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외통수(Checkmate) - ③
승희를 데리고 대표실로 들어선 동원은 곧바로 문을 잠갔다. 그리고 대표실 내에 있는 개인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10여 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동원의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들이 다 떠올랐다. 하지만 정작 승호에게 뭐라고 해야 할 지, 또 나중에 승희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에 대해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는 사이 마침내 화장실 문 앞에 다다랐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열었다. 안에선 이전부터 인기척을 느끼고 기다리고 있던 승호가 문을 연 사람이 동원인 걸 알고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동원아? 어떻게 된 거야? 벌써 다 끝난 거야?”
그렇게 묻는 승호의 얼굴엔 벌써부터 설마 하는 기대감이 묻어났다. 하지만 동원은 그런 승호를 보고 있자니 더더욱 사실을 이야기하기가 망설여졌다. 한편 승호는 승호대로 계속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 동원의 태도가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러나 동원은 여전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단지 흔들리는 눈빛으로 승호의 얼굴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후로도 한참을 그 상태로 우두커니 서 있다 마침내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형…….”
간신히 입을 여나 싶었는데 겨우 이게 다라니, 승호는 조바심이 났다.
“응? 왜? 왜 그러는데?”
동원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참을 망설이다 대답했다.
“…… 실패……했어.”
승호는 어리둥절했다.
“뭐?”
그러자 동원은 꽉 움켜쥔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며 확 고함을 내질렀다.
“다 엉망이 돼버렸다고!”
승호는 당혹스러웠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뭐가 잘못됐어?”
“학현 선배가 죽었어.”
“뭐?”
승호는 놀라서 다시 물었다.
“그럼 지혜는? 지혜는 어떻게 됐는데? 죽었어?”
“아니, 지혜가 학현 선배를 죽였어.”
승호는 순간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아니 그럼 회관으로 간 일은? 실패한 거야?”
“어. 그리로 갔던 500명 모두 지혜한테 몰살당했어.”
승호는 경악하며 휘청거렸다. 그러다 겨우 옆의 벽을 짚고 서서 정신을 가다듬은 뒤 다시 동원에게 되물었다.
“그럼 이제 회관으로 갈 방법은? 없는 거야? 그런 거야?”
“응……. 갈 방법도, 갈만한 사람도 이제 없어.”
낙담한 승호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한참을 말없이 허공만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승희에게 눈길을 돌렸다. 승희는 이미 이전부터 승호와 동원의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는 잔뜩 불안해하고 있었다. 승호는 승희의 손을 가만히 부여잡았다. 승희는 그제야 마음을 놓으며 안도했다. 승호는 승희의 그런 모습이 더욱 가여워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그러다 우는 게 들키기라도 하면 승희가 마음 쓰여 할까 싶어 애써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승희의 왼쪽 손바닥에다 천천히 손글씨를 썼다.
‘승희야, 이제 우리 밖에 나갈 수 있게 됐구나.’
그러자 갑자기 얼굴이 환해진 승희가 승호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더니 이번엔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어보이며 다시 동원의 목도 끌어안았다. 급기야는 그 상태로 좋아라 방방 뛰기까지 했다. 그러나 동원과 승호의 뺨에선 소리 없는 눈물만 계속 흐르고 있었다.
승희는 기쁜 마음에 두 사람을 연신 끌어안기도 하고 뺨을 비비기도 하다, 문득 두 사람이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승희는 두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는지 의아했다. 그래서 걱정되는 마음에 두 사람의 얼굴에서 흐르고 있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 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앞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두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바로 지난 고생은 다 뒤로 하고 이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승희는 그제야 두 사람이 우는 게 자신과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에 비로소 마음이 놓인 승희는 다시 두 사람을 연신 끌어안으며 곧 있을 생환의 기쁨을 미리 만끽했다.
잠시 후 승희의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승호는 다시 승희의 손바닥에다 손글씨를 썼다.
‘승희야, 오빠 지금 가 볼 데가 있거든? 그러니 이따 12시에 밖에서 다시 만나면 안 될까?’
승희는 승호의 말이 살짝 이해가 안됐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아무려면 어떠냐 싶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승희의 그런 천진난만한 모습에 승호는 다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승호가 동원을 돌아봤다. 동원은 승호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에 품에서 작은 칼을 꺼내 승호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학현이 주워 와서 동원에게 얼떨결에 건네주었던 화림의 칼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승호는 결국 그 칼을 받아 들었다.
동원은 말없이 승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돌아서서 조용히 소파로 향해갔다. 승희는 자기 오빠가 걱정이 된 나머지, 가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승호는 승희가 자신을 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차마 먼저 돌아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승희가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로소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 승호는 문을 잠그고 세면대로 가서 물을 틀었다. 그리고 물이 채워지기를 기다리면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나 거울 속의 승호 또한 거울 밖의 승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물이 다 받아지자 승호는 수도꼭지를 잠갔다. 그리고 이를 꽉 악문 다음 왼쪽 팔의 소매를 걷어붙이고, 칼집에서 칼을 뽑아 들고, 손목을 물에 담근 다음, 칼끝을 왼쪽 손목 위로 가져가서, 칼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여기까진 기세 좋게 한 번의 망설임도 없었다.
