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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로맨스의 첫 페이지
작가 : 현주빛
작품등록일 : 2017.11.6

현재를 살아가는 평범한 여자와 과거에 얽매여 사는 한 남자가 만들어 가는 로맨틱 스릴러! 특별한 능력을 가져 혼자가 된 추리소설가 성준은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출판사 마케팅팀장 수민을 만나 직진 로맨스를 펼치다 우연히 마주하게 된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5. 알 수 없는 그 녀석
작성일 : 17-12-03 21:40     조회 : 301     추천 : 0     분량 : 8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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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고등학교 2학년 봄 방학이 막 끝났을 무렵, 수민은 성준을 만났다. 매일 반복된 야자로 피곤에 찌들었던 수민은 일요일을 핑계로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단잠에 빠져있었다.

 

  새벽부터 장을 보고 온 수민의 엄마는 아직도 자고 있는 딸의 등짝을 쫙! 하고 맛깔나게 때렸다. 수민은 갑작스런 통증에 놀라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몸을 꼬았다.

 

  “오늘 금희 할머니 좀 도와드리라고 했지? 여태 자고 있니?”

  “조금만 더 자면 안 돼?”

 

  엄마는 아직도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고 칭얼대는 수민을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안 돼! 빨리 일어나서 세수하고 짐 옮기는 것 좀 도와드려. 집 청소도 같이하고!”

  “조금만 더 누워 있다가 갈게.”

  “금희 할머니 손자가 점심 먹기 전에 도착한다고 했단 말이야.”

  “손자 오는 게 무슨 대수라고!”

 

  수민은 여전히 이불에서 나오지 않고 툴툴거렸다.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었는데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아 더 억울했다.

 

  “어서! 엄마는 음식 몇 가지해서 갈 테니 먼저 가서 도우고 있어.”

 

  엄마의 성화를 못 이기고 일어난 수민은 베개에 눌린 긴 머리를 대충 묶고 고양이 세수만 몇 번하고서 금희 할머니네로 향했다.

 

  사실 금희 할머니는 수민의 집인 2층 주택 바로 밑에서 세 들어 살고 있기에 1층으로 내려가면 할머니 집으로 통하는 문이 바로 있었다.

 

  할머니 집 대문 앞에는 이미 할머니의 것으로 보이는 낡은 짐들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수민은 문을 두드릴 필요도 없이 살짝 열려진 문틈으로 들어갔다.

 

  금희 할머니와 워낙 허물없이 지낸 탓에 거리낌 없이 할머니의 방부터 들어갔지만 반겨주는 주인은 없었다.

 

  수민은 큰 고민 없이 신발장에 있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집어 들고 창고로 쓰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할머니 혼자서 짐을 옮기기에는 무리였던가. 수민과 동갑이라는 손자가 쓸 창고 방은 전혀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먼저 수민은 꼭꼭 잠겨 있던 창문을 활짝 열어 낯선 손님으로 인해 사방으로 날리는 먼지들을 털었다. 아무렇게나 쌓여있던 박스 짐들을 거실로 옮겨두고 구석구석 내려앉은 먼지와 쓰레기를 쓸어내었다.

 

  오래되어 쓰지 않던 가구들도 정성스레 닦았다. 그 중 몇 십 년은 되어 보이는 나무 책상 위에 할머니의 물건이 아닌 것 같은 책들이 올려 져 있었다.

 

  수민은 물건의 주인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유독 눈에 띄는 책 하나를 들어올렸다.

 

  책 사이에는 오래된 사진 하나가 끼워져 있었는데 행복하게 웃고 있는 중년 여자와 남자 아이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처음 본 사진이지만 수민은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특히나 엄마로 보이는 여자의 손을 꼭 잡고 해맑게 웃고 있는 남자아이의 모습이 흐뭇했다.

 

  “누구냐, 너?”

 

  수민의 뒤에서 까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민은 뒤돌아보지 않고도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 수 있었다. 금희 할머니의 손자, 김성준!

