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공포물
경성크툴루
작가 : 최믹하
작품등록일 : 2017.11.17

경성에서 일어나는 수상한 일들, 괴력난신 소녀와 유학파 탐정사무소 소장님이 진실을 파헤쳐갑니다.

 
평이한 시체 이야기 (4)
작성일 : 17-12-03 21:33     조회 : 546     추천 : 1     분량 : 8248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마당은 지옥도 같은 풍경이었다.

 

 “이 미친놈이, 형이 찾아온다고 겁을 먹어도 유분수지, 사기를 쳐!?”

 “으, 으아아아악!”

 

 일단 저승에서 돌아온 망자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는 날뛰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고작 호두따위가 아니라 돌절구를 반으로 쪼갤 수 있을 것 같은 기세였다. 덩치가 큰 규현 씨가 그런 식으로 날뛰고 있으니, 마르고 호리호리한데다 바닥에 쓰러져있기까지 한 송현 씨는 그야말로 한 주먹 감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송현 씨가 규현 씨의 주먹에 요절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것은 모두 규현 씨와 송현 씨 사이로 날래게 몸을 밀어넣은 열다섯 살 소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나, 아니유, 좀, 말 좀 들어보시라니까유.”

 

 나였다.

 물론 내 얼굴을 본다고 규현 씨가 화를 더 냈으면 냈지, 진정할 리는 없었다. 당연한 상황이다. 과연 규현 씨는 목에 핏줄을 세우며 원성을 높였다.

 

 “이 미친 놈이, 사람을 죽였으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지, 그걸 덮자고 남을 끌어들여?”

 “누가 사람을 죽여, 혼자 술에 취해서 밤길을 걷다가 지가 지 명을 줄어놓고!?”

 

 내 등 뒤에서 송현 씨가 빽 소리를 질렀다.

 하기야 사람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면 억울하기도 하겠지. 그것도 멍청하게 술 마시고 위험한 길 걷다 떨어져 죽은 사람이 그런 억지를 부리면 더더욱이나 문제가 된다.

 

 “이리 와, 내 손으로 아주 그냥 명줄을 끊어놓아주마!”

 “자기는 저승에서 이승 돌아올 줄 알아서 쉽게 말하네, 그려!”

 “아니, 조금만 더 크게 말하면 동네 사람들이 다 듣겠슈.”

 “그래! 다 들으라 이거야!”

 

 저승에서 돌아온 형은 예의바르게 말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경아 씨는 어디 가고 이런 툽툽한 계집애를 방패막이로 써? 이 기생 오라비 같은 새끼야, 하는 일이라고는 여자한테 환심사는 것밖에 없냐?”

 “아니, 저, 저희는 고용관계인데요.”

 “시끄러워, 이 사기꾼아! 어디서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것이 사람을 그렇게 사기를… 그래, 그딴 목숨 이승에 있어서 무슨 좋은 꼴을 보겠냐, 너희 모두 같이 저승으로 가자, 외롭지 않게!”

 

 극단적이야…

 하지만 이대로 화를 내도록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대화로 풀어갈 수 있는 상황은 끝나버린 느낌이고. 나는 내

  뒤에 선 송현 씨를 흘끔 바라보고서 눈으로 물었다. ‘주먹을 써야할 것 같은데요.’ 안 그랬다가는 규현 씨가 먼저 주먹을 휘두를 테니까. 송현 씨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힘을 쓸 때다.

 주변 집기와 마당 상태를 눈으로 훑은 뒤, 나는 특별히 사용할 만한(혹은 부서져도 되는) 사물이 없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당은 널찍한 편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곧장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빠르게 두 걸음, 상대를 안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로 들어가서, 반사적으로 나를 막으려는 손을 쳐내고, 허리를 잡아서, 그대로 머리 위로 올린 다음,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물론 머리 위로 올린 건 그냥 퍼포먼스였다. 실제로 하려는 건 ‘센 힘으로 밀쳐서 힘을 보여준다’ 정도였으니까. 보통 ‘힘 좀 쓰는’ 사람들은 일단 크고 화려하게 기선제압을 당하면 순순히 말을 듣는 경향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크게, 화려하게.

