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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21세기 조선스캔들
작가 : 달빛별
작품등록일 : 2017.12.4

헬조선을 살아가는 21세기 취업준비생 여자와 연산군 시대에 태어난 사림파 가문의 남자가 만나다!

난세시대 출신의 은오와 삼포세대 출신의 지민은 시대를 뛰어넘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그들은 시간이 흘러 함께 지낼수록 점차 서로의 상처를 돌아보고, 스스로의 못난 모습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두 청춘 남녀의 시대를 넘어선 로맨스 판타지.

 
제 7화, 각자의 노력
작성일 : 17-12-04 19:47     조회 : 270     추천 : 0     분량 : 6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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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7화, 각자의 노력 >

 

 

 밀명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연상되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민은 그녀가 예상했던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아니, 이미 제 코앞까지 성큼 다다랐을 지도 몰랐다. 지민이 벌떡 일어났다.

 

 “주모 여기 돈 있습니다.”

 

 그녀가 제법 낮은 음성으로 말한 후, 헤진 신을 신었다.

 

 “흠흠.”

 

 지민은 자연스럽게 두 사내 곁으로 다가섰다.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이판사판 모 아니면 도였다. 지민은 지금이 아니면 늦고 말 것임을 확신했다. 은오와 지민이 현대에서 만났던 날, 그건 틀림없이 오늘이었다. 마땅한 증거는 없지만 그녀의 직감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뭐요?”

 

 사내 하나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본의 아니게 두 분의 말씀을 듣게 돼서… 부탁 하나만 드립니다!”

 

 엿들었단 사실로 두 사내가 성을 내기 전에, 지민이 선수 쳐서 무릎을 털썩 꿇어앉았다.

 

 “귀양길을 떠난 자들의 가족 중 제 정인(情人)이 있습니다!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부디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배웅하게 해주면 안 되겠습니까?”

 

 지민은 간절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큰 거 바라지 않고, 그저 어디로 갔는지. 그것만 알려준다면 내 알아서 얼굴만 보고 이별할 수 있을 것 같으니…”

 “허?”

 “제 아이를 배고 있는 여인입니다. 제발.”

 

 다시 고개를 푹 떨어뜨리며 지민이 땅에 머리를 박을세라 조아렸다.

 

 본인이 생각해도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한 연기였다. 게다가 시나리오는 또 어떤가. 즉석으로 짰지만 감성팔이에 딱 좋은 소재였다.

 

 “학업도 접어둔 채 여기까지 뒤쫓아 내려왔습니다. 어리고 한심한 제가 지아비 되는 도리도 지키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 만회하고 싶었습니다.”

 

 말끝을 흐리며 울먹이는 떨림을 연기하자 요지부동이었던 그들이 슬쩍 동요했다. 서로 간의 눈치를 살피는 듯 그들은 눈짓을 주고받았다.

 

 “곧 태어날 아이였습니다. 그 작은 생명이…!”

 “큼큼, 그만 하고 일어나시오.”

 “… 제 청을 들어주시는 겁니까?”

 

 지민은 긍정의 답을 듣기 전까진 일어나지 않겠단 결연한 표정으로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이윽고 두 관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이곳은 보는 눈이 많으니 자리를 옮겨야 하오.”

 

 지민은 속으로 쾌재를 외치면서도 서글픈 낯을 유지했다. 감사함이 담긴 작은 미소가 그녀의 만면에 피어올랐다.

 

 연기파 배우 못지않은 섬세한 연기였다.

 

 ‘돌아갈 수 있어.’

 

 지민은 자신했다. 그녀는 의심할 데 없이 돌아갈 것이다, 본래의 자리로.

 

 * * *

 

 혜오는 포졸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지친 어머니의 땀을 닦아주면서도,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는 죽을 먹을 때도 그녀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런 제 동생이 귀여워 은오는 상황에 맞지 않게 얕은 웃음을 간간히 지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둘 다 왜 그러냐고 까닭을 물었지만 남매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어머니에게 계획을 알려준 것은 해가 완전히 졌을 때쯤이었다. 주변에 어둠이 내려앉자 근처에 피운 모닥불만이 시뻘겋게 타올라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니 된다!”

 

 은오의 계획을 들은 어머니가 까무러치며 반대했다. 높아진 언성에 관군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관군들의 눈치를 살피던 은오가 제 어머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는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그의 옷깃을 붙들고 있었다. 곁에 앉은 혜오 역시 훌쩍이며 울음을 삼키는 중이었다.

