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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범죄자를 증오한 살인마
작가 : 훈재
작품등록일 : 2017.11.3

서울의 한 아파트. 상반신과 하반신이 짤린 채로 식어있는 시체가 발견된다. 사건의 첫 목격자는 그날 피해자와 약속이 있던 한 방송사의 기자였다.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시체의 모습. 목격자가 목격자이니만큼 사건은 순식간에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수사진은 곤혹을 치르는 도중 일주일 뒤 또다른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이후 추가로 발견되는 시체. 확인된 시체만 5명에 이르게 된다.
사건의 실마리도 잡히지 않자 수사진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때 첫 목격자였던 기자가 찾아온다. 그리고 기자는 수사진에게 그날 피해자의 집에 찾아간 진짜 이유를 설명한다.

 
6. 먼지 쌓인 기억중의 한 가지.
작성일 : 17-12-03 02:45     조회 : 272     추천 : 0     분량 : 5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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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

  그는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다닌 지 반년이 된 학교를 나왔다.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딱히 사귄 친구도 없었고, 말을 해 본 아이도 없었다. 그저 지루한 오전 시간과 점심을 이제 어떻게 처리해야지 하는 것들이 하루 일과에 추가됐을 뿐이다. 학교에 있으면 지루하긴 했지만 시간은 어떻게든 때울 수 있었다. 초등학교 수업은 그가 배우기엔 너무나도 하찮은 것들이었다. 그는 모든 답을 알고 있었고 문제를 보자마자 계산이 끝나 있었다. 끙끙대는 아이들이 너무나도 하찮게 느껴졌다. 한 번은 곱셈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담당 교사가 그에게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였다. 담당 교사는 늙은 바보였다. 그는 당연하단 듯이 문제를 풀고 돌아와서 자리에 엎드리고 누웠다. 그러자 담당 교사가 그를 다시 불러내 두 자리 수의 곱셈에 대해 문제를 내었다. 평소 태도가 불량했던 그를 공개적으로 망신시켜주고 교사로서의 권위를 제대로 세우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교사의 의도를 알아챘고 구역질이 났지만 다시 칠판 앞으로 나가 문제를 풀어 주었다.

  교사는 생각했다. 고작 초등학교 1학년 이다. 8살 짜리 코흘리개일 뿐인데... 이렇게 끝난다면 공개적인 망신거리가 될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늙은 바보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이미 자신의 꼴은 상당히 봐줄 만 했다. 초등학생이라도 자신이 물어뜯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학생들은 두고두고 뜯어먹을 수 있는 커다란 살점을 발견했고 이것을 절대 놓아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어느 반에나 한 두 명씩 있는 불량한 아이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바보야? 얼마나 쉬운 문제를 내면 3초 마다 풀어버리는 거야? 난 공부 하나도 안해서 모르겠지만 저건 우리 수준이 아닌 거 같은데? 근데 저걸 냈단 건 선생님은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했나본데, 재가 똑똑한 거야. 선생님이 멍청한 거야?"

  이런, 존댓말도 못 배운 건가. 늙은 바보는 속에서 끓어 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저 녀석을 때려 눕히고 싶은 충동이 올라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것들을 풀어놓을 수는 없었다. 지금은 그런 시대니까. 이젠 이 녀석들이 다니는 곳의 이름은 국민학교가 아닌 초등학교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니까.

  늙은 바보는 숨을 삭히고 기꺼이 웃음을 보여 주었다. 기분과 상반되는 표정은 어른의 징표를 보여주는 것이다. 니들은 아직 감정 조절도 못하는 철부지들이란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늙은 바보가 입을 열면서 불량한 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선생님한테 그런 말 하면 될까? 오늘 점심까지 반성문 써 오세요."

  불량한 아이가 웃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안 써오리라는 건 그 말을 한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다시 속이 무거워지려 하는 것을 겨우 튕겨내었다. 그리고 칠판 앞의 그를 응시하였다.

  "별로 애기를 안 해 봐서 몰랐는데 1학년 치곤 굉장한 실력을 숨기고 있었네요. 자, 다들 박수!"

  반의 학생들이 힘껏 박수를 쳐 주었따. 급우들은 그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저 늙은 바보를 처형해 주기를 바랬다. "너는 바보야." 라고 공공연하게 드러내 주길 원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짓뭉개주길 원했다.

