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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별똥별
작가 : 보장대밥수
작품등록일 : 2017.11.5

별똥별은 별 그 자신의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별똥별-17
작성일 : 17-12-02 20:32     조회 : 335     추천 : 1     분량 : 4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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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람들이 흙과 돌과 모래를 가죽자루에 채워넣는다. 누군가는 채운 자루를 받아들고 개울로 나른다. 누군가는 그것을 개울물에 던져넣는다. 작은 흙담이 세워지자 물길이 이곳저곳으로 갈라진다. 누군가는 괭이을 들고 새 물길을 파낸다. 농사를 지으려는 것도 아니고, 물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다. 당연히,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이 고생을 하는 것도 아니다. 아, 그건 아니지. 살리기 위해 하는 일이지. 작업현장을 감독하던 봄비가 헛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성곽을 바라본다. 흑단들소 들판을 떠날 때보다 벽이 사람 두어 명의 키만큼은 높아짐을 느낀다.

 "모로비 씨. 내일 다시 성문 앞으로 갈 것이니 사냥꾼들에게 채비하도록 일러두십시오."

 

 2.

 나바재가 이끄는 군대는 흑단들소 들판에 천막과 목책을 설치해 성곽을 포위 중이다. 그러나 사다리는 만들지 않는다. 싸울 생각도 없다. 그러나 누구도 나오지 못하게 할 셈이다. 그는 나무판에 선을 새기며 물자를 점검하느라 봄비가 들어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이 판자는 무얼 하는 데 쓰는 물건입니까?"

 어깨에 얹어진 손이 제법 따뜻하다. 나바재는 놀라지 않고 뒤돌아본다.

 "이것 말입니까? 제 기억과 생각을 옮겨놓는 물건입니다."

 나바재는 처음으로 자기 기록에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을 만나 고무된 듯 하다. 저 작살무늬는 곡식을, 저 마름모꼴은 화살을 의미한다며 열을 올려 설명한다. 그는 봄비도 다른 사람들처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일까봐 조금은 걱정이 된다.

 "재밌군요. 나중에 저도 알려주십시오. 꼭 필요하게 될 겁니다."

 봄비가 그의 목판에 손을 얹는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의논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성 안으로 흘러들어가는 수로는 끊어놓았지만 우물까지 말릴 수는 없는 노릇. 싸움을 오래 끌면 지친 사람들이 불만을 품게 될 거요."

 "봄비 씨. 그 말은 왠지 당신답지 않습니다. 물을 계속 쓰게 만들면 그만인걸요. 기름과 불화살을 준비한 이유가 그것 때문 아니었나요?"

 "죽는 사람은 적을수록 좋으니까요. 내일 아침 다시 투항을 권고하러 성문 앞으로 갈 겁니다. 당신도 준비하세요."

 

 3.

 밤이다. 하늘 위 꽃들이 봉오리진다. 마치 다 죽어가던 별빛처럼 사그라든다. 그러나 나무그늘에서 밤은 완전한 암흑을 의미하지 않는다. 봉오리진 꽃들은 아침을 암시한다. 봄비는 이 곳으로 건너오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해온 듯 하다. 지금은 다른 불안감이 고개를 든다. 저 꽃들도 시들고 떨어진다면? 가지에 다른 꽃이 피어날 것인가? 언젠가 저 큰 나무도 영영 말라죽어버리면 그 땐 무엇을 죽여 우리를 살려야 하는가?

 "염통먹는 자여."

 누가 사색을 방해한 건지 고개를 둘러보니 역시 모로비 씨다.

 "생각이 많으신가 봅니다. 몇 번을 불렀는데도 알아채지 못하시다니요."

 "미안합니다. 채비는 다 끝났습니까?"

 "사냥꾼들은 잠들지 않은 채로 아침까지 대기할 겁니다."

 봄비가 그녀를 올려다본다. 눈에 그늘이 보인다.

 "모로비 씨. 그냥 주무세요. 야간 보초는 교대할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괜찮습니다. 자다 깬 사람들이 잘 싸울리가 없습니다. 싸우기 전에는 긴장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싸우러 가는 게 아닙니다. 물길을 막았으니 내일 쯤이면 충분히 성 안의 사람들이 동요할 테니... 그 동요에 쐐기를 박으러 갈 생각이오. 피곤에 절어있는 모습은 별로 효과가 없을걸."

 그가 손으로 눈가에 진 어두운 보라색 그늘을 훑는다.

 "남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잖습니까."

 

 4.

 성문이 열린다. 조악했던 나무문은 그 동안 몇 번의 보수를 거친 것인지 도끼 몇 개로는 부술 생각조차 들지 않을 것 같다. 기름먹여 수차례 말린 가죽으로 갑옷과 방패를 만들어입은 전사들이 활과 창을 들고 제사장을 호위한다. 그는 엷고 빨갛게 물을 들인 옷을 입은 채로 봄비를 향해 걸어간다.

 "죄인들이 오셨군."

 봄비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다.

 "무엇이 죄인가?"

 "어버이를 죽이고, 그 고기를 먹는 것이 바로 죄라오."

 실소를 머금는다.

 "하하. 내 어버이는 모두 늙어죽었고, 땅에 묻혔다네."

 "봄비, 자네가 바로 첫 번째 죄인이네. 나는 자네가 흑단들소 어르신의 목을 창으로 찌르던 때를 잊을 수 없어."

 "이보시오."

 "그리고 그 배를 가르고 뼈를 바숴버리고 아직도 움직이던 염통을 꺼내 씹어먹었지. 왜, 이제 와서 그런 적 없다고 변명할 생각이신가?"