 

 “너까지 잃으면 이 어미 마음이 찢어진다, 은오야. 그러지 말거라.”

 “어머니, 소자 반드시 뒤따라가겠습니다.”

 

 은오가 어머니를 떼어낸 후 그녀의 손을 꽉 붙잡아 주었다. 그는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니 혜오와 먼저 이곳을 빠져 나가십시오.”

 “은오야.”

 “소자가 못 미더우십니까?”

 “내 어찌 너를 못 믿겠느냐.”

 “그렇다면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어머니.”

 

 간절함이 닿았던 것일까. 계속되는 설득에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 그의 뜻을 허했다.

 

 “대신 반드시 살아와야 한다.”

 “네,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은오가 자시(自恃)했다.

 

 “어머니.”

 

 은오는 어머니의 어깨를 붙잡곤 곧은 시선으로 어머니를 응시했다.

 

 평소라면 이토록 확신하지 못했을 은오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그의 귓가에 맴도는 지민의 말이었다.

 

 “그럼 살아 뵙겠습니다.”

 

 지민이 했던 살아남을 거란 그 말, 은오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럼 이만 움직이겠습니다. 내가 관군들의 시선을 끌 동안, 혜오 넌 어머니를 모시고 알려줬던 방향으로 뛰어야 한다.”

 

 생사의 기로를 달리할 도주의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일찍이 파악한 관군의 수는 나무 아래 쉬는 둘과 불침번을 서고 있는 셋, 총합 다섯이었다. 수가 더 많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이는 분명, 은오가 권독종일(券讀終日)하여 학문하던 선비라는 사실이 파다히 소문났기 때문이었다. 그가 무관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경계가 약할 리 없었다.

 

 은오의 검은 눈동자가 주변을 훑은 후, 다시 두 여인에게 돌아왔다.

 

 “혜오야, 저기 보이느냐? 저쪽으로 들어가거라.”

 

 이미 며칠간 반항 없이 얌전하게 굴었다. 점잖은 양반 가문이란 인상을 주었기에 관군의 감시는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져 있었다.

 

 은오가 혜오의 어깨를 강하게 꾹 붙잡곤 믿는다는 양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오라버니 꼭 살아 만나요.”

 “그럼.”

 

 은오가 접었던 무릎을 느릿하게 펴며 일어섰다.

 

 ‘불침번을 서는 자들의 시선부터 따돌려야겠지.’

 

 그는 세 관군들에게 다가갔다. 혜오와 어머니가 풀숲으로 사라지는 걸 흘끔 확인한 은오가 그들 앞에 섰다.

 

 “수고가 많소.”

 “무슨 용건입니까?”

 “바로 답이 나오시는 분들이니 좋은 것 같군요.”

 “허?”

 

 은오를 향한 관군들의 시선이 매서웠다.

 

 “청렴한 척 다하시더니 본색을 드러내는 모양입니다.”

 

 관군 중 하나가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말문을 틔웠다. 구릿빛 얼굴에 눈매가 사나운 사내였다.

 

 “아무래도 그쪽이 나와 말이 통할 분일 것 같소만.”

 

 은오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원하는 것을 불러보시오.”

 “선비가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사내가 까칠하게 물었다.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무엇인들 못하겠소.”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든 은오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내 뭐든 해주겠소.”

 “약조하는 겁니까?”

 “그렇소. 귀양살이를 떠나게 됐지만 재물은 죄다 숨겨뒀으니 어떤 재물을 불러도 내 들어줄 수 있지.”

 “그럼 우리 가족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게 해주십시오.”

 

 사내가 서슬 퍼렇게 쏘아붙였던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그 정도야. 자네들은 또 무엇을 원하는가?”

 

 뒷짐을 진 은오가 서로 눈치를 보는 나머지 관군 둘에게 물었다. 표정만 봐도 거의 반쯤 넘어온 기색들이 역력했다.

 

 “저희는….”

 

 은오는 한참을 뜸 들이는 그들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더 이상 혜오와 어머니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사히 달아나고 있으면 좋으련만. 잠깐 한눈을 팔고 있던 은오는 이내 제 목에 겨누어진 칼날을 발견했다.

 

 “네 놈, 어디서 꼼수를 쓰냐?”

 

 서늘한 칼날이 그의 목 곁을 스치는 순간 따끔거리는 통증이 일었다. 은오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누가 속을 줄 아느냐? 역적의 자식 놈이 뭘 해줄 수 있다고 그리 자신만만하게 구는지.”

 “못 믿겠소?”

