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자유연재 > 공포물
붉은 꽃이 피는 마을
작가 : Ki다린
작품등록일 : 2017.11.30

부모님의 행방을 모른 채 외할머니와 셋이 살고 있던 쌍둥이 희원과 수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장례식장에 수원과 희원의 외당숙이라는 남자가 찾아와 쌍둥이를 부양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향하게 된 시골 마을에서 희원은 자꾸만 이상한 일을 겪게 되는데…

 
02
작성일 : 17-11-30 22:42     조회 : 318     추천 : 0     분량 : 5542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왜 바로 오케이한 거야?”

 

  외당숙은 집에 돌아가서 짐을 가지고 다시 오겠노라고 말하곤 장례식장을 떠났다. 텅 비어버린 장례식장의 뒷정리를 하고 있던 수원이 내 물음에 고개를 들었다. 앞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기며 한숨을 내쉰 수원은 말했다.

 

  “그럼 둘이서 어떻게 살게? 고등학교는 의무교육도 아닌데 돈은? 급식비는?”

  “그, 그건…”

  “네 생각이야 뻔하지. 학교 그만두고 어디 공장이라도 들어가려고 그랬지? 그래놓고 나는 계속 학교 다니라고?”

 

  내 생각을 꿰뚫은 듯 날카로운 수원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수원은 그럴 줄 알았다, 하고 한마디 내뱉더니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갑자기 나타나서 거둬준다는 건 의심스러워. 우리를 데리고 간다고 무슨 메리트가 있다고. 식솔 늘어나면 돈만 더 들지. 뭐, 혹시 아무 대가도 없이 선행을 베풀 수 있을 만큼 집이 잘살 수도 있긴 하지만. 그리고… 5촌이나 되는데 아빠처럼 대하라는 것도 웃겨. 우린 아빠처럼 대하는 게 어떤 건지도 모르는데.”

  “그럼 왜?”

  “그 외당숙이라는 사람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우리도 그냥 그쪽을 이용하면 되는 거야. 반년만 더 있으면 수능도 끝나고, 나는 무조건 전장 받고 인서울할 거거든. 형은 뭐…”

 

  수원이 나를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조금 발끈했지만, 딱히 할 말은 없었다.

 

  “형이 대학을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도 최소한 고등학교 졸업장은 따놔야지. 할머니도 형이 학교 그만두고 일한다고 할 때마다 꼭 졸업해야한다고 그러셨잖아.”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거기, 아까 들어보니까 시골인 것 같던데 시골이면 내신 받기도 쉬울 거고. 하여튼 거기에서 반년만 더 있다가 대학 들어가면 다시 서울로 올라오자고. 대학 간다는데 잡아두겠어?”

  “……”

 

  이해했으면 와서 이것 좀 도와줘. 하고 말하는 수원의 곁에 가서 탁자를 행주로 훔치면서도 계속 찝찝한 기분이 머릿속에 맴돌아 집중하기 힘들었다. 외당숙은 친절해 보였고, 그가 한 말이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께름칙하다.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보일 듯 말 듯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를 나는 끝내 잡지는 못했다.

 

  *

 

  발인이 끝나고 화장까지 끝마치게 되었다. 외당숙의 도움이 컸다. 나와 수원의 담임선생님도 가끔씩 얼굴을 비춰주셨지만, 학교 수업이 있는 탓에 자질구레한 일까지 도와줄 수는 없었다. 솔직히 외당숙이 오지 않았더라면 나와 수원, 단둘이서 복잡한 장례절차를 어떻게 다 밟았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는 고맙게 느껴졌다.

 

  할머니의 유해를 화장하고 조그마한 항아리에 담긴 그것을 손에 받아들었을 때, 안 그래도 왜소한 몸을 하고 있던 할머니가 이렇게 조그맣게 변해버렸다는 것에 당황했었던 기억이 난다. 막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할머니의 죽음이 그 작고 둥근 항아리 속에 담긴 뼛가루를 보자마자 커다랗게 밀려와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한 번도 운 적 없던 수원이 눈물을 터뜨렸고, 나 역시 시큰거리는 눈으로 항아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다음은 동사무소에 가서 할머니의 사망 신고를 할 차례였다. 동사무소 직원분께 이것저것 물어서 겨우 사망신고를 했고, 나와 보니 수원은 할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었다며 나에게 보여주었다. 외당숙이 준 이모할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와 대조해보니 부모님의 이름과 출생 연원일, 그리고 주민등록번호가 똑같았다. 외당숙이 정말 우리의 외당숙임이 판명 나던 순간이었다. 수원은 잘됐지 않냐며 어깨를 으쓱였지만, 나는 복잡한 기분이었다.