 나는 그 와중에 규현 씨의 덜렁거리던 입술이 생각나서 몸을 바닥에 내동댕이 칠 때 최대한 힘을 뺐다. 중력의 힘만으로 바닥에 떨어질 수 있도록. ‘힘 좀 쓰는 사람’이면 이 정도면 제압되겠지. 내가 손을 놓자, 규현 씨는 허공에서 무의미하게 발버둥쳤다…

 

 “어, 어어억!”

 

 어억.

 규현 씨는 떨어지며 몸으로 손목을 깔아 뭉겠다. 뚝. 손목에서 아주 불길한 소리가 났다.

 

 “손목!! 손목!!!!”

 

 바닥에서 기겁해서 소리를 지르며 몸을 일으키는 규현 씨 오른 쪽 손목이 관절이 아닌 곳에서 기이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내 등 뒤에 숨어있던 송현 씨는 이 사태 앞에서 기겁을 하며 형 옆으로 기어갔다. 겁먹은 시선을 주고받은 형제는 덜덜 떨며 나를 바라봤다.

 아, 뭐야, 힘 좀 쓴다더니, 왜 이거 갖고 손목이 부러져?

 나는 예기치 못한 안전사고 앞에서 인상을 확 썼다… 맹세코 방금 그건 기선제압 정도였지, 협박을 하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 계획은 1. 화려하게 기선제압을 한다. 2. 협박을 한다. 였다. 계획에 맞춰 입이 움직였다…

 

 “이제 좀 정신이 드시유?”

 

 손목을 부러트린 뒤에 할 말은 아니었다.

 무슨 깡패 대사같았고, 확실히 더 최악이었다.

 

 “어, 어어어어, 어어어어…”

 “혀, 형, 손목, 손목 괜찮아? 아니, 아니, 무슨 짓이에요!?”

 

 송현 씨는 야만인 바라보듯 나를 봤다. 나는 억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방금 지가 눈으로 물어봤잖슈?”

 “나는, 저는, 아니, 그냥 가서 말려보겠다는 줄 알고…”

 “사람을 찢어죽이겄다는데 퍽도 말로 되겠시유.”

 

 말을 하면서도 뭔가 점점 악의 편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아니, 형이, 형이 그럴 생각은 없었을 겁니다! 그렇지, 그렇지 형?”

 “아, 아니, 그게, 내가…. 그럴 생각까지는…”

 

 규현 씨는 사색이 되어서 손목과, 동생과, 나를 연신 번갈아보고 있었다. 손목은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고, 원수를 갚아야겠다던 동생이 기어와서는 자기 손목을 보며 나를 규탄하고 있었고, 나는… 음… 갑자기 무서운 힘으로 자기를 집어던지더니 꼭 필요한 일이었다며 동생을 설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규현 씨는 엄청 진심이었긴 하단 말이야.나는 송현 씨에게 말하는 대신, 규현 씨에게 몸을 돌려 물어보았다.

 

 “진짜 그럴 생각 없었슈?”

 “으, 음.”

 “손으로 막 잡아 뜯는 시늉을 하든디?”

 “으, 으으음.”

 

 그래도 거짓말은 안 하는구만.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지가 말로 상황을 해결하려 하니까 말로 해결하러 온 줄 아는 것 같은디, 실은 지가 잘하는 건 이 쪽이유.”

 

 나를 향한 네 개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부러진 게 모가지가 아니라 손모가지일 때 이쁘고 착하게 말로 해유. 화 내지 말구, 시비 걸지 말구. 많이 억울하셔도 이대로 무덤 다시 들어가는 것보다야 대화라도 해보는 편이 괜찮겠지유?”