 

  수민은 무엇인가 훔쳐보았다는 기분에 사진을 재빨리 숨기고 고개를 돌려 성준을 향해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의 서늘한 눈빛에 주눅이 든 수민은 말로만 들어오던 금희 할머니 손자의 얼굴을 힐금힐금 쳐다보다가 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새카만 눈동자와 대조적인 하얀 얼굴, 같은 18살 임에도 그의 얼굴과 몸은 이미 완성형이었다.

 

  “아, 나는 윗집에서 살고 있는…"

 

  세수도 제대로 하지 않아 초라한 자신의 모습과는 너무 비교가 되어 더 이상 성준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성준의 눈이 어디로 향해 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의 발소리에 수민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너 손에 뭐야.”

 

  매서운 그의 표정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친 수민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쓰레받기를 밟아 뒤로 미끄러졌다.

 

  “으악!”

 

  수민은 본능적으로 성준의 옷깃을 잡아챘고 성준 역시 그녀가 넘어질세라 머리를 감싸 안았다.

 

  눈을 질금 감았던 수민은 필시 느껴져야 할 고통이 없자 살며시 눈을 떴다가 자신의 코앞에 있는 성준의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덕분에 성준이 받치고 있던 손을 놓쳐 엉덩방아를 찧은 수민은 아릿한 엉덩이의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너, 뭐야? 왜 안 보이는 거지?”

 

  성준도 꽤나 놀란 표정이었다. 수민 역시 재빠르게 눈알을 굴리며 상황파악에 나섰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을 천천히 되짚어본 수민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새하얀 성준의 얼굴이 잔상으로 남아 그녀의 눈앞에 아른거려 그 얼굴을 지워내고자 고개를 휘저었다.

 

  처음 보는 남자와 영화에서나 보던 포즈를 취한 것에 가슴이 벌렁거리다가 일 도와주러 와서 민폐 짓을 한 스스로가 한심하여 자책했다.

 

  문득 자신을 보호해주려던 성준을 밀친 것이 미안해진 수민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감사를 표했다.

 

  “잡아줘서 고마워. 난 옆집에 살고 있는 전수민이라고 해.”

  “뭐지? 이런 건 처음인데……”

 

  성준은 수민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수민이 이해 할 수 없는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보이지 않는다든지, 고통이 없다든지, 자신의 손바닥을 뚫어지게 노려보는 그의 모습에 무서워진 수민은 슬금슬금 문 쪽으로 움직였다.

 

  “야, 잠깐. 사진 주고가.”

 

  사진을 여태까지 들고 있던 것도 잊은 채 겨우 문까지 도달한 그녀는 심장을 쓸어내렸다.

 

  혹여 다른 책이라도 잡힐까 재빨리 사진을 그에게 건넸다. 성준은 마치 그녀의 손이 불결한 듯이 사진을 홱 낚아챘다.

 

  그의 힘에 놀란 수민은 저도 모르게 사진을 잡고 있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더 이상 성준과 엮이고 싶지 않던 수민의 바람과 달리 오래되어 삭은 사진이 반으로 쭉 찢어졌다.

 

  성준의 표정은 말할 것도 없었고 수민의 얼굴은 흑빛으로 변했다. 성준의 표정이 약 5단계를 거쳐 바뀌었다. 놀람, 황당, 파악, 단념, 분노로 이어진 감정은 수민에게 향했다.

 

  “미…… 미안, 일부러 그런 건……”

 

  180cm는 훌쩍 넘는 성준이 무섭게 다가오자 수민의 얼굴 아래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동갑이라도 자신보다 힘이 쎈 남자라는 공포감에 휩싸인 수민은 뺨이라도 맞을세라 눈을 질금 감았다.

 

  다행히 그녀의 두려움과 달리 성준은 그녀의 손에 남아있던 사진 반쪽을 매몰차게 빼앗아 들고서 차갑게 말했다.

 

  “나가! 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마.”

 

  그의 말에 수민은 본능적으로 문을 찾아 거실로 나왔다. 그녀가 나가자마자 쾅! 하고 닫히는 방문에 수민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아이고, 수민이 왔나?”

 

  타이밍 좋게 도착한 금희 할머니가 넋 놓고 앉아 있는 수민에게 다가왔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수민은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금희 할머니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황급히 자신의 집으로 도망치듯 나왔다.