  "그럼 이 문제도 풀어볼까?"

  늙은 바보가 숫자를 휘갈겼다. 그는 어째서 이렇게 지길 싫어하고 자신보다 아래인 녀석에게 무시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걸까. 그는 어렸을 적부터 친구가 없었다. 그가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던 게 아니다. 친구들이 그를 싫어했다. 깡마른 체구에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주근깨 많은 안경잡이. 친구들은 그를 바보, 바보거리며 놀리곤 했다. 그는 바보가 되기 싫었다. 그래서 미친 듯이 공부만을 하였다. 딱히 공부빼곤 할 것도 없었다. 해 봤자 독서나 그림 그리기 였을 것이다. 그는 바보 취급 당하기 싫어 공부를 했을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점수가 올라가고, 등수가 높아져도 그는 바보라고 놀림을 당했다.

  -바보는 너희들이야!

  외치고 싶었다. 한 마디라도 하고 싶었으나 목구멍에서 모든 말이 걸려 다시 내려가곤 했다. 말 한 마디도 못하는 자신이 정말로 바보인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공부에 빠져들었다. 나를 무시할 수 없게. 훗날 바보들은 너희였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그 열등감을 안고 교사가 되었다. 모든 직업에는 비전이 필요하다. 그게 사람들을 대하는 직업이라면 더더욱. 직업적 신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코 그 일이 즐겁지도 않으며 보람차지도 않다. 늙은 바보에게 교사란 직업은 도피처였다. 자신이 바보가 아니라 이렇게 똑똑해 졌단 걸 보여줄 수 있는 징표. 그 뒤에 꽁꽁 숨어 있는 아이 한 명이 있었다. 지금 여기서 무너진다는 건 그 아이를 빙하기에 던져놓는 것과 같았다. 지금 이 녀석은 자신을 벗겨내려 하고 있다. 그건 안 되지, 절대로 안 돼. 늙은 바보가 숫자를 다 쓰고 그에게 분필을 넘겼다. 네 자리 수의 곱셈이었다. 마음 같아선 방정식이나 분수 같은 배우지도 않은 개념을 내놓고 싶었지만 그건 스스로에게 너무 비참한 승리였다. 독주와도 같았다.

  분필을 넘겨받은 그는 생각했다. 결과를 분석해야 한다. 집에 있는 어머니는 결과를 잘 분석하지 못했다. 그저 매 주마다 두들겨 맞고 식어버린 아버지의 사랑이 다시 불타오르기를 기다렸다. 자,

  결과를 분석하라.

  그의 자그마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미 답은 나왔다. 늙은 바보가 낸 문제는 너무나도 쉬웠다. 숫자를 쓰는 것과 동시에 답이 추출되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행동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로 인해 얻게 될 이득과 손실. 모두 꼼꼼히 계산해 보아야 한다. 문제를 푼다면? 눈앞의 바보를 꿇어앉힐 수 있다. 문제를 풀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교사에게 약간의 바보 취급만 당하고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이 바보에게 바보 취급을 당하라니. 죽기보다 싫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가 보기에도 초등학교 1학년이 풀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한 자리 수의 곱셈도 끙끙대는 급우들을 보면서 그가 도출해 낸 결과였다. 즉, 문제를 풀었을 때 1학년 치곤 높은 수준으로 평가될 지. 아니면 영재라며 호들갑을 떨면서 어머니를 학교에 부를지가 관건이었다.

  그렇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 싫었다. 어머니는 그에게 평소 "엄마가 학교 갈 만한 일은 만들면 안돼." 라고 수시로 말씀하곤 하셨다. 그랬으므로 어머니를 학교에 오게 할 수는 없었다. 이 문제를 풀지 않는 게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손은 이미 답을 적고 있었다. 답을 다 적고 나서 쓰디 쓴 침을 한 모금 삼키면서 생각했다. '바보에게 바보 취급 당하는 건 죽기보다 싫어.'