 

  가족관계증명서에 있는 자식란에는 우리 엄마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름 정도야 초등학교에 다닐 때 가정환경조사서를 쓴 적이 있어 알고 있었다. 그때 가정환경조사서를 집에 가지고 가서 어떻게 써야 하느냐고 할머니에게 묻자, 할머니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름과 엄마 이름의 한자를 알려줬었는데. 이렇게 서류로 보니까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그래도 엄마가 죽지는 않고 우리가 모르는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 살고는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쓰게 웃었다. 지금 내가 짓고 있는 표정은 할머니가 그때 지었던 그 표정과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아, 맞아. 전학 신청하려면 등본 필요하지. 얼른 가서 떼올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수원에게 말하곤 동사무소 안으로 다시 뛰어들어가 등본 두 통을 떼었다. 사망신고 처리가 바로 되지는 않는 건지, 세대주엔 아직 할머니의 이름이 남아있었다. 비밀이 너무나도 많았던 게 조금 불만이기는 하지만 할머니는 좋은 분이었다. 당신 혼자서 우리를 키우시려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셨고, 그런 할머니가 안쓰러워 아르바이트를 하겠노라고, 혹은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내 손을 꼭 잡으시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하셨다. 그런 할머니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내 성적은 좋지 않지만, 좋지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나와 수원이 어긋나지 않고 자라게 된 것은 할머니의 덕분임이 틀림없다.

 

  등본에 쓰인 할머니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할머니와의 추억을 되새기고 있는 도중, 갑자기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나와 수원의 이름이었다. 강희원, 강수원 이라고 한글 이름은 올바르게 쓰여 있었지만 한자 이름이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달랐다. 할머니가 우리의 한자 이름을 알려주셨을 때, 내 이름은 빛날 희, 구슬 원자를 쓰고, 수원의 이름은 빼어날 수에 구슬 원자를 쓴다고 하셨다. 공부를 별로 잘 하지는 못해도 내 이름 정도는 한자로 쓸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한자는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작년에 발급받은 주민등록증을 꺼내어 등본과 대조해보았다.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때는 본인이 신청서에 한자를 직접 적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주민등록증에 적혀 있는 한자는 내가 알고 있는 빛날 희, 구슬 원자였다. 내 착각이 아니었다. 주민등록증과 등본에 쓰인 한자는 확연히 달랐다.

 

 *

 

  그 후로 일주일간은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고 전학 수속을 밟느라 바빴다. 외당숙은 우리가 앞으로 살게 될 그쪽에서의 전학 수속과 나와 수원이 머물 방 정리를 맡았다. 반 아이들과 담임선생님은 우리가 전학 간다는 사실에 아쉬워했지만, 우리의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농담으로라도 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배려였지만 사실은 전학 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아무도 우리를 말리지 않았고, 나 역시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짐을 쌀 수밖에 없었다.

 

  외당숙이 너무나도 좋은 타이밍에 우리를 찾아왔다는 것도 그랬지만, 사실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더 있었다. 할머니가 엄마의 소식을 전혀 모른다는 전제하에, 아무리 할머니가 이모할머니와 싸우고 고향에서 뛰쳐나왔다고 해도 우리에겐 단 한 명밖에 없는 외당숙이라는 친척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할머니는 나이도 많고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몸도 많이 안 좋으셨다.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나와 수원은 이 세상에 단둘이 되고 만다. 자상하고 우리를 많이 생각하셨던 할머니가 당신이 죽고 난 이후의 일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힘들다.