 

  수민은 할머니를 잘 도와주고 왔냐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갔다. 자신을 노려보는 성준의 매서운 눈빛이 떠올라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가라고 소리쳐도 제대로 사과라도 할 것을 그냥 쫓겨나듯 도망친 것이 후회만 되었다. 내일부터 같은 학교를 다니면 매일 얼굴을 마주쳐야 할 텐데 걱정부터 앞선 수민이었다.

 

 

  * * *

 

 

 ​ ​다음날 아침, 죽을상을 하고 학교로 등교한 수민은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친구들의 인사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어제 밤 내내 사진을 찢은 것이 마음에 걸려 잠도 제대로 못자고 온 그녀는 평소와 달리 어수선한 교실 분위기도 눈치 채지 못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잡념에 빠져 있던 수민을 깨운 건 앞자리에 앉아 있던 늘찬이었다.

 

  "우리 집에 세들 어 사는 할머니 있잖아……"

  "얘들아! 오늘 전학생 오는데, 키도 완전 크고 잘생겼다고 다들 난리야!"

 

  주희가 늘찬과 수민의 사이에 끼어들어 호들갑을 떨었다. 주희는 입에서 입으로 퍼졌을 전학생의 실체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알려주며 서울에서 어떤 학교를 다녔는지, 성적은 어땠는지, 어떤 친구들과 어울렸는지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다.

 

  "문과생이라던데, 우리 반에 왔으면 좋겠다."

 

  신나게 전학생에 대해 설명하던 주희는 관심 없어 보이는 늘찬과 유독 어두운 표정의 수민을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눈치를 보았다. 조용해진 주희 덕분에 늘찬은 수민의 말을 이어 물었다.

 

  ​"그래서, 세 들어 사는 할머니가 왜?"

  "할머니의 손자가 할머니 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 손자가 그 전학생이야."

  "뭐!? 넌 얼굴 봤겠네?"

 

  주희의 눈이 한층 초로초롱 밝아졌다. 이런 깡 촌에서는 볼 수 없는 미남형이긴 하지. 수민은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거리며 스스로 수긍을 했다.

 

  주희는 자세히 설명을 해 달라 수민을 재촉했다. 껄끄러운 마음이 남아있던 수민은 어찌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 한참을 망설이다가 자신이 본 그대로를 말했다.

 

  "얼굴은 엄청 하얗고 눈동자는 엄청 까매."

  "그게 뭔 말이야. 더 정확하게 말해봐."

  “무 쌍인데 눈도 엄청 크고"

  "또?"

  "음…… 늘찬이보다 잘생겼어."

 

  수민은 나름 깊은 고민에 빠졌다가 정답을 찾은 듯 늘찬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늘찬은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얼이 빠져버렸다.

 

  “푸하하! 여늘찬 수민이한테 또 차였어!”

 

  주희는 신이 나서 늘찬을 놀려대었고 수민은 자신의 말실수를 무마하고자 재빨리 사과를 했지만 이미 늘찬은 상처를 꽤 받은 표정이었다.

 

  다행히 타이밍 좋게 담임이 교실로 들어왔다. 선생님의 뒤로 따라 들어온 낯선 교복에 반 여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냅다 질렀다.

 

  소문만 무성했던 전학생이 같은 반이 되니 18세 소녀들의 마음은 이미 구름 위를 날고 있었다.

 

  더군다나 소녀들의 상상은 그의 실물에 미치지 못했으니 인기 남 1순위였던 늘찬의 자리는 몹시 위태로웠다.

 

  "자, 오늘부터 전학생이 우리 반으로 오게 됐다. 성준아. 친구들에게 인사하렴."

  "나는 김성준이라고 해. 잘 부탁한다."

 

  또 한 번의 환호성으로 성준은 소개를 마무리 했다. 수민은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어 안달 난 주희나 여느 여자아이들과 달리 손에 턱을 괴고 그가 선생님이 정해준 자리로 이동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성준이 가방을 책상에 걸고 자리에 앉는 찰나 그의 눈빛이 수민을 차갑게 흘겨보는 것이 느껴졌다. 수민은 생각지도 못한 그의 눈초리에 경악하며 턱을 괴고 있던 손이 미끄러졌다.

