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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공포물
경성크툴루
작가 : 최믹하
작품등록일 : 2017.11.17

경성에서 일어나는 수상한 일들, 괴력난신 소녀와 유학파 탐정사무소 소장님이 진실을 파헤쳐갑니다.

 
평이한 시체 이야기 (3)
작성일 : 17-11-30 23:10     조회 : 511     추천 : 1     분량 : 9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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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던 사람이 이사를 갔다고 생각해도 무방한 상황이긴 했는데, 이걸 어쩌나. 이사를 갔다고 해야 하나, 안 갔다고 해야 하나.

 이 집이 최송현 씨 집이라는 걸 알면 다시 화를 내겠지.

 나는 결국 이도저도 아닌 태도를 취하기로 결심했다. 내 결심이 이도저도 아닌만큼, 내 입에서 나온 말도 별로 말 같지는 않았다.

 

 “어… 으… 저…”

 

 망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상대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야 당연히, 원한을 품고 저승에서 돌아왔는데 복수할 대상이 이사를 갔으면 당혹스럽기도 할 것이다. 이 넓고 넓은 서울 바닥에서 죽은 몸으로 어떻게 상대를 찾아. 충격과 혼란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망자는 갈팡질팡하는 시선을 주체하지 못하며 나를 바라보다 머리를 감싸안았다 하며 혼잣말인지 내게 하는 말인지 확실하지 않은 말을 주워섬기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엄청 당황한 것 같았다.

 

 “아니… 저… 갑자기 이런 꼴을 보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저는 아니.. 그게.. 아는 집인 줄 알고.. 저..”

 

 성질이 불 같지만 잘 당황하는 사람이었던 건가…

 나는 최선을 다해서 정중하게 대답했다.

 

 “아, 아니, 괜찮습니다…”

 “저 혹시 이 집에 옛날에 살던 최송현이라는 사람이 어디 갔는지… 혹시.. 아니 알 리가 없지…”

 

 나는 일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망설였지만, 상대는 내 태도를 다른 의미로 알아들은 모양이다. 망자는 앓는 듯한 신음소리를 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거, 상황 엄청 이상해졌는데… 처음에는 당황해서 전화를 걸어온 상대를 진정시키더니, 이제는 원한을 품고 그 사람을 찾아온 시체를 진정시킬 차례란 말인가. 이상해… 어색해… 오늘 하루 뭔가 좀 이상해….

 아냐, 아냐, 여기서 이도저도 아니게 굴면 안돼. 거짓말, 거짓말을 하는 거다!

 

 이 혼란과 공포의 상황을 수습할 사람은 여전히 나밖에 없었다. 원래는 주먹을 쓰려고 왔는데, 소장님처럼 대화로 해결하려니 심장이 뛰고 혼란스럽지만, 어떻게든 해보는 수밖에 없어!

 

 소장님! 도와주세요!!

 

 나는 마음 속으로 필사적으로 소장님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실제처럼… 매끈한 얼굴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양장을 하고… 그럭저럭 진짜 소장님 비슷한 얼굴이 마음속에 그려졌다. 언제나 입만 살아있는 소장님답게, 뭔가 말을 시키기도 전에 소장님의 얼굴이 내게 속삭였다.

 

 ‘일단 아무 말이나 하다가, 막히면 그냥 쥐어박아.’

 

 …쓸모 없는 말이었다.

 나는 빠르게 체념했다. 이제 믿을 사람은 나밖에 없다. 지금 절망과 당황에 빠져 있는 시체를 안심시키고, 최송현 씨가 여기 있다는 사실은 알리지 말되, 원한을 대화로 풀 수 있도록 유도해볼 것, 정 안되면 주먹을 쓸 것.

 

 좋아, 간다.

 나는 침착하게 두 손을 들어올리며 시체의 주의를 끌었다.

 

 “자, 자, 침착하세요. 침착하세요.”

 “아, 네, 네…”

 

 망자는 당황하며 나를 바라보다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정신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자, 갑니다, 특별 안심 서비스!!!

