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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21세기 조선스캔들
작가 : 달빛별
작품등록일 : 2017.12.4

헬조선을 살아가는 21세기 취업준비생 여자와 연산군 시대에 태어난 사림파 가문의 남자가 만나다!

난세시대 출신의 은오와 삼포세대 출신의 지민은 시대를 뛰어넘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그들은 시간이 흘러 함께 지낼수록 점차 서로의 상처를 돌아보고, 스스로의 못난 모습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두 청춘 남녀의 시대를 넘어선 로맨스 판타지.

 
제 8화, 두 번의 은인
작성일 : 17-12-04 20:01     조회 : 265     추천 : 0     분량 : 6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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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8화, 두 번의 은인 >

 

 

 사내는 바로 뒤까지 바짝 쫓아왔다. 그를 따돌리기 위해 애쓰는 은오의 낯이 처참히 구겨졌다. 숨이 벅찼다. 동시에 머릿속은 복잡해 터질 것만 같았다.

 

 어머니와 혜오는 무사히 도망가는 중일까. 자신은 결국 잡히고 마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살아남을 순 있을까…. 수많은 걱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외에도.

 

 ‘구지민이라고 했던가.’

 

 수풀 사이로 보였던 얼굴은 지민이 분명했다.

 

 ‘무사해야 할 텐데.’

 

 그를 돕기 위해 여기까지 따라 온 걸까. 그렇다면 지민은 더욱 무사해야 했다. 그는 저 때문에 다친 사람이 있으면 견디지 못하고 평생을 죄책감에 살아갈 사람이었다.

 

 이를 악물고 달리는 은오의 이마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다 못해 볼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잠깐 방심하는 틈을 타 칼날이 그의 등허리 부근을 빗겨갔다. 화끈거리는 통증에 힘 풀린 몸이 휘청거렸다.

 

 ‘여기서 죽을 순 없다.’

 

 위기에 처했던 은오는 남은 힘을 다해 몸을 틀어 재차 뒤를 노려오는 검을 피했다. 상대가 픽, 웃음을 뱉으며 은오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평소 검술이라도 익혔으면 좋으련만, 날붙이가 달린 건 살아생전 잡아본 적 없던 은오였기에 빼앗았던 검을 휘둘러도 허사였다.

 

 결국 팔 부근을 한 번 더 베이고 검까지 잃은 후에야 뒤쫓아 온 관군으로부터 벗어나 달아날 수 있었다.

 

 “으으.”

 

 앓는 신음이 튀어나왔다.

 

 “더는 도망가지 못한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달아나던 은오가 가파른 절벽이 눈앞에 펼쳐지자 놀라 멈춰 서곤 얼른 뒤돌았다. 거칠어진 숨이 쌕쌕, 튀어나왔다.

 

 반면, 무관 출신의 관군 사내는 호흡 변화 없이 그를 냉철하게 응시했다. 은오는 어깻죽지를 붙잡곤 이를 악물었다.

 

 “떨어지거나 검에 베이거나.”

 

 성큼 다가오는 사내의 걸음에 맞춰 은오가 물러섰다.

 

 “결국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대는.”

 

 한걸음 더 물러난 은오의 발밑으로 자잘한 돌멩이들이 밟혀 굴러갔다. 그것들이 벼랑 끝에서 후두두둑 떨어지는 걸 보자 간담이 서늘했다.

 

 은오는 느릿하게 말문을 열었다.

 

 “그대는 이 나라가 올바르게 돌아가는 중이라 보시오?”

 

 그의 물음에도 사내는 아랑곳 않았다.

 

 “백성들은 굶어죽고, 왕은 밤낮 가리지 않고 음주가무만 즐기는 이 난세가….”

 

 사내는 은오의 말이 끝맺기도 전에 검을 휘둘렀다. 가까스로 피해낸 은오가 정말 한 걸음만 더 물러났다간 추락하고 말 것을 예견했다.

 

 ‘그래, 차라리.’

 

 은오는 결심한 듯 주먹을 그러쥐었다.

 

 검이 가슴 앞으로 곧게 뻗어왔다. 온 몸에 힘을 느슨하게 푼 은오가 결단한 얼굴로 마지막 한 걸음을 뒤로 디뎠다.

 

 밤바람이 차가웠다. 흙먼지와 함께 바람에 휘날린 잎사귀들이 은오의 뺨을 스쳐지나갔다. 벼랑 아래로 추락하는 은오를 보는 사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은오는 얕게 웃었다. 어리석은 왕을 따르는 이에게 죽을 바엔 차라리, 자결하는 편이 나았다.