 

  역시나 사진사건 때문에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분명했다. 조례를 마친 선생님이 교실을 나서자 남녀 할 것 없이 모든 아이들이 성준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나마 전학생에 관심 없는 늘찬이 심드렁한 수민의 표정을 보고 말했다.

 

  "너는 전학생이랑 어제 인사했겠네?"

  "응."

  "성격이 어때?"

  "글쎄……"

 

  사실 수민은 자신이 뱉은 말과 달리 그의 성격을 단정하고서는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싸늘한 눈빛과 오만한 말투, 도저히 잊혀 지지 않을 것들이었다.

 

  "보기보다 활발해 보이는데?"

 

  늘찬의 말에 수민은 자신과 반대편 끝에 자리한 성준을 보았다. 친구들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그는 누구보다도 다정했고 살며시 미소 짓는 그의 모습에서 빛이 났다.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수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의 거짓된 모습에 속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것이 18살 수민이 성준에게 느꼈던 감정이자 편견이었다.

 

  수민은 자신의 손 언저리에 차가운 음료의 기운이 느껴지자 회상을 멈추고 현실로 돌아왔다. 어느새 자신의 손에 들려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고 어디서 온 것인지도 모르고 마셨다. 성준은 그런 수민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관찰하고 있었다.

 

  수민은 입안으로 들어온 커다란 얼음덩어리 하나를 아그작 아그작 씹어 먹으며 다시 상황정리에 들어갔다.

 

  지금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이 사람은 18살 사춘기 시절의 남자 아이가 아닌 31살의 건장한 성인이자 '하네스 작가'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주입시켰다.

 

  "그러니까…… 네가 김 성준 이라고?"

  "응."

  "금희 할머니 손자?"

  "응."

  "네가 하네스 작가이고?"

  "그래."

 

  반복적인 질문에 성준의 인내심이 바닥에 보일 즘에야 수민은 수긍을 했다. 그렇다면 성준은 공항에서 마주 쳤을 때 이미 자신을 알아 보았다는 소리가 된다.

 

  정 작가와의 실랑이를 벌이다 콘서트까지 함께 왔으니 수민이 무슨 일을 하는지, 출판사에서 어떤 역할인지까지 모두 알아보았을 것이다.

 

  "왜 공항에서 모른 척 했어?"

  "그냥."

 

  참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다. 고등학교를 한 학년밖에 같이 지내지 못했지만 다른 이들보다 이 녀석을 많이 안다고 자만했던 스스로가 창피했다.

 

  더군다나 정 작가에게 애걸복걸하며 매달린 자신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라 한 숨이 절로 나왔다.

 

  18살 때도 수민의 곤란한 모습을 즐거워하더니 31살이 되어서도 고약한 성격은 변한 것이 없었다. 수민은 모든 것을 제쳐두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근데 왜 갑자기 우리 출판사와 계약을 맺겠다는 거야?"

  "네가 있잖아."

 

  심드렁한 그의 말투와 달리 진지한 눈빛에 수민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불쑥불쑥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나쁜 습관은 13년이 지나서도 고쳐지지 않았나보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인 수민은 커피를 다시 들이 키고 진중하게 물었다.

 

  "장난치지 말고, 원래 다른 출판사하고만 계약을 했잖아."

  "진심이야. 너와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

  "나는 마케팅 담당이야. 교정이나 교열 따위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알아."

 

  그의 단 답에 더 이상의 대화를 진전시킬 수가 없었다. 말문이 막혀버린 수민에 성준은 자신만만하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었다.

 

  "난 그런 거 없이도 잘 쓸 수 있어. 그저 너는 내가 글을 완성할 수 있도록 보조만 해주면 돼."

 

  가까워진 성준의 얼굴에 깜짝 놀란 수민은 재빨리 뒤로 물러섰지만 덕분에 달아오른 얼굴을 숨길 수가 없어 연신 손부채질을 했다.