 

 “자, 절 걱정하시는 모양인데 저는 시체를 본 것으로 별 문제가 없어요.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시체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요. 밥 먹을 때도 별 문제 없을 겁니다.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다, 다행입니다.”

 “자, 그럼 당신에게 생긴 첫 번째 문제는 해결되었어요.”

 “그렇네요.”

 

 망자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긴장한 나도 괜히 따라서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다. 안돼, 이 상황의 프로는, 책임자는 나야…! 다음, 다음 할 일은 뭐였더라? 송현씨가 여기 있다는 걸 알리지 않는 것? 그럼 내가 새로 이사 온 사람인 척 해야하나?

 나는 마음 속에 들끓는 혼란 속에서 표정만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저, 그 쪽은 누군가 사람을 찾고 계신 모양이에요. 그런데 이승을 하직하신 지는 몇 년 되신 것 같고요. 그래서 그 쪽이 지금 여기 사정을 잘 모르시는 모양이네요…”

 

 좋아, 이정도로 적당히 말을 하면 그럭저럭 새 입주자 느낌이고…

 근데 뭔가 마음에 걸리는데… 뭐더라… 아, 그냥 호칭이 마음에 걸리는 거야. 시정 잡배 대하는 것도 아니고, 저승에서 돌아오기까지 한 사람인데. 잠깐, 그런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조선말에 있기는 한 거야?

 자, 진정해, 이름을 물어보고 부르면 되는 거야. 침착한 태도를 취하자. 침착하게… 침착하게…

 나는 침착하게 질문했다.

 

 “참, 그 쪽 그 쪽 하니 좀 그렇네요. 괜찮으세요? 조선말 중에 저승에서 돌아오신 분을 존대하는 표현은 잘 모르겠어서…”

 “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역시 성함으로 불러야겠죠?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오다복이라고 해요.”

 “저는 최규현이라고 합니다.”

 “네, 반가워요, 규현 씨.”

 

 나는 소장님의 행적을 필사적으로 재현하며, 그러니까 얄밉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망자는 얼결에 내 손을 잡고 흔든 다음, 망설이다가 드디어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망자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거 말씀 좀 물읍시다.”

 “예에.”

 “혹시 이런 상황을 자주 보십니까?”

 

 나는 몰려드는 기시감 속에서 대답했다.

 

 “음, 어, 좀 그런 편이쥬.”

 “요즘 세상은 3년 전보다 훨씬 험악해진 모양이군요.”

 “뭐… 규현 씨 보시기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또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현대 사회에 대한 오해의 여지를 아주 크게 줘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건 별로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으으, 으으으, 적당히 내가 새 주민처럼 보이고는 있는 모양이다. 좋아. 그러면 다음, 다음 할 일… 송현 씨와 만나면 대화로 해결할 수 있도록 유도해보기.

 하

 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새로 이사온 사람(가짜지만)이 이전 세입자에게 갑자기 저승에서 돌아왔을 정도의 원한을 대화로 풀라고 강권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산 사람이면 술이라도 살 수도 있겠지만, 죽은 사람에게는 도대체 무슨 유익이….

 

 잠깐, 나는 침을 삼켰다. 뭔가 생각날 것도 같은데?

 

 “저, 규현 씨, 그런데…”

 

 규현 씨가 죽은 사람이니까 연희동에서 용산까지 오는데 며칠이나 걸렸겠지. 그 말은, 저 썩어가는 몸으로는 아무래도 운신의 폭이 좁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금 최송현 씨가 기존의 집에서 어디로 이사갔는지 모른다는 상황은, 복수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과 별 차이가 없다.

 복수를 포기하는 것보다는 대화라도 해보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거는 내가 어떻게든 제안해볼 수 있는 범위야.

 

 “… 아까 분노로 찾던 그 분이랑 성과 항렬자가 같으시네요?”

 “예?”

 “최송현 씨 말이에요.”

 

 당황해서 나와 어색하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던 망자는 문득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방금 전까지의 대화를 까맣게 잊은 듯, 텅 빈 것처럼… 그리고 그 빈 자리는 갑자기 분노로 채워졌다. 아주 갑작스럽게.