 “믿을 놈이어야 믿지. 그리고…”

 

 사나운 인상의 사내가 오른쪽 손을 휙 올리자 은오의 목을 향한 칼끝이 그의 가슴께 부근으로 옮겨갔다.

 

 “사람을 잘 따져봤어야지.”

 ‘이 자는.’

 

 은오는 그제야 제가 방심했음을 깨달았다. 밀명으로 자신들을 죽일 임무를 받은 자들이 평범한 관군들로만 꾸려졌을 리 없는데.

 

 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관군들 사이에서도 저자가 받는 대우가 달랐다.

 

 ‘무관이구나!’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저 사내는 분명 밀명으로 영입된 무관이다.

 

 은오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가슴을 꿰뚫을 것 같이 날선 칼날이 재빨리 쫓아와 다시금 위협해왔다.

 

 “움직이지 마라.”

 “말로 푸는 게 어떻소?”

 “이래서 서적만 읽는 이들이 한심스럽단 소리를 듣는 거다. 기껏 배움을 쌓으면 무엇해?”

 

 은오가 마른 침을 삼키자 그의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좁혀진 미간과 힘들어간 그의 눈꺼풀에서 당혹스러움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재물로 사람을 부리려는 자는 탐관오리지, 선비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가 될 수 없다.”

 

 사내의 입가에 보란 듯이 조소가 피어올랐다.

 

 “그런데도 네가 선비라고 할 수 있겠나?”

 

 * * *

 

 “얼마나 더 가면 됩니까?”

 

 지민은 슬슬 아려오는 무릎을 두드리며 물었다. 그녀의 낯이 오만상을 다 찡그리고 있었다.

 

 “거 사내자식이 말이 많소.”

 “맞소, 이런 산행도 못 가면서 무슨 마누라를 본다고 그러시오?”

 

 두 사내가 지민에게 핀잔을 놓았다.

 

 “서적만 일평생 파보십시오, 어디. 건강하던 몸도 허약해집니다.”

 

 지민이 큼직한 바위 위로 다리를 뻗으며 투덜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12년 동안 수능 공부, 4년은 전공 공부, 그리고 지금은 공무원 시험을 공부 중이니 일평생 서적만 판 인생이 아니면 무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나저나 두 분께서도 관군 아니십니까?”

 

 저를 향해 선뜻 손을 내밀어오는 사내의 손을 덥석 잡아 올라온 지민이 의아하게 물었다.

 

 “저를 도와주셔도 되는 겁니까?”

 “당연 안 되지. 그냥 사정이 딱해서 가는 길목까지만 알려주는 것이오. 곧 혼자 가야할 터이니 미안해 할 것 없소.”

 “혹 아저씨들도 먹고 살기 힘듭니까?”

 “그럼! 이곳에 누구 하나 먹고 살기 쉬운 사람이 있겠소?”

 

 헬조선이나 지금 시대나 다를 거 없었다. 살기 힘든 사람은 언제나 있었다. 심히 공감이 가는 물음에 지민은 내심 양심이라는 녀석이 쿡쿡 찔렸다. 미안했다. 허나, 그렇다고 진실을 말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이건 하얀 거짓말이다. 그녀가 속으로 되뇌며 화제를 돌렸다.

 

 “날이 추운 게 해가 금방 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노력이 무색하게 암울한 대화거리가 또 다시 튀어나왔다.

 

 “날이 추우니 더 허기지네. 뭐, 아직 죽지 않았으니 이제 그러려니 살려고 하지만…. 안 그렇소?”

 “그렇지, 그럼. 자네도 알지 않나, 나라 사정을.”

 “나라 사정이라….”

 

 문득 돌아가기 위해 애쓰는 저의 시대를 떠올렸다. 쓴 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이곳 사정도 열악하지만, 그녀의 21세기도 만만찮게 어려웠다. 지금이 연산군 집권 시기가 아니고, 그녀에게 번듯한 호패가 있었다면 굳이 본래 있던 시대로 돌아가려 했을까?

 

 그럼에도 돌아가고자 했을 거라고 지민은 확신할 수 없었다.

 

 “저도 피를 많이 봤….”

 “잠깐!”

 

 허탈하게 감상을 털어놓는 지민의 말을 사내 하나가 막아섰다.

 

 “저게 무엇, 무엇이요?”

 

 그가 풀숲에 몸을 숨기곤 검지를 뻗었다. 덩달아 그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횃불이 보였고 그 근처에 모여 있는 네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보였다. 지민은 그들의 낯들을 하나하나 훑었다.