 “네, 네, 형, 빨리 그렇다고 해.”

 “네….”

 “자, 그러면 이제 두 분이 원한을 대화로 풀 준비가 되셨겠지유.”

 “예, 예에.”

 “됐습니다.”

 

 그리하여 시체와 폭력, 안전사고로 점철된 회담이 시작되었다.

 탐탁치 않게 툇마루에 나란히 앉은 형제의 앞에는, 두툼하고 툽툽하며 악당같이 굴고 있는 계집애가 눈을 부라리고 서서는 안전을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색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결국은 송현 씨가 치고 나왔다.

 

 “왜 나한테 복수를 하려고 해?”

 “그야… 네 녀석 때문에…”

 

 규현 씨는 이를 갈며 송현 씨를 바라보았지만, 바로 옆에 서 있던 계집애가 헛기침을 하는 통에 급속하게 기세를 죽이고는 바닥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너만 아니었음 죽을 일도 없었어.”

 

 안타깝게도 송현 씨는 한 마디라도 지면 죽는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아예 부모님한테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그래, 낳지 않았으면 죽을 일도 없었다고.”

 

 규현 씨가 송현 씨를 노려본 것과, 내가 한층 더 크게 헛기침을 한 것은 동시였다. 규현 씨는 저도 모르게 ‘그렇죠, 역시 저 새끼가 나쁘죠?!’ 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말았다. 이번에는 송현 씨가 바닥을 내려다 볼 차례였다.

 

 “그러고보니… 부모님은?”

 “지금은 두분 다 돌아가셨어... 형이 죽은 게 충격이 좀 크셨던 모양이야.”

 “죄책감도 없냐?”

 “글쎄, 형이 술먹고 자빠지지만 않았으면 경아 씨가 형 때문에 구박받을 일도 없었지.”

 

 갑자기 나온 이야기에 규현 씨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도 아차 싶었다. 나와버렸다. 송현 씨가 적당히, 어른스럽게, 잘못한 적 없어도 잘못했다고 적당히 빌며 넘어가지 않는 이유, 한 마디도 지지 않았던 이유.

 형만 동생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았다. 동생도 형을 원망하고 있다.

 

 “구박… 받았다고.”

 

 규현 씨는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형도 악의는 없었겠지만, 어머니는 누구라도 원망을 하고 싶어했지.”

 “악의로 자기 목숨 거는 사람이 어딨냐.”

 “악의가 없었더라도, 아버지가 장손을 잃었다고 시름시름 앓다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경아 씨를 못살게 굴 때는 진짜 죽은 사람이라도 찾아내서 한번 더 죽이고 싶더라.”

 “이게, 뚫린 입이라고.”

 

 규현 씨는 한 대 치기라도 할 듯이 송현 씨에게 주먹을 들어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걸 막지는 않았다. 규현 씨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거든. 규현 씨는 갑자기 주먹이 무거워지기라도 한 듯 주먹으로 허공을 몇 번 휘젓다가 맥없이 팔을 내렸다. 규현 씨의 목소리는 이제 한 풀 기죽어 있었다.

 

 “그래도 네가 치사하게 군 건 사실이잖아.”

 “형이 경아 씨의 시집살이를 꼬아 놓은 것도 사실이지.”

 

 규현 씨는 찔린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런. 그 표정을 보는 것 만으로도 규현 씨의 생각을 알 것 같다. 그 좋아하는 마음은 여전히 진짜였잖아. 자신의 마음을 거절한 사람이지만, 여전히 좋아해. 그 사람을 아프게 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

 송현 씨도 딱히 상대를 찌른 다음에 기세등등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약간 후회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규현 씨도 그걸 알아본 모양이다.

 

 “아니, 애초에 네가 경아 씨를 뺏어가지만 않았으면 이럴 일은 없었다고. 그걸 후회한 적은 없냐?경아 씨를 사랑한 건 내가 먼저였어. 너만 가만히 있었으면, 경아 씨 시집살이가 꼬일 일도, 온 가족이 죽어나갈 일도 없었다고.”