하지만 곧 눈빛이 어지럽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칼을 움켜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를 여러 차례……, 급기야는 다리마저 후들거리게 되더니 잔뜩 찌푸려진 미간에선 어느 새 식은땀이 송골송골 배어 나와 맺혔다. 정신마저 점점 혼미해지는 통에 머릿속은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것처럼 하얘졌고, 숨은 내쉬어지지 않은 채 자꾸만 들이켜지기만 했다. 얼굴이 빨간 풍선처럼 부풀면서 점점 상기되어 갔다. 그로인해 눈도 함께 치켜떠지며 눈알도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동그래져갔다. 그러다 곧 얼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졌을 그때, 승호는 다시 한 번 입술을 꽉 악물며 마침내 손목을 칼로 쓱 그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새빨간 피가 승호의 손목에서 분무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피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물속에서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며 순식간에 물 전체를 붉게 물들여 갔다. 물이 붉어질수록 승호의 얼굴은 점점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해갔다. 그와 함께 의식도 점점 아득해져 갔다.
잠시 후 화장실 안으로부터 승호가 정신을 잃고 풀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동원은 저도 모르게 승희를 품안으로 꼭 끌어안았다. 반면 승희는 동원이 아까부터 계속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걱정스런 얼굴로 동원의 손바닥에다 손글씨를 써서 물었다.
‘왜 그래?’
그러나 동원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실을 말할 수도 없었거니와, 거짓으로 둘러댈 말은 더더욱 떠오르지가 않았다. 동원이 계속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하고 있자, 승희는 걱정되는 마음에 동원의 얼굴을 바라보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부질없게도 승희의 시선은 동원을 똑바로 향하지 못한 채 옆으로 비껴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동원은 오히려 감정이 더 북받친 나머지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아버렸다. 그리고 끝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승희는 처음엔 동원의 그런 행동이 너무 뜻밖이라 못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곧 우선은 달래주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 이리와 안기라는 듯이 동원을 향해 양팔을 활짝 벌려주었다. 그러자 동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울음을 팡 터트리며 승희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계속해서 밀려드는 서러움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되자, 급기야는 바닥으로 털썩 내려앉으며 승희의 무릎 위에 얼굴을 파묻은 채 어린애처럼 울먹였다.
승희는 더 이상 동원이 왜 슬피 우는 것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어미가 막 태어난 자식을 보듬어주듯, 자애로운 시선으로 동원을 내려다보며 부드러운 손길로 찬찬히 반복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같은 시각 본회의장에서는 얼마 안남은 사람들이 초조한 눈빛으로 전광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부디 이름이 붉은 색으로 변하는 의원이 나타나기를 그들은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그렇게 애타게 고대하던 기적이 눈앞에 펼쳐졌다. ‘김진남’ 의원의 이름이 녹색에서 돌연 붉은 색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러자 흥분한 이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환호성을 터트렸다.
“와아!”
“우와!”
그러고는 기쁨에 겨워 서로 얼싸안으며 야단법석을 떨어댔다. 그러던 중 한 남자가 본회의장 밖으로 뛰쳐나가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죽었다! ‘김진남’ 의원이 죽었다!”
절망감에 로텐더 홀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채 죽을 때만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뜻밖의 전언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친 남자를 쳐다봤다. 하지만 너무도 얼떨떨했던 나머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만 멀뚱멀뚱 껌벅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남자는 다시 한 번 호들갑을 떨며 외쳤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우리 이제 살았다고요! 이제 11명이 됐다고요!”
사람들은 그제야 얼굴이 환하게 피어났다. 그러고는 본회의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랬듯이 벌떡 일어나 서로 얼싸안고 환호했다.
“와아!”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 기쁨에 겨워 무작정 고함을 지르며 달리는 사람, 두 손을 모으고 혹은 바닥에 꿇어앉아 자기가 믿는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사람 등 모두들 저마다의 방식대로 그 기적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국회의 모든 스피커에선 잔뜩 흥분한 여자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여러분! 방금 마지막 270번째 의원이 사망한 걸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우린 이제 살았습니다!”
그 방송은 동원과 승희가 있는 대표실의 스피커에서도 흘러나왔다. 승희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흐느끼고 있던 동원은 고개를 들어 승희를 우러러보았다. 승희는 여전히 자애로운 시선으로 동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원은 순간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정작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힘든 쪽은 승희인데……,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날 위로하려 저리 애쓰고 있는데……, 도대체 난 이게 뭐하는 짓일까?
동원은 눈물을 훔쳐내고 다시 승희 곁에 앉았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죽을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승희를 지켜주겠다 마음을 다잡으며 승희를 품에 꼭 안아주었다. 승희는 그제야 눈을 감으며 동원에게 몸을 맡겼다.
동원은 승희를 품에 안고서 대표실 소파에 비스듬히 등을 기댔다. 그러자 승희는 성치 않은 몸으로 많은 일을 겪은 것이 힘들었는지 곧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동원은 그런 승희가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에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뺨을 어루만져주기도 하면서 어서 자정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편 ‘김진남’ 의원의 이름이 붉은 색으로 변하는 즈음부터 본회의장 방청석의 어둑한 구석에 아무도 모르게 나타나 돌아가는 상황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꽃님도, 이때 다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