 

 낭떠러지로 제 몸을 던지는 순간, 죽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민이 반드시 살아남을 거란 단언을 했단 것마저 잊을 정도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그가 떨어진 곳은 나뭇가지와 잎이 잔뜩 우거진 나무 위였다.

 

 칼에 베였던 등허리가 화끈거리며 아팠지만 높은 벼랑 끝에서 떨어진 것치곤 멀쩡했다. 나뭇가지를 밟고 땅을 밟은 그가 위를 한 번 올려다보곤 걸음을 움직였다. 절뚝이는 발목에 힘을 줘가면서 길을 재촉했다.

 

 설핏 열린 입술 새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다른 이들에 비해 운동 신경이 더딘 그에게 있어, 지금 순간이야말로 유일하게 도망칠 수 있을 기회였다.

 

 “김은오를 잡아라! 죽었다면 시체라도 가져오란 명이다!”

 

 어느새 밑으로 내려온 관군들의 음성이 닥쳐왔다.

 

 그는 최대한 몸을 숨기려 했지만 횃불을 든 자들의 시선을 피하기란 어려웠다. 인기척 없이 움직이려는 몸짓에도 불구하고 생각만큼 쉽진 않았다. 바닥을 디딜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자 관군들이 의심스럽다는 양 그가 있는 방향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놈이 살아있다!”

 “김은오가 저기로 향했다!”

 

 은오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남은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대체 언제까지 쫓아오겠단 거야?”

 

 지민은 다른 이들에 비해 월등히 체력이 좋은 편이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운동장 10바퀴를 매일같이 도는 게 그녀의 취미였다. 그렇다보니 없던 체력이 생겼고 오랫동안 뛰는 것도 자신 있었다. 하지만 끈질기게 달라붙는 관군들을 떼어놓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제 뒤를 좇는 관군의 수를 확인했다. 총 두 명으로 나름 따돌리는 데 성공한 상태였다.

 

 이곳 지리를 모르니만큼 지민은 발 가는 대로 달렸다. 달아날 때는 오르막보단 내리막이 수월했기에 성큼 성큼 다리를 뻗어 산기슭 아래로, 그리고 더 아래로 향했다. 내려가는 동안 구르기도 하고, 무릎이 까졌지만 굴하지 않았다.

 

 “잡아라! 놓쳐선 안 된다!”

 ‘대체 언제쯤 김은오씨가 시대를 건너오는 건데?’

 

 관군들을 따돌리기 위해 몸을 비스듬하게 기울인 지민이 방향을 틀어 뜀박질하듯 내려갔다.

 

 ‘김은오씨를 만나야 돌아갈 수 있는데!’

 

 굵은 나무 기둥을 오른팔로 감은 지민은 다시 한 번 방향을 바꿨다. 두 번씩이나 혼란을 주자 뒤쫓던 이들이 당황한 얼굴로 머뭇댔다.

 

 그리하여 그들 시야에서 벗어난 지민은 달려온 길을 확인하기 위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오르막길은 그녀가 꽤 먼 거리를 내려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뛰다가 김은오씨랑 멀어지는 거 아냐?’

 

 우려도 잠시 나무 뒤로 몸을 숨긴 지민이 가빠진 숨을 토했다.

 

 “죄인 김은오를 잡아라!”

 

 가슴 부근을 퍽퍽 두들기며 진정시킨 지민은 귓가에 들려오는 음성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꽤 가까운 거리였다. 위에서 시작된 추적이 아래까지 내려왔단 것은 은오 역시 지민처럼 밑에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 가능했다.

 

 ‘혹시 김은오씨도?’

 

 지민이 암순응에 적응된 눈을 굴려 주변을 살폈다. 그녀는 관군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셈이었지만 이 방법 외엔 은오를 찾을 방법이 없었다.

 

 “상처를 입었으니 멀리 가진 못했을 것이다.”

 ‘상처를 입어?’

 

 지민이 주먹을 그러쥐었다. 그녀가 마지막에 봤던 은오는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반면 그녀의 시간으로 거슬러 왔던 은오는 피투성이인데다 등 부근엔 깊은 칼자국까지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곧 그때구나!’

 

 지민이 작게 탄성했다.

 

 은오와 지민의 첫 만남이 멀지 않은 거다.

 

 ‘그런데 난 왜 반대로 가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걸까.’

 

 관군들의 뒤를 따르던 지민이 이내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은오가 그들의 반대편에 있다는 근거도 없건만 이상하게 꼭 그리로 향해야 할 것만 같았다.