 망자는 나를 처음 봤을 때처럼, 그 들끓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최송현… 최송현… 그 망할 자식!!!”

 “헉.”

 

 분노?

 방금 좀 이상했는데… 일반적인 사람들은 말하다 말고 천천히 감정이 쌓인다. 하지만 방금 그건 좀 달랐다. 갑자기 들끓는 것 같은 분노. 방금 전까지는 잊고 있었던 것 같은… 누가 억지로 심어놓은 것 같은 분노. 이상해, 생경해. 분노가 먼저 생기고 기억이 그 뒤에 따라오는 느낌이다.

 

 망자는 뒤늦게 말라붙은 눈동자에 증오를 끓어올리고 있었다.

 

 “저는 분명히…. 아니… 그녀석에게 복수하기 위해 돌아온 겁니다… 복수하기 위해… 깨어나라고… 그래요, 저는 이생에 미련이, 미련이, 그녀석이 경아 씨만 뺏어가지 않았어도, 그 멍청한 새끼가 경아 씨를 홀리지만 않았어도!!!!”

 

 망자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지, 진정하세요.”

 “진정하고 말고가 어딨습니까, 그 새끼 때문에 제가 지금 이모양 이꼴이 되었는데, 나는, 나는 죽어버렸단 말입니다! 죽은 거로도 복수할 수 없다면, 세상에 복수할 일이 뭐가 남았겠어!!”

 

 반쯤 닫힌 현관문 너머에서, 아주 작게 숨을 들이마시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문 너머에 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 정도나 알아들을 수 있는 작은 소리였다.

 

 섬뜩할 만 하지. 커다란 덩치의 망자가 비이성적-비합리적-급작스럽게 분노하는 모습은 좀 섬뜩하긴 했지만, 다행히 송현 씨와는 달리 나는 겁에 질리지는 않았다. 이미 나는 그가 살아있을 때 호두를 맨 손으로 깨는 수준의 악력을 가졌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빈약하다는 의미로.

 흠.

 나는 빠르게 망자를 한번 더 훑어보았다. 걷거나 움직이는 모습이 민첩하지는 않다. 그보다는 약간 둔한 감이 있다. 몸이 죽었기 때문이겠지. 그냥 죽은 신체를 이용해 움직이는 것 같은데… 죽었다 살아난 것 외에는 뭔가 별 특별해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생전보다 뭔가 대단한 힘을 쓸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 내가 확실히,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죽었다 깨어난 이유는 그녀석 때문입니다. 아마 그럴 거에요, 그녀석에게 복수하지 않으면…!”

 

 나는 살짝 인상을 쓰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돈 받고 오기로 한 이상, 나는 송현 씨를 저 분노에서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지금쯤 문 너머에서 사색이 되어 있을 송현 씨를.

 

 하지만 저 비이성적인 분노를 어떻게 진정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진정시킬 수 있을까… 아냐, 처음에 만났을 때도 규현 씨는 분노하고 있었어. 처음에는 어떻게 진정시켰지?

 아마… 놀랐다.

 그래, 놀랐어. 다른 방향으로 주의를 환기시키기만 하면, 의외로 간단하게 분노를 잊었던 것 같은데… 그래. 주의를 환기시키기만 하면 다시 대화로 돌아갈 수 있었어. 아무래도 이상한 분노다.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방향과는 너무 달라.

 

 하지만 그걸 고민하고 있기에는, 규현 씨가 더욱 거칠게 숨을 씩씩거리고 있었다. 슬슬 누군가 말려야 할 때였고… 그리고 나는 노련한 전화 상담원의 태도로, 상대의 말 속에서 뭔가 실마리를 찾아내기도 한 터였다.

 

 규현 씨는 부들거리며 외쳤다.

 

 “지금, 지금 그녀석을 찢어 죽여서 같이 저승으로…”

 “엇, 자, 잠깐만요.”

 

 망자는 숭칙하게도 두 손으로 뭔가 찢는 시늉 같은 것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덥썩 망자의 두 손목을 잡아 멈췄다. 뭐, 손목 잡히면 시집가는 시대는 끝났으니까. 아닌가, 내가 손목을 잡았으니 망자가 나한테 시집을 와야하는 건가.