 "그 때 나를 책망하던 단 한 사람이 당신은 아니었지. 동백꽃 씨는 적어도 창 한 번 던지지 않고 고기 한 점 먹지 않았다오. 그러나 당신은..."

 제사장이 두 팔을 벌려 봄비를 껴안고 등을 토닥인다. 모로비 씨가 시위를 당기지만 봄비가 즉각 그녀를 제지한다.

 "죄는 남은 삶을 회개하는 것으로만 씻을 수 있다네."

 봄비가 제사장을 밀쳐내며 말한다.

 "더 얘기하는 건 소용이 없겠군. 너에게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다. 그것을 죄라고 정한 것은 누구냐?"

 "그야 당연히 겨울을 몰아내고 빛과 온기를 내려주는 저 어머니 나무이시다. 어머니 나무께서는 살리는 것을 좋아하고 죽이는 것을 싫어하시니까. 그리고 너희들은 우리가 어머니 나무로 가는 길을 막고 있지."

 "세상의 여름이 살아있는 것을 사랑해서 찾아오는 게 아니듯이, 겨울이 오는 것도 살아있는 것들을 죽이기 위함은 아니다."

 그는 이제 제사장을 쳐다보지 않는다.

 "누가 이 얘기를 해줬는지 알고 있나?"

 제사장은 대답하지 못한다. 봄비가 다시 그를 쳐다본다.

 "모르는 모양이군. 계속 생각해봐라."

 

 5.

 봄비가 손짓하자 사냥꾼들이 기름과 불화살들을 나른다. 그가 성벽 위에서 쳐다보는 보초들을 향해 소리친다.

 "우리가 이미 이 성으로 향하는 물길을 막았다! 우물만으로는 농사를 짓기는커녕 너희가 마시기에도 턱없이 모자랄 터!"

 창을 들고 선 보초들의 자세가 풀어진다.

 "너희가 항복하지 않으면 매일 밤 기름을 던지고 불화살을 쏠 것이다! 너희들은 얼마 없는 물로 불을 꺼야 할 것이다! 밤에는 집이 불타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에 잠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제사장의 얼굴에도 동요하는 빛이 역력하다.

 "그러나 나는 동족들을 태워죽이고 싶지는 않아! 싸우고 싶지 않다면, 너를 싸우게 하는 이를 붙잡고 성문을 열어라! 무고하게 죽지 말고 항복해라! 약속한다! 누구도 집과 밭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은 여전히 그 곳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가 제사장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러나 그 항복을 네 놈이 결정하게 두지는 않을 거다. 넌 회개한 사람이잖아. 죄인에게 굴복해서는 안되지. 내가 장담하건대, 너는 항복하더라도 반드시 죽일거다. 죽은 능금아재의 목숨 값을 치룬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이제 들어가서 마지막 순간까지 싸울 준비나 해둬."

 봄비가 거칠게 몸을 돌려 손짓하자 사냥꾼들이 돌아갈 채비를 한다.

 "모로비 씨."

 "듣고 있습니다."

 "오늘 밤부터 성 안으로 불화살을 날리세요.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무기를 버리게 하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 죽여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6.

 불화살을 쏘아댄 첫 번째 밤에는 모두가 불을 끄느라 바빴다. 누구도 싸우고 싶지 않았으나 입 밖으로는 생각을 꺼내지 않았다. 사흘 째에는 성문을 열고 탈영하려는 자들이 붙잡혔다. 제사장이 그들을 직접 처형했다. 네 번째 밤에는 성벽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 투항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엿새 째에는 지붕에 불이 붙어도 물이 없어 끌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제사장을 붙잡아 묶고는 성문을 열고 투항했다.

 

 7.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봄비는 제사장이 쓰던 의자에 앉지 않는다. 그는 가장 먼저 나바재 씨에게 명해 들소 모양의 조각상과 제단을 부수고 불을 질러버린다. 제사장은 묶인 채로 그 광경을 보며 사람들에게 소리친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죄라는 것을 알고 회개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긴 겨울이 올지도 모른다고. 봄비는 성 안 사람들에게 사상자가 얼마나 있는지 묻는다.

 "여섯 명이 죽었습니다."

 "그 중에 타는 건물에 깔리거나 화살을 맞아 죽인 이들이 있습니까?"

 "누구도 그렇게 죽지 않았습니다. 모두 탈영하여 군율을 어긴 죄로 제사장님께서 처형하셨죠."

 봄비가 제사장을 끌고 허물어진 들소 조각상 위로 올라가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는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음을 슬퍼한다.

 "전에 약속한 그대로, 누구도 죽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집과 땅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환호한다. 그는 날이 갈수록 환호에 모멸감을 느낀다.

 "여기 이 제사장은 너희들을 구해주지 못했다! 죽은 짐승의 조각상을 깎아놓는 것도 다 소용없는 일이야! 나조차도 너희들을 구해주지 못해!"

 봄비의 돌칼이 제사장의 목에 살짝 닿는다.

 "내가 해준 말 기억나? 누가 그 얘기를 해줬는지 아냐고 물어봤었지."

 거친 칼날이 울대를 온통 헤집어놓는다.

 "아마 못 맞췄을 거다. 흑단들소가 해준 말이거든."

 제사장이 코와 입과 모가지의 상처로 피를 뿜으며 쓰러진 채로 봄비를 올려다본다. 미간에 잡혀있던 주름이 스륵 풀린다.

 
작가의 말
 

 돌아왔습니다.

 1부와 마찬가지로 2부도 결국은 봄비의 이야기입니다. 꾸준히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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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객 17-12-03 00:04
 
봄비가 돌아왔군요. 한결 성장해서.... 원래 크고 넓은 지도자이기도 했지만.... 계속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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