 

 ‘믿어보자.’

 

 허리춤에 매달린 주머니를 꼭 쥐었다 폈다. 지민은 풀숲을 헤치며 발길이 향하는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땀이 비 오듯 그녀의 목과 등줄기를 적셨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팔소매로 쓱 닦아낸 그녀가 문득 시선을 내렸다 드는 순간 낯익은 인영이 보였다.

 

 “김은오씨?”

 

 작게 그 이름을 불렀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듣지 못한 듯 했다.

 

 힘이 다 풀린 다리로 어떡해서든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무릎으로 걷다시피 구부린 다리와 땅을 짚은 손바닥이 그가 간절하단 증거였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지민은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횃불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벌써 여기까지 관군이 밀려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지민은 다급하게 눈을 돌려 은오를 응시했다.

 

 대체 언제쯤 지민 본인이 이곳에 나타나는 건지.

 

 몸을 낮춘 채 바닥을 기는 은오를 보며 지민이 불안하게 이를 딱딱, 부딪쳤다.

 

 얼굴을 쓸어내리는 땀방울에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자, 우거진 나뭇가지 없이 뻥 뚫린 시야로 하얀 보름달이 보였다.

 

 불이라도 밝힌 것처럼 화사한 달빛이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대체 언제야?”

 

 점점 포위망을 좁혀오는 소리는 들려왔고, 은오는 점차 죽어가고 있었다.

 

 털썩 주저앉은 그가 남은 힘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는 지민의 불안감이 치솟았다.

 

 “언제 내가 나타나는 건데?”

 

 21세기의 지민이 난데없이 이곳의 낯선 바람을 맞는 순간, 은오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그들은 그녀의 시대로 흘러가게 된다.

 

 분명 지금 보이는 은오의 꼴은 그 당시와 다를 게 없었다. 그 말인 즉, 이제 지민만 나타나면 된다는 소리였다.

 

 “구지민, 너 지금 어디서 뭐하는 거야….”

 

 지민은 21세기의 본인이 탈의실에 있기를 바랐다. 지금쯤 아무 것도 모르고 옷 정리를 하고 있으려나. 아니면….

 

 “허억… 허…….”

 

 은오가 헐떡이며 죽어가는 숨을 토했다.

 

 정신없이 돌리던 그가 피에 범벅이 된 손으로 어깻죽지를 꽉 붙드는 게 보였다.

 

 “사람이 죽어 가는데.”

 

 지민이 사방천치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의아심이 일기 시작했다.

 

 “그때도 생명이 위험했다고, 조금만 늦었어도 죽었을 거라 했는데.”

 

 스스로 가만 두지 못하고 몸을 달달 떨던 지민은 이내 깨달은 듯 고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설마.”

 

 작게 읊조리는 그녀의 얼굴 위로 미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얼굴이었다. 일종의 허탈감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내가 개입해야하는 건가?”

 

 제 3자의 포지션에 위치했던 21세기 구지민을 기다리고 있던 지민의 뇌리를 ‘설마’라는 의심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이 시대에 떨어진 지민이 개입해서 21세기의 지민이 이곳에 오게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에이, 아닐 거야.”

 

 몸을 들썩이며 일어나려던 지민이 부정하며 앉았다.

 

 “설마 내가 개입 했겠어?”

 

 이제 바로 근처에서 들리는 묵직한 음성들에 긴장됐으나 지민은 더 기다렸다. 그녀는 연신 불안감을 덜기 위해 중얼거리며 자리를 지켰다.

 

 “분명 내가 나타날 거야. 분명히….”

 

 아랫입술을 물어뜯던 지민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제 한계였다. 지민이야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있었으나, 은오는 더 이상의 기다림이 불가능한 상태로 보였다.

 

 “아니잖아!”

 

 참지 못한 지민이 벌떡 일어났다.

 

 ‘저대로라면 위험해!’

 

 설령 21세기의 그녀가 이곳으로 온다 하더라도 지민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저대로 두다간 은오가 죽을지도 몰랐다.

 

 그녀가 살려놨던 목숨 아니었는가?

 

 지민의 움직임에 은오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꼬리가 가늘어지더니 그녀를 흐리멍덩하게 응시했다.

 

 ‘뭐라고 해야 하지?’

 

 막상 일어났던 지민은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뜸을 들였다. 은오의 상태부터 확인해야 하나, 관군을 반대편으로 따돌린 후에 그를 살펴야 하나. 그녀의 눈동자가 어지러이 흔들렸다.