 

 나는 망자의 두 손을 잡고 그 두 눈을 마주했다. 손도 잡고 눈도 마주쳤으니 마음이 통할 때였지만서도… 마음이 통하긴 무슨. 얼결에 외간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해버렸다… 상대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계집애는 처음이었는지, 망자는 깜짝 놀라며 손목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될 리가 없지.

 무슨 바윗덩이를 밀치려고 한 것처럼, 꿈쩍도 안하는 내 손에 망자가 어리둥절하는 사이 나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말해! 말해 다복아!!

 아무 말이라도 대화처럼 보이고 상대를 진정시킬 수 있는 거면 뭐든 좀 던져보란 말야!!!

 

 “저, 그러니까,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지금 정확히 자기가 왜 깨어났는 지는 확신하지 못하시는 거네요.”

 “아니, 저는 최송현이 그놈을…!”

 “아마라고 하셨잖아요? 아까 들어보니 화가 나시기는 하는데, 그 이유는 정확하지 않으신 것 같던데요. 그래서 최송현 씨에 대한 원한은 그냥 가설 아닌가요?”

 

 당황한 표정으로 망자는 몇 번 내 손을 털어내려고 했지만, 나는 뒷 산 얼굴바위처럼 태연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마치 첫사랑처럼, 운명같이 다가오는, 피할 수 없는 아귀 힘이었다…

 

 “저, 규현 씨는 그냥 밑도끝도 없이 화가 나시는 것처럼 보여서요. 일단 먼저 화가 나고, 그 이유를 찾아서 갖다 붙이시는 느낌이에요. 혹시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올 때, 누가 당신을 깨우셨나요?”

 

 내 얼굴이 점점 다가가는 통에, 망자는 결국 대답하고 말았다.

 

 “네… 네. 깨워준 사람이 있었는데…”

 “그럼 당신에게 복수하라고 말한 사람도 그 사람이겠군요. 잘 기억해보세요. 누군가 당신한테 뭔가 복수하라고 했어요? 혹은 그런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 기억이 있나요?”

 

 

 “아니, 어… 네, 뭐 그런 것도 같은데…”

 “그래서 당신은 ‘앗, 복수해야지!’ 하고 일어나신 거군요. 그러다가 생각난 것이 최송현 씨여서, 자신이 최송현 씨에게 복수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신 건가요?”

 

 당황함과 어색함 앞에서, 그리고 흐릿한 기억 앞에서 망자의 눈이 오른쪽 위로 살살살살 굴러갔다. 깨어났던 당시를 떠올려보는 모양이다.

 

 “저, 어… 그게… 아뇨… 또 꼭 복수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자신감 없는 목소리.

 

 “그게… 저도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확실히 기억이 안 납니다.”

  “그럼 최송현 씨에 대한 복수가 당신 존재 의미는 아닌 거네요?”

 “어… 어.. 그게 그렇게.. 되나요..?”

 “스스로도 잘 모르시니까요.”

 

 망자의 눈이 혼란으로 흐려졌다. 뭔가 혼란스러운 기억을 더듬어가려 했지만, 그렇게 엄청 잘 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망자는 시선을 허공에서 굴리다 몇 번 인상을 쓰고, 결국 한숨을 깊게 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자주… 시체가 일어나는 모양이군요…”

 “아니 뭐… 네… 그렇죠…”

 

 이제 완전히 분노의 기미는 사라져 있었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망자의 손목을 놓았다. 외간 남자 손은 처음 잡아 보는데… 음. 죽은 사람이니까 좀 봐주지 않으려나.

 

 “하여간 뭐, 분노는 이제 잦아드신 것 같으니까 넘어가고… 아까 찾으시던 것이 최송현 씨였죠? 또 화내지 마세요.”

 “네, 네.”

 “최규현과 최송현이면 성도 항렬자도 같은 걸 보아서 형제거나 사촌이실 것 같은데요.“

 “네, 그렇죠.”