 

  또 수원은 잘 모르겠지만, 할머니가 사경을 헤매고 계실 때 나의 손을 꼭 잡고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붉은 꽃이 피는 마을에는 가지 말거라.” 이 밖에도 다른 이야기를 신음 뱉듯이 많이 하셨지만, 아이가 옹알이하는 것처럼 알아듣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저 문장만은 또렷이 들을 수 있었기에 내 마음속에 불안감이 응어리진 것과 함께 뇌리에 단단히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름. 할머니의 사망신고를 했던 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 것이 등본에 쓰인 나와 수원의 한자 이름, 그 뜻을 검색하는 일이었다. 나의 이름은 피할 희, 근원 원이라는 한자로 되어있었고, 수원의 이름은 숨길 수, 근원 원이라는 한자로 되어있었다. 둘 다 근원에서 도망친다는 뜻으로 직결됐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우리 이름은 할머니가 지어주신 것이었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붉은 꽃이 피는 마을과 우리 이름의 그 근원이 같은 곳일 확률은 높았다. 하지만 그 장소가 우리가 향하려는, 할머니의 고향이라는 확증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곳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나는 내심 할머니가 피하고 싶어 했던, 붉은 꽃이 피는 마을이 할머니의 고향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이유로 인해 나는 여전히 할머니의 고향에 가는 것이 께름칙했고, 될 수 있으면 가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도중에 수원에게 다시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냥 우리 둘이 살면 안 되겠냐고, 학교는 그만두지 않더라도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생활비를 벌겠노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원은 나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했던 붉은 꽃이 피는 마을의 이야기나 우리 이름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어차피 외당숙이 계신 곳으로 가게 될 확률은 매우 높았고, 그렇게 될 거라면 수원이 새로운 환경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끔 하고 싶었다.

 

  결국, 이사 전날 밤을 맞이했다. 복잡한 마음에 잠도 오지 않았다. 한참을 이불에서 뒤척거리던 나는 결국 방을 나섰다. 불편한 반지하 집도 오늘로 끝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운 기분이 들어왔다. 집 안 구석구석을 눈으로 훑다가 할머니의 방문 앞까지 도달했다. 방문 손잡이에 손을 대고 돌릴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 날 이후로 밤늦게 할머니의 방에 들어가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가진 마성에 홀려 나는 결국 문을 열었다.

 

  당연하지만 그날과 같은 광경을 볼 리는 없었다. 희번득하게 웃으며 쥐를 뜯어먹던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날 보았던 것을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할머니에게 전혀 치매기가 없었다는 것과 그날 그 광경을 마지막으로 기억이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일어나 보니 내 방이었고 아침에 본 할머니는 여느 때와 똑같았다. 그럼에도 그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 가끔 꿈에서 나를 찾아온다.

 

  할머니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원래도 가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유품 정리를 끝마쳤기 때문에 방 안에는 할머니의 유골함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수원이 유골함을 챙겨가서 할머니의 고향에 뿌리자고 말했던 까닭이었다. 과연 할머니가 그것을 원할까, 싶었지만 말릴 이유가 없었고 이유를 말한다고 수원이 납득할 리도 없었다.

 

  할머니의 방 안에 있으니 또다시 그 꿈이 생각나서 더운 날씨임에도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닭살이 돋은 팔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나는 방에서 나오려고 뒤를 돌려던 참이었다. 벽면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절반만 보이는 창문 틈새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휙, 하고 지나가는 것을 본 것 같아 나는 못 박힌 듯 창문을 바라보았다. 목 뒤가 쭈뼛했다. 물론 그냥 사람이 지나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발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등 뒤를 벌레가 지나가는 듯, 음습하고 기분 나쁜 무언가가 전신을 휘감는 것 같았다. 나는 뒷걸음질 쳐서 할머니의 방을 빠져나왔다.

 

  문을 닫자 갑자기 쨍그랑, 하고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 화들짝 놀랐다. 방문을 세게 닫은 것도 아니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도 아닌데. 나는 주위를 살폈다. 이삿짐을 완벽하게 싸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깨질 것도 없었다. 집 밖에서 뭐가 깨졌나 보다, 생각하고 방으로 걸음을 옮기려다가 번뜩 무언가가 떠올랐다.

 

  나는 홀린 듯이 다시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고, 방 가운데에 놓인 유골함을 열어보았다. 할머니의 골분이 든 항아리가 깨져있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0 10 2017 / 12 / 10 314 0 4645   
9 09 2017 / 12 / 9 354 0 5532   
8 08 2017 / 12 / 8 331 0 5599   
7 07 2017 / 12 / 7 316 0 5201   
6 06 2017 / 12 / 5 313 0 5502   
5 05 2017 / 12 / 4 296 0 5112   
4 04 2017 / 12 / 2 301 0 5409   
3 03 2017 / 12 / 1 323 0 5388   
2 02 2017 / 11 / 30 319 0 5542   
1 01 2017 / 11 / 30 504 2 5728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