 “그딴 걸로 나한테 죄책감을 뒤집어씌우고 싶으면, 형이 못난 남자인 것부터 탓하지 그래. 형이 경아 씨 눈에 안 찼으니 이 꼴이 난 거잖아?”

 

 두 사람 눈에 불이 튀었다.

 

 “네가 쓸데없이 내가 좋아하는 여자한테 관심가지지 않았으면 이 꼴 안 났어. 추접스러운 새끼.”

 “지가 매력이 없는 걸 왜 남 탓을 해? 그런 못난 사내니까 경아 씨한테 차였지.”

 “이게, 이 새끼가?”

 

 둘이 서로 멱살이라도 잡으려는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내 존재감을 과시해야겠다고 판단했고, 다시 한번 천둥처럼 큰 헛기침 소리를 내려는 찰나였다…

 

 “이게 무슨 소리야? 여보?”

 

 저 멀리, 골목길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 좀 지친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자제력으로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 목소리. 송현 씨를 여보라고 부르는 여자. 이 모든 상황의 발단. 만삭의 경아 씨.

 우리는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어, 어, 어, 여보.”

 

 송현 씨는 눈에 띄게 딱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문 너머에서는 의아한 것 같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불렀는데 안 오고 뭐해? 이리 와서 짐 좀 들어줘. 난 더는 못 들겠다. 겉절이 하신 거 좀 담아주셨는데… 음? 이게 무슨 냄새야?”

 

 시, 시체 썩는 냄새.

 사랑하던 여자와 썩어가는 시체 상태로 만나게 된 규현 씨는 기겁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송현 씨는 문을 향해 달려나가며 우리에게 빠르게 손짓했다. 이번 손짓은 말이 없어도 명확했다. ‘어디 숨어!!!!’

 하지만 아까부터 확인한 바지만, 마당엔 눈 씻고 봐도 숨을 구석이 없었다. 규현 씨도 그렇게 판단한 모양이다. 나와 함께 ‘열려있다던’ 1층 현관으로 뛰어든 규현 씨는 자기네 집 아니랄까봐 자신만만하게 들어갔지만, 이윽고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어, 여, 여기 있던 옷장 어디 갔지?”

 “당신 집이잖아요!?”

 “그게 3년, 아니, 4년 전인데요?!”

 “뭐 들어갈 만한 다른 옷장은 없어요!? 뒷문이라도? 아니, 뒷문 열쇠는 송현 씨가 가지고 있댔는데… 아, 2층, 2층은 어때요?”

 “꿈도 꾸지 마요, 올라갈 때 계단이 엄청 심하게 삐걱거리니까.”

 “그럼 어쩌라고요!?

 

 우리는 소리 죽여 서로를 지탄했지만, 이런 일로 옥신각신할 때가 아니었다. 곧이어 현관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더 의아해하는 여자의 목소리.

 

 “뭐에요, 당신, 된장 독이라도 엎었어요? 왜 이렇게 냄새가.. 장은 아닌 것 같고… 뭐가 썩었나?”

 “아, 아니, 아니, 아냐, 전혀, 이상하네, 하하, 당신 코가 예민해서 그런가?”

 

 우와, 송현 씨 거짓말 더럽게 못해.

 우리는 저도 모르게 발발 떨리는 발걸음으로 더 깊게, 더 깊게 집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결국 우리 눈 앞에 있는 건 훤히 열린 안방이었다. 그리고 안방에는 옷장이 있었다. 엄청나게 미봉책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대안도 없었다.

 우리는 절박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다가, 결국 현관문이 열리기 직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급하게 안방 옷장 속으로 몸을 던지고 문을 닫았다.

 

 집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의 목소리.

 여자는 문득 중얼거렸다.

 

 “…뭐지?”