 

 망자는 갑자기 던져진 질문에 어색하게 웃었으나, 아까 꼭 깨물었던 입술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망자는 침착하게 입술을 꾹꾹 눌러 붙였다.

 아무리 분노가 좀 이상하다고는 해도, 어쨌든 두 사람 사이에는 원한이 있기는 있다. 규현 씨의 죽음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은 술과 천변이겠지만, 보통 원한은 살아있는 사람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게다가 연애 관계에 대한 원한. 으음.

 

 다복아, 여기서 서로의 원한을 좀 눌러참을 수 있도록 최대한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말해보자.

 소장님이라면 어떻게 말할까, 소장님이라면…

 

 “어쨌든 우리는 방금 이야기에서 최송현 씨에 대한 원한에 비합리적인 분노가 개입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잖아요. 규현 씨는 복수 때문에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계시지만, 되짚어보면 꼭 복수하기 위해 돌아온 것 같지는 않다고도. 당신이 최송현 씨를 찾는 이유가 인위적인 복수를 위해서라면, 저는 도와드릴 수가 없어요.”

 

 큰일났다. 소장님처럼 말하려고 하다가 얄미워졌어. 얄밉게 말하는 제 2의 서울 말투 자아가 생겨버린 느낌이야. 아아, 이게 다 제 옆에서 서울말을 얄밉게 해댄 소장님 때문이에요. 하지만 내 제 2의 자아는 고삐가 풀려버린 것 같았다.

 

 “아니, 그게… 다복 양, 일단… 제가 화를 좀 못 참는 건 사실이지만, 저희 사이에 원한이 있기는 있는 터라…”

 “네.. 원한 문제, 게다가 집안 문제에 외부인이 끼는 건 죄송하지만 망자가 산 자를 공격하는 상황이라면 저는 산 사람 편을 들 수밖에 없거든요. 이해하시죠?”

 “예…”

 

 고인은 얼결에 내 말을 인정해버리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저도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혹시, 그 원한이라는 게 저승에서 돌아와야 할 정도로 큰 문제인가요? 아까 들어보니 경아 씨라는 사람이 엮인 것 같은데. 뭔가 연인 문제이신 건가봐요.”

 

 망자는 한 대 맞은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솔직히 본인이 최송현에 대한 분노를 불태우며 경아 씨란 이름을 지금까지 세 번은 말해놓고 그런 표정을 짓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어쨌든 실연은 슬픈 일이었다. 망자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그렇죠.. 연인 문제입니다만… 하지만 경아 씨는 관계 없는 일입니다. 쥐새끼 같은 송현이 새끼가 문제인 거죠.”

 

 의외로, 규현 씨의 말은 송현 씨에게 들은 것과는 좀 달랐다. 으으음. 마음을 거절당했을 때 치졸한 이들은 보통 둘 다를 원망하는 것 같은데, 최소한 이 쪽은 경쟁자만을 원망하려는 품위는 있었다. 그렇다면 규현 씨도 치졸하거나 나쁜 사람은 아닌데… 음…

 

 뭐, 그렇다. 규현 씨는 성질이 좀 욱하는 면도 있기는 했지만 이건 약간 뭔가 인위적인 느낌이었고, 어쨌든 그 외의 상황에서 대화하기엔 나쁘지 않은 상대였다. 상대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고, 당황도 잘 하는, 인간적인 존재.

 젠장, 소장님이 왜 모든 상황에서 가장 먼저 대화로 해결하려고 하는지 좀 알 것 같아… 좀 어렵긴 하지만. 하지만 어쨌든 송현 씨를 돕고 싶은 마음처럼 규현 씨를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여태까지의 말들이 약간 붕 떠있었다면, 이번에는 진짜로, 돕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 혹시 대화로 해결할 수는 없을까요?”

 “대화… 요?”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공격하는 일을 도울 수는 없어요.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가진 오해를 풀고, 대화를 시도하는 일은 도울 수 있어요.”

 

 나는 웃었다.

 

 “그러면 제가 최선을 다해서 최송현 씨를 같이 찾아드릴 수가 있는데. 어때요, 이 정도면 낮선 망자에게 산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 아닐까요?”