  결국 그는 욕망에 지고 말았다. 여기서 늙은 바보가 박수를 치며 감탄하면서 "당장 교육원에 전화를 걸어야겠어요!" 라고 했다면 그에 대한 훌륭한 복수였을 것이다. 그를 엿 먹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보는 바보였다. 늙은 바보는 부들부들 떨면서 그가 써 놓은 답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이 정도는 빠르게 구해낼 수 있었다.

  4444X2378=?

  쉬웠다. 늙은 바보에게도 자신만의 커리어가 있었다. 답을 도출해 낸 뒤 그가 써 놓은 답을 보았다.

  역시는 역시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초 1이 풀기에는 무리였다. 그것도 네 자리 수의 곱셈을 10초 만에 풀어낸다니. 말이 안 되지 않은가. 늙은 바보의 답과 그가 칠판 위에 써 놓은 답은 만의 자리 숫자에서 달랐다. 늙은 바보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게 되었다.

  그때였다. 늙은 바보의 미간에 깊게 주름이 패이는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그가 미소를 지었다. 늙은 바보는 다시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보았다. 맙소사, 틀린 것은 자신이었다. 이 코흘리개에게 졌다고?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늙은 바보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잠시만요." 하며 복도로 나갔다. 전화를 받지도 않고 끊어버린 뒤 계산기를 꺼내 들었다. 심심풀이로 문제 풀 때를 대비해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늙은 바보는 숫자를 입력했다.

  4. 4. 4. 4. X, 2, 3, 7, 8=

  늙은 바보는 고개를 저었다. 천만 자리 수의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말이 안 된다. 절대로, 절대로 말이 안 된다. 늙은 바보는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계산기에 들러붙은 숫자들은 그의 열등감에 들러붙었다. 늙은 바보는 슬슬 쭈그려 앉아 떨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늙은 바보는 또 한번 그의 기대를 만족시켜준다. 늙은 바보는 그가 네 자리 수의 곱셈을 풀었다는 것에, 8살 짜리가, 초등학교 1학년이 문제를 풀었다는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로지 그 아이가 눈에 들어와 강한 열등감에 가려져 자신밖에 보이지 않았다. 위험했다. 이러다간 8살 짜리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그는 아이를 다독인 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보는 문을 염과 동시에 박수를 치며 말을 꺼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문제는 절대로 아니었는데 말이야."

  불량한 아이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걸 틀렸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러면서 칠판 앞에 서 있는 그에게 손을 얹었다. 그는 바보가 나감과 동시에 반 친구들에게 환호를 받았다. 넌 최고야. 저 늙은이를 밟아줬어. 등등. 그는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어차피 이 녀석들도 다 같은 바보였다. 바보를 밟아 줬다고 바보들에게 칭찬을 받다니.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친구의 대단한 실력을 알게 되서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친구가 왜 맨날 엎드려 잠만 자고 있는 줄도 알겠네. 수업 내용이 너무 시시해서 그랬구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 바보는 속으로 영재교육원 따위엔 절대 전화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런 협력 능력이 결여된 놈이 나보다 뛰어난 삶을 산다고? 절대 안 되지. 그가 알았다면 크게 기뻐할 생각이었다.

  "자, 그럼 이제 들어갈까? 수업 시간이 곧 끝나 가지고."

  그는 고개를 다시 한 번 더 끄덕이고 들어가려했다. 그때 불량한 아이가 입을 열었다.

  "안돼! 이대론 못 끝내! 바보 선생과 천재 학생의 대결의 마지막을 봐야 된다고!"

  불량한 아이의 말에 급우들이 일제히 선동되어 소리를 질렀다.

  "맞아!"

  "끝까지 해요!"

  "무서운 거냐?"

  "우우!"

  늙은 바보의 눈썹이 뒤틀렸다. 제 아무리 잘해봤자 자연수의 곱하기였다. 단순한 1차원적 문제다. 눈앞의 이 녀석은 괴물이긴 했지만 아직 자신에게 따라올 바는 아니었다.

  "자, 조용 조용."

  녀석들이 3초가량 떠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럼 정말 끝까지 해 볼까요?"

  "네!"

  학생들이 소리를 질렀다.

  "자, 그럼 조금 새로운 문제를 내 볼게요. 계속 문제 풀어도 괜찮겠니?"

  늙은 바보가 그에게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심심하던 참이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늙은 바보는 칠판에 숫자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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