 “아, 아니, 뭐, 뭐가, 왜?”

 “방금 무슨 문 닫히는 소리 같은 것이 들린 것 같은데…”

 

 그리고 잠깐 뜸을 들이고.

 

 “그리고 당신은 왜 그렇게 땀을 흘리고 있어요?”

 

 송현 씨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엄청 수상했다.

 여자분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당신, 뭐 숨기는 거 있어?”

 “아, 아니, 아니아니아니? 전혀? 하하하!”

 

 과연 형제가 사랑을 놓고 다툴 법한 여자였다. 감각도 좋고, 눈치도 빠르고, 판단력도 좋다. 물론 이런 상황이 아니었을 때 내릴 법한 평가였다.

 젠장할, 그 집 안방 벽장 속에 숨어있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야… 소장님, 도와줘요….

 여자는 한 톤 더 낮아진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 요즘 행동이 수상하다고 내가 말했나?”

 “아니, 아니?”

 “온갖 이상한 핑계로 나를 계속 친정으로 보내려고 하고… 오늘은 집에서 수상한 냄새가 나고… 누가 급하게 나가는 것 같은 문소리가 나네…?”

 

 최악이다.

 

 하지만 나는 잠시 이 상황을 되짚어보고는 다시 판단했다.

 아니, 아니다.

 최악은 아냐. 방금 남편의 내연녀가 뒷문으로 도망갔다고 생각했다면, 송현 씨가 저 부족한 연기력으로 적당히 의심받는 동안 우리는 열심히 도망 나가면 돼…

 

 그 때다.

 

 “아니지, 뒷 문은 잠겨있어. 당신 주머니에서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당신이 열쇠 꾸러미를 들고 있는 거고. 그 열쇠는 복사본을 만든 적도 없어. 당신이 열쇠 복사본을 어디서 만드는지 알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목소리는 남편에 대한 차갑고 냉철한 평가과 함께 이 상황에 대한 추리를 마쳤다.

 

 “그렇다면 정체가 누가 되었든, 그러면 뒷 문으로는 나가지 않았어… 아직 집 안에 있다는 거지.”

 

 아, 제발요. 제발.

 이렇게 차갑고 냉철하고 정확한 추리 하지 말아주세요.

 

 “어딜까?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지만 문 소리가 들렸다면, 문이 달린 곳으로 숨었다는 거지. 하지만 우리집은 다 미닫이 문이니까, 여닫이 문은 몇 개 없어.”

 

 죽을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곳이라면… 여기지.”

 

 목소리가 점점 다가오다가, 굉장히 가까운 곳에서 멈춰섰다. 송현 씨는 필사적으로, 거의 아내의 치맛자락에 매달리다시피 애원했다. 씨알도 안 먹혔지만.

 

 “아, 아니에요, 뭔가 착각이 있는 모양인데…”

 “봐, 여기 처음 보는 치맛자락이 삐져나와있네.”

 

 억, 나였다.

 

 규현 씨는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다, 시선을 내려 내 치맛자락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도 그 쪽으로 따라갔다.

  말한대로, 내 치마가 옷장 문에 걸려있었다. 이걸, 이걸 왜 못 봤을까… 물론 당황했으니까 못 봤겠지. 젠장할, 소장님이 왜 맨날 바지나 미니스커트를 입는지 알겠다. 망할. 망할...

 

 여자는 부드럽게 말했지만, 그 목소리는 서릿발이 뚝뚝 떨어졌다.

 

 “이걸 열면 속에 뭐가 있을까?”

 “아무, 아무 것도 없는…”

 “웃기지 마.”

 

 여자는 격정적으로 벽장 문을 열어젖혔다. 우리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어두운 벽장 속으로 죽음처럼 환한 빛이 몰아닥쳤다. 만삭의 여인이 희번뜩한 눈으로, 숨을 헐떡이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문제의 경아 씨는, 드디어 만난 경아 씨는 우리를 바라보다가 거칠게 몸을 돌려 송현 씨에게 삿대질을 했다.