 

 ‘어?’

 

 마지막 사람을 확인하던 그녀의 시선이 우뚝 멈췄다.

 

 ‘김은오씨?’

 

 찌를 듯 뻗은 칼날의 목표물이 되어 당황스런 얼굴을 짓고 있는 사내는, 지민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은오였다.

 

 놀란 지민이 얼른 제 입을 틀어막았다.

 

 “혹시 벌써 밀명을 수행하고 있는 것 아니오?”

 “뭐? 내일 새벽 아니었소?”

 

 그녀의 옆에선 두 사내가 소곤거리며 말을 주고받았다.

 

 ‘저 타이밍이었나?’

 

 빠르게 은오의 행색을 훑은 후 주변을 확인한 지민이 제 기억을 더듬었다.

 

 ‘아냐.’

 

 정신없을 때 스쳐가듯 보였던 풍경이라 가물가물했지만, 저 현장이 아닌 건 확실했다.

 

 은오가 그때처럼 피투성이가 된 것도, 당시처럼 두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닌 걸로 보아 그녀가 시간을 거슬러 나타났던 순간은 아직 아닌 듯 했다.

 

 “저기서 죽을 리는 없으니 곧 누가 도와주겠네.”

 

 위협받는 은오가 너무 위태로워 보여 지민은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듯 중얼거렸다.

 

 살아남아 미래에서 지민을 만났으니 분명 누군가 도와줄 것이다. 그래, 쉽게 죽을 남자는 아니지. 숨을 죽인 그녀는 몸을 바짝 엎드린 채 그들을 지켜보았다.

 

 “죽음으로 그 부끄러움을 씻어라.”

 

 죽음으로? 지민은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난 부끄러울 것이 없소.”

 “서책을 읽는 자들은 다들 같은 소리를 나불거리지. 옳은 일을 했다 여기고.”

 “그렇다면 죄 없는 이들을 잡아 죽이는 건 옳다 여기는가?”

 “뭐?”

 

 그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지민은 주먹을 그러쥐며 속으로 기도했다. 특별한 종교도 없으면서 그녀는 온갖 신을 찾으며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랐다. 그와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대체 은오는 어떻게 저 상황에서 달아나 그녀를 만날 수 있었던 말인가.

 

 만일 저 자리에 있는 게 지민이었다면,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을 게 분명했다.

 

 아무리 아버지 어깨 너머로 검도를 배우고, 격투기를 조금 깨우쳤다 해도 검을 들고 상대를 죽이려 하는 자들을 상대할 순 없었다.

 

 ‘그런데 저 상황에서 도망간다고? 대체 어떻게?’

 

 지민은 그들에게 시선을 고정하곤 자세를 고쳐 앉았다. 순간 그녀 앞에 있던 흙바닥이 허물어지더니 토사(土沙)가 후두두둑 아래로 떨어졌다. 나름대로 조심스레 움직였다 여겼는데 지대가 약했던 모양이었다.

 

 흙과 돌멩이들이 꽤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 떨어지자 은오를 비롯한 관군들의 고개가 지민이 숨은 장소로 향했다.

 

 “저기 아저씨들, 도, 도망가야 해요.”

 

 시선은 은오와 관군들에게 두고 손은 옆을 더듬거리며 지민이 동행했던 사내들에게 상황을 알렸다. 토끼눈을 뜬 그녀의 시선이 은오와 팽팽하게 대화를 나누던 이와 딱 마주쳤다.

 

 ‘하필!’

 

 지민은 몸을 일으키며 냅다 고개를 돌렸다. 함께 놀라 굳어있을 거라 생각했던 두 명의 사내가 없었다. 가만 보니 그들은 이미 풀숲을 헤치면서 저만치서 먼저 달아나고 있었다.

 

 “웬 놈들이 붙었다!”

 

 은오와 대치하고 서있던 사내 중 하나가 지민을 가리키며 외쳤다.

 

 “쫓아라!”

 

 지민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녀에게 시선이 쏠리는 순간, 은오가 다른 관군의 가슴을 찬 후 검을 뺏어 달아나는 것이 보였다.

 

 ‘지지리도 재수가 없지!’

 

 지민은 뒤에서 쫓아오는 소리가 들리자 학을 떼며 풀숲을 헤쳐 뛰기 시작했다. 은오를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그처럼 쫓기는 신세로 전락하게 됐으니.

 

 ‘집엔 언제 돌아갈 수 있는 거야?’

 

 지민이 소리 없이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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