 

 갑작스러운 제안이다. 고인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다시 무의식중으로 입술을 깨물려다 급하게 오른손으로 다시 떨어져 나간 입술을 꾹꾹 눌러붙였다. 고민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려줘야겠지. 나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이렇게 말하면 실례겠지만, 어쨌든 돌아가신 몸으로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찾으러 다니시기는 좀 힘드실 거 아니에요?”

 “음… 그렇죠… 아무래도, 힘들겠죠. 제가 오래 이승에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 잘 모르시는군요…”

 “네…”

 

 망자와의 대화는 자꾸 숙연해지는 감이 있어…

 

 “그럼 정리해볼까요, 저는 최송현 씨를 찾는 것을 도와드릴게요. 대신 규현 씨는 송현 씨를 만났을 때 원한을 최대한 대화로 해결해 주세요. 나쁘지 않은 거래 아닌가요?”

 

 망자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미 대답은 나와있는 거나 다름 없었다.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멍하니 몇 걸음 걷다가 문 앞에 멈춰선 망자는 이윽고 살짝 인상을 쓴 뒤,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럼… 최대한 대화로 해볼 테니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여기 온 이유가 그 자식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으니, 아무래도 만나보기는 해야할 것 같고…”

 “네, 잘 생각하셨어요. 같이 찾아…”

 

 우연히, 운 나쁘게도, 망설이다 말고 문 앞에 멈춰버렸던 망자는 그대로 몸을 돌려 대문을 밀었다.

 나는 따스하게 웃다 말고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잠깐, 잠깐, 잠깐, 아까 문 뒤에는, 잠깐만,

 안돼, 저 문 뒤에는 사색이 되어서 대화를 엿듣고 있는 송현 씨가…!!!

 

 “잠깐…!”

 

 나는 몸을 날렸지만, 이미 늦었다.

 송현 씨는 문 너머라는 상황적 특수성을 극복하기 위해, 몸의 안정성을 다소 포기하고서라도 최선을 다해 문에 달라붙어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살짝 문을 밀었을 뿐인데 저렇게 온 몸으로 날아갈 수가 없다. 송현 씨는 허공을 가르며 원망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억.”

 

 바닥에 나뒹굴며 송현 씨는 최선을 다해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주 조용했다. 내가 최악의 자충수를 두었다는 것을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망자는 순간 이 상황을 이해 못했는지 멍하니 보고 있다가, 서서히 분노한 눈으로 나와 송현 씨를 번갈아 바라보기 시작했다.

 

 “잠깐…. 거래? 좋은 거래???”

 “자, 잠깐만, 잠깐만, 진정해주세요,”

 “이것들이 남을 도와주는 척 하며 날 속여!?!!!”

 “아니, 잠깐, 그런 의미가 아니라!!!!”

 

 우와, 소장님, 보고싶어요. 이렇게까지 보고 싶은 건 처음이에요.

 

 
작가의 말
 

 직종이 겨울에는 좀 한산해지는 직종이라, 슬슬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길래 이정도면 매일 글 올릴 시간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이 한산해지니 다른 업무를 시키더라고요. --; 제 오산이었습니다... 슬픔...

 앞으로도 1-2일 정도의 주기로 올라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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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평이한 시체 이야기 (2) 2017 / 11 / 28 522 1 7984   
10 평이한 시체 이야기 (1) 2017 / 11 / 27 603 1 5210   
9 손 (7) 2017 / 11 / 25 542 1 2192   
8 손 (6) 2017 / 11 / 24 530 1 5416   
7 손 (5) (2) 2017 / 11 / 23 598 2 5647   
6 손 (4) 2017 / 11 / 22 549 2 4503   
5 손 (3) 2017 / 11 / 21 547 2 7048   
4 손 (2) 2017 / 11 / 20 563 2 4795   
3 손 (1) 2017 / 11 / 19 736 2 7237   
2 물고기의 눈(2) (2) 2017 / 11 / 18 876 1 7402   
1 물고기의 눈(1) (2) 2017 / 11 / 17 2419 2 12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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