 

  진지한 그의 의도와 달리 이 녀석이라면 언제 자신의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수민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고등학생 때도 다른 친구들에겐 늘 웃는 상으로 대하면서 자신은 철저히 무시하고 괴롭혔던 그였다.

 

  수민은 그의 장난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그에게 늘 속고 살았던 18살 소녀가 아니란 사실에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적어도 13년 전의 물러 터졌던 전수민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네가 아무리 글을 잘 쓴다고 해도 난 이번 일 못 맡겠어. 굳이 나와 일을 해야겠다는 너의 저의도 의심스럽고 내가 전반적인 기획을 맡아서 책을 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고, 네가 우리 부장에게 전화해서 나 말고 기획팀이나 교열 팀으로 바꿔달라고 말해줘."

 

  숨도 쉬지 않고 쏘아붙이고 나서야 한숨 돌린 수민은 꽤 만족스러웠다. 나름 단호한 표정의 수민과 달리 성준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실소를 내뿜었다.

 

  "너 지금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난 너에게 내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냐."

  "그, 그게 무슨 뜻이야?"

  "네가 나의 담당이 되지 않겠다면 나도 굳이 벤자민 출판사와 계약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야.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전화는 충분히 해줄 수 있어."

 

  성준의 협박 아닌 협박에 수민의 온 몸에 닭살에 오도도 올랐다.

 

  순간 도깨비처럼 쫙 찢어진 눈매가 경고하듯이 수민을 노려보는 김 부장의 눈초리가 신기루처럼 보였다.

 

  이대로 계약을 파기하자고 우겨봤자 손해 보는 것은 자신이고 김 부장에게 하루 종일 깨지는 것도 수민이었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러 봐도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근데 그거 알아? 우리 12년 만에 만난거야."

 

  어떻게 하면 자신과 엮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수민의 모습에 성준이 씁쓸하게 말했다. 수민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성준의 속셈을 알 수 없는지라 불안한 마음이 급급하여 12년 만에 만난 동창에게 어리광만 피운 격이었다.

 

  그의 슬퍼 보이는 눈빛도 한몫했다. 머쓱해진 수민은 분위기를 쇄신해보고자 그의 안부를 어색하게 물었다.

 

  "미, 미국에선 어떻게 지냈어?"

  "푸하하!"

 

  억지로 입 꼬리를 올려 미소 짓는 그녀의 표정에 성준은 사람이 꽉 찬 카페인지도 잊고서 호탕하게 웃어대었다. 갑작스런 그의 웃음에 수민은 영문을 알 수 없어 당황하였다.

 

  "역시 너는 정말 단순해."

  "뭐? 너 이러려고 한국 왔니?"

  "응, 너 열 받은 얼굴 보고 싶어서."

 

  수민은 어이가 없어 웃음조차 나지 않았다. 계약이고 뭐고 이미 눈에 들어오는 게 없던 그녀는 성준의 능글맞게 웃는 낯에 남은 음료를 쏟아버릴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상종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 여겼다.

 

  “너 하는 거 보니깐 이번 계약은 진행 안 하는 게 좋겠어. 내가 부장에게 말할게.”

 

  수민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차갑게 돌아섰다. 일말의 기대를 한 자신이 한심해서였다. 부장에게 깨지 든, 자신에게 불이익이 오든 지금은 이 장소를 떠나야 숨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그녀를 뒤따라 일어난 성준이 다급하게 수민의 손을 낚아채었다.

 

  “놔.”

 

  수민은 그의 얼굴도 보지 않고 붙잡힌 손목을 빼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녀가 손목을 비틀어 그의 손을 피할수록 성준은 더욱 힘주어 잡았다.

 

  “가지마.”

 

  생각지도 못한 그의 애처로운 목소리에 수민은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에게 조롱당한 것은 분명 수민인데 어찌 성준이 애잔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흔들리는 그의 눈빛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옛날에도 이런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어디론가 곧 사라질 것 같은 처연한 눈빛……

 

  늘 사연이 있어 보이는 그 눈빛은 수민에게 답을 원하고 있었다. 어느새 그의 눈에 빠져든 수민은 다시 18살 고등학생 전수민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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