 

 앞에는 죽어가는 은오가 있었고, 뒤로는 이제 정말 피할 수 없을 만큼 바짝 다가온 관군의 존재가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재차 주변을 확인하던 중에 지민은 제 허리춤의 진동을 느꼈다. 은오가 쥐어준 주머니에 넣어뒀던 휴대폰에서 울리는 것이었다.

 

 이곳에 떨어진 이후, 제 멋대로 꺼지더니 먹통이 되었던 휴대폰이 갑자기 반응하는 것에 놀란 지민이 고개를 내렸다.

 

 ‘이건 또 갑자기 왜 이래?’

 

 휴대폰을 끄려던 지민이 바로 앞까지 다다른 은오를 발견하곤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은오가 피범벅이 된 큼직한 손을 지민에게로 뻗어왔다.

 

 “아….”

 

 은오가 탄성했다. 지민은 그녀의 발목이 그의 손에 잡혔음을 자각했다.

 

 그때와 다를 거 없이 똑같았다. 그녀를 붙든 채 죽어가는 은오와 옴짝 없이 붙들려 놀란 지민.

 

 혹시 더 심각해졌을까 걱정하며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지민이 얼른 허리를 굽혔다.

 

 순간 두통이 그녀를 뒤흔들었다. 지민은 눈살을 찌푸리며 느릿하게 제 눈을 깜박였다.

 

 * * *

 

 주변이 지나치게 환했다.

 

 지민이 눈을 떠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새하얀 타일로 이루어진 바닥이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지민이 느릿하게 굽혔던 허리를 폈다.

 

 하얀 백열등 전구들이 즐비한 천장이 보였고, 사람들이 바쁘게 그녀의 앞을 지나쳐갔다.

 

 며칠이 지났지만 지민에겐 익숙한 풍경이었다.

 

 뒤에선 풀숲을 헤집는 소리 대신 띵동, 하는 엘리베이터의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지민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고개를 꺾어 뒤를 돌아보았다.

 

 비슷한 행위의 반복으로 또 다시 은오의 시대로 돌아갈까 봐 두려웠다. 다행스럽게도 주변은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없었다.

 

 단지 돌아본 시야에 머뭇거리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은오가 보였을 뿐이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혼란스러운 양 주변을 훑었다.

 

 “21세기 한국….”

 

 은오가 중저음의 목소리로 지민이 알려줬던 지민의 시대를 읊었다.

 

 “… 김은오씨?”

 

 지민은 그녀가 일주일이 넘도록 머물렀던 연산군 시대가 꿈이 아니었음을 실감하며 은오를 불러보았다.

 

 이윽고 은오의 시선이 지민에게로 고정됐다.

 

 “구지민 유생?”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것 봐요, 살았네요.”

 

 지민은 저도 모르게 푸스스 바람 빠진 웃음을 지었다.

 

 그 누구도 믿지 않을 황당한 일을 함께 겪고 나서, 마주하자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생은 어떻게 이곳에 있었던 것이오?”

 

 은오가 지민에게 성큼 다가왔다. 지민의 어깨를 붙든 은오가 그녀의 코앞까지 제 얼굴을 들이밀며 답지 않게 흥분해 말했다.

 

 “내 시대에서도 그대와 똑같은 사람을 봤소.”

 “하하,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아니, 그보다 금방 전에는 또 어떻게 없어졌던 것이며.”

 

 은오가 물어왔지만 지민은 허탈하게 웃기만 했다. 모든 퍼즐이 천천히 들어맞았다. 그녀가 은오의 시대로 흘러갔던 것은 스스로가 불러들인 일이었다.

 

 어질했던 정신을 바로 잡은 지민이 손을 뻗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은오의 입을 틀어막았다.

 

 “잠깐만요.”

 “읍?”

 “여긴 그쪽이 살던 시대랑 다르다고, 내가 말했던 거 잊었어요?”

 “아, 그랬…”

 “그러니까 가서 이야기해요, 가서!”

 

 지민이 슬며시 손을 떼며 그를 진정시켰다. 어쩌다 이 남자랑 이렇게 엮여버린 걸까?

 

 흘끔 쳐다본 은오는 조선시대에 떨어졌었던 지민의 표정만큼이나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은오와 인연을 쌓지 않으려 애를 썼는데 한 순간에 모두 허물어져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은오가 그녀의 목숨을 먼저 구해준 탓일까, 아니면 그녀가 그의 생명의 은인을 두 번이나 자처했기 때문일까.

 

 전자건 후자건 뭐가 중요하랴. 그들은 이제 한 배를 탄 사이였다. 지민이 은오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일단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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