정이 이미 유정으로 확정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소설의 스토리를 구상할 때부터 고정된 것 같이.

 

 울분에 찬 유정이 더 말을 꺼내려 할 때였다. 유정의 머릿속에 한 가지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청산가리. 청산가리라면….

 

 “아니…잠깐만요.”

 

 유정이 두 손을 내려놓은 채 다급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해림이 죽은 원인은 청산가리 독약으로 인한 질식사였다. 이 점에서부터 범인의 단서는 너무나 명확하다고 유정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쯤에서 유정은, 마음이 다시 차분해져 가는 걸 느꼈다.

 

 “대체 다들 왜 외부인의 침입이라는 얼토당토않는 말을 꺼내면서 이런 가능성은 배제한 거죠?”

 “어떤 가능성을 말하는 거죠?”

 

 그제야 수연이 유정의 물음에 답했다. 유정은 온몸을 떨며 말을 뱉었다. 드디어 자신의 누명이 벗겨질 거라 기대하면서.

 

 “청산가리를 해림 씨에게 준 건 다름 아닌 죽은 효정 씨예요. 그걸 주면서 해림 씨에게 자살을 권유한 거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요?”

 

 그 이유를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유정은 허탈한 마음이 들기까지도 했다. 문득 도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수연 경위는 정말,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효정 씨의 사인도 청산가리 복용이었으니까요.”

 

 유정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유정은 이내 자신을 쏘아보는 이들의 눈빛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꼈다.

 

 아까보다도 훨씬 더 냉소적인 눈빛. 조소를 띠우는 입. 이 이질감은 대체….

 

 “죄송하지만….”

 

 수연이 느릿하게 입을 뗐다. 그리고 수연은 다시 한 번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서정이 다시 유정의 등 뒤로 향했다. 도연도 한 걸음을 떼더니 유정에게서 한 발짝 물러섰다. 모두가 움직이는 가운데, 유정만 덩그러니 홀로 굳어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미로를 마주한 얼굴로.

 

 “노효정 씨는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었습니다.”

 

 …뭐라고?

 

 “그동안 정신을 잃고 있어서 몰랐었나 보네요. 알았었다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텐데요, 유정 씨.”

 

 거짓말이다. 믿을 수 없다. 탐정 김도연과 지수연 경위까지. 모두 날 범인으로 지목하기 위해 상황을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효정은 분명 청산가리를 복용했다.

 

 “아니면…이번 사건의 진범이라고 해야 하나?”

 

 왜냐하면, 그 청산가리는….

 

 “최유정 씨.”

 

 …내가 준 거니까.

 

 수연의 말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서정이 방문을 잠갔다. 도연이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아주 쉽게 수갑을 분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림이 고개를 들었다. 평소와 같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짓고선.

 

 

 *

 

 

 “전 태어날 때부터 귀에 장애를 갖고 살아왔어요. 아예 들리지 않는 건 아니지만…그래도 너무나 희미하게 들리죠.”

 “…네. 그래서 보청기를….”

 “공부를 할 땐 일부러 보청기를 끼지 않아요. 그 편이 훨씬 더 조용하니까요.”

 

 푸념을 늘어놓는 것처럼 말하는 소은의 말에 서정은 조금씩 지루해져 가던 참이었다. 날 부른 의도가 대체 뭐지. 사건만으로도 피곤해 죽겠는데. 서정은 속으로 불평을 했지만 겉으로는 애써 대외적인 웃음을 머금은 채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역시나 보청기를 끼지 않은 상태였지만, 쇼고 씨의 방 바로 아래층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저는 어떤 소리를 들었어요. 그리고 그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전 바로 계단에 올라갔어요.”

 

 소은이 목소리를 더욱 죽이며 말했다. 서정은 순식간에 태도를 변환했다. 소은은 대체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 걸까.

 

 “제 방에 있을 때 저는 그냥 빗물이 새는 소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쇼고 씨에게 주의를 주러 간 거였어요. 천장을 막아 조용히 해 달라고.”

 

 서정은 머릿속으로 그날 밤의 일을 그리려 노력했다. 해림은 죽은 쇼고의 방문 앞에 있는 소은을 새벽 2시 50분쯤에 봤다고 말했다.

 

 “부정확하게 들렸던 그 소리는 분명 제 기억으로는….”

 

 이상했다. 그때는 분명…비가 오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아주 강하고 빠르게 두드리고 있는 듯한….”

 

 서정은 단번에 떠올렸다.

 

 “키보드 소리였어요.”

 

 유일하게 그 물건을 갖고 있는, 진범의 모습을.

 

 “…노트북에서 나는.”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있는…유정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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