 

 “봐, 이럴 줄 알았지. 여기 쪼끄만 기집애랑 시체가….?”

 

 경아 씨는 말하다 말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 격정적인 눈이 기세를 한 풀 잃고 다시 천천히 벽장 속을 더듬었다… 경아 씨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중얼거렸다.

 

 “시… 시체…가…”

 “그래서! 내가!!! 아아아아아!!!! 여자가 아니라!!!!!”

 

 송현 씨는 경아 씨 뒤에서 절규했지만, 경아 씨는 그런 목소리가 들리지조차 않는지 더듬더듬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규현 씨… 삼 년 전에… 죽었다고…”

 

 와. 어떻게 봐도 곤란했다.

 남편이 숨기고 있는 것이 내연녀인 줄 알았는데, 형이었다. 그런데 그 형은 결혼 전 자신의 구혼자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거절당한 뒤 사고로 죽었다. 어떻게 봐도 웃으며 만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심지어 3년 전에 죽어서 썩어가는 시체다.

 

 이 끔찍하게 어색하고 이상한 상황에서, 망자는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해보려고 했는지 있는 힘껏 상냥하고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시체의 썩은 볼이 벌어지며 거뭇하게 흙과 먼지가 낀 이빨이 반짝 빛났다.

 

 “아, 안녕, 경아 씨. 지, 지나가던 길에… 잠깐 들렀어.”

 

 미소만으로는 안될 것 같았는지, 시체는 두 손을 무해하다는 듯 들어보였다.

 안타깝게도 한쪽 손은 아까 내가 집어던졌을 때 부러진 상태였다. 산들산들 흔들던 두 손 중 오른쪽 손목이 반으로 접히며, 뒤로 홀랑 넘어갔다.

 

 똑.

 

 “히이이이익...”

 

 경아 씨는 폐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그대로 기절했다.

 

 
작가의 말
 

 이젠 정말 정신차리고 일과! 경성크툴루와! 현재 작업 중인 고대해! 책과! 운전면허에만 집중하려고요!

 집중할 일이 너무 많지만 또 다 집중하지 않으면 끝낼 수가 없군요. 슬픕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1월 셋째 주에 돌아옵니다. (1) 2018 / 1 / 5 798 0 -
19 스토커의 죽음 (2) 2017 / 12 / 27 652 0 9242   
18 스토커의 죽음 (1) 2017 / 12 / 18 536 0 7804   
17 행복한 모녀 (2) 2017 / 12 / 14 548 0 7529   
16 행복한 모녀 (1) 2017 / 12 / 13 561 0 5468   
15 평이한 시체 이야기 (6) 2017 / 12 / 10 515 0 4242   
14 평이한 시체 이야기 (5) 2017 / 12 / 9 509 0 13155   
13 평이한 시체 이야기 (4) 2017 / 12 / 3 547 1 8248   
12 평이한 시체 이야기 (3) 2017 / 11 / 30 511 1 9445   
11 평이한 시체 이야기 (2) 2017 / 11 / 28 522 1 7984   
10 평이한 시체 이야기 (1) 2017 / 11 / 27 602 1 5210   
9 손 (7) 2017 / 11 / 25 541 1 2192   
8 손 (6) 2017 / 11 / 24 528 1 5416   
7 손 (5) (2) 2017 / 11 / 23 597 2 5647   
6 손 (4) 2017 / 11 / 22 548 2 4503   
5 손 (3) 2017 / 11 / 21 546 2 7048   
4 손 (2) 2017 / 11 / 20 562 2 4795   
3 손 (1) 2017 / 11 / 19 735 2 7237   
2 물고기의 눈(2) (2) 2017 / 11 / 18 874 1 7402   
1 물고기의 눈(1) (2) 2017 / 11 / 17 